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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32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
 밤중소리  01-22 | VIEW : 809

                              
                         (232)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
                      


   성경 본문 /  시편 31 : 23 - 24                                


  오늘 주신 말씀 중, 23절에서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직결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빼면 우리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 존귀하며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두 가지 대지로 분류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생활 태도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보호해 주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1. 여호와를 사랑하라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 중 어느 것 하나 쓸모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쓰다가 낡아서 버리거나 고장나서 폐기되는 것은 있어도 그것들이 원래 만들어질 때에는 모두 제각기 제나름대로 쓸모가 있어서 공을 드려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많은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피조물 하나 하나가 목적 없이 만들어졌거나 쓸모 없는 것으로 창조된 것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하물며 만물 가운데 가장 으뜸이요 그 만물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창조하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왜 없으셨을 것입니까?

  (1) 여러분 중에는 혹 자신이 왜 개나 돼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일까 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원망스럽게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들이 사람의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인간은 원래가 짐승과는 전혀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짐승들은 다만 본능적인 존재로 그리고 자기 육신이 살아가는 육적 생명만을 가지고 창조된 피조물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애는 본능적인 생존의 방법에 따라 살아가다가 수명이 다하면 죽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1:26절에서 이르시기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고 2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6절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는데 이 말씀 안에 우리란 낱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란 말은 복수의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신 일을 말하는데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서로 의논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창조는 그 근원부터가 다른 짐승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방법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하나님의 모양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이 같은 일에 변화가 생겨서 영적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사라져서 그 영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영적으로는 죽어 있지만 아직 인간은 자기 영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모두 회수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무한한 지혜와 지식과 도덕적 규범이 되는 양심과 심지어는 종교심까지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짐승들은 타락한 일도 없고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한 일도 없지만 창조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자기 본능에 의한 삶만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짐승들의 본능은 진화되는 일도 없고 발전하는 일도 없으며 다른 어떤 새로운 본능이나 지혜를 만들어 내어 발전된 문명 사회를 이루거나 과학적 지식에 의해 발전하는 사회를 이룰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무한한 지혜와 지식이 허락되었으므로 짐승들과 달리 한없이 발전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아 왔기 때문에 놀랄만한 오늘의 20세기 문명 사회를 만들어 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과 짐승이 이처럼 그들의 삶에 현격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생긴 돌연 변이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제각기 창조한 창조 목적을 다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물 가운데서 우리 인간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놀라우리 만치 큰 축복인데도 이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또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그 대상조차도 모르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바울은 롬1: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을 제외한 피조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다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상만으로 족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신 목적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만든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조건으로 한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계명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지 못한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적용시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본능은 제각기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본능의 한계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일은 다른 모든 짐승의 본능 밖의 일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양심을 가진 인간들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그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지혜와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께 보여 드려야 할 사랑을 저버린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 잃어버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처럼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이란 말은 그 범위가 굉장히 넓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율법이라고 말 할 때, 그 주림 말이 곧 십계명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과 인간, 곧 이웃과의 사랑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율법은 크게 두 가지 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22:37-40). 이 율법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주신 계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그의 생활의 방편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율법을 짐으로 여겨 지키기를 거역하고 오히려 이방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 하사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된 방법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최대한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요일4: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적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들이 그 사랑의 방법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그 창조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사람은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3:1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순종하는 생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준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를 믿는 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증거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로 모든 일이 결판이 납니다. 영생과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로 최종적으로 결정이 되며, 심판과 지옥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이 같은 삶이 없는 사람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이런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생활을 이루기 위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는 생활을 하며 헌신도 하며 순종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름철에 시원한 바람을 내어 보낼 에어컨이 제 구실을 못할 때, 그 에어컨은 이미 쓸모 없는 물건으로 쓰레기장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로 불려지는데 이 말의 뜻은 ‘빗나갔다’는 것으로 과녁을 잘못 맞혔을 때 빗나간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할, 인간의 창조 목적에서 빗나갔다, 과녁을 잘못 맞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실한 믿음의 생활로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증거를 가지고 여러분의 생애에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다음 두 번째 대지로 그 다음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호해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돈이 많은 사람을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까?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을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성품이 착하고 흠이 없이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호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 (누구를?) 성실한 사람을 (어떻게 하신다고?)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실한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좋아요. 남다른 재간이나 재능이 없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잃으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생활을 하시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다는 이 사실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첫째로 믿음에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한 믿음이란 진실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말만 하고 열매가 없는 믿음은 거짓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그 말 자체가 열매가 함께 따라야 합니다. 만약 믿음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열매가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제 그런 사람은 성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가 생활에 뒤따라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간절함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성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살펴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2) 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생활이 그리스도인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람됨이 그리스도인답게 변화 받아야 합니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언제나 주님 앞에서 생활하는 태도를 가지고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겉으로 모양만 갖추는 생활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아내가 자기 남편의 진실하고 성실한 신앙 생활을 인정해 주고 남편이 아내의 믿음을 인정해 주는 신앙 생활이 되어야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의 생활을 하는 가정입니다. 남편으로부터 ‘내 아내는 교회에서 권사직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가짜야’ 이런 말을 듣는 아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교회에 안나가지만 내 아내를 보면 하나님은 살아 계심을 알 수 있어, 내 아내는 정말로 살아있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어’이런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사회요 한 가정입니다. 이 사회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을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순종이 있어야 하며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성수 주일을 비롯한 각종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해야 합니다. 성수 주일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고 구역 예배에도 철저하게 참석해야 합니다. 진실하지도 못하고 성실함도 없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나 질병이나 환난이나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맡은 직분에 성실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높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 때문에 승진이 빠르고 신임이 두터운 것입니다. 요즘처럼 정리 해고 바람이 불고 감원 바람이 불어와도 그런 사람들은 끄떡없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름만 구역장이요 이름만 집사요 이름만 권사라면 그런 직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일에는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이 교회 일을 위해서는 뒷짐만 짚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직분자들을 사랑하시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보호하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호하신다는 말씀은 그의 인생 길에 함께 하시겠다는 뜻이며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돌보아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반드시 축복해 주시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성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아모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니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하늘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을 그의 손으로 붙잡아 서산에 기울지 않게 하셨고 달도 그 자리에 멈추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의 생애는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바로 왕 다음 가는 총리직으로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애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의 생애에 방패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들에게 하늘이 무너질 듯한 난감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닥쳐올는지 모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서 꼭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 여러분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신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며 축복이 될 것입니까?

  결론 :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일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과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에 성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향한 생활에, 교회를 위한 생활에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생활에 말할 수 없는 큰 유익이 오며 우리의 가정에 축복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실한 신앙 생활로 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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