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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87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차이)
 밤중소리  01-20 | VIEW : 679
                        (187)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차이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3 : 10 - 12


  성경에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당신이 정하신 이 법칙을 따라 역사 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구하는 간질병 들린 아이의 아비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비밀의 법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은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든 받을 수 있다는 법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일에도 이와 똑같은 법칙을 주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법칙에 의하여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육간의 놀라운 축복이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 누가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1. 허락된 천국의 비밀


  골2:2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란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 역시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비록 그 비밀이 성경에 공개적으로 기록은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비밀이므로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 본래의 지혜나 세상의 학문이나 경험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만이 깨달아 그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믿음으로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깨닫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11절에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하나님의 비밀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고 무익한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말씀은 12절 말씀으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고 듣고 믿는 자만이 깨닫게 되어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2. 영적인 면에서 본 축복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설명하는데 있어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이 두 가지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면에 대한 교훈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먼저 신령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적용되며 영적 신령한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중에는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남다른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늘 감사하며 기쁨과 소망으로 그의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넉넉한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대단히 부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장이 전혀 없고 은혜 생활이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감사나 기쁨이나 소망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영적으로 대단히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영적 가난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하는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무릇 있는 자라고 하신, 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혜도 믿음도 소망도 기쁨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누구나 맛보고 그 같은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사람만이 이처럼 넉넉한 영적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무릇 있는 자에게 넉넉하게 되는 축복의 비결을 말씀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 같은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씨는 여러 곳에 뿌려졌습니다. 길가에도 뿌려졌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기도 했으며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기도 했고 더러는 좋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은 곳은 오직 한 곳뿐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열매는 어떤 사람에게 열리는 것입니까?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땅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가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열매란 곧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말씀은 소귀에 경 읽기로 그 말씀이 아무리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 해도 생명을 줄 수 없으며 그 말씀이 아무리 문제 해결의 능력이 되는 말씀이라 해도 문제 해결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은혜뿐입니까? 은혜가 살아지면 마음의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함께 살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것까지 빼앗기게 되므로 그의 앞날은 영적으로 더욱 참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에 대하여 요15장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과실이란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이런 과실을 많이 맺으면서 그의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시지만 맺지 못하는 가지는 그 가지를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하시고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은혜 생활의 비결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생활의 비결을 엉뚱한 데서 찾으려 한다면 신앙의 성장이나 향상을 바랄 수 없습니다. 모든 비결이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는 이 한 가지 사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이제 아름답게 성장하며 풍성한 축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무릇 있는 자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말합니다. 눅19:12절에는 어떤 귀인이 자기의 종 열 명에게 각기 한 므나씩의 돈을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라고 명했습니다. 주인은 먼 훗날 다시 돌아와서 그의 종들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종은 열 므나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다른 한 종은 다섯 므나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종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싼 채 주인이 돌아 올 때까지 숨겨 두었다가 한 므나 그대로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이 때 그 주인은 이 악한 종을 향하여 엄히 꾸짖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 곁에 있는 자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자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가진 자에게 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엄중한 한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장사하여 하나님께 가진 자, 있는 자가 되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그 가진 것까지 빼앗기게 되고 빼앗긴 것을 오히려 많이 가진 자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각기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달란트에 합당한 대로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는 우리가 받은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장사를 부지런히 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다는 것은 열심을 다하여 충성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맡은 사명에 충성하는 일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가진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 넉넉하게 받게 되므로 영적인 놀라운 성장과 함께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사명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고 하려고 하는 의욕도 상실한 채 충성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축복을 받는 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여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로부터 받은 직분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열심을 다하여 충성하시어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그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축복의 열매를 맺고 맺지 못하고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지만 씨를 받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공통적인 사실입니다. 한길 가처럼 단단한 마음에도 씨는 뿌려졌으며 돌작 밭 같은 굳은 마음에도 씨는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 같은 마음에도 똑같은 씨앗이 뿌려진 것입니다.

  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며 이 씨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축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금이나 은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리의 생명이 이 씨로 인하여 주어졌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이 말씀 안에는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며 나에게 풍성한 은혜와 믿음과 평안을 공급해 주시며 한없는 축복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지금도 우리들 마음에 끊임없이 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축복과 기적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여러분의 마음 밭에 지금 계속 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축복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을 따라가느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게을러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부지런히 장사하는 생활을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물질적인 면에서 본 축복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이 비단 영적 축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물질적 축복에도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그러면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하신다는 뜻은 무엇이며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있는 자에게 없는 자의 것까지 빼앗아 더 보태 주는 일은 너무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에는 이 원칙이 반드시 적용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이 법칙을 우리의 생활에 적용시켜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있는 자’라고 하신 대상은 자신에게 넉넉한 재물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의 생활에는 자기는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는 드릴 것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쌀이 떨어졌다고 다음해 봄에 논에 뿌릴 씨앗마저 먹어치운다면 그 사람은 정녕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까지 자기 생각대로 써버리고 자기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핑계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의 생활은 축복 받을 생활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전 연보궤에 헌금한 한 가난한 과부는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자기 집에는 먹을 양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는 하나님께 드릴 것만큼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주님께 ‘예수님, 저 사람들은 돈이 많기 때문에 많은 것으로 헌금하겠지만 나는 주님이 아시는 대로 가난한 과부입니다. 나를 불쌍히 보시고 돈 많은 저 부자들을 명하여 이 불쌍한 과부를 도와주라 하소서.’ 만약 이처럼 호소했다면 이 여인은 성경에 이토록 아름답게 기록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과부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 가난한 과부였던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큼 물질을 가지고 있었던 복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더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기 때문에 넉넉하게 더 주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진 것까지 빼앗기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은  비록 가난해도 하나님께 드릴 것만큼은 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무릇 있는 자라고 하신 대상은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무릇 없는 자라고 하신 대상은 자기는 부요하지만 하나님께는 매우 인색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마음만 주님께 바치는 생활이 아닙니다. ‘네 물질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더 받아 넉넉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신다면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는 식으로 죽어 가는 소리를 내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저는 없는 자가 아닙니까?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집세, 교통비, 그에다 은행에 진 카드 빚 등 이런 것 갚고 나면 아시다 싶이, 보시다 싶이 저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제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저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아시지요.’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지고 있는 바를 주님께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님께 나는 없다고 죽는소리로 몸을 사릴 것이 아니라 ‘여기 있습니다.’ 있다고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시인하신 그것을 하나님은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 앞에 있는 자입니까? 없는 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있는 자에게 더욱 풍성히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있는 자만이 은혜의 복을 받고 믿음의 복을 받고 평안의 복을 받습니다. 있는 자만이 올바른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있는 자만이 그의 생애에 믿음으로 승리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께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는 부요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난합니다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없습니다가 아닙니다. 비록 나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향하여는 여기 이것이 있습니다 고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오늘 저녁 끼가 없을지라도 가난한 과부처럼 여기에 내 생활비 전부가 있나이다고 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가진 것이 없다고 낙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 아들 안에서 그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아직까지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해온 생활에서 이제 나에게는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생활로 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두 렙돈이 있습니다. 여기 기름 한 병이 있습니다. 여기 보리떡 다섯 개가 있습니다. 여기 떡 한 덩이가 있습니다. 없습니다가 아니라 있습니다 고 말씀하실 수 있는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부터 이 같은 새로운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에 부요한 생활을 통해서 무릇 있는 자에게 더욱 넉넉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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