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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83 (잘 열리는 축복)
 밤중소리  01-20 | VIEW : 536
                        (183)


                잘 열리는 축복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 : 7 - 11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같은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하는 일마다 무엇이나 잘 안 되고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열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길이 순탄하고 형통하게 잘 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과적으로 잘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잘 열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잘 열리는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구하라 ! 찾으라 ! 두드리라 !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일에 대하여 본문에서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 가지로 구분하여 표현하신 말씀이지만 실인즉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문이 열리는 길을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욕망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해 줍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자신의 육신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마음에서 힘쓰는 삶의 방법입니다. 이 같은 방법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정욕적인 생애라고 말하고 있으며 탐심을 이루기 위한 삶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애는 마땅히 이런 정욕적인 탐심의 생활을 버려야 하며 그런 인생길을 걸어가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기 생애를 순전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아름다운 생각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복을 받되 바로 이 같은 신앙적인 자세를 가지고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통하고 복을 받게 되기를 진실로 원하시지만 우리들로 이 같은 신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복은 문이 열려서 하늘에서 내려와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셨다면 이 문이 열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아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이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이야말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는 고픈데 음식점 문이 닫혔습니다. 열리지 않는 삶을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병들어 괴로움을 당하는데 병원 문이 닫혔습니다. 그 문이 열리지 않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법정의 문이 닫혔습니다. 호소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 문이 열리지 않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사업 문제나 신상 문제나 가정 문제가 잘 열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열리지 않아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무엇인가 잘 열려져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가정에, 사업에, 그리고 모든 당면한 문제에 열리는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열리는 역사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강청하는 기도에 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눅11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으로 지금 우리들이 예배 시에 암송하는 주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5절에서 하늘이 열리는 한 가지 기도의 비결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막 잠자리를 펴고 문을 닫아걸고 자리에 누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들과 함께 지금 편안한 안식을 취하려고 잠자리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에 이웃에 있는 한  친구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친구여 멀리서 내게 한 손이 찾아 왔으나 배고픈 그에게 줄 떡이 없으니 떡이 있거든 세 덩이만 빌려 달라’는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잠긴 문을 계속 두드리면서 배고픈 이 형제를 굶길 수 없으니 꼭 빌려 달라고 강청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문을 닫아걸고 안에서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운 그 친구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안에서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는 일어나 주지 아니 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든 그 친구의 심정을 바로 주님의 심정으로 비유해서 그런 경우에 반드시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비유로 우리에게 들려주신 목적은 이처럼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가 열리는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 다음에 낙망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열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기도에는 분량이 있습니다. 시간의 분량과 량의 분량입니다. 죄인에 대한 징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분량이 머리끝까지 채워졌을 때,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집니다. 계3: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 곁에 서서 많은 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가 금향로에 차기까지 제단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찬 연후에 보좌 앞으로 올려가서 응답의 불로 땅에 쏟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의 시기가 더디다고 그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 받아야 할 기도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면 그 기도를 쉬 포기하거나 낙심하여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계속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리는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눅18장에서 예수님은 어느 가난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여 기막힌 마음의 소원을 풀게 된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불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여러분은 지금 어떤 제목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하다면 응답이 늦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단 곁에 서서 여러분의 기도를 금향로에 담고 있는 천사가 그 금향로에 차기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기도는 반드시 열리는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3) 믿음의 기도는 열리는 축복의 역사가 따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건 믿음을 따라 역사 하십니다. 그러므로 히11장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입니다. 기도해 놓고 의심한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경종했습니다. 예수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실과 그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구원이 주어질 수 있을 것입니까? 기도의 원리도 이와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기도는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겠지만 믿음이 없는 기도는 그 기도에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열리는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막11:24절에서 주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우리는 이 말씀대로 기도하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연속 외치며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로 정욕적인 기도에는 믿음이 따르지 않습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잘못 구하는 기도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도에 믿음이 생길 리 없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순종하는 생활에서 나옵니다. 순종이 없는 사람의 기도에는 믿음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를 많이 구사해도 아무리 목청을 높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습니다.

  (4) 진실한 기도에 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시145편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진실과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위선적인 기도, 거짓으로 가장하는 기도는 통하지 않습니다. 요를 적시기까지 울며 기도한 다윗의 기도는 진실한 기도였습니다. 성전에서 마음이 괴로워 통곡하며 만일 주의 여종의 괴로움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울며 기도한 한나의 기도는 진실한 기도였습니다.


  3. 열린 사람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기도로, 찾음으로, 두드리므로 열려진 축복을 받은  일에 대하여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종 모세는 그의 기도로 홍해를 가른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 다다랐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그의 마음이 다시 강퍅해지면서 애굽의 군사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쫓게 했습니다. 홍해에 머물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우성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이끌어 내어 죽게 하느냐’고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처럼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이유는 그들로 홍해 바다에 빠트려 죽이시려는 뜻인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시기 위함이라는 믿음을 모세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세상에서 멸망시키시려고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이며, 그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10장에서 이르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날 밤 그의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홍해 바다를 행해 내밀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불게 하시어 홍해를 갈라지게 하심으로 그들로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뜻을 깨닫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꼭 자신을 죽일 것으로 여겼던 홍해는 반드시 갈라져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시기 위해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사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과 축복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담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하고 있거늘 하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어찌 약속한 축복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까?

  (2)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 요단강이 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이제 요단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가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지난번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신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 강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시기를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 물속에 들어가라 그리하면 강물이 열려질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단강은 우리의 목적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만나는 어려운 고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목적지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 여호수아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법궤를 메고 강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요단강 물이 열려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앞으로 전진하면 그 어떤 장애라도 말씀의 능력 앞에 열려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불경기가 찾아와도, 어려운 시련을 만나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시험이나 환난이 몰려 와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앞으로 뚫고 나가면 반드시 요단강이 열린 것처럼 그 문제들이 열리는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순종은 기적이 열립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불운의 밤을 지새운 후, 바닷가에 앉아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시어 말씀을 전하신 후, 베드로를 향하여 네 그물을 저 깊은 곳에 던지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하여 우리가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말하고는 배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몰아 그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어떤 합당한 이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한 것이 그처럼 엄청난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반드시 열리는 축복이 나타납니다.

  (4) 소망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하늘의 불로 대결한 엘리야는 그들 바알 선지와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죽인 후,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이르기를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까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일곱 번째 엎드린 후에 보니 바다 저 편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구름장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이전에 이미 빗소리를 들었지만 구름은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늘에 나타난 것입니다. 잠시 후, 그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강한 빗줄기가 되어 쏟아져 내린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믿음으로 가진 소망은 언제인가 하늘에 적은 구름처럼 확실하게 떠오르는 날이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빗소리를 듣고 하늘에 손바닥만한 적은 것이 떠오를 때, 빗줄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열리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빗소리처럼 나타납니다. 엘리야의 빗소리를 들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질병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드디어 여러분에게 축복의 빗소리로 마음에 부딪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빗소리가 작을지라도 그리고 구름이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엘리야처럼 일곱 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손바닥만한 적은 구름이 떠올라 땅에 소나기로 쏟아질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리는 축복은 마음에 소망의 빗소리를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열리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열릴 줄 모르는 생애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불행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낙망치 말고 꾸준히 기도하는 생활을 통하여 열리는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처럼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간 열려지는 축복이, 여호수아처럼 요단강을 말씀으로 건너간 열려지는 축복이, 엘리야의 빗소리를 통하여 열려지는 축복이 여러분의 생애에도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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