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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82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생활)
 밤중소리  01-20 | VIEW : 576
                        (182)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생활


   성경 본문 /  신명기 8 : 1 - 3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 3절에서 이르시기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간 어려운 시련을 겪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신 후, 그 경험을 통해서 사람의 생활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밝혀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여러분이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여러분의 생애를 살아온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음을 믿으시고 이제부터 여러분의 생애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통하여 축복의 생애가 새롭게 열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이 복을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수도 없이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을 살펴 볼 때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볼 때 나는 지금 하나님의 놀랄 만한 축복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장담할 만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 것입니까? 그러면 왜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이 언약하신 축복과는 거리가 먼 생애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마치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 해답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보여 주시면서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여 년 간 걸어간 광야는 인간적인 방법이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살아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떡으로만 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광야란 곳은 굶어 죽기 안성맞춤인 고장이요, 병들어 고통을 당하여 죽기에 알맞은 곳이요, 목말라 갈증으로 애태우기에 합당한 고장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갔었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없이 단 며칠 동안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에 있는 현실만을 바라보고 불만을 토하고 불순종하며 패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기간이 40년간으로 연장되었고 그 행로에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셨고 메추라기로 해변에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여 그 고기를 먹게 하셨으며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길을 내어 앞으로 전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훈련을 통해서 그들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불순종의 길을 버리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실패하고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은 바로 이스라엘이 걸어간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연단으로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우리의 생애가 광야인 줄을 모르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으로 이 광야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광야 길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길입니다. 광야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날 애굽에서 살아갔던 생활 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우리의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 튀어나오고 목이 마르며 불만스러운 장벽에 부닥쳐 주저앉아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아니시면 우리는 광야 생활에 지쳐 사막에서 갈 길을 잃고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쓰러져 버렸겠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기적적으로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어 오늘에까지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우리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살려는 노력은 결국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하늘에서 계속적으로 신비의 식량인 만나가 내리며,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며, 여리고성 같은 인생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며,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리석다고 여기리 만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그 말씀의 길을 버린다면 아무리 지혜롭게 살아가도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걸어간 것처럼 고달픈 생애가 평생 계속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40일간의 금식기도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이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 같은 마귀의 제안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신명기 8장에서 인용하신 것인데 본문에서 그 인용구를 찾으면 이런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우리의 생애에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는 기적의 생활이 창조된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떡으로만 사는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아무런 기적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가난을 이기는 기적의 생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첫째로 가난을 이기는 기적이 창조됩니다. 가난은 분명히 우리 생활 주변에서 추방해야 할 천덕꾸러기입니다. 가난이 좋다고 그 가난에 매어 한평생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도 가난한 생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난한 생활은 미덕이니 너희는 가난해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도 없습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떡으로만 살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에게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가난을 이길 수 있는 기적의 생활을 창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가난을 해결하려면 먼저 두 가지 사실을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에 쪼들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오히려 안타까이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 28장에서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려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들로 가난을 이기게 하실 수 있는 기적의 창조자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삼상 2장에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고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며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떡으로만 사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가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이 같은 기적이 언제 나타나는 것입니까? 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기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바칠 때, 이 가난을 이기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말씀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과 그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일에 대하여 더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바치는 사람에게 기적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받는 문제에 관한 설교는 줄곧 잘하지만 무엇을 바쳐야 한다는 설교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많은 성도들은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바치는 일은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성도들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바치기는 싫어하고 받기는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었으며 그 결과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결국은 교인들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물질에 관한 설교를 하면 많은 교인들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외면을 합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하는 말이 헌금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도 구원도 소망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이 따로 있습니다. 이 법칙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전달되어야 헌금의 참 뜻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는 헌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이 바칠 것을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일에 대해서만 설교한다면 이런 설교는 성도들의 생활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리는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 것도 심은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일입니다.

  사르밧에 한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다 오랜 기간 가뭄이 계속되어 살아가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이 과부는 침울한 표정으로 성 밖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는 그 주운 나뭇가지를 가지고 집에 남아 있는 가루 한 움큼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에게 먹인 후, 그 후에는 죽기로 마음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이 과부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과부의 처지를 동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고 선언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의 말은 ‘네가 그 떡을 만들어 먼저 내게로 가져와서 나로 먹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얄밉기도 하고 너무나도 염치없고 뻔뻔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어처구니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그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이 가뭄이 다 지나도록 네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과부의 떡 한 개를 빼앗아 엘리야에게 먹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떡 한 개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용하는 그 믿음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과부는 이제 이 떡 한 개를 아들에게 먹이느냐 아니면 이 하나님의 사람이 말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먹이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과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이 과부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아들의 생명이 걸린 이 떡을 엘리야에게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할렐루야 !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아야 창조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돈이나 물질이 필요해서 그것을 바치라고 하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을 보시기 위해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엽전 두 렙돈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들 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렵고 가난하게 지내는 성도들에게 ‘너는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얼마나 고생되니, 너에게 무슨 바칠 것이 있겠느냐 내가 네 마음을 받을 터이니 괜찮다’ 이처럼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마저 빚으로 남의 집 종으로 팔려 가게 된 한 선지자의 아내에게 엘리사는 ‘네게 아직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선지자의 아내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은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름 한 병을 하나님께 바치는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비록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름 한 병마저 없다면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형통케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형통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란 우리의 마음에 원하는 소원대로 성취케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원하는 소원대로 우리의 도모하는 일이 착착 이뤄진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시 20편에서 이르시기를 ‘하나님은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시 37편에서는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로 삼으란 말씀은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가리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를 믿으면 형통한다고 목사님들이 설교하는데 왜 우리의 생활은 형통하지 못하느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의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에는 그 원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활에 대한 염려에서입니다. 염려는 순종의 생활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래서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불순종은 의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순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의심은 믿음이 없는 곳에서 생겨나는 독버섯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의 신앙생활에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서 듣고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생활이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떡으로만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려움만 계속되고 시험과 질병과 곤고한 일만 지속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도 그들의 생활을 답습하기 때문에 가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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