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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84 (임마누엘의 축복)
 밤중소리  01-16 | VIEW : 594

                       (84)


             임마누엘의 축복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 : 18 - 25              


  2003년도 올해도 이제 한 주간만 남았습니다. 오는 목요일이면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25일에도 우리가 ‘성탄절’ 예배를 드리지만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몇 일 앞두고 성탄과 연관되는 의미 있는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말씀은 ‘임마누엘의 축복’ 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임마누엘의 종교입니다. 23절에서 해석해 주고 있는 것처럼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깊은 뜻이 담긴 말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1장에서 임마누엘에 대하여 말씀해 주기를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이 언약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이 말씀에서 지적하고 있는 하나님은 성삼위 중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일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임마누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부터 들어야 하겠습니다.

  요1:2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계셨던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란 성경적 증거는 상당히 많습니다. 빌2:8절에서 말씀해 주시기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요1:18절에서는 예수님을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본체로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날이 그가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며 세상에 오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게 되었으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이 사건을 ‘임마누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모릅니다. 대강 계산해서 12월 25일로 추정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 날을 주님이 세상에 오신 날로, 성탄절이라 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생일날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셨다면 태어나신 날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어느 날이든 그 날을 정하여 생일을 축하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는 정말 예수님은 말씀, 곧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야 하셨으며 우리들에게는 왜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만 고분고분 순종했었다면 죽는 일이나 질병이나 환난 따위로 저주받는 일이 없이 하나님의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의 말을 따른 일로 인하여 인간 사회에 최초의 비극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인간의 최초의 죄라 하여 원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면 죽으리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발 부칠 곳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 밖으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인간 사회에는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각종 저주가 들어 왔습니다. 죽음의 저주가 왔고 굶주림과 질병과 고통과 환난의 저주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 누구 하나 이 같은 저주에서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죗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저주 가운데서 허덕이며 한 평생을 살아가다가 결국 사망으로 끝나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일입니다. 창3:15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범죄의 길로 유혹한 사단을 저주하실 때 여자의 후손을 보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 땅에 구세주이신 메시야를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통해서 사단의 사망 권세를 폐하시고 인간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약속하신 구세주로 그의 아들을 보내시기로 예정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일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00년 전에 이미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시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증거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셨으며 우리는 이 날을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씻어 주시고 사망에서 생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한 적은 마을 베들레헴이란 곳에서 출생하셨습  니다. 이처럼 놀라운 신분을 가지신 분, 하늘보다 더 높으시고 위대하신 분이 태어나신 곳은 부잣집 안방이 아니었습니다. 호적 하기 위해 다윗의 동래인 베들레헴에 그 부모가 이르렀을 때 여관에조차 있을 곳이 없었으므로 말이 거처하는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으며 뉘실 곳이 없어 말구유에 자리를 펴고 그곳에 뉘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겪으셔야 했던 모든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괴로움도 겪으셨습니다. 슬픔도 겪으셨습니다. 굶주림도 겪으셨습니다. 멸시와 천시도 겪으셨습니다. 그는 죽음도 가장 비참하게 당하셨습니다. 저주받은 죄인들이 달리는 나무십자가 위에서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는 고통 중에 운명하신 것입니다. 이에 모든 인류는 이처럼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을 맛보며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이 아버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증거 하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의 소식은 이미 온 세상에 메아리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류들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임마누엘의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이 사실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내실 수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인하여 세상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저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 예수를 모른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임마누엘로 오신 이후의 이 세상은 살인죄나 간음죄나 사기죄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보내신 이후, 이 세상에서 지옥에 가는 가장 무서운 죄악은 예수 믿는 일을 싫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지금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일이 지옥에 갈 만치 무서운 죄인 줄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막상 지옥에 가 보게 되었을 때, 그 곳에 들어
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오게 된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마누엘로 오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는 그 사람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로 오신 성탄절이야말로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뜻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오신 목적


  그러면 왜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그가 임마누엘로 오신 목적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몇까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데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지만 우리들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우리들에게 있는 아담의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없으시며 오직 빛과 생명과 은혜와 진리만이 충만하십니다. 그럼에도 그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그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죽으심으로 이 죽음을 대속의 죽으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셨고 그가 걸으신 인생도 고난과 굶주림과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히4장에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몸서 체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의 어려움을 잘 이해해 주시고 동정해 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돌보아 주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괴롭히는 그 어떤 문제라도 내게로 가지고 오라,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내가 그 어떤 처지에서 어려움을 겪고 힘겹고 험난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방황한다고 해도 예수님은 그 문제를 가지고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예수님은 우리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임마누엘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하나도 다름이 없으신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마 천사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다른 어떤 종교의 교주들처럼 하루 종일 참선이나 시키고 목탁이나 두들기게 하고 절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하란 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훌륭한 도덕 군자의 처지에서 우리에게 너희도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야 하고 허물없이 살아야 우리의 영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하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으며 그에게 소망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며 우리 중에 누구든지 죄 없이 그 생애를 살아갈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우리의 생애 중에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무거운 짐이며 우리들은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수고로운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희에게 더 무거운 짐을 져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너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짐으로 너희로 평안하고 소망이 있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또한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이 세상에 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은 의와 생명과 천국을 가져 왔습니다. 롬5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우리는 한 사람 아담 안에서 모두 불순종의 아들들로 낙인이 찍혀 죄인이 되었지만, 우리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그 예수 안에서 다 순종의 아들로 인정받아 의인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나왔습니다. 빌2장에서 ‘그는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순종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순종이셨습니다. 그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 다음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가 메시야의 모습을 예언할 때,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 죽으셨음을 증거 해 주는 말씀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아들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들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 일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를 본 받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신 일은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죗값으로 죽게 된 우리 인생들에게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 아들을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3. 임마누엘의 축복


  여러분, 이런 예수님이 바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이후,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나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2천년 전에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고 30년간 세상에 계셨던 역사상의 인물로만 그치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임마누엘로 계시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임마누엘에 대한 약속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르고 무의미하게 자기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혹 교회에는 나오지만 아직 임마누엘의 축복이 무엇인지, 그 축복의 맛이 어떠한지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과 가까이하십시오. 말씀으로 예수님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반드시 임마누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생애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 같은 축복을 가지시고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마음속에, 나의 가정 위에, 이런 축복을 마련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요셉을 연단 하여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높이셨던 것처럼, 다윗을 연단 하여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올리신 것처럼 우리들이 받는 시련과 고생과 수고도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이 모든 우리들의 인생과정에서 우리의 인생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채워 주신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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