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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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밤중소리  03-02 | VIEW : 2,961


  ≈ 10≈         순종과 결실

  (본문 : 요한복음 2 : 1 - 11)

  서 론 :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이 자리에는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제자들이나 초대받은 귀빈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며 순종하는 하찮은 하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하인들이 어떤 연고로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에 직접 개입하여 그 놀라운 기적의 체험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

  혼인집에 흥을 돋구어 주는 것이 있다면 술이라고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에서는 각기 재배한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두고 그것을 귀한 손님에게 혹은 음료로 대접했으며 혹은 잔치 집 같은 경사에 술로 사용해 왔었습니다. 잔치 집에 음식이 떨어졌다면 손님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처럼 잔칫상에 술이 떨어져도 그 분위기가 썰렁해 질 것입니다. 예상외로 많은 손님이 온 까닭에 잔치가 파하기도 전에 중도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포도주를 사올 수도 없고 빌려올 곳도 없으니 주인의 입장으로서는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1)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아들에게 찾아가 이 같은 사정을 알려주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마리아는 그 아들이 이런 일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로부터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가 아들에게 바라는 간구를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마리아의 이 같은 기도의 자세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일의 때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때를 만드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주님은 그때를 임의로 변경시키실 수도 있으며 이룰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때가 다만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일 이상 더 효과적인 삶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마리아는 그 곳에 있는 하인들에게 명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담이 이를 불순종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그대로 하라고 한 마리아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상 우리는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든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은 우리를 위한 축복의 말씀이십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 무슨 말씀이 나오든지 그 말씀을 절대로 의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며 네가 감당할 모든 능력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능히 이룰 수 있는 적절한 말씀만 주시고 나에게 유익 될  말씀만을 주십니다.

  ④ 하나님은 언제나 그 말씀에 책임을 지시고 말씀대로 이루어주십니다.

  2. 순종의 태도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드디어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인들은 얼마 전에 이 집주인과 친한 관계에 있으며 이 일을 주관하는 마리아의 말을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1) 주님이 그들에게 내리신 첫 번째 말씀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곳에는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하인들은 주님의 명령이 어떤 뜻을 가졌는지? 그 항아리에 물을 부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한 마리아의 말에 따라 그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웠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과는 그 차이점이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미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친히 그것들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물을 길어온 하인들 중에 그 누가 그들이 항아리에 부어 놓은 물이 맛이 좋은 포도주가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뜻은 몰라도 그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한 선한 뜻을 가지고 나에게 순종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2) 하인들은 물을 채우되 아구까지 채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온전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하되 어느 시점에 가서 포기해 버리므로 아구까지 순종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온전한 순종만이 참 순종입니다. 모자라는 순종, 부족한 순종, 미치지 못하는 순종이 아니라 아구까지 채우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3) 하인들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하인들의 생각에는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길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그 물을 주전자에 담아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명령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연회장에는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포도주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사태가 이쯤 되면 아마 순종이고 무어고 다 집어치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술을 찾는 자리에 물을 가져다주면 욕을 얻어먹고 망신을 당할 사람은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때 순종을 포기하면 언약의 축복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관문에서 낙제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인들은 다른 이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다만 순종했습니다.

  결 론 : 순종의 열매는 맨 끝에 가서 나타납니다. 하인들이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연회장에게 갖다주기 까지 그 주전자 안에는 물 그대로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끝까지 순종하는 순간, 물이 아구에서 나오는 순간에 가서 포도주가 되어 쏟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엄청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기적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이 하인과 같은 낮은 자세, 순종의 자세,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대로 따르는 자세를 가지고 생활해 나간다면 우리의 주변에는 물이 포도주가 된 사실을 하인들만이 안 것처럼 나만이 아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수도 없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11≈         포도주의 변화

  (본문 : 요한복음 2 : 9 - 10)

  서 론 : 혼인집 사람들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마셨을 때 그 포도주의 맛이 이전의 것보다 더 좋았다고 칭찬하게 되었는데 이 같은 역사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적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주님은 바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기 때문에 돌 항아리에 든 물 뿐 아니라 흥해 전부를 포도주로 만드실 기적의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시는 권능은 이런 일 뿐만이 아닙니다.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 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고도 하셨습니다. 기적은 마술이나 초능력과는 다릅니다. 기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적 능력입니다. 그 곳에는 눈가림도 없고 속임수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이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권능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술은 사단의 지혜나 능력에서 나온 거짓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곳에는 진실이 없기 때문에 그 거짓됨이 곧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첫 이적의 의의

  예수님의 첫 이적이 왜 물이 포도주로 변화 받는 것으로 나타났느냐는 문제는 주님의 하시는 구원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 안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포도주가 되듯 새로운 변화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5:17).

  이전 것은 마치 무미건조했던 물과 같은 것으로 세상에 얽매었던 지난날의 육신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새것이란 완전한 변화를 통하여 중생하여 영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는 나, 소망으로 살아가는 나,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자 이 같은 변화의 체험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과 포도주는 영적인 견지에서 생각할 때 하나의 상징입니다.

  (1) 물은 육신의 열매를 말합니다. 물은 물 이상의 가치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육신의 열매는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롬8:6-8). 육신에 속한 사람은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가 없는 사람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일 뿐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생활을 못하고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2) 포도주는 영의 열매를 말합니다. 포도주는 완전한 변화를 상징합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 받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5). 육과 영과는 그 가치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이 같은 일에 대하여 갈라디아서에서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그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그리스도인은 포도주로 변화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언제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생활을 버릴 수 없으며 그 결과는 썩어진 것을 거두는 일입니다.

  2. 변화의 비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비결을 가나 혼인의 경우를 들어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혼인집 주인이 자기 집에 초청했습니다. 혼인집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혼인집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어린양의 잔치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같은 초청의 소리는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그러나 사람이 초청을 받아도 그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고 그 혼인자리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초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초청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구실로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결론적으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셨습니다(마 22:14).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 돌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혼인집 마당에 돌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돌 항아리란 우리의 굳은 심령,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살아가고 있었을 때 손이나 발을 씻었던 물그릇입니다. 더러운 것들이 담겨져 있었던 그릇입니다. 그 속에 새로운 물로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새물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길어 먹는 그런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하신 바에 따라 길어온 물입니다. 마치 이 물은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시게 한 생수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그러면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시게 한 물은 어떤 물이었는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신 이 물입니다(요7:37-39).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하셔야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변화시키시는 영이십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3)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이유는 내 인생 속에 새로운 기쁨, 새로운 평안, 새로운 소망을 주시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수를 그 마음에 받은 사람은 그 생수로 말미암아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르는 순종의 생활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생활을 하도록 끊임없이 감화하시고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새 주인을 내 마음속에 모셔서 나를 주관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그를 환영하고 내 마음을 그의 말씀으로 채우고 기쁨으로 말씀을 순종할 때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변화 받지 못하는 이유는 돌 항아리 속에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시는 물올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며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활 속에 적용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결 론 : 포도주는 우리 가정에 기쁨을 선사합니다. 하마터면 즐거운 흥이 깨어질 뻔한 혼인집에 더 좋은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먼저 내 가정에 축복을 받게 합니다. 포도주는 다른 이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기적을 창조하는 생활입니다.





  ≈ 12≈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

  (본문 : 요한복음 2 : 12 - 25)

  서 론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유대나라의 음력으로는 7월 14일이었는데 모세가 애굽에서 나올 때 이 7월 14일을 1월 14일로 정했습니다. 지금 양력으로는 3월말이나 4월초에 해당됩니다. 이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큰 명절입니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이날을 영원히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까지도 다 본향에 돌아와서 이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성경에 주님이 유월절을 지키신 일이 네 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생애 기간을 만 3년이 조금 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잇달아 있는 명절로 유대인들의 성력 1월 14일 저녁이 유월절이요 그 이튿날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만7일간이 무교절입니다. 유월절후 50일인 성력 3월 6일을 오순절이라고 하고 7월 15일로 22일까지 만 8일간을 초막절이라 하여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 이 세 절기가 유대인의 삼대 명절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1. 채찍을 드신 예수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성전에는 유월절을 앞두고 장사꾼들의 무리들로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전은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의 무리와 돈올 바꾸는 무리들로 시장바닥처럼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물론이요 외국 전역에 걸쳐 흩어져 있었던 교포들이 돌아오기 때문에 예루살렘 시가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이 절기를 지키러 온 무리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을 미리 준비하고 돈을 바꾸어 쓰느라 야단법석이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이 처음에는 성전 바깥마당에서 하더니 차차 그 범위를 넓혀 성전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물론 이들은 제사장들이나 관원들에게 뇌물을 주었으며 그들은 이런 일을 가만히 눈감아 준 것입니다. 이런 일이 점점 심하게 되자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성전이 장사꾼들의 장사 터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2)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은 이 같은 광경을 바라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올 쏟으시며 상올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성전 안은 살아있는 동물이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모든 제물은 그것을 죽여서 각을 뜬 다음에 성전 안에 들여와 제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적은 비둘기까지라도 산채로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 작은 한 새를 그 중간을 쪼개지 않고 제물로 드렸을 때 그곳에 솔개가 내려 많은 어려움을 당했던 것입니다(창15:10).

  (3) 이것은 우리의 예배드리는 태도를 말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올 때는 온전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처럼 살아있는 상태로 성전 안에 들어와 하나님께 경배 드린다면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을 실 뿐 아니라 채찍으로 내여 쫓김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지고 들어갈 제물은 십자가에서 온전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로써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전 청결의 의미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교훈 하시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심령성전의 청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고전3:16-17).

  우리는 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란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을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더럽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가?

  (1) 세상풍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풍습의 줄을 끊어야 합니다. 세상 풍습은 우리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롬12:2).

  (2) 세상생각입니다. 세상생각이란 이 땅위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생각에 젖어야 합니다. 세상 생각에 짖으면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롬3:2). 세상 생각이란 방탕과 생활의 염려 등입니다. 이런 생각은 성령을 근심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으로 끌어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3) 탐심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은 언제나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하나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그의 집을 세우신 목적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기도하는 장소로써 하나님께서 지정하여 주신 성별된 곳이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보다 더 기도하기 알맞은 장소는 이 땅위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성전이야말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가장 빠르고 하나님께 가장 잘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해야 합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라고 다윗은 말했습니다(시5:7).

  결 론 : 오늘날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 소망을 바라보고 그곳을 쫓아갑니다. 세상의 썩어질 면류관과 재물을 바라보고 달음질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불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왕래하고 계십니다. 그의 손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어쫓으신 채찍으로 드시고 이런 교회를 내려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성전이 세상 것으로 더러워지면 그 손에 가지신 채찍으로 우리를 내려치십니다. 우리의 성전을 다만 기도하는 집으로, 예배드리는 곳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언제나 주님이 이 곳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수 있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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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2장  밤중소리  2012-03-02
10:43:43
     Всем доступная защи  FetPhoebe  2013-07-18
16:25:21
     Всем доступная защи  Rigo Hubbard  2013-07-10
23: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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