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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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밤중소리  01-12 | VIEW : 880


  ≈ 90≈        영생은 무엇인가?        


  (본문 : 요한복음 17 : 1 - 3)

  서 론 :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느냐? 이 문제는 인류가 있어 온 이래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관심을 가져 온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인간들에게 명쾌하게 풀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만이 이 문제의 해답자로 성경에 등장하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영생을 가지고 그 영생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올 외면하므로 자신들이 간절히 갈망하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스스로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영생은 무엇을 말하나?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이란 낱말을 많이 듣습니다. 영생이란 그 말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말하며 이 생명은 죽음이 없는 생명을 의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생명이라고 하면 우리들의 이 육신의 죽음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영생은 이런 육신적인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육에 속한 생명이지만 영생이란 육신과는 관계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영적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6:63). 인간의 참 생명은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해 있습니다. 영생은 영의 존재를 믿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5-6).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28).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에서 마르다에게 이르신 말씀에서 우리는 이 영생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신 말씀에서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신 말씀은 영원한 부활로 다시 사는 생명을 가리키고 있으며,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안에서 지금 존재하고 있는 영원한 영적 생명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이시요 생명이신 증거는 그의 부활로 드러나셨습니다. 우리들의 영생의 증거도 장차 주님과 같은 부활로 나타날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생을 보장하는 신임장인 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우리의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했습니다(고전15:16-19).

  2.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영원한 생명이 존재치 아니합니다. 죄인은 죄 값으로 사망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범죄한 사람 곧 죄인의 영혼은 결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는다는 뜻입니다(겔18:4). 물론 여기서 죽는다고 하신 말씀은 둘째 사망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영원한 형벌 곧 멸망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계20:15).

  (1)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유일(唯一)하시다 는 말은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본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오직 하나이십니다. 그러나 그 한 본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일신론’(單一神論)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신론자’들이 아니라 ‘단일신론자’들입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본체를 이루고 계시는 성삼위를 부인합니다. 그들에게는 아들도 없고 성령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없는 것은 아들이 없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 5:12).

  (2) 참이라고 하신 표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참이란 진리 혹은 진실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진실하심을 그의 말씀과 그의 언약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직 그의 말씀과 그의 언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은 오직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셨습니다(요3:18, 히1:2).

  (3)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헛된 우상으로 섬기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영광을 돌리지도 아니합니다(롬1:21-23).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 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호6:6).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섬기는 자체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하나님 앞에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삼상15:22-24).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은 하나님께 배움으로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올 수 있습니다.

  3. 영생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아는 것으로 되지 아니합니다.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또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말은 ‘기노스코’란 말로 이 말의 뜻은 지각한다, 깨닫는다, 인식한다,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배워서 아는 구체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알 수 없으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롬10:17).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사실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하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신데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어 종의 몸으로 오신 사실을 깨닫고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요1:1-3, 12-14. 빌2:6-10).

  (2)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으심으로 죽으셨고 죽은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의 대속의 죽으심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의 다시 살아나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믿음은 믿음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어 그의 모든 공로가 믿음으로 그와 연합한 자에게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아버지에 대한 지식은 아들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아버지께로 가며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영생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 안에는 죄인들이 영생 얻기에 합당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2:3).




  ≈ 91≈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        


  (본문 : 요한복음 17 : 4 - 8)

  서 론 : 성경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0:31). 우리 예수님은 이 같은 인간 본분의 생활을 몸서 실천하심으로 그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셨는가? 우리도 주님이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신 방법을 따라 실천하는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드렸다.

  예수님은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아오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으로써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책임을 이루셨으며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렸습니다.

  (1)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을 보면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증인의 사명은 그 대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일이며 더 나아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증인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로 그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명은 그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야하며, 그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향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

  (2)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심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렸습니다. 순종이 없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빌립보서 2장에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순종은 고난 중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그의 전 생애가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의 길이였으며 이 모든 가운데서 전 생애를 순종하시는 일에 바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 시라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5:8-9). 우리는 주님을 위한 고난의 대열에서 빠져 나오는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가르치심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마5:10-12). 베드로 사도는 이에 대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4:15-16).

  (3)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영화롭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서는 순종의 의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가장 명백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40). 예수님은 이 같은 아버지의 뜻을 모두 이루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주님의 일을 하면 이 같은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했습니다(엡5:17). 하니님의 뜻은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변화를 받은 사람만이 바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판단과 자기의 뜻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으로 잘못 판단함으로 그가 행하는 모든 수고가 애석하게도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일이 그러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일군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도 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하였지만 그같은 그들의 주의 일이 주님의 인정을 받아 칭찬을 받기는 고사하고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마7:22-23).

  (4)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순종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제각기 지체로서의 사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고전12:13-31). 자기에게 주신 분량을 넘는 사명을 이루려 한다면 시행착오가 올 것입니다. 집사직도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분량의 소유자가 장로직을 맡아 교회를 섬기려 한다면 그가 하는 일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2.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도 자기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몇 가지 생각할 일이 있습니다.

  (1)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영화로우심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 위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스스로 그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경에는 아들의 영광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으며(요1:1) 모든 창조물의 창조주시라고 하셨으며(요1:3, 히1:2)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하셨으며(빌2:6)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하셨습니다(히1:3).

  (2) 아들의 영화는 곧 아버지의 영화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17:1). 이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때가 오신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반드시 그의 영광을 수반하셔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서의 부활하심은 아들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는 일이 되시며 이로써 아들은 아직까지 이 세상에서 그가 하신 사역을 통해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의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면 아들이 행하신 그 모든 일이 결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하나가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우리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우리에게도 함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 92≈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본문 : 요한복음 17 : 9 - 12)

  서 론 : 요한복음 17장은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중보자적인 기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중보자으로서의 사명은 이 땅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위에서 기도하신 그 모습에서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신 그 간구하시는 중보자의 모습이 이곳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롬8:34).

  1. 중보 기도의 대상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전2:5). 중보란 언약관계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언약을 확실히 증거하기 위하여 두 사람 사이를 중보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이루어졌습니다(눅22:20, 마26:28, 고전11:25). 우리는 이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에는 중보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보자가 없이는 우리는 이 언약의 증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보자가 없이는 이 언약을 지속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중보자가 없이는 우리는 직접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우리와 아버지와의 중보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어 주신 일은 우리들에게는 다시 없는 든든한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새 언약이 영원히 변함없이 우리에게 적용된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히9:15).

  (1) 중보기도의 대상은 오직 이 언약에 대상자입니다. 예수님이 중보기도를 하심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저희란  언약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새 언약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는 일에는 조금도 오차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었다면 모든 인류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구원함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함에 이를 수 없다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결국 실패되었다는 것을 의미 할 것입니다.

  (2)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 예수님이 아버지를 향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린 대상은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사역을 이루게 하신 대상은 아버지의 소유된 백성인데 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아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것과 내 것에 대한 분명한 소유권문제를 밝히셨습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소유가 된 모든 백성이 실인즉 아버지의 소유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요6:37).

  예수님은 또한 “아버지의 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예수님의 소유의 범위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의 동격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이 다 아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말씀을 영적으로 잘 깨닫게 될 때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의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자로서의 영광을 받으신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실 것을 원하셨습니다. 아들은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영광을 받았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구속을 받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바로 예수님의 이런 순종하심과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일을 영광으로 삼으신 일에 있으셨던 것입니다.

  2.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중보기도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셨습니다.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 중보기도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의 보전을 간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해 주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이 같은 기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되고 있습니다. 보전이란 말은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심에 내 아버지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하신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1) “우리와 같이”라고 하신 말씀은 삼위의 하나님을 지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지만 그 본체는 오직 하나이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신비의 결합을 상징하신 말씀입니다(창1:26, 3:22).

  (2)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안에서 한 지체를 이루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각기 지체로 연결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잡다한 인종과 여러 갈래의 교파들이 있지만 교회의 몸이신 그리스도안에서 각기 지체로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3) 하나가 되는 일은 진리로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폭 넓게 누구와도, 어떤 종교와도 결합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떠나서는 설 땅이 없습니다. 어떤 불교계의 지도자는 교회예서 목탁소리가 나오고, 절간에서 아멘 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쯤 되면 하나인 것이 아니라 완전한 타락이요 멸망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과 손을 잡으면서 그것이 하나라고 주장하는 시대가 오는데 그 시대가 바로 종말에 등장할 음녀교회 시대입니다(계17:4-5).

  (4) 하나가 되는 일은 오직 사랑으로서만이 가능합니다. 사랑은 그 표준이 에수님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용서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가운데 그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결 론 :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는 일은 진리의 터전 위에 굳건히 세워진 교회를 의미합니다. 모든 불의와 타협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패역한 세상에서 오직 그 아들의 음성만을 듣고 따라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 93≈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본문 : 요한복음 17 : 13 - 26)

  서 론 :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을 통하여 요한복음 17장이 아버지를 향하신 예수님의 중보자적인 기도임을 알았으며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중보자적인 기도는 하늘에서 뿐 아니라 그의 공생애중 이 땅위에서도 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 우리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 성도들이 악에 빠지지 않는 이유,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이유 등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문제가 자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주님의 기쁨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하여 간구하시는 말씀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13).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계셨으며 이런 기쁨을 우리들 모두에게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과연 어떤 기쁨을 가지셨으며 우리들이 가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기쁨은 어떤 기쁨일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받으신 수모와 어려옴과 고난을 생각하면 예수님께는 아무런 기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주님은 분명히 우리도 소유하기를 바라시는 기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일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고난의 길이셨지만 자신의 고난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아버지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은 주님에게 다시없는 기쁨이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쁨은 잃은 양의 비유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마18:12- 13). 우리는 우리의 참된 기쁨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합3:17-19).

  (2) 예수님께는 아버지께로 가시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시고 아버지께로 가시는 기쁨은 주님께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지실수 있는 참 기쁨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도 아버지께로 가는 일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것이라고는 다 허무한 것들 뿐이요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것뿐입니다. 우리들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이것입니다(요14:1-3).

  (3) 예수님께는 소망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가 받으셔야 할 모든 고난을 참으신 일은 그의 앞에 있는 이 소망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2:2).

  우리들도 이 같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하여 바울이 지적해 준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2.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이유

  예수님은 세상이 우리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환영받을 사람들이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세상이 미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세상은 어두움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기 때문에 어두움이 빛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2)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두움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빛에 속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풍조를 따라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세상을 책망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세상에서 데려 가려 하심이 아니요

  예수님은 우리로 세상이 미워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악에 빠지지 않기를 간곡히 간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데려가신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육신적인 주검을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주검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육신의 생활을 마치는 일은 주님의 데려가심을 당하는 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육신의 주검이란 우리가 기대하리 만치 바랄만한 것임을 예수님께서 밝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주검에 대해 우리들의 소망의 실현으로 알고 그것을 갈망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4.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이란 성도들로 거룩한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거룩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거나 취할 수 있는 거룩이 아닙니다. 이 거룩은 하나님의 온전한 거룩을 뜻합니다. 이 거룩함이 없이는 누구든 하나님을 뵐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함은 인간이 그 어떤 노력이나 공로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심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심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의 말씀을 통해서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깨끗함을 얻는다는 말은 다음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 진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고전1:2)라고 하신 말씀에서 밝혀진 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연합이 되기 때문에 온전한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2) 이 같은 거룩함은 성령 안에서 얻는다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6:11).

  (3) 그리스도인의 거룩은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입니다. 실질적으로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고 깨끗케 하셨고 그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와 동일한 의를 주심으로 완전한 의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하나님의 백성됨과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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