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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밤중소리  01-12 | VIEW : 512


  ≈ 86≈         성령의 세 가지 사역        


  (본문 : 요한복음 16 : 1 - 11)

  서 론 : 예수님은 장차 복음을 위해 받을 제자들의 핍박과 고난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미리 이르시는 이유는 그 때를 당하여 기억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기억은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일에 대하여 제자들은 매우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은 그의 떠나시는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성령을 보혜사란 말로 표현하심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성령과 보혜사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란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보혜사란 말은 ‘파라크레토스’로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불려졌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처럼 불려진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로 그의 감동하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십니다. 그는 우리 안에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하여 친히 나와 함께 하셔서 보혜사가 되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이루실 역사에 대하여 세 가지로 밝히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1) 성령은 죄에 대하여 책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연해서 말씀하기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란 ‘하마르티아’로 목표(과녁)를 맞히지 못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목표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로, 하나님은 이 목표를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방법은 곧 그의 말씀의 순종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순종에 대한 하나의 계율을 주셨습니다(창2:15-17).

  그러나 아담은 계율을 어김으로 불순종의 자식이 되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목표물,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순종의 계명올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명올 지키는 자는 그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순종의 목표물, 곧 과녁을 주셨습니다. 그 과녁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언약이십니다. 사람이 이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드리는 하나님의 목표의 과녁을 맞추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시고 아들의 생명, 곧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신약시대에 죄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목표물을 맞추지 못하는 일을 가리키기 때문에 죄라 함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서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3:l8).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정죄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성령이 책망하시는 이 죄를, 귀를 기우려 듣고 회개치 아니하면 그들은 영원히 죄에서 건짐을 받을 수 없으며 그들의 생명은 영원히 파멸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죄를 받는 가장 무서운 죄는 그 독생자를 영접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보내신 독생자의 이름을 믿게 하시는 일이며 이를 거역하는 자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깨우쳐 주시는 일을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믿을 때 구원을 받지만 그 이름을 거역할 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두 번째 사역은 의에 대하여라 하셨습니다. 10절 말씀에서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뜻을 우리는 이처럼 해석할 수 있습니다.

  ① 의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에게 미치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원죄가 전혀 없으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처음부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요일2:1). 그에게는 원죄뿐 아니라 율법이나 양심에서 오는 본죄까지도 전혀 없으십니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자신의 완전한 의를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세상에 나타내셨으며 그가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확정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죄가 전혀 없으시다 는 사실은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증거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그에게 죄가 없으시다 는 분명한 증거를 들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께로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 의야 말로 율법으로도, 양심으로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입니다. 이 의야 말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 사실을 가지고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의를 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에서, 양심에서, 선행에서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의는 하나님 앞에 아무 쓸모가 없는 의로 성령의 책망을 받아야 할 잘못된 의인 것입니다.

  (3) 성령의 세 번째 책망은 심판에 대하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라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란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을 말합니다. 이 사단은 십자가와 주님의 부활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무기는 죄와 사망입니다. 그런데 이 죄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유일한 협박수단인 사망권세도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 론 : 이 같은 사단에 대한 심판은 오직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세상을 향하여 책망하심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성령의 책망을 듣고 권세를 상실해 버린 죄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책망을 듣고 죄에서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은 이 세 가지 사역을 위하여 지금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성령의 이 같은 사역의 그릇으로 죄인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 8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본문 : 요한복음 16 : 12 - 15)

  서 론 :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하실 사역으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이 같은 사역을 이루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셔서 보내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하실 놀라우신 구원사역에 대하여 세세히 알려 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감당치 못한다는 말씀은 “멜 수 없다”는 의미로 너희의 그 어린 영적인 신앙상태로는 그것을 다 소화시킬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1. 진리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성령이 하시는 가장 위대한 역사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죄인들을 진리 가운데로 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누구든지 절대로 진리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1) 성령께서 진리를 증거 하신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증거 자는 성령이십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성령이 그 증거 자이십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1:21).

  (2)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빌라도가 죄인으로 자신의 재판 대 앞에 선 예수님께 던진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에게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셨지만 빌라도는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8:45). 진리란 곧 생명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잔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14:6).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 1:17).

  (3) 성령께서 진리를 믿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성령이 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엡2:28). 누구든지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순전히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십니다. 이 성령께서 믿음의 선물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리 진리를 들어도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사야가 말한 예언을 들려주시면서 경종 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ㅇ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니라”(마13:14-15).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사야가 말한 예언을 들려주시면서 경종 하셨습니다.

  (4) 성령께서 진리로 거듭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진리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는 성령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3:5).

  (5) 성령께서 진리대로 행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그 무엇으로도 진리대로 행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로 진리가운데 살게 하시며 진리대로 행하도록 우리를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2.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래 일이란 “장차 올 일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계시로써 우리들에게 가르치실 것을 의미합니다.

  (1) 장래 일이란 부활의 소망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란 큰 소망임과 함께 장래에 올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을 견고히 하도록 하십니다.

  (2) 장래 일이란 천국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천국에 대한 뚜렷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일은 오직 성령께서만이 알게 하실 수 있는 영적 계시입니다.

  (3) 장래 일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특별히 사도 요한을 통하여 종말에 관한 계시로써 ‘요한 계시록’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장래 일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이미 완전히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장차 우리에게 올 모든 일들에 대한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에게 소망의 견고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계시는 자의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스스로 말씀하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께 들은 것을 말씀하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누구냐”고 묻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8:26).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십니다. 세 분은 오직 한 본체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대화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 서로 의논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구원사역에 있어서도 의논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후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고전2:10-12). 성령께서는 이 같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식으로 우리에게 장래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성령

  성령이 오시면 그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떤 영광을 나타내시는가?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영광의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심을 증거 하시며, 그가 바로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시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요1:1). 그리고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1:14).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골1:16). 또한 그리스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셨습니다(요1:14). 이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심을 성령께서는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결 론 :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일입니다. 그의 무한대한 영광을 들어내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사단이 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피조물의 자리에까지 내리는 일이요,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까지 끝없이 높이사는 일입니다. 진리에 대한 믿음과 구원과 장래에 대한 소망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 88≈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본문 : 요한복음 16 : 16 - 32)

  서 론 :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시간이 매우 촉박해져 오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영적으로 어린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시고 그 실상을 말씀해 주심으로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을 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셔서 보내실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소화력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말씀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자신이 고난을 당하실 때 그들로 이 말씀을 기억하여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가르치심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1.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예수님은 이 같은 복안을 세우시고 그 서두를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보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던지신 이 말씀은 그 말의 뜻을 알려고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되었고 예수님은 이 의문을 토대로 하여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나타내셨습니다.

  (1)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란 말씀은 그의 고난의 죽으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의 해답을 20절에서 어렴풋이 제자들에게 암시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겪으실 고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이 대망하고 믿고 있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영광의 메시야였기 때문에 메시야로 믿고 있는 예수님이 그처럼 비참하게 죽으시리라고 하는 생각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처럼 참담하게 죽으실 예수님이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실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은 더군다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세히 설명으로 이해를 시키려해도 그들은 그러한 말씀을 도저히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잘 깨닫지도 못하는 이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이런 일을 당할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그들로 기억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으셨습니다(요16: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조금 있으면”이라고 하신 말씀은 시간적으로 매우 촉박한 상태를 말합니다. 32절에서 이 말씀을 다 끝맺으시기도 전에 이 때가 “벌써 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가 오면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근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표현은 제자들의 고통스럽고 슬퍼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 것입니다. 근심한다고 하는 말은 “비탄에 빠져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해 줍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임으로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참으로 세상에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기쁨이 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없으셨다면 이 세상은 절망만 있을 뿐 아무런 기쁨이 없었을 것입니다.

  (2)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신 말씀은 그의 부활과 계속적으로 그들과 함께 계실 성령의 내주 하심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조금 후에 다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그들의 기쁨에 대하여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하실 때까지 슬픔에 잠겨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그들의 근심은 부활에 의하여 기쁨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의 강림하심을 통하여 그 기쁨은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22절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기쁨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으며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이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2.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같은 말씀 끝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시는 놀라운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결코 슬픔을 가져오는 일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면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으셔서 기도의 응답자가 되신다고 하신 뜻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하신 23절의 말씀은 “너희가 내 이룸으로 무엇을 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똑같은 뜻이 담긴 말입니다(요14:13).

  (2) 이 말씀은 이제부터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해야 할 근거는 바로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에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요14:13). 아들을 공경하는 것은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일이요, 아들을 믿는 일은 곧 아버지를 믿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의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았고 그 아들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유일하신 중보자가 되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음으로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아들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시는 주님의 두 가지 사역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중보 기도의 뜻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보편적인 기도는 아들의 이름으로 하면 그가 친히 우리의 기도를 시행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를 위하여서는 예수님께서 중보 기도를 드리지 아니하신다는 뜻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4).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의 기도는 언제나 계속됩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셨습니다(롬8:3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가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히7:25).

  결 론 :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나를 하나님께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서 온 사실을 믿는 믿음에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들 제자들은 성령의 빛에 의하여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어느 정도 깨닫기는 했어도 그들은 주님이 고난을 받으실 때 한결같이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 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89≈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본문 : 요한복음 16 : 33)

  서 론 :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씀은 사단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시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평안을 누리게 하시려는 주님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한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위로부터 오는 평안으로, 이 평안의 출처는 주님이십니다(요14:27).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앞으로 제자들이 말할 수 없는 환난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해야 할 그 시기에 주안에서 참 평안을 얻게 하시려는 뜻에서 주신 것입니다.

  (1) 주안에서의 평안은 주를 위해 환난을 당할 때 옵니다. 이 같은 평안은 장차 나타날 소망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1-12).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채찍질하며 핍박을 받았을 때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행540-41).

  (2) 주안에서의 평안은 죄를 이기는 생활에서 옵니다. 죄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두려옴과 불안을 심어 줍니다. 죄를 이기는 생활은 힘겹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참된 평안은 이 같은 생활에서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두 가지 면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회개에서 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 이상 죄를 범치 아니 할 수 없습니다(요일1:8). 그러나 우리들이 그 죄를 그대로 우리 몸에 지니고 있으면 죄의 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요8:34). 그러나 죄를 회개하는 자는 그 죄의 소멸하심을 받음으로 죄 사함에서 오는 기쁨과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요일1:8).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평안은 순종에서 찾아옵니다. 순종의 생활이야말로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첩경입니다(요15:9-11).

  (3) 주안에서의 이 같은 평안은 그 출처가 세 가지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고난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20절 말씀에서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평안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고난으로 우리들의 구원의 소망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창조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요16:7). 다음 세 번째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기도의 응답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가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23-24).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의 응답은 큰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요소가 되어 오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당해야 할 환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환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세상의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 패역한 세상의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도 여전히 악합니다. 사단은 지금도 공중권세를 잡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인간의 저주로 인하여 아직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죄악의 권세는 강하게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이 세상의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피해를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는 환난이 따릅니다. 세상의 지배자는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어두움 속에 빛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마 5:14). 빛을 공격하는 어두움의 역습은 어디나 언제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환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어려움을 당할 때 이런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실 터인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간혹 우리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신앙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2)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가정에서도 이런 환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마10:34).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이 화평은 주안에서의 신령한 화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두움과의 화평이 아니라 전투요, 복음은 사단과의 화평이 아니라 승리인 것입니다. 한 가정에 복음이 들어 갔을 때 그 복음은 그 가정의 세상적인 화평은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화평이 임하기까지 깨어지고 화평을 깨는 칼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습니다(마10:35). 원수라고 하신 말씀은 빛과 어두움의 영적인 면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3.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는 말의 뜻은 좋은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환난에서 어떻게 좋은 용기를 가지고 대처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의 대답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이 세상의 환난을 이기시어 승리하게 된 것인가? 32절 말미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28:20).

  결 론 :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그의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 우리로 이기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께서는 바로 이 같은 주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빌1:6).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환난은 바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한 체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히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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