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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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밤중소리  01-12 | VIEW : 2,567


  ≈ 36≈            예수님의 때


  (본문 : 요한복음 7 : 1 - 9)

  서 론 : 주님에게는 여러 명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형제들은 물론 마리아와 요셉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육신적인 형제들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집안에서도 맏이가 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형님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들과 똑같은 두 부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 집안의 큰아들이라는 것만 알 뿐 그에 대한 신비적인 태어나심에 대해서는 하등 알고 있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 이들 주님의 형제들은 자기 형님을 구주로 모셨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형제들까지라도 그가 메시야이심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1. 당신을 나타내소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유대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올 빨리 잡아죽이려는 음모를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잡혀 그들의 임의로 처치되어서는 안되실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 유월절에 희생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희생되어야 할 그 시기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때가 이르기 전에 그들의 손에 잡히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의 생애를 지혜롭게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알 길이 없는 그의 형제들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오자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라고 권고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믿지 아니했지만 그가 행하시는 능하신 일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르며 많은 군중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숨기시려는 일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야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이처럼 말한 데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도 예수님올 믿지 아니했다는 데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은 혈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이 공생애에 들어가기까지 줄곧 주님과 함께 한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은 주님의 훌륭하신 인격과 진실하심과 모든 면에서 흠이나 점이 없으신 분이심을 목격하고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는 믿지 아니했습니다.

  (2) 다음에 기적이 참된 신앙을 심어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듣기도 하고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기적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며 그 말씀을 믿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예수님올 믿는 것이 아니라 기적에 흥미를 가지고 예수님올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종말에 사단의 역사가 놀라운 기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 그들은 또 그곳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께서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거짓 선지자로 하여금 큰 이적을 행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살후2:9-12).

  (3)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바론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토록 주님을 믿지 않던 그 형제들이었지만 오순절에 이르러 성령을 받자 그들은 훌륭한 전도인이 되었고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된 것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밝히 보여주며 믿음을 심어주십니다. 우리는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때

  예수님을 이 같은 그이 형제들의 조롱 섞인 권면에도 결코 노하지 아니하시고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이 “때”에 대하여 가끔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가나 혼인집에서도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전갈한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도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고 말씀하셨던 일이 있습니다(요2:4).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은 모든 일에는 주어진 때가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전3:1-2).

  (2) 우리는 하나님의 이 때를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전 7:13-14).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때를 부지런히 찾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때가 아니었음으로 자기들 생각대로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눅22:53).

  가룟 유다도 자기 스승을 팔아 넘길 때를 몰랐음으로 그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고 했습니다(눅22:6).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때를 친히 만드시고 이루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이 같은 예수님께서 어찌 자신의 모든 때를 모르시겠는가? 주님은 자신이 하실 모든 일에 대한 정확한 그 때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런 때를 따라 움직이심으로 자기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나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이 때를 어김없이 지키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으셔야 할 때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의 하시는 모든 일이 그 때에 어김이 없도록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이 아직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시기가 아니심을 아셨기 때문에 그 형제들에게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예수님은 이 초막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들어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지만 이런 것은 때를 따라 행동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치점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하신 말씀에서 주님은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때를 채우시는 일은 그 기간이 며칠일 수도 있고 몇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형제들에게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아직”이란 말은 그 때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이란 시간이 얼마 후에 찾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주님의 때가 차셨을 때, 그리고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하신 그 아직의 시기가 며칠 후 지났을 때에 올라가셔서 활동하셨던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주님이 때를 따라 아버지의 뜻대로 그의 사역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때를 잘 활용하고 그 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회개할 때를 놓쳐서도 안됩니다(호5:6). 은혜를 받을 기회를 놓쳐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 37≈         공의의 판단으로 하라


  (본문 : 요한복음 7 : 10 - 24)

  서 론 : 예수님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권하는 형제들에게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으나 이 명절이 시작되어 거의 중간이 되었을 때 자신을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비밀히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그의 때가 찬 것입니다. 그가 비밀히 올라가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를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잡으려고 음모하고 기회를 엿보았지만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때를 아셨으므로 아버지로부터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실 수가 있었습니다.

  1. 예수님께 대한 수군거림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거족적인 민족적 행사였습니다. 수장절이라고 하는 이 초막절에 유대인들은 나뭇가지로 지붕에 초막을 짓고 7일간의 절기 동안 이 곳에 거처했습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것을 기억하고, 예물을 주고받으며 크게 즐거워한 명절입니다. 이 명절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다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예루살렘은 이들로 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예수를 찾은 것도 그가 유대인으로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줄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면으로 펼쳐진 때라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은 그를 보기를 원하는 무리들도 많았고 그에 대한 수군거림으로 술렁대고 있었습니다.

  수군거림의 내용은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주님의 교훈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과 그의 병고침과  여러 가지 선행을 보고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줄로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이나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로 예수님께 대하여 선입감 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올 가리켜 거짓 선지자나 사람을 미혹하는 민중선동가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수군거림도 들어내 놓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 만약 공중들 앞에서 예수에 대하여 잘못 말했다가는 유대교에서 출회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

  자신을 비밀히 감추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 명절의 중간이 되자 성전에 올라가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시는 주님의 주변에는 마침 명절 분위기에 무르익은 많은 무리들을 주위에 모이게 하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이 자리에는 예수님을 모함하고 그를 고소할 구실을 찾기 위하여 항상 그의 뒤를 밟고 있는 일단의 유대인들도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한편 놀라면서도(기이히 여김) 한편 배우지 못한 예수님올 무시하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은 하등 가치가 없다고 공중들 앞에서 조롱했습니다. 실인즉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어떤 특별한 교육을 받으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들이 배우지 아니했다고 한 말은 유대인들의 지도급 인사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랍비학교를 지칭한 것입니다.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말한 글은 글자, 서신, 성경, 또는 학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배우지 못한 그가 어떻게 다른 이에게 성경을 가르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 말을 하게 된 본의는 예수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들을 가치가 조금도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 같은 비방과 모함에 대하여 그들의 불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1) 주님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전하시는 말씀이 세상에서 터득한 학문의 말이 아니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세상의 말을 하려면 세상적인 학문의 배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적인 교훈을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2) 주님은 내 교훈은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교훈은 온전히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친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시고 그의 교훈이야말로 하나님의 교훈임을 알라고 그들에게  경종 하신 말씀이십니다.

  ① 예수님은 스스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요1:14).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입에서 나오시는 모든 말씀은 우리들을 가르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없이는 아무 것도 된 것이 없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분은 세상 학문을 배우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교훈 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 그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히1:1). 하나님은 그 아들로 직접 말씀하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바로 이 같은 교훈이심으로 그의 교훈에는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 누가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가?

  그러나 누구나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사실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행하려 한다면 예수님의 교훈이야말로 하나님의 교훈이심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으로 깨달아 알게 되는데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성경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저버리는 생활을 해 오면서도 예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훼방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구제 받을 길이 없는 함정 속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공격적인 자세로 그들을 향하여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할례는 남자아이들을 낳은 지 8일만에 행하는 의식인데 그날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지켜 행하도록 해 온 것입니다. 이런 할례에 비하여 예수님의 치료하심은 인간의 구원에 관계된 일이며 그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의 단계가 훨씬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 하여 그를 송사하였고 은밀히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며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무리 중에서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하신 말씀을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알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을 향하여 귀신이 들렸다고 공격하면서 누가 당신을 죽이려하느냐? 고 공박했습니다.

  결 론 : 유대인들은 예수님올 외모로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그의 판단으로 스스로 실족하게 됩니다. 주님의 나타난 모습은 아무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홈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했습니다(사53:2).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그를 바라볼 때 그의 교훈이야말로 하나님의 교훈이심을 깨달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 38≈         유대인의 메시야관


  (본문 : 요한복음 7 : 25 - 36)

  서 론 :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메시야를 대망 해 온 민족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메시야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민족적인 시련을 겪을 때마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같은 그들의 바람은 자기들이 원하는 그때에 메시야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민족적으로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메시야관이었음으로 그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메시야관이 결국은 나사렛 땅에 가난한 가정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아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유대인)은 지금도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예수님은 초막절 중간이 되어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에 모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복음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그를 비난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지만 도 안식일의 규례를 어기는 그들의 잘못된 행실에 대하여 신랄하게 공격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과 그를 가만 놔두는 분위기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잡고자 공모했고 이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고 수군거린 것입니다.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란 말에서 우리는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메시야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 대한 신비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야가 말할 수 없는 영광 중에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상에 대하여 너무나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 같은 신상관계가 그들로부터 메시야로서의 인정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2) 또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지에 대해서 미가서에 예언된 말씀을 근거로 하여 메시야의 출생을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미가 5:2에 나와 있는 예언은 이러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출생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렛이 그의 고향이며 갈릴리 사람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권세 있는 말씀을 하고 놀랄만한 이적을 행해도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사상을 뒤엎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7:41-42).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부모와 동방박사들이며 들에서 양을 쳤던 목동들은 이미 까마득히 잊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사람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야관에 합치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혹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무리들도 적지 아니하였지만 그들의 메시야관도 유대인만을 위한 편협적인 사상이었음으로 바른 메시야관은 못되었습니다.

요한복음 주석 설교 \ 180

  2. 예수님의 증거

  진리를 증거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리는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증거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니셨습니다.

  (1)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사실이다고 하신 뜻에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육신적으로 알고 있는 주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에 대하여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일은 나사렛 땅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으로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같은 지식이 오히려 그들에게 진리의 길을 막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태어나심은 그들의 메시야관과 판이하기 때문입니다.

  (2)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태어나심의 신비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태어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적인 생육법에 의하여 태어난 존재들임으로 스스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는 인간의 생육법에 의하여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3)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참이란 진리인데 진리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인류의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4) “너희는 모르나 나는 그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어째서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나?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의식화된 율법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아노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셨고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을 공격하고 자신이 참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야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분이 가득하여 주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감히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아직 그들의 손에 잡히실 때가 아니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에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셨습니다. 그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그들 중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결 론 : 무리들의 수군거림은 바리새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을 그곳에 보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예수님을 붙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돌아가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초막절부터 유월절까지는 약 반년간의 시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의 사명을 마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은 소경같이 어두워서 참 메시야를 십자가에 달았기 때문에 어디서 그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또 주님이 계신 곳에 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 39≈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본문 : 요한복음 7 : 37 - 53)

  서 론 :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서서 외치셨습니다. 명절 끝날 이란 일곱째 날로 절기가 끝나고 여드레 되는 날은 대회 혹은 성회라 불려지는 날이므로 명절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외치신 메시지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1. 누가 목마른 자인가?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초막절 행사 중에 하신 것으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어떤 암시적인 흥미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명절 행사에는 매일 실로암 물을 길어오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물을 길어오는 과정에서 주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는지 모릅니다. “목마른 자는 오라”고 하신 목마른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1) 영혼의 기갈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돈이 많았던 부자 청년도 이 영혼의 기갈로 인하여 주님 앞에 찾아 나와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고 물었습니다. 삭개오도 이 기갈로 예수님올 뵈려고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이 물을 마신 것입니다. 영혼의 기갈이란 영생을 바라는 본능적인 욕구이며 영혼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이 같은 영혼의 호소를 허탄한 곳에서 만족시키려는 우매한 노력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가서 그가 주시는 물을 마
셔야 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죄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누구든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목마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로 나와야합니다. 그가 주시는 물은 이 죄를 말끔히 씻겨주시며 사죄의 기쁨을 안겨줄 것입니다.

  (3) 마음에 참 평안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인생에게 평안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지옥에서 살아가는 듯한 고통을 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평안이 없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가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께로 나와서 평안을 주시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초청은 모든 인생들에게 주시는 위대한 초청이십니다.

  2. 내게로 와서 마시라

  주님은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목마른 자의 해결자로서 그들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이 같은 초청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죽은 자에게 부활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에게 나가는 자는 인생의 갈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갈함을 없애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영원히 갈함이 없는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마신 생수야말로 예수님이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물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그러면 이 물을 마시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마시라고 하신 말씀에는 그가 당하실 고난에서 오는 회생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시라고 하신 그 마실 것에 대하여 무엇을 두고 하신 것인가? 목마른 자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주님의 물은 요한복음 6:53절 이하에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하셨습니다.

  3. 생수와 성령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명되기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마른 자에게 마시라고 하신 그 물은 곧 예수 자신이시며 마신다는 말은 그를 믿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는데 예수가 주신 물을 마시면 그것이 그에게 생수의 강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이 생수의 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왜 생수의 강이냐? 생수의 강이란 인생이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그 근원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1)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2)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요15:26).

  (3) 성령은 우리들로 회개케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4) 성령은 끝날 까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착한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수군거렸습니다.

  ① 어떤 사람은 이가 참으로 그 선구자라 했습니다. 이 선지자는 모세가 증거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은 이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선지자와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와의 바른 관계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신 18:15).

  ② 어떤 이들은 그가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하시는 이적과 그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③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적인 증거를 댔습니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고 하지 아니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일 수는 있어도 그의 태어난 곳은 갈릴리가 아니냐? 이처럼 성경에 예언된 사실과 모순된 그를 어찌 그리스도라 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라도 예수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오지 못한 일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의 책망을 들을 때에 그들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이 같은 말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말해주며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나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한 말입니다.

  결 론 : 바리새인들이 공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쟁론을 벌렸습니다. 그들은 대노하여 하속들에게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책망하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들은 저주를 받은 자”라고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무리들을 정죄했습니다. 이때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공박했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에서 재판은 공정해야 할 것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출23:1-3). 또 율법은 피고에 대한 공정한 청문을 명하고 있습니다(신13:16-17).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말하면서도 그 율법을 스스로 짓밟고 있으며 율법의 정죄를 스스로 자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는 말씀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이 물을 목마른 자들에게 마시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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