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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
 밤중소리  01-11 | VIEW : 581

  (128) 주님의 부활
  (누가복음 24 : 1 - 12)  

  서 론 :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일은 고금동서에 없었습니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아담의 후손은 죄 값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신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셔야 했던 이유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왜 부활하셔야 했었는가에 대하여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빛과 생명으로 오신 분입니다. 빛은 하나님이요, 어둠은 사망입니다. 빛은 언제나 어두움을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사망에 삼킨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사망은 죄의 대가로 찾아온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는 죄에게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권능이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왔으며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망의 치외법권 자이심으로 죽음에 머물러 계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여인들의 증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실 때 가슴을 치며 울며 따르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이란 사람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 무덤 안에 장사지내는 것까지 낱낱이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날은 예비일 이었습니다. 안식일 전날(금요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을 쉬기 위한 예비일로 유대인들은 이 날에 안식일에 쓸 모든 일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여인들도 예비일에 주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한 것입니다. 지루했던 안식일의 밤이 지났습니다. 이날 밤을 뜬눈으로 세운 이들 일단의 여자들은 새벽에 이르자 전날에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달려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여인들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들  318 \ 누가복음  

은 무덤에 이르자마자 사태의 변화에 심히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덤 입구를 막은 무거운 돌이 제자리에서 굴려 옮겨져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시체가 뉘였던 자리에 안치돼 있어야 할 시신이 보이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를 인하여 그들은 깊은 근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죽은 시체까지 없어졌으니 그들의 실망이야말로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의 가진 것을 잃었을 때 상심하고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안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은 걱정거리인 것이 아니라 그의 살아나신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큰 기쁨이 된 것입니다.
  (1) 낙심 중에 있는 여자들에게 빛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천사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이 여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를 찾는 자에게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댄 여인들에게 천사들은 이처럼 말씀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천사는 여인들이 찾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는 그들이 찾는 자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산 자를 죽은 자 중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여러 번 당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이 해 주신 분명하신 말씀에 대하여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잘못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눅9:45-46).
  하나님의 말씀은 숨겨져 있는 보화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지 아니하시면 숨겨진 말씀에 대하여 깨달아 알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사실은 제자들에게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숨겨진 말씀을 천사들이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럴 때 여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상기되어 지난날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말씀을 듣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상기 시켜 깨닫게 해 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닭 우는소리와 함께 주님의 말씀이 생각되어 통곡하며 회개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동방 박사에게 나타난 별이 다시 나타나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었던   319 \ 누가복음  

것처럼, 천사의 이 말은 그들의 믿음을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헤롯왕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다른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3. 제자들에게 전달해 줌
  이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깨닫고 믿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증거를 받은 다른 제자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허탄하다는 말의 원어는 ‘호세이레로스(ὡσειλἡρος)로 잡담처럼 혹은 농담처럼 들렸다는 말입니다. 롯의 사위들처럼 심각한 사실에 대하여 농담으로 여겼으니 그들의 불 신앙이 얼마나 되었는가에 대하여 짐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적극적인 믿음의 소유자인 베드로가 일어나 무덤에 달려갔습니다.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보니 과연 세마포만 보이고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같은 일을 목격하고는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달아갔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는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여자들의 증거를 의심함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베드로에게 다른 증거를 보이시기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다만 그는 기이히 여겼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사를 기이히 여기는데 그치지 말고 말씀의 증거를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론 : 누구든지 주님의 무덤을 찾아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 무슨 말을 듣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310 \ 누가복음

  (129) 엠마오로 동행하신 주님
  (누가복음 24 : 13 - 35)  

  서 론 : 자기들의 선생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까지 지낸 사실을 바라본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알고 제각기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 중 두 명이 그날 아침 일찍 엠마오로 떠난 것입니다. 이들이 엠마오로 가게 된 사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자기들의 고향이 아니면 처자가 있는 고장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주님이 살아 계실 동안은 주님께 소망을 두고 그를 따랐지만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는 마치 부모를 일시에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쓸쓸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엠마오란 예루살렘에서 25리 정도에 떨어져 있는 마을로 엠마오란 말의 뜻은 따뜻한 우물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고난만 알고 그의 부활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의 살아 계신 증거를 못 가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엠마오를 향하여 슬픈 기색을 띄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그 길로 계속 걸어가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여러 가지 영적 경험을 통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발을 돌이키게 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1. 엠마오로 가는 걸음
  엠마오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슬픈 발걸음입니다.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고 모든 것이 헛된 꿈과도 같고 허황된 일로 여겨지는 심정인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를 보기로 합시다.
  (1) 그들은 예수님을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19절). 예수님은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선지자는 아니십니다. 그는 선지자의 증거를 받으신 구세주이십니다. 선지자로 믿은 그들은 그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2)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로 바랐습니다(21절).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야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야로 그가 유대인의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그런 분이신 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당장에 이스라엘의 구속을 바라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은 치명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은 이 마당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더 머물러야 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이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에 앞서 일찍 엠마오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에 낙심하고 인생에 실패하여 자신들을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자기에게 복을 주실 줄 알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되었을 때 이들 모양 예루살렘(교회)를 떠나  311 \ 누가복음    

엠마오(세상)로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서 얼마나 많습니까?

  2. 주님이 동행하신 엠마오의 길
  이들 두 제자들은 슬픔 속에 잠겨 주님을 생각하면서 발길을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이 엠마오로 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걸음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가는 엠마오의 길에 동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1) 그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당하신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모든 우리의 음성을 다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말3:16). 우리가 서로 모였을 때에는 언제나 주님에 관한 이야기로 주고받으면 주님은 이 말씀을 분명히 들으시고 하늘 보좌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12:36에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대한 말을 주고받은 일은 주님으로 그들 앞에 가까이 이르게 하시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됨으로 그들로 진리에 이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말3:16).
  (2)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주님과 대화하면서도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가려짐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지 아니합니다.
  (3)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일입니다.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을 자세히 풀이해 주며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할 일에 대하여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 5: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의 풀이를 듣고 어느 정도는 깨달음이 되었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했습니다.

  4.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 두 제자
  그들은 길가에서 만나 나그네 걸음을 같이 걸으며 목적지에 이른 후 더 가시려는 주님을 강권하여 자기들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하실 때 주님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져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312 \ 누가복음

  그들은 길에서 그분에게서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낙심하여 세상 길로 향하던 두 제자는 다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을 만나는 길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말씀을 듣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함으로 우리로 강팍한 마음을 녹이게 하고 주님께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게 하여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아니고서는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바로 섬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 열 한 사도와 그  함께 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엠마오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그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하여 동행하시며 우리로 소망을 갖게 하시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교회에서 떠나지 않고 늘 그 분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13 \ 누가복음

  (130)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누가복음 24 : 36 - 54)  

  서 론 : 부활한 몸이 어떤 것이냐에 대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로 궁금합니다.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들이 다시 그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와서 열 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피차에 주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셔서 제자들을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마치 영으로 알고는 두려움에 놀랐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하신 가운데 부활의 신비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셨습니다.

  1. 부활한 몸의 신비
  (1) 부활한 몸은 육신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고 놀라고 무서워함으로 주님은 자기의 몸은 영이 아니라 육임을 밝히시면서 나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영은 영이므로 사람의 손으로 만져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은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몸이 무덤에서 그 몸으로 살아나셨다면 그 육신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부활한 몸은 더디든 나타날 수 있는 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장소에 문을 노크하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십니다. 난데없이 갑자기 그들 가운데 서신 것입니다. 육신은 가지셨지만 부활한 몸은 자기 임의로 마음먹은 장소에 아무런 장애물의 구애를 받음이 없이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부활한 몸은 사람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안보일수도 있으며 남이 알아볼 수 없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두 제자와 함께 동행하실 때 그들의 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나 음식을 잡수실 때에 주님이심을 알 수 있게 하셨으며, 또 그 자리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신 것입니다.
  (4) 부활한 몸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또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하시고 그들이 내어 주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잡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어느 곳에서 음식을 일정하게 드신 일에 대하여 언급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장차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 가서 황금길 가운데 있는 생명수 강 좌, 우편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316 \ 누가복음

  이처럼 부활한 몸은 비록 몸은 있지만 그 행동에 있어서는 영적 존재인 천사와 같으며 그보다 더 우월한 것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며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까지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2.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주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자 맨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평강은 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평강은 마음의 평안을 가리킨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소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를 씻고 보면 우리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원수의 관계를 십자가로 소멸시켜 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영접하면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는 한없는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으시는 분입니다. 너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근심과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우리 주님이 이 염려를 맡으심으로 근심과 두려움은 물러가고 그 대신 평강만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를 통하여 이 같은 평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십니다.

  3. 마음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진리에 대하여 깨달음이 부족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마음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임이라고 을 말씀해 줍니다.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여시자 그들은 성경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마음이 열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주님에 대한 진리에 대하여 캄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이 열어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려면 그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나 마음이 열리자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의 비밀을 다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영광의 메시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는 일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일과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는 회개 운동이 복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파될 일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같은 일에 증인의 사명을 받았으며 증인의 사명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터인데 그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들이 이 같은 일에 증인  318 \ 누가복음  

이 되려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성령을 받는 데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며 오순절에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증인이 된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승천
  주님은 부활하시고 40여 일의 시간을 지내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가 40여 일간 머무신 것은 그의 부활하신 사실을 그의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증거 하시려는 데 있으셨습니다. 그는 베다니 앞까지 가셨다고 했습니다. 이곳은 주님이 늘 기도하시던 감람산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올 때 이곳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의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주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소망을 잃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이 소망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에 돌아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이 이르러 하늘로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하시어 예루살렘 교회가 이루어지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한 책으로 누가복음의 끝 절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똑같은 사명이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받아야할 성령을 받아 이 모든 일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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