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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설교
 밤중소리  03-01 | VIEW : 10,314



  ≈ 187 ≈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본문 : 마태복음 25 : 1 - 13)



  서 론 :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으로 해석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들려주신 목적이 어디 있었는가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이 앞서야 바른 대답이 나옵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주님이 장차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깨어 있어야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이기 때문에 이 비유에 표현된 모든 말씀을 문자대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심지어 교리상의 어려운 문제점까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비유의 목적이 우리들에게 주 재림을 바라보며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데 있다는 것을 먼저 그 핵심으로 알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 열 처녀는 누구를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열 처녀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열 처녀는 과연 ‘신부의 들러리냐?’ 아니면 신부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동 지방의 결혼 풍속을 예로 들면서 이 열 명의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라고 말합니다. 신랑은 하나인데 신부가 열 명인 것이 격에 맞지 않는 데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신랑으로 등장하신 일도 하나의 비유요 또 열 처녀가 성도의 모습으로 등장한 일도 하나의 비유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신부란 표현도 하나의 상징적인 말이라면 그리스도인 전부가 신랑이신 예수님의 신부라고 부른들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입니다.

  열 처녀는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신랑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2. 미련한 처녀란 누구인가?


  예수님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한 처녀라고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등은 가졌지만 기름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이 처녀들은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없이 세속적인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신랑을 영접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결론에 가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이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라고 하신 말씀에서 등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 말이며, 구원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시119:105. 요15:3)물론 이 등은 외식적인 믿음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주님이 이 곳에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는 주 재림 시에 그를 영접할 자와 영접하지 못할 자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며, 이 같은 일은 멸망 받을 자가 아닌 구원  받을 성도들에게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경성 시키시려는데 있으셨으므로 이처럼 해석하는 일이 무리가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이들에게도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기름은 주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못했습니다 (롬8:14). 그들은 영의 생각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롬8:6). 그들은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롬6:13).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부족하여 신랑을 맞이할 수 없음을 알고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를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차라리 파는 자들에 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는 권면을 들었습니다.

  (3) 이들은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기름을 사러 갔다는 말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계3:18). 여기서 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갔다는 말은 그들의 회개할 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4) 이들은 기름을 샀지만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문은 구원의 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왔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야 할 문은 이미 닫힌 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믿는 많은 성도들이 환난에 떨어진다고 하는 여러 가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눅21:34-36. 고전3:15. 계3:10, 11:13, 12:17) 주님은 7년 환난 중, 후 삼 년 반 마지막 시기에 이 땅에 오십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전 삼 년 반 동안 외치는 두 중인의 회개의 권면을 듣게 되는데 이때 회개한 성도들은 슬기 있는 처녀들로 후 삼 년 반의 환난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계3:10, 7:15-17, 11:1-3, 12:6, 13-16).

  여기서 말씀하신 문은 바로 이 전 3 년 반의 문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회개는 했지만 문이 이미 닫힌 다음에 회개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문이 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은 이미 후 삼 년 반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후 삼 년 반의 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 ‘남은 자손’이라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 나중에서야 회개하여 대환난에 떨어지게 된 이 미 련한 처녀들인 것입니다(계11:13, 12:17). 그러나 이들은 한 명도 누락됨이 없이 다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계20:15. 요3:18)


  3. 슬기 있는 다섯 처녀


  슬기 있는 처녀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을 상정한 말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말합니다. 가장 슬기로운 성도란 이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기가 현재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견디며 소망 중에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성도들입니다.

  (1) 이 처녀들은 둥도 가지고 기름도 가졌습니다. 등이 신앙의 외형적인 모습이라면 기름은 ‘엘라이운’으로 신앙의 내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령의 임재를 말합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하셨습니다.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미련한 처녀들과는 근본적으로 신앙적인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오시는 그 시간까지 그들의 길을 밝힐 충분한 양의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비유는 성령 충만한 성도는 환난을 이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주님을 만날 예비를 합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름으로 등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을 내는 생활은 열매를 맺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영으로 육신의 일을 죽이는 생활, 성령으로 무시로 기도하는 생활, 충성된 생활을 합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세”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종들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여 취하고 먹고 마시는 시기에 오실 것입니다(마24:48-49).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하여 기롱하는 자들이 일어날 그 때에 오십니다(벧후3:3-4). 이 세상이 영적으로 졸며 잠자는 어두운 상태에 이르러 신랑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 188 ≈       착하고 충성된 종


  (본문 : 마태복음 25 : 14- 23)



  서 론 :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천국의 비유는 굉장한 범위로 확장되어 갑니다. 미련한 처녀와 슬기 있는 처녀의 비유가 주 재림 시, 예비한 성도와 예비치 못한 성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이라면 이 달란트의 비유는 주 앞에 설 때 모든 성도가 제각기 그 행한 바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5:10).


  1. 달란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은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세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며 타국이란 주님이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로 가시는 그의 승천을 의미합니다. 그 종들이란 모든 성도들을 말하며 자기 소유를 맡기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각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1) 이 달란트는 받는 액수가 제각기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다른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제각기 다른 액수를 받은 일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차이보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의 차이는 더 크지만 이런 일에 차별을 두지 않고 둘에게 똑같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어떤 직분을 맡든지 그것이 상급을 받는 일에 크고 작은 일이 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큰 도시 교회에서 수고하는 종이나 농촌 벽지에서 적은 교회를 담임하는 종이나 그가 받을 상급은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이 달란트는 각자의 재능을 따라 그 재능대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재능이란 말은 ‘두나미스’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능, 힘 또는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날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천부적인 능력이나 성령께서 주신 은사적인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그 사람의 재능대로, 그 사람에게 주신 은사대로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대로 회계하십니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두 이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고전12:20-21).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들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가 그 맡은 사명에 소홀하면 그 몸에 중대한 손상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2:26-27).


  2. 달란트의 회계


  자기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던 주인은 반드시 돌아와서 그 종들과 더불어 회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오랜 후에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온다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재림에 대하여 오랜 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종말의 정조가 다 이루어진 후의 일이므로 오랜 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른다”고 하셨습니다(마24:50).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13). 신랑이 더디 오므로 이 세상은 다 졸며 잠자는 영적 어두움에 들어가지만 그러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하는 소리가 반드시 들려 올 것입니다.

  (2) 주인이 돌아오면 “저희와 함께 회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회계란 결산입니다. 회계는 달란트를 받고 장사한 그들의 모든 결과를 들어낼 것입니다. 이 같은 회계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육신을 떠나 하나님께 가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9:27). 사도 바울은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롬14:10).


  3.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의 경우


  이제 세 명의 종은 주인 앞에 서서 제각기 위엄 받은 달란트에 대한 결산 보고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 보고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롬14:12).

  (1)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 두 종은 달란트를 받은 즉시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인이 자기들에게 달란트를 준 목적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라는 뜻임을 알고 받은 그 길로 장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장사를 했다고 한 말은 자기의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주의 일에 임한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의 핵심적인 일(장사)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익을 남기려면 첫째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은사는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일입니다(요15:8).

  (2) 그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들었습니다. 착하다는 말은 ‘아가도스’로 선하고 유능하며 친절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처럼 착하게 일을 했습니다. 충성된 종이란 말은 ‘피스토스’로 믿을만한, 맡길만한 사람을 가리키며 하나님은 이처럼 맡길만한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달란트를 맡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칭찬을 받게된 것은 주님의 인정을 받을만한 이익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눅12:48).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다면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4:2).

  주인이 이들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엄청나게 생각하는 아무리 큰 것 같은 일도 지극히 작은 일임을 알아야 하며, 한편 아무리 작은 일로 보이는 일이라도 그 일을 잘 감당하면 놀라운 상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십니다(고전15:38. 마10:42).

  결 론 : 이처럼 충성된 종에게 주시는 상급에 대하여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의 즐거움은 하늘의 영광의 자리를 말합니다(계3:21). 이 즐거운 자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의 자리인 “어린양의 혼인자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계19:6-8).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신다고 하신 말씀은 주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는 역사를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같은 종이 되라고 이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 189 ≈       악하고 게으른 종


  (본문 : 마태복음 25 : 24 - 30)



  서 론 :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들도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에게 그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내려진 선고는 너무나도 엄중합니다. 가지고 있는 달란트까지 빼앗기고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하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긴 것입니다. 그가 이 같은 선고를 받은 것은 한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인의 선고에 나타난 것처럼 “악하고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1.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한일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주인에게 달란트를 받은 즉시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기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긴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장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돈올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드린 것입니다.

  (1)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의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세상적인 생활에만 몰두한 그의 무책임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활용하지 않고 감추어 둔 돈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그의 행동은 달란트를 맡긴 그 주인의 뜻을 거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고전12:1-6).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유익하게 하시려고 각자에게 달란트의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받고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2)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자기에게도 회계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하는 주인의 말을 들은 청지기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녹16:3-8). 예수님은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한다”고 하셨습니다.


  2.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변명


  이 종은 자신이 장사를 하지 않고 돈을 땅에 묻어 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변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의한 일에 대하여 입술의 말로 미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된 변명이 통할 리 없는 것입니다.

  (1) 이 종은 주인을 행하여 “당신을 굳은 사람으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굳다는 말은 ‘스크레로스’로 엄한, 혹독한, 잔인한, 무자비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이 종이 말한 내가 알았다고 하는 말은 ‘에그논’으로 이 말의 뜻은 잘못 배워서 그릇되게 알고 있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이 종은 주인을 향하여 “당신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지 않아도 더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말은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실 걸󰡓이란 생각은 한 달란트를 받았던 악하고 게으른 종의 넋두리입니다. 내가 안 해도 하나님은 물론 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나에게 돌리시는 것입니다. 하만의 간계에 의하여 유대인들의 생명이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에게 이처럼 말했습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에4:14).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다고 한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전혀 손에 대기도 싫어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모을 수 있도록 헤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이 종은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실상인즉 두렵게도 여기지 아니했으면서도 이처럼 변명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결코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갈6:7).


  3. 주인의 선언


  이 종은 변명처럼 과연 주인의 돈올 염려해서 땅에 묻어 두는 일을 했는가? 정말로 자신의 부족한 것을 두려워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맡겼는가? 그의 이런 변명이 거짓된 말이었음이 주인의 책망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올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고 책망했습니다.

  (1) 이 종은 원래가 악한 종이었습니다. 악하다는 말의 ‘포네로스’는 무가치한, 못쓰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종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무가치한 그릇입니다.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고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딤후2:20-21). 이 종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함으로 주인의 쓰시기에 합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 이 종은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게으르다는 ‘오크네로스’는 빈둥 빈둥대는 태도로, 이런 사람은 쉽게 싫증이 나셔 무관심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일하기를 싫어하고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놀자”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잠6:10).

  (3)주인은 이 종을 무익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사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7:4). 이 열매가 없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무익한 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요15:2).

  (4) 주인은 이 종이 가지고 있었던 그 한 탈란트를 빼앗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모든 것을 빼앗겨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5)주인 은이 악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그가 받아야 할 최종적인 형벌의 장소입니다.

  결 론 :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본적인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청과 직분과 재능과 은사로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소유, 말하자면 재능이나 은사나 재물에 이르기까지 그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고 이것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도려야 하는 것입니다.




  ≈ 190 ≈       양과 염소의 분별


  (본문 : 마태복음 25 : 31 - 46)



  서 론 : 예수님은 24장에서 주 재림의 정조를 말씀하시고 25장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를 영접할 사람과 버림받을 사람들에 대한 경종으로 여러 가지 비유적인 교훈을 들려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의 분별은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의 모습을 양과 염소로 구분하여 비유적으로 들려주신 말씀이십니다.


  1.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


  성경에는 인류의 종말 또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란 말이 자주 동장 합니다. 이 심판은 인류가 최종적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되어 갈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의 결론으로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심판의 자리를 “영광의 보좌”라고 하셨고 요한계시록에는“크고 흰 보좌”로 나와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계20:11). 이 보좌에 앉으신 이는 바로 예수님이시며 이 자리에서 모든 인류가(산 자나 죽은 자나)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1)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민족이란 온 인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물론 죽은 자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표현했습니다(딤후4:1).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다”고 했습니다(계20:12). 이 때 이 자리에 모이는 무리들은 생명의 부활자와 심판의 부활자가 될 것입니다(요5:28-29).

  (2) 이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신 말씀대로(계20:15) 염소로 나타난 왼편쪽에 서있는 악한 자들은 영벌인 불 못에 던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2. 양에 대하여


  “그 때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인자로 나타내신 자기를 임금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만 왕의 왕으로 심판하시는 엄위하신 모습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은 오른편에 있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지금 계시는 곳이 오른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했습니다(막16:19).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게 됨으로 오른편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계3:21).

  (1)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칭찬해 주신 행실은 그들의 구원이 그 같은 행위로 말미암은 것임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나타내신 이 말씀에서 가장 해석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영생에 이르게 된 축복이 마치 그들의 선행에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은 사람이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딛3:5. 딤후1:9. 엡2:8-9. 롬11:6. 갈3:2). 만약 이 원칙이 그 어떤 경우에 무너진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헛된 것이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기독교의 진리가 일시에 무너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열매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열매는 선행으로 나타납니다(요15:8. 마5:16).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런 열매 없이 자기의 구원을 믿는 일은 진실한 믿음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그의 생활에 하나님을 향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같은 열매를 맺히게 하기 위해 우리 중에 계시며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로 이런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고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히12:11).

  (3) 오른편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의 생애 중에서 친히 주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계명이 무엇이며 그 계명을 지키는 생활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15:12).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가장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랑의 열매가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요일3:17-19).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내 형제들에게 나타냄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증거를 갖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자기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3. 염소에 대하여


  왼편에 있는 자들이란 버림받은 자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무리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갈 곳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주님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없는 생활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의 마음속에 예수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이신 사랑을 실천할 수도 없었고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사망이 선포되어 있습니다(요3:18).

  (2) 이들은 또한 처음 믿음을 져 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마치 노아 홍수 때의 사람들과 같으며 세상일에 완전히 젖어서 처음 가진 믿음을 배신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소유했던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딤전5:12).

  (3)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믿음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복음은 들었지만 들은 그 복음과 믿음이 화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처럼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히4:2).

  결 론 : 믿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열매가 있으며 그 열매가 내 신앙의 유무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여 열매를 맺는 생활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행함이 있는 믿음의 생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한 말씀을 명심하여 열매가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의 열매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약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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