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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 설교
 밤중소리  03-01 | VIEW : 12,221



  ≈ 180 ≈       주 재림의 징조


  (본문 : 마태복음 24 : 1 - 14)



  서 론 : 마태복음 24장은 소 계시록이라고 불릴 정도로 말세에 관한 일과 주 재림의 정조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이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친히 말씀하여 주셨다는 점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입니다.


  1. 종말에 관한 길잡이로서의 교훈


세상이 그 종말에 이를수록 예수님의 예언하신 말씀대로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며 거짓 이적으로 미혹하는 무리들이 머리를 들고일어나 세상을 미혹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신 세상 종말의 정조와 주 재림의 정조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가운데서 다음 몇 가지 사실에 대하여 미리 알아두는 일이 좋을 것입니다.

  (1) 그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그의 재림이나 종말에 대하여 그 년 월 일 시를 절대로 밝히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주 재림에 관하여 그 일시를 밝히려는 시도는 버려야 하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주 재림의 결정적인 시기를 년 월 일 시로 주셨다면 그 양상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 세상은 말할 수 없는 혼돈에 빠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데 그 날짜가 나온다면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가까이 올수록 세상은 무질서와 공포와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그 둘째는 예수님은 다만 세상 종말과 주 재림에 있어서 세상에서 일어날 징조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일은 주님이 예언하신 명시된 말씀으로 이 세상의 징조를 바라보고 경성 하라고 하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지혜가 없는 자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종말의 징조


  예수님이 이 예언을 말씀하시게 된 것은 50여년 가까이 걸려서 건축된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그 당시에도 다 완공된 것은 아님)을 제자들이 자랑했을 때 이에 대하여 주님은 실로 놀라운 말씀 즉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이 같은 말씀에 정히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과연 이런 무서운 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에 대하여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감람산 위에 앉아 계실 때 조용히 묻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물음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그 하나는 과연 어느 때에 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일이 일어날것이겠는가?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종말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한 말씀도 아니하시고 세상 끝날의 정조와 주 재림의 정조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첫 번째 징조로 사람의 미혹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미혹이란 말은 ‘프라나오’로 길을 잃게 한다. 나쁜 길로 인도한다. 방황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종말에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자기를 그리스도로 청하면서 사람들로 생명의 길을 잃게 하고 나쁜 길로(사망) 인도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때 미혹을 받는 무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는 무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를 알아야 합니다.

  (2)두 번째 징조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난리란 말은 ‘폴레무스’로 전쟁, 전투, 싸움, 충돌 등의 복수로 많은 싸움과 전쟁을 의미합니다. 종말에 나타날 두드러진 징조는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난리 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잦은 국제적인 충돌, 인종 싸움, 내란, 정변, 혁명 등이 잇달아 일어나 세상이 어수선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에라도 큰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국제적인 불안 상태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해 주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이런 난리나 그 소문만으로 세상 끝이 오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시작이거나 세상 종말에 이르렀다고 하는 강력한 징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다음 세 번째 징조로는 민족과 민족이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얼이 일어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정조는 그 규모가 매우 큰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란 말이나 국가란 말은 가히 세계의 전면 전쟁을 유발시키는 대 규모의 전쟁 형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기근과 지진이 처처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같은 일이 통계학 상으로나 그 빈번함과 엄청난 규모로 살펴보아 예수님의 예언과 연관시킬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정조가 재난인 것이 아니라 종말에 있을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재난이라고 하신 말씀은 종말에 이 땅 위에 임할 무서운 환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마24:29. 계2:10, 3:10. 단12:1. 슥14:1).


  3. 환난의 시작


  9절부터 마지막 종말에 있을 환난이며 온 인류가 겪어야 할 재난입니다. 이애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21:33-35).

  (1) 그때 즉 환난 때에는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며 죽이리라고 하셨습니다. 환난시기에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세상의 권세를 잡게 됨으로 그들은 성도들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이 떼들이(악한 영)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거처로 삼게 되는데 이 황충이 떼들인 악령이 들어간 사람은 적 리스도 사상에 물들게 되며 이들은 성도들을 적그리스도에게 넘겨 줄 것이며 핍박을 가할 것입니다(계9:1-6, 마10:21-22).

  (2) 거짓선지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기록된 거짓 선지자가 이때 출현 할 것입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13:11-18) 이것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사도 바울이 밝힌 악한 자의 임함과 동일합니다(살후2:9-12).

  (3) 이 때에는 이 세상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하다고 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 번성하는 죄악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최악이 관용했을 때 심판을 하십니다(창6:5-8). 종말에 세상에 있을 죄악에 대하여 성경은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지라”(계18:5).

  결 론 : 언제 이런 시기가 오느냐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만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세 기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주님 시대 (초림) ⓑ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의 박해 시대 ⓒ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 ⓓ 이스라엘의 회복시대 ⓔ 화란의 시작 ⓕ 환난시대 ⓖ 주님의 재림.





  ≈ 181 ≈       종말의 결정적 증거


  (본문 : 마태복음 24 : 15 - 28)



  서 론 : 주의 재림과 세상 끝에 있을 정조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 결정적인 증거와 사건들에 대하여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특별히 다니엘이 기록한 멸망의 가증한 존재에 대하여 설명하심으로 적 그리스도의 대두가 세상 끝 날에 나타날 중대한 사건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또한 이 같은 환난 날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려야 활 것입니다.


  1. 멸망의 가증한 존재와 종말


주님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멸망의 가증한’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은 다니엘이 말한 예언의 내용인데 다니엘은 종말에 가서 이레의 절반동안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악한 자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9:27). 이 자에 대해서는 신약에 와서 데살로니가후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 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3-4)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가 종말에 어디 서느냐? 예수님은 거룩한 곳에 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적그리스도가 온 세계를 통치하는 후 삼 년 반 시대에 있을 일인데 이 때 적 그리스도는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입니다(계13:3-7).

  우리는 이 사건이 주후 70년에 있은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으로 생각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인용하신 다니엘서의 “멸망의 가증한 자”란 세상 종말에 나타날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나 그의 우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70년대에 당할 이스라엘의 환난을 가리킴이 아니라 세상 종말파 주의 재림에 대하여 묻는 제자들에게 인류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함락은 마지막 종말에 다시 한 번 있게 됩니다(슥 14:12).


  2. 산으로 도망하라


  주님은 이 같은 환난 날에 예루살렘에서 살아 남울 수 있는 길을 밝혀 주셨습니다.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무서운 환난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수 있는 길은 산으로 도망하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산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이스라엘의 피난처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늘의 유황불로 멸망을 당할 때에 롯도 그러했습니다. 종말에 있을 예루살렘의 환난 날에 그들이 산으로 도망할 일에 대하여 스가랴는 이처럼 예언했습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슥14:4-5).

  (2) 이 같이 도망하는 일에는 돌이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뒤로 돌이키는 일은 롯의 아내의 경우에서 멸망 받을 일의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도 시기적으로 급박한 상황임을 경종 하신 것입니다.

  (3)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환난이 급하고 심하기 때문에 아이를 밴 부녀자나 행동하기에 거추장스러운 젖먹이 어머니들에게는 다른 사람들 보다 화를 받는 확률이 많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4) 겨울이나 안식일에 도망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거론된 것은 이 환난이 분명히 그 때까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 관한 것임을 밝히신 일이며 그 날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얽매어 자승자박하는 결과가 올 것입니다. 겨울은 역시 추운 계절이기 때문에 환난을 겪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3. 환난의 날들을 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


  이 때에 일어날 환난은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며 이후에 이 같은 사건이 없을 것은 이 환난이 인류의 마지막 환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이 날 들을 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하신다는 말씀은 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이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게 이 같은 무서운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3:10). ③ 이 말씀은 이 모든 환난을 계획하시고 주장하시는 이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의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역사는 오직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심으로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4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환난 때의 영적인 혼란은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일 것입니다. 지금도 거짓 그리스도들의 등장으로 교계가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정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발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지만 이들은 진리의 말씀에 의지한 사람들이 아니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도 아닙니다. 이 거짓 그리스도들은 사단으로부터 영적인 거짓 능력을 받아 갖가지 회한한 이적이나 표적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늘로 올리우심을 본 그대로 오시는 분만이 재림의 주님임을 알라고하셨습니다(행1:31).

  결 론 :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곳에서 말씀하신 주검이란 말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독수리란 하늘의 새들을 말하는데 이 날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새들을 모으사 사람의 고기로 그들의 배를 불리는 하나님의 잔치를 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고 했습니다(계19:17-18, 겔39:17-20).




  ≈ 182 ≈       주 재림의 모습


  (본문 : 마태복음 24 : 29 - 31)



  서 론 : 예수님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재림하시는가?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인 논쟁도 많지만 일반성도들도 알고싶어하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재림의 시기를 년 월 일 시로는 알 수 없지만 그 때와 그 모습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친히 이 곳에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종말에 있을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재림은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오십니다. 그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의 모습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인 대 환난 후, 이런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분이 아니시면 그가 무슨 이적을 행하든지 그가 무슨 말로 그럴듯하게 꾸미든지 그자는 분명히 종말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신 거짓 그리스도임을 알고 절대로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재림은 환난 후에 있다.


예수님은 “그날 환난 후에”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고 하신 사건은 인류의 종말에 있을 대 환난을 의미합니다. 이 날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 날”이라고도 표현하셨습니다(눅21:34). 이 날에 대하여 “시험의 때”라고도 하셨습니다(계3:10). 다니엘은 이 환난의 날을 “그 때”라는 말로 예언했습니다(단12:1). 스가랴는 이 환난의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슥 14:1-2). 이 환난은 요한 계시록에서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나옵니다(계16:1-21).

  (1) 환난 후 에란 말씀은 여섯째 대접 심판 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세상 종말에 인류들에게 내리실 최종적인 재앙이 요한 계시록 16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재앙이 일곱 대접 심판으로 나옵니다.

  이 심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① 첫째 대접을 땅에 쏟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독한 헌데가 생깁니다. ② 둘째 대접을 바다에 쏟았습니다. 바다가 피가 되어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③ 셋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습니다. 모든 물이 피가 되어 사람들이 피를 마시게 됩니다. ④ 넷째 대접올 해에 쏟습니다. 해가 불로 사람들을 태움으로 사람들이 태움을 받습니다. ⑤ 다섯째 대접을 짐승의 보화에 쏟았습니다. 그 나라가 어두어지며 악한 종기로 말미암은 고통이 더욱 심하게 됩니다. ⑥ 여섯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군대가 아마겟돈에 모이고 이 때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⑦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습니다. 이 온 세상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이 지구가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되고 세계의 모든 도시가 폐허화되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산도, 모든 섬도 없어져 버립니다. 이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이 지구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림으로 스바냐가 예언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1:2-3).

  여기서 예수님은 여섯째 대접을 쏟는 재앙 시에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섯째 대접 재앙까지 이 세상에 무서운 환난을 주시고 여섯째 대접을 쏟으시는 것으로 마지막 전쟁을 일으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에게 결정적인 심판을 내리시게 됩니다. 이 전쟁의 모습이 계시록 19:11-21절까지로 이곳에 그 전쟁의 양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그 날 후에 해가 어두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섯째 대접 재앙으로 말미암은 흑암을 말합니다.

  (3)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는 밤에도 역시 흑암이 계속됨으로 하늘의 달이 그 빛을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4)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은 마치 하늘의 권농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 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12:26-27).


  2. 재림하시는 징조와 주님의 재림


  예수님의 재림 시기는 이처럼 환난 후가 될 것인데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정조가 하늘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보일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지만 하늘에서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며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2)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재림하시는 주님의 징조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어떤 모양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질지는 모릅니다.

  (3)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무리는 이때 둘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땅의 모든 족속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동일한 장소, 통일한 입장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① 통곡하는 무리는 땅에 거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물론 그때까지도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자들이요 주님을 대적해 온 자들입니다. ‘그를 찌른 자’나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계1:7). 어린양의 재림의 모습을 보고 그 몸을 숨기는 족속들,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각 종과 자주자들이란 이 세상에서 그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불신자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계6:15-16).

  ② 다음에 주님을 영광으로 맞이할 무리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그의 신부가 될 성도들입니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살후1:10).

  (4) 이때 택한 백성들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크나큰 의문점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때 천사는 왜 택하신 성도들을 한 곳으로 모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으는 그 곳이 과연 어디냐는 것입니다.

  ① 이 일은 예수님의 재림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 질 것인데 이 일로 성도들은 즉시 어디론가 옮겨질 것입니다. 이 일은 마치 노아의 홍수 시에 노아의 가족을 방주로 모으신 일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왜 이때 이처럼 서둘러 택하신 자들을 모아야 하느냐? 그것은 그 다음 심판이 곧 올 터인데 이 심판이야말로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이 심판으로 이 지구는 파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계16:17-21).

  ②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 곳이 공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살전4:16-17).

  결 론 :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날을 소망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심판 받을 사람들이 아니요 주님의 신부들로 그 날에 주님을 영광 중에 만나 영원히 그와 함께 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83 ≈       무화과나무 비유에 나타난 징조


  (본문 : 마태복음 24 : 32 - 36)



  서 론 : 예수님이 세상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중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 교훈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불입니다만 대개의 경우 두 가지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말의 예언에 나타난 징조를 보고 그 예언의 성취를 바라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 비유를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결시켜 주 재림의 시대적 징조를 알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1.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두 가지 해석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한편 이 나무는 이스라엘이나 또는 하나님의 백성의 한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8월 말경에 익는 여름 무화과와 5월 말경에 익는 겨울 무화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그 어린 싹은 2월경에 나오고 4월이면 그 잎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1) 무화과나무의 성장과정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를 배우고 준비하라는 뜻으로 이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 무화과 열매는 아무런 예고 없이 나무에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화과가 열리려면 먼저 그 잎이 돋아나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의 잎이 돋아나는 시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잎이 돋아나면 그들은 이제 여름이 가까운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비유를 통하여 종말의 정조를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 종말에 대한 정조가 이 세상에 한 가지 한가지 나타나는 것을 보거든 이런 정조들이 곧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해 주는 일임을 알고 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또한 예수님은 이 비유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징조로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의 회복이야말로 주 재림의 징조임을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황폐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 시기가 그의 재림 시기에까지 이를 것임을 시사하셨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룸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23:38-39).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회복파 주의 재림 시기는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① 여기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무화과나무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1장에서 열매가 없음으로 주님의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말라버린 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 지라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서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21:18)고 했습니다. 이것은 열매 없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고 하신 말씀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 그들은 실질적으로 그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이제 이방인의 때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야 말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인 것입니다(마24: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 세상 끝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하나님의 신호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5일 독립을 선언함으로 다시금 그들의 모습을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 시켰습니다.

  ②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그리스도 재림의 예언적인 정조가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구약 여러 곳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 38장에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옵니다. 이 전쟁은 극한 북쪽에 있는 곡이 회복된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는 것으로 이 전쟁이야말로 종말에 있을 큰 전쟁인 것입니다.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이 거하는 중이라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 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 같이 땅을 덮으리라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네가 네 고토 극한 북방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떼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겔38:8-9, 14-16).

  ③ 이스라엘의 회복은 반드시 있어야할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11장에서 하나님의 비밀로써 나타난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시온에서 구원을 얻을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했습니다(롬11:25-27). 또한 예수님은 회복된 이스라엘 땅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행1:11. 슥14:1-5). 그리고 마지막 날에 전쟁을 일으키는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주 재림 전에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며 이스라엘은 이미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보거든 이것은 마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일이니 세상 종말과 주 재림의 시기가 다가 올 줄로 알라고 하신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비하심과 이적으로 열매가 없어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마른 그 무화과나무를 이처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2.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34절에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이며 어떤 시기를 의미하는 세대인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세대란 말은 한 시대를 의미합니다. 󰡒한 때󰡓 또는 “한 시대󰡓를 가리키며 이것은 또한 그 한 시대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만약 제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세대를 말씀하셨다면 그들이 생존한 시기까지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세대는 지나갔지만 아직까지도 이 같은 종말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나타난 징조(이스라엘의 회복)나 아니면 세상 종말에 나타날 예수님의 예언이나 징조가 나타날 그 시기부터 계산한 한 세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재림의 징조가 나타난 시기로부터 예수님의 재림은 결코 길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세대를 40년 혹은 이스라엘의 희년인 50년 혹은 한 세기인 100년을 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느 사람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날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천사”들 까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은 아직 세상에서 제한적인 인성을 지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명히 성자 하나님이시요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본체를 지니신 분이시지만 그가 자기를 낮추시어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동안은 하나님으로서의 전지 전능이 스스로 제한되어 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실 그 당시에 있어서 예수님은 정말로 그 시와 그 때에 대해서는 모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늘에 올라가신 이후 그는 다시 이전의 영광으로 환원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친히 이 모든 징조와 심판을 이루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결 론 :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시대가 주 재림에 매우 가까운 세대임을 알고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의 준비를 서둘러야 할 세대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 184 ≈       노아의 때와 같은 세상 종말


  (본문 : 마태복음 24 : 37 - 39)



  서 론 : 예수님은 세상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은 두 가지로 우리에게 경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은 점점 완악해 져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는 그 시기까지 회개치 않고 세상을 따라가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다른 또 하나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실질적인 심판의 날이 와도 모든 사람들은 그같은 재앙이 세상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인줄 알지 못하고 멸망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경종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예수님 자신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18:8). 세상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한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온, 동과 목석의 우상에서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옴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계9:20-21. 참조 계16:8-9).


  1. 노아의 때란 세상에 죄악이 관용한 때를 말한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롤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벧후 3:8-9).

  (1)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홍수심판이 내려진 것은 그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창6:5-6). 하나님은 이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 할 때까지 길이 참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400년간이나 애굽에서 보내도록 하신 이유에 대하여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용치 아니함이라고 하셨습니다.󰡒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용치 아니함이니라”(창15:16).

  (3)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0-21)고 말씀 하셨습니다.

  (4) 마지막 인류의 심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인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계 18:5-6)고 하셨습니다.


  2.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은 육신적인 생활에 나타난 죄악과 영적 생활에 나타난 죄악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육신적 생활에 나타난 죄악을 보면

  ①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생활상올 보면 믿음으로 살거나 의롭게 산 흔적은 어느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고전 10:31). 그러나 그들의 생활에는 이런 것이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② 그들의 생활은 정욕과 탐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욕으로 가득찬 생활상이 주님의 말씀 중에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표면에 나타난 생활에 이처럼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은 찾을 길이 없고 정욕을 만족시키고 탐심을 이루는 생활로 깊숙이 젖어 있었습니다.

  ③ 그들은 성별된 생활을 못했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갔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금하신 잡혼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1-2)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셈의 후손들이 가인의 자손들과 잡혼을 하게 되므로 그들이 가인의 자손들에 의하여 불신적인 풍조에 물들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은 셈의 자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천사들은 혹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내려 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육체적인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같은 생식기능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네피림이란 존재를 천사와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미 홍수 심판으로 이 같은 족속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인 가나안 땅에 네피림 후손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2) 그러면 그들의 영적 생활에 나타난 죄악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의를 전파하는 노아의 경종을 비웃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120년 동안이나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 백 이십 년이 되리라”(창6:3)는 말씀은 노아가 방주를 만든 기간이 아니라 노아로 하여금 의를 전파하여 회개시키시는 기간으로 설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벧후2:5).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의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 하던 자들이라”고 했습니다(벧전3:20)

  그러면 그 당시 살고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홍수 심판으로 다 멸망 받은 것이겠는가? 그들은 불순종으로 홍수의 심판을 받아 육신적으로는 멸함을 당했지만 영으로는 구원을 얻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기록 된 것을 보면 음행으로 더럽힌 어느 성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정죄했지만 그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5:4-5).

  결 론 : 한번 세속적인 신앙에 물들면 그 사람은 영적 소경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에 젖은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농담으로 비웃는 것입니다(창19:14). 홍수 심판이 내렸지만 그들은 그 재앙을 우연으로 알았습니다. 종말에도 이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무리들이 그것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재앙들을 만나도 회개치 않고 그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 185 ≈       예비하고 있어야 할 주의 날


  (본문 : 마태복음 24 : 37 - 44)



  서 론 : 예수님의 재림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예비했던 노아의 가족은 다 살았지만 이에 대하여 전혀 예비치 아니한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멸망 받았다는 것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노아가 전파하는 복음을 듣지 않고 심판을 받은 것인가? 그들은 방주를 만들지 않고 먹는 일과 마시는 일과 집을 짓는 일과 장가들고 시집가는 세상적인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심령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이 “홍수가 나서 저회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우리에게 큰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말에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눅21:34-36).


  I.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할 일


   노아 때의 형편을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때”란 말씀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과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1) 데려감을 당한다는 말씀은 심판에서의 최종적인 구원의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전의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심에 그들을 모두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신 후 땅을 멸하시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창7:6-12). 롯의 경우도 역시 그러했습니다(창19:15-25).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은 데려감을 당하고 심판 받을 사단의 자녀는 다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① 이것은 알곡 추수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에서 결론적으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30). 이 같은 알곡 추수는 세상 종말에 나타날 것임을 요한계시록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고 했옵니다(계15:15-16).

  ② 이 알곡 추수는 마지막 때에 천사를 통하여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마24:30-31).

  ③ 이 때 데려가심을 당하는 사람들은 천사들에 의해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살전4:16-17). 그러면 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직전에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공중 영접이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마지막 인류의 심판이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나타나는데 이 재앙은 이 세상이 온전히 무로 돌아가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16장에서는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처음 겪는 큰 지진으로 큰 성 바벨론(이 지구)이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되고 만국의 성(세계 중요 도시)들도 무너지며 각 섬도(세계 모든 도서)없어지고 산악도(세계 높고 낮은 모든 산) 간데 없어지는 심판”이 마지막 이 세상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심을 명시하고 있습니다(계16:17-20). 그런데 이런 심판에서는 이 땅위에 살아남을 사람이나 짐승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습1:2-3) 그의 택한 백성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게 이 땅위에 세워진 천년황국으로 내려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되는 에덴의 생활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이 찬 후 우리는 하늘로부터 신부의 단장을 갖추고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인 우리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될 것입니다(계21:14).

  (2) 다음에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 받는 일을 말합니다. 홍수 심판 때 노아의 가족과 방주 안에 들어간 모든 생물 외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날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 역시 그가 버려둠을 당한 이상 어떤 존재이건 완전히 멸망함율 당할 것입니다.

  ① 이들 중에 많은 무리들은 하나님의 큰 잔치의 먹이로 새에게 먹히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아마겟돈으로 모인 모든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이 잔치의 주빈으로 초대받는 공중의 각종 새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계19:17-18)

  ② 버려둠을 당할 대상자들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사람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20:15)고 했습니다.

  ③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한결같이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했습니다(계13:16-17) 짐승의 표에 대해서는 계 13장에 있는 주석설교를 참조할 것).

  ④ 버려둠을 당할 자들 중에는 단 한 명도 예외자가 없을 것입니다(습1:2-3). 여기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두 사람”과 “두 여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한 가족 중에도 이처럼 데려감을 받을 사람과 버려둠을 당할 사람으로 나누인다고 하시는 뜻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이지 어느 한쪽에 의존해서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부부간에도 마지막 날에 가서는 이처럼 비참하게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경종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어떤 분은 주님의 이 비유를 대 환난 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사람들과(계12:6,14) 환난에 떨어질 사람들의(계14:17) 구분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종말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할 일에 대한 주님의 경종이 십니다.


  2. 이러므로 예비하고 있으라


   “이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주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그레고레 이테’로 그 뜻은 정신 차리라,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적의 경우를 비유로 그의 재림을 예비하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1)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눅21:36).

  (2) 깨어 있는 얼은 그 날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신부들은 특별한 단장을 해야 하는데 그 단장은 깨끗한 세마포라고 했습니다(계19:7-8).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세마포는 그리스도인의 열매로 나타납니다(요15:5-8).

  (3) 깨어 있는 방법은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결코 미혹을 받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살후2:9-12).

  결 론 : 지금은 노아의 때입니다. 모든 교회가 세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롯의 때입니다. 음란한 세대입니다. 깨어 있어 그날을 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186 ≈       충성된 종과 악한 종


  (본문 : 마태복음 24 : 45 - 51)



  서 론 :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를 맡아 주님을 대신하여 그 양떼를 양육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요21:15-17).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가운데에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있고 반면에 “악한 종”들도 있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실 세상 종말에 가서 크게 둘로 나눠진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에 선 교회요(계12:1-2) 하나는 음녀 교회입니다(계17:1-5).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진리에 선 교회를 맡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요 음녀 교회를 맡아 양 무리를 치는 목자는 “악한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란 어떤 종을 가리키는 것인가?

  (1) 충성된 종이란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종을 말합니다. 충성이란 발은 ‘피스토스’로 그 말의 뜻은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① 이 종은 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종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겸손한 종들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사57:15).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잠3:34).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시10:17).

  ② 이 종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종입니다. 양떼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고 진리의 참 양식을 주려면 그 원천이 되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1:2, 112:2, 잠 16:20).

  ③ 이 종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종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는 종들을 혼자 두지 아니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8:20).

  ④ 이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를 사랑하는 종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주님에 대한 사랑을 세 번씩이나 다짐하신 후 그의 양을 맡기셨습니다(요21:15-17).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말씀했습니다(잠27:23). 하나님은 양떼를 사랑하지 않는 목자들에게 무섭게 경종하셨습니다(겔34:1-6).

  (2) 지혜 있는 종이란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행동을 삼가는 사람입니다. 지혜란 ‘프로니모스’로 생각이 깊은 상태 또는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고 전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① 이 종은 특별히 지혜의 은사를 받은 종입니다. 은사적으로 주시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고전12:3) 이 같은 지혜는 구함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약1:5).

  ② 이 종은 남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종입니다.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고 했습니다(미6:9).

  ③ 이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종입니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고했습니다(잠8:33).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잠23:19).

  ④ 이 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종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골2:3).

  (3)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말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고 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자기가 치고 있는 양을 자기 양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양은 예수님깨서 ‘내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피로 갚주고 산 양을 잠정적으로 맡아 그 양을 키우는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 양 무리들을 잘 키워야 합니다.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맡아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을 키우는 방법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입니다.

  ‘때를 따라’란 말은 ‘엔 카이로’로 ‘정해진 때 안’이란 뜻입니다. 양들에게 양식을 먹일 때에 충분히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양식은 생명의 꼴이어야 합니다. 종말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양떼들에게 주검의 쑥물을 먹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8:10-11). 그 양떼를 맡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양 무리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종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이들이 받을 축복에 대하여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복이란 ‘마카리오스’로 영적인 축복, 미래적인 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맡긴다는 말씀은 양의 소유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나누는 일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례하는 축복입니다(마25:21). 주인과 같은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시키시는 축복입니다(빌3:21). 주인의 보좌에 주인과 함께 앉게 하시는 축복입니다(계3:21).


  2. 악한 종의 경우


  악한 종이란 양을 맡겨 주신 주인의 뜻을 거슬려 주인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에 따라 양떼를 치는 종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자에 대하여 “자기만 먹이는 목자”라고 정지하셨습니다(겔34:3-10).
  (1) 이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주 재림에 대하여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는 종입니다. 자신도 준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양 무리들에게도 주 재림의 준비를 전혀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그 양떼들의 피 값을 받을 것입니다(겔33:1-6).

  (2) 이 종은 동무들을 때리는 일을 합니다. 주인에게 맡은 양떼들을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노회에서나 총회에서나 종교 집단에서 정치 노름을 하느라고 모략하고 중상하고 투쟁하는 일을 말합니다. 대개의 경우 목회에 등한한 종들 이 이 같은 교권 싸움이나 감투 쟁탈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이 종들은 또한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타락한 세속화된 생활과 탐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유다는 이처럼 정죄했습니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했습니다(유1:12).

  (4) 이들이 받을 재앙에 대하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에서 미련한 처녀들을 보게 됩니다. 회개치 못한 자들은 후3년 반의 무서운 환난 가운데 던져져 불같은 연단을 통하여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주인이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인을 기다리는 지혜로운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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