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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 설교
 밤중소리  03-01 | VIEW : 13,011



  ≈ 175 ≈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


  (본문 : 마태복음 23 : 1 - 12)



  서 론 : 예수님은 자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록 그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는데 그들에 대해 몇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파 그들의 말하는 바는 그 말대로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 외식자에 대한 책망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외식온 세 가지로 간추려 말할 수 있습니다. 중심으로 하나님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꾸미는 것.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 속과 겉이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 자리는 누구나 존경해야 할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업에서 나오는 말은 옳았지만 그들의 행실은 옳지 못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의 잘못은 그들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는 그 말을 듣고 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가르치든 바른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2) 그들은 말만 하고 행치는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말의 결실이어야 합니다. 말과 행실이 다를 때 외식자란 이름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말과 그들의 행실이 달랐던 이유는 심령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3) 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 가르치지 못하면 이 율법이야말로 지기 어려운 짐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인생들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에 대하여 베드로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말했습니다(행15:10).

  특히 서기관들은 율법을 무거운 짐으로 만드는 선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이삭을 자르는 일, 병을 고쳐 주는 일, 식사시 손을 씻는 일등을 엄격히 규제하므로 사람들의 생활을 의문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실상인즉 율법을 어기는 생활을 행했습니다. 그들이 이 점을 지지 않은 이유는 옳은 줄은 알면서도 질 능력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율법의 짐을 질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수고스러운 일을 원치 않았으며 지도자의 위치에서 안일한 생활에 젖어 있었습니다.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적인 열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그들의 생활에 나타낸 행위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적인 외식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시고 파헤치셨습니다.

  (1)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경문이란 ‘플라크테리온’으로 성경 구절을 쓴 일종의 호신 패로 유대인들은 이것을 차고 다녔는데 그  목적이 다른 사람으로 자신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긴다는 인상을 주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2) 그들은 옷술을 크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옷술이란 유대인들의 겉옷 네 모퉁이에다는 옷단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의 기호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한 것입니다.

  (3) 잔치의 상석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잔치의 상석은 주인의 바로 옆자리를 말합니다.

  (4) 그들은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란 말에 매력을 느끼고 그런 소리 듣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5)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문안은 웃어른들이 받는 인사입니다. 그들은 어른 대접을 받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나 시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문안을 받는 일은 그들에게 매우 유쾌한 일 일수밖에 없었습니다.

  (6) 그들은 또한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랍비’란 말은 나의 스승이란 뜻으로 율법 교사를 칭하여 불러온 최대 존칭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이처럼 자기를 밖으로 나타내기를 좋아했으며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목을 이끌려는 욕망으로 자기를 세상에 내보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로 예수님은 이들의 거짓과 모함과 정죄에 의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권면


  예수님은 채자들을 향하여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닮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거울로 몇 가지 사항을 권면하셨습니다.

  (1)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의 선생은 오직 한 분 예수만 계실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 틀입니다.

  (2)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육신적인 혈연 관계의 부자 지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존칭어는 그 이상 가는 위치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께로서 난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3) 지도자라 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의 절대적인 지도자의 위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인도하시고 양육하시고 주관하시는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뿐이십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참으로 큰 자가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되고, 높임을 받는 자가 되려는 데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이 같은 행실을 본 받거나 미혹 받는 일이 없기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고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 176 ≈     천국 문을 닫는 죄와 지옥자식을 만드는 죄


  (본문 : 마태복음 23 : 13 - 15)


  서 론 :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식자의 전형적인 모델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손 꼽으셨습니다. 외식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그들에게 돌아갈 상급은 전혀 없고 오히려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외식자가 맺는 열매는 그들의 외식을 위한 노력에 비하여 어처구니없는 결말이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화를 받을 것이라고 지적하선 무서운 최악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국 문을 닫는 죄


  외식은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그 죄가 매우 큰 것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지식이나 외식적인 행위는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1) 천국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나라를 가지고 오셨으며 이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백성들로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미래에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나라를 말합니다.

  (2) 천국 문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바로 그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심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곧 길이라”고 말을 하신 것도 예수님이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① 이들은 진리를 대적함으로 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오신 분이시며 그 진리를 증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서기관돌파 바리새인들은 이 진리를 배척하고 대적함으로 그를 믿지 못하게 이 문을 굳게 닫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② 이들은 율법을 잘못 가르침으로 이 문울 닫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천국은 율법의 의로 들어간다고 잘못 가르침으로 이 문울 스스로 굳게 닫아 버렸고, 자기 자신들도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들어 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와 가까이 하려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를 따르면 출교 한다는 산혜드린 공회의 결의로 인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많은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니고데모, 아리마대 사람 요셉 둥도 이 같은 출교 조치의 두려움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들어내 놓고 자기를 나타내지 못했었습니다.


  2.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드는 죄


  예수님은 또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향하여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인이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던 고넬료란 이달리야대 군대의 백부장도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 이방인이었습니다(행10:1-2). 이들은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더라도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과 똑같은 언약 아래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 그들은 이 같은 교인들을 얻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녔다는 말씀은 그들의 전도열을 나타낸 표현이십니다. 그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펴기 위하여 이방인이 유대교로의 개종을 위하여 전도 활동을 네 게 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들은 이렇게 얻은 교인들을 철저한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은 그들 자신이 소경이면서 소경을 인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①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일은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5:39).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은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②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유전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이 가르치는 유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고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마15:3-6). 이 같은 가르침은 그 가르침을 받는 자들로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③ 그들은 또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철저한 율법의 멍에를 지게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가르침은 이방인들로 자기들의 외식을 따르게 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그들로 지옥 자식이 되 게 하는 일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초기에 이런 율법주의적인 복음이 번져서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복음을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했습니다(갈1:7-8).


  3. 지옥 자식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지옥”이란 말은 헬라어로 ‘게헨나’를 말합니다. 이 지옥이란 말은 예수님이 여러 곳에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마5:29). 이곳을 “영원한 불”이라고도 하셨으며(마18:8), “지옥의 판결”이란 말씀으로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마23:33). 헬라어로 영적인 처소로 세 곳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1) ‘게헨나’ - 이곳은 악한자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가는 곳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헬라어는 지옥이라고 번역되며 이 말의 어원은 “힌놈의 골짜기”(왕하 23:10, 대하28:3)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곳은 아하스 왕 이후에 몰렉 신을 위하여 어린아이를 불태워 제사를 드린 곳으로 인간이 죄의 심판으로 영원한 불의 심판을 말할 때 이곳 이름이 적용된 것입니다.

  (2) ‘하데스’ - 죽은 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음부”란 말로 불려졌습니다. 이 말은 구얼 구약적인 표현으로 영혼의 거처 또는 무덤이란 말과 혼돈 되어 왔습니다.

  (3) ‘타르타로오’ - 이곳은 무저갱으로 번역되며(벧후2:4), 타락한 천사들이 당분간 감금된 장소로 알려져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욕 자식이란 어느 쪽을 가리키신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될 것이 없습니다.

  결 론 :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잘 명심하여 양 무리의 본이 될 뿐 아니라 충성된 주님의 일군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 177 ≈     잘못된 맹세와 율법의 더 중한 것을 버린 죄


  (본문 : 마태복음 23 : 16 - 24)



  서 론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화 받을 죄는 그 규모도 엄청나거니와 그 죄목도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세 번째 죄로 그들의 잘못된 맹세를, 그리고 네 번째 죄로 율법에서 의와 인과 신을 버리고 외식을 취한 죄에 대하여 신랄히 책망하셨습니다.


  I. 맹세에 대한 죄


  예수님은 일찍이 산상보훈에서 맹세에 대한 교훈을 들려 주셨습니다(마5:33-37). 이것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거짓된 맹세에 대한 책망이셨습니다. 그들은 능히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쉽게 하였고 그 맹세를 져버리는 일을 무서운 죄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은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사65:16)라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은 제단이나 성전으로 맹세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가르치는 맹세가 외식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된 맹세의 방법을 책망하시기 위해 하나의 예증으로 들려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그들이 맹세에 경중을 두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잘못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맹세의 대상에 대하여 제단이나 성전으로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죄가 안되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맹세란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했든 맹세의 
대상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맹세한 그 사람은 그 맹세를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 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민 30:2). 이 같은 말씀은 성경 도처에 너무도 많이 깔려 있습니다(신23:22. 시15:4. 전5:4).

  (3) 예수님은 그들의 이 같은 가르침이 그들의 탐심에서 나온 일임을 폭로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제물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가르친 것은 맹세하는 자가 성전이나 제단에 바칠 제물을 탐해서인 것입니다.


  2. 율법의 더 중한 것을 버린 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율법을 지켰지만 그 외형적인 면만 살폈기 때문에 정말로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참 생명인 의와 인과 신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의를 남에게 보이려고 율법의 외형의 모습만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동이 외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의를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한 가지 예로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생활의 철저한 면을 들으시면서 그러나 하나님께는 십일조 조항보다 더 중한 율법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들의 십일조는 박하와 근채의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까지 철저하게 드림을 말씀하시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율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개탄하신 것입니다.

  (1) 의란 ‘크리시스’로 율법의 공정성을 의미합니다. 율법 속에는 죄에 대한 정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 들어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신 거울입니다. 그 율법 속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의를 자기들의 외식 적인 행실로 얻을 수 갔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버린 것이 내 다름이 없습니다. 율법의 완전한 의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의로 이 의를 소유하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인이란 ‘엘레오스’로 자비와 긍휼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리들을 죄인시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향하여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마9:12-13).

  하나님은 사람이 율법의 정죄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정죄를 벗어날 수 있는 제사 제도로 함께 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제사 제도로 사함을 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인애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의를 주시 기를 기뻐하십니다. 율법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인애와 긍휼의 정신이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3) 신이란 ‘피스티스’로 이것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율법 속에 믿음이 있다는 말씀은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사람이 의를 얻지 못하지만 율법은 우리에게 의를 얻을 수 있는 믿음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선생이었으면서도 율법의 이런 정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외식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지니라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랐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에도 그 경중을 구분할 줄을 몰랐습니다. 말하자면 율법 속에 가득히 채워져 있는 영적인 교훈에는 소경들이었고 조문에 기록된 의식적인 면에만 치우쳤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 의식 보다 하나님의 공의에 그 초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그들이 율법에서 “의와 인과 신”을 버린 일을 책망하시면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1)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먼저 행해야 할 일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율법에 나타난 “의와 인과 신” 입니다. 이것을 버린 채 율법의 조문을 지키는 일은 아무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의를 걷으려다 불의가 드러나 결과적으로 율법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에 제시된 하나님의 “의와 인과 신”올 한 마디로 축소하면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율법사와의 대담에서 그 율법사에게 율법이 가르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이처럼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눅10:25-28).

  (2)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저것이란 문맥상으로 예수님 자신이 지적하신 그들의 철저한 십일조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하나님의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임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십일조는 율법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믿음과 축복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소경된 인도자”란 딱지를 붙여주셨습니다. 율법의 영적인 진정한 뜻을 바라보지 못하니 소경이요 그러면 서도 지도자로 자부하고 있으니 소경된 지도자들인 것입니다. 하루살이를 걸러내므로 율법의 작은 의식적인 면에는 정성을 쏟지만 약대는 삼키므로 지킬만한 것은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 185 ≈       탐욕과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죄


  (본문 : 마태복음 23 : 25 - 28)



  서 론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화의 선언은 주저하심이 없이 가차없이 계속됩니다. 그들의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인 삶은 깨끗하게 보였지만 그들 안에는(마음)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는 품성은 마치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으므로 이 같은 그들의 마음의 상태와 그들의 겉모양은 마치 회칠한 무덤 같은 것이라고 책망하선 것입니다.


  1.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죄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더러운 마음을 잔과 대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잔과 대접은 깨끗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결례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그들은 어떤 부정을 입으면 율법의 결례에 따라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릇의 겉을 물로 씻은 것처럼 그들의 육체는 이런 결례로 깨끗해 졌을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육체보다 마음의 정결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할례는 육체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36).

  (1) 그들의 생활은 탐욕으로 일관되었습니다. 탐욕이란 말은 ‘할 파게스’로 강탈이나 차압 혹은 약탈 혹은 몰수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 같은 탐욕에 숙련된 지도자들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돈올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6:14).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로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한 자들입니다(막12:40).

  (2) 그들의 생활은 또한 방탕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이처럼 취한 재물을 그들은 방탕으로 소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듯이 꾸몄지만 실인즉 방탕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거짓된 모습을 숨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바로 이런 모순된 생활을 아주 의로운 듯이 꾸미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율법에 의한 결례의 법칙으로 깨끗해지려면 먼저 안을 깨끗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소경된 바리새인들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2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죄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들의 인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신 말씀이십니다.

  (1) 회칠한 무덤이란 겉으로 꾸민 그들의 외형적인 면을 가리킨 것입니다. 무덤에 회를 칠하는 일은 그 무덤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이처럼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의 외형적인 모양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거짓을 감춘 외식의 모양입니다.

  (2) 회칠한 무덤 속에는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고 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는 자연히 그 무덤 안에 있는 물건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속마음을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내부에 있는 영적인 요소나 도덕적인 요소는 죽은 송장처럼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3)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죄는 예수님의 혹독한 정죄를 받아 마땅했습니다.

  ① 그들이 저지른 무서운 죄는 조상들의 유전을 중히 여긴 나머지 하나님의 율법을 유린한 죄입니다. 그들은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아니했으며 또 시장에서 집에 돌아와서는 몸에 물을 뿌리지 아니하면 먹지를 아니했으며 잔과 주발과 붓 그릇까지라도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에서 나온 법이 아니라 장로들이 세운 유전입니다. 그들은 이 유전을 중히 여긴 나머지 이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함으로 불법적인 재판관 노릇올 해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하느니라”고 정죄하셨습니다(막7:1-13).    
  ②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신앙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자부했습니다. 이 같은 그들의 태도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예수님이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4).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자신들의 행위를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일이야말로 더욱 정죄 받을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③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으면서도 그 성경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회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올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습니다(요5:39). 그들은 진리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였으며 이 진리의 도를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④ 그들은 성령을 고의적으로 훼방함으로 스스로 정죄의 자리에 내려앉았으며 다시는 구제불능의 인간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목격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임을 분명히 인지하고서도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단호히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마12:22-32).

  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쉴새 없이 그들의 제자들로 예수님을 뒤따르게 했습니다. 그것은 말의 올무를 잡아 법정에 고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단의 지혜로 가장 사악하게 계획한 시험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는 올무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결 론 : 우리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들이 받을 심판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선생된 지도자들은 마땅히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생활올 해야 하는 것입니다(약3:1. 벧전5:1-4).

  (2) 이 말씀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도 관계되는 경종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전3:8-13).

  (3) 이 말씀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경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현대판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알고도 행치 아니해도 외식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순종에 힘쓰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이 정죄 받은 그 정죄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으로 자기를 단장치 않으면 이 역시 바리새인의 후손이 될 것입니다.





  ≈ 179 ≈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죄


  (본문 : 마태복음 23 : 29 - 39)



  서 론 : 예수님이 내리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화의 선언은 이제 마지막으로 그 절정에 달합니다. 그들이 지난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본을 따라 그 조상의 양을 채우는 일을 하고 있음을 탄식하시면서 앞으로 그들이 그들의 조상보다 더 무서운 죄를 범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이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끝내 주님의 권면을 거역함으로 결국은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도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1. 선지자들의 비석을 꾸미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과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돌이켜 보지도 않고, 선지자들의 의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죽은 일에 대하여 애석한 마음을 가진 듯 그들의 무덤을 새로 꾸미고 단장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우리가 우리의 조상 시절에 살아 있었다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조상들의 불의한 일에 자신들은 절대로 동조하거나 첨예하지 아니했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그때 조상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는 듯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외식적인 가증한 언행에 대하여 정면으로 공격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고 정죄하시고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 같은 그들의 말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날 선지자들을 죽인 그들의 조상들도 그 선지자를 죽이는 일을 합당한 일로 여겼으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재앙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의 경종이 듣기 싫었으며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예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수 백년이 지난 후의 결과는 그들이 죽인 선지자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처럼 말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성령이 증거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메시야의 여러 가지 증거를 받아 드리기를 거부하고 다만 시기로 예수를 잡아죽이기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이런 일이야말로 선지자들을 죽인 지난날의 자기 조상들을 따라가는 일이며 그들 스스로 그 자손임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그들의 의중을 샅샅이 살펴보시는 통찰력을 가지시고 너희도“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그들의 조상의 양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메시야가 오리라고 한 선지자를 죽였지만 그들은 그 선지자가 증거한 대로 오신 진짜 메시야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할 일에 대하여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처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보내시는 복음의 일군들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심으로 그들의 조상의 양을 채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많은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러나 너희들은 그들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그 중에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구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선지자나 서기관이란 표현은 신약 시대에 교회에 세우신 하나님의 일군들의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선지자란 사도들이나 혹은 특별한 사명을 받아 사역하는 일군을 말하고 서기관이란 가르치는 사명을 맡은 교사직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핍박할 때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많은 사도들과 주님의 제자들을 죽였으며 주님 자신에게 십자가에 못 박는 사형을 내리기도 했으며 많은 복음 증거자들에게 채찍질하고 구박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 같은 행동은 지옥의 판결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예수님은 그들에게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조상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하여 그 기원을 아벨에게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 시대에 왕의 명에 격하여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백성들에게 쳐죽임을 당한 스가랴에 이르기까지의 의인과 선지자를 죽인 모든 죄악이 이 세대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대에 와서 그들 자신이 이 의인과 선지자의 살인 사건의 총결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으로 그들 자신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성취되었으며 그들은 이때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까지 그들이 흘린 피 값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선지자와 의인을 죽인 죄로 인하여 그리고 오리라고 증거된 메시야를 죽인 죄로 인하여 멸망 받게 될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하여 목메어 탄식하셨습니다. 이 같은 모든 일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이므로 그 화도 이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찾아올 예루살렘의 멸망은 견딜 수 없는 비극이었으므로 예수님은 가슴 아파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고 그들 중에 있는 백성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많은 애를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그 죄악으로 죽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회개하여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세리나 다른 유대인들이나 아무 가림이 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으며 그들에게 구원의 참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보다 더한 사랑으로 회개를 외치셨습니다.

  (2)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길이 참으시는 중에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들에게 믿을만한 놀라운 이적과 표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권면을 스스로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참람하다는 죄의 굴레를 씌워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3)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황폐를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집이라고 하신 곳은 예루살렘과 아울러 그 중앙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황폐되어 버린바 된 것입니다.

  결 론 : 이제 끝까지 패역하여 황폐되어 버린 이스라엘은 그들이 아무리 원한다 해도 그들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룸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다시는 메시야를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눅11:30, 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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