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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설교
 밤중소리  03-01 | VIEW : 5,653


  ≈ 159 ≈       포도원의 품꾼


  (본문 : 마태복음 20 : 1 - 16)



  서 론 : 예수님은 천국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여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포도원은 교회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그 백성을 불러모으신 땅 위의 천국인 것입니다. 유대 지방은 포도원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들에게 그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하는 실감나는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이 자기의 포도원을 어떻게 사랑하였는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사는 예수님의 심정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1. 품꾼을 부르시는 포도원 주인


  우리는 이 비유에서 포도원에 등장하는 세 종류의 등장 인물들에 대하여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집주인이라고 나와 있는 포도원 주인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심판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지기라고 나와 있는 사람은 주님의 심판을 돕는 하늘의 천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 고 품꾼들이란 목자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교회에 인도함을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비유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포도원 주인이 무려 다섯 차례나 장터에 나가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다는 것과 그들이 포도원에 들어간 시간적인 차이가 굉장히 많은데도 포도원 주인은 그들 모두에게 똑같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의 이 비유는 고용과 임금 관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비유의 결론에 가서 이르시기를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신 한 데나리온의 값은 노동 임금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 품삯이 말하는 바는 믿음의 연한의 차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생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의 품꾼을 구하려고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갔습니다. 여기서 이른 아침이라고 나타난 시간은 아침 6시경을 말합니다. 이 시간에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은 일찍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육적 이스라엘 일수도 있고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도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일찍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일찍 부르심을 받은 일은 인생의 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포도원 주인은 또 다른 일군을 찾으시려고 제 삼 시에 다시 장터로 나섰습니다. 제 삼 시는 지금 시간으로 오전 9시경입니다. 이 시간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늦기 전에 생명 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3) 포도원 주인은 다시 제 육 시에 장터에 나갔습니다. 제 육 시란 정오를 말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정오에 장터에 나가서 품꾼을 찾아 포도원에 들여보낸 일은 일을 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삯을 주려는데 그 뜻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그리고 또 포도원 주인은 제 구 시에도 장터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십일 시에도 나가 그처럼 했습니다. 구시란 오후3시경이요, 십 일시란 저녁 5시경을 말합니다. 이 것은 그 포도원 주인의 자비와 긍휼을 말합니다. 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품꾼으로 포도원에 들어갈 자격도 없으려니와 갔을 받을만한 입장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처럼 외쳤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2. 품꾼들이 받은 삯


  포도원도 이제 일손을 놓고 문울 닫아야 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날이 이처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명하기를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주인의 결정에 그 포도원에 일찍 틀어가 일했던 품꾼들이 두 가지 불만을 주인 앞에 토로했습니다. 한가지 불만은 먼저 온 그들이 나중 온 자들보다 많은 시간 포도원에서 일한 것을 생각해 주지 않고 나중 온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했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한가지의 불만은 갔을 주어도 먼저 와서 일한 자기들부터 주어야 하거늘 주인은 말하기를 나중 온 자들로부터 주라고 했다는데 있었습니다.

  이 같은 그들의 불만은 당장에 주인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주인은 내가 너와 약속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는데 무슨 불만이냐? 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 온 이 사람들에게 너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일은 내 뜻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주인이 여기서 먼저 온 자들보다 나중 온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은 선하신 주님께서 그의 뜻대로 상급을 주시는 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뜻을 밝히시기를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1) 먼저 된 자로 우리는 몇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①육적 이스라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이른 아첨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교만으로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② 다음에 먼저 된 자란 악하고 나태한 종을 말합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마24:48-51). ③ 이들은 교회에는 일찍 나왔지만 심은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여 열매가 없는 종들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나중 된 자로 먼저 된 자의 몇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① 이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치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들처럼 주인의 뜻을 열심히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② 이들은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값진 나드향을 주님께 부어드린 종들입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되 마리아처럼 최선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③ 이들은 죽도록 충성한 종들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결 론 : 우리가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경우를 탕자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집에 머물러 있었던 맏아들은 마땅히 집을 나간 동생에 대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걱정하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돌아 왔을 때에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앞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눅15:29-30).
  맏형은 먼저 된 자였지만 나중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늦게 출발했지만 형보다 먼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날이 저물 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다같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고후5:10).





  ≈ 160 ≈       누가 높으냐?


  (본문 : 마태복음 20 : 17 - 28)



  서 론 :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 스승의 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장차 받으실 고난을 생각하시며 마음으로 고민하시고 계셨는데 반면에 재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영광을 안겨 주는 길 인줄 알고 그곳에 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냐는 문제를 가지고 마음으로 시기하며 다투기까지 하고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것임을 거듭 거듭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와 같은 고난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 아들을 위해 구한 세배대의 아들의 어미


제자들은 19:20절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음이 분명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쫓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현세에서 이루어 질 메시야 왕국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남다른 주님의 사랑을 받아온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형제지간으로 주님을 가까이 모셔온 제자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각 역시 예수님이 당하실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가 왕이 되면 자기들이 가장 명예로운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절을 하며 두 아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구했습니다. 그의 구함은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하는 요구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야 왕국에서 왕 다음가는 자리를 자기의 아들들에게 줍소서 하는 간청이었습니다. 이제 메시야 왕국이 가까웠으니 서둘러야겠다고 하는 생각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답답한 심정으로 이 여인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것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을 구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고 하셨습니다.


  2. 하늘의 상급은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들이 받는다.


  (1) 주님은 그들에게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잔이란 말은 ‘포테리온’이란 말로 주님이 젊어지실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신다고 하신 말은 십자가를 지는 일로써 이것은 순교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직 순교자만이 주님의 좌 우편에 앉을 것임을 가리키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는 영광은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물음에 야고보 형제는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이 같은 대답을 시인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은 나의 잔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대답한 말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들의 말을 부인하지 않으신 것은 주님은 이미 그들이 장래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의 잔을 마실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야고보는 복음을 위하여 칼로 순교를 당하였고(행12:2), 요한은 말년에 복음을 위하여 밧모섬에 유배되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일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아시고 그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2)예수님은 내 확 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에 대하여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이기는 자) 반드시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이 상급은 영광스러운 상급입니다. 그러나 그 상급의 배정은 아버지께서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충성하는 일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하늘의 상올 바라보고 그것을 쫓아가는 생활올 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빌3:13,14).


  3.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대하여 심히 분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분히 여겼다는 말은 그들도 역시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비결을 가르치실 필요성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이 높아지는 일이 세상의 권세자나 명예를 소유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있었음으로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크게 되는 방법과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되는 방법은 정 반대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낮추고 형제를 섬기는 자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가난한 형제를 도와주는 생활을 말합니다(요일3:17). 그리고 형제들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형제가 당하는 일을 내가 당하는 일처럼 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2)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종이 되는 생활은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입니다. 자기에 게 맡겨진 모든 일을 오직 종의 입장에서 충실히 감당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결 론 : 예수님온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고 높이 되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는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드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심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섬기심의 본보기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 일이십니다. 대속물이란 말은 ‘루트론’으로 속전 또는 석방 금이란 말로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시는 지불금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홈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의 피로써 속전을 갚으실 분, 곧 섬기실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생활, 서로가 서로의 종이 되는 생활올 해야 합니다(요 13:16).





  ≈ 161 ≈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본문 : 마태복음 20 : 29- 34)



  서 론 :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유대인의 많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떠나실 때에는 큰 무리가 예수를 쫓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시는 길목에 두 명의 소경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의 행렬 틈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때 이들은 지체치 않고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외쳐댔습니다. 그들의 간구는 드디어 예수님의 발걸음을 머물러 서게 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물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올 만지시니 그들의 눈이 곧 보게 되었고 그들은 예수님을 쫓았더라고 했습니다.


  1. 길가에 앉아 있었던 두 소경


우리는 여기서 길가에 앉아 있었던 두 소경이 어떤 경로로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들이 받은 이 놀라운 축복은 어떻게 그들에게 주어졌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로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이들은 이미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있었던 소경들입니다. 예수의 소문은 온 유대 땅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은 두 가지로 퍼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는 무리들을 미혹하는 자요 율법올 무시하는 자로 하나님께로서 온 사람이 아니라 마땅히 정죄를 받아야 할 자라고하는 견해였습니다. 이 같은 견해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가진 견해였으며 이미 그를 고소하기 위해 많은 그들의 제자들을 무리가운데 파송하여 소송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 예수를 가리켜 선지자중 하나다, 다윗의 자손이다, 그리스도다 하는 견해로 주님을 따랐으며, 다른 많은 군중들은 그 중간 입장에서 흥미를 가지고 뒤쫓아 다닌 것입니다.

  이들 두 소경은 예수의 바른 소문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것이 이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예수에 대한 바른 소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한 여자도 이 예수의 바른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마5:25-29).

  전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바른 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하신 말씀은 예수에 대한 바른 소식을 듣는 데서 믿음이 생김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자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2)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즉시 그를 향하여 소리를 지른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 먼 소경들이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 나설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만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모하여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19:10)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10).

  (3) 이 두 소경은 기회를 잘 포착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님을 만 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사람들이 이 시기를 잘 포착하여 자기 생애에 적용시키면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일생에 다시없는 후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이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면 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오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후 다시는 여리고로 내려오지 아니하셨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2. 두 소경의 간구한 태도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들 두 명의 소경들은 이제 이 좋은 기회를 잃으면 다시는 이 같은 기회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있는 힘을 다 하여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달렸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취한 세 가지 특징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는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메시야에 대한 구약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왕위를 이어 받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그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위에 앉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야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영광의 메시야로 왕위에 당장에 앉으실 분이 아니시라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십자가를 지셔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메시야 관이 잘못되어 있었으므로 예수를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로 바라보는 사  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게 다윗의 자손이란 이름을 붙여서 메시야로 받아 드리는 일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당시 형편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정도의 신앙 고백을 한다는 일도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을 원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한 그들의 간구는 주님만 불쌍히 여겨 주시면 자기들의 눈은 능히 뜰 수 있다고 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103:1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긍휼히 여기심 받기를 간구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풍성하신 긍휼하심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며(욥2:18)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출33:19).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2:4). 주님의 불쌍히 여겨 주심이 결국 그들의 소경된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그들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힘에 대하여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고 하셨습니다.

  (3) 그들의 간구는 응답 받을 때까지 계속된 기도였습니다. 이들에게는 많은 무리들이 그 앞에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이 소경들이 소리지르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잠잠하라고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더욱 소리 질렀다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방해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할 것에 대하여 불의한 재판관의 경우를 비유로 교훈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눅18:1-8).

  결 론 : 이처럼 간구하는 소경들의 간절한 간구에 예수님의 발이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간구하는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중언부언하는 대답을 한다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경들처럼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자기의 가장 간절하고 응답 받아야 할 소원을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저희 눈을 만지사 고쳐주셨습니다. 이들은 곧 주님의 뒤를 따르는 복음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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