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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9 : 16 - 17)
 민병석  11-11 | VIEW : 11,820


  ≈ 90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본문 : 마태복음 9 : 16 - 17)


   서 론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놀라운 복음적인 교훈입니다. 주님은 율법적인 금식이 소용없고 복음적인 금식의 중요성을 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두 가지 비유로써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밝히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주님의 제자들은 율법에 젖어왔던 사람들이라 복음적인 교훈은 생소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일에는 복음보다는 율법에 더 무거운 비중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복음적인 교훈을 혹은 비유로 혹은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1. 생베 조각과 낡은 옷


  여기서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생베 조각이란 주님의 새로운 교훈,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낡은 옷이란 율법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낡은 옷을 꿰매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의 교훈은 율법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율법을 왜 낡은 옷이라고 표현하셨나? 낡은 옷은 의의 옷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더러운 옷, 낡은 옷은 죄를 상징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 왔을 때 그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으로 입히셨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옷을 벗고 복음의 새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의 옷이 마치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았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들을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하셨습니다(슥3:4).

  이 낡은 옷을 입고는 아버지 집에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낡은 옷으로 의를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이 옷은 아무리 노력해도 새 옷 구실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낡은 옷에 생베 조각을 붙이러 오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 같은 풍조가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사람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되 율법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복음을 변질된 복음, 곧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하나의 흠도 없는 거룩한 옷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낡은 옷에 붙이기 위해 오신 생베 조각이 아니십니다. 만약 사람들이 낡은 옷을 꿰매기 위해 그 곳에 생베 조각을 붙인다면 옷을 헤어지게 하여 둘 다 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다음에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보전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포도주란 성경에서 진리를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특히 주님이 새 포도주라고 하신 말씀은 복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새 포도주란 말의 새롭다는 말은 ‘네오스’(νἐος)로 시간적인 각도에서 새롭다고 하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율법과 구분시킨 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새 부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같은 새롭다는 말이지만 여기 나오는 새롭다는 말은 ‘카이노스’(καινὀς)로 질적으로 새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복음을 받아 드리는 심령을 말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낡은 부대란 복음을 받아 드리기에 합당치 않은 심령, 율법에 젖어 있는 심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을 행하므로 의를 얻고자 합니다. 이들은 낡은 심령의 소유자들입니다. 외식이나 하기에 알맞은 심령이요 거짓과 위선으로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심령입니다. 만약 이 낡아버린 가죽 부대 속에 복음을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감당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낡은 부대는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새 포도주로 비유된 복음은 묵은 포도주처럼 발효력이 없는 포도주인 것이 아니라 처음 담근 포도주처럼 발효력이 대단히 강합니다. 낡은 부대는 이 같은 발효력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강한 발효력에 의해 터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도 결실치 못하고 그 사람의 심령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1) 새 부대란 새 마음을 말합니다. 새 마음은 변화 받은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 받으려면 하나님의 영이 거해야 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겔36:26). 하나님의 영은 회개한 심령 속에 거하십니다.

  (2) 새 부대란 영이 그 마음을 지배하는 마음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마음이 아니면 새 부대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여러 가지 하나님의 영의 일을 하십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게 하고 영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롬8:7-8).

  (3) 새 부대란 옥토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결실할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마음은 시험을 이깁니다. 오래 인내하므로 결실을 맺습니다. 재물의 유혹을 이깁니다. 이런 마음만이 복음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무한히 팽창합니다. 오직 새 부대만이 이 하나님의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낡은 부대라고 하신 것은 그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출발은 사랑이 아니라 정죄입니다. 복음은 그 시발이 사랑에 있습니다. 정죄가 아니라 용서요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처럼 사랑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구약시대이건 신약시대이건 사람이 율법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만약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일을 결코 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은 아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 제물로 나타났습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에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하신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율법은 믿음이 아닙니다. 의문입니다. 의문은 사람을 구원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 부대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 속에 새 포도주를 담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를 담은 새 부대는 그 포도주로 말미암아 부대가 부픕니다. 소망으로, 평강으로, 사랑으로, 감사로 부픕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담아 이 새 포도주의 부푸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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