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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금식 (9 : 14 - 17)
 민병석  11-11 | VIEW : 3,412


  ≈ 89 ≈    그리스도인의 금식


  (본문 : 마태복음 9 : 14 - 17)


   서 론 : 우리는 금식에 관한 문제로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금식이 따라야 합니다. 성경에는 금식에 관한 교훈이나 가르침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하루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이 문제를 가지고 질문했습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큰 의문일 수도 있고 주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나 바리새인들에 비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는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1. 금식은 그 할 때가 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금식을 할 때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비록 외식적이긴 하지만 금식을 해 왔었습니다(눅18:11-12). 그들의 생활에는 사람이 원하건 윈치 않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금식일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금식일을 지키는 일에 철저했으며 그것을 하나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이 말씀하신 성정에서의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고 했습니다(눅18:11-12).

  세례 요한도 율법적인 생활에 철저했기 때문에 금식을 자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제자들도 금식을 철저했습니다. 금식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율법적인 행사가 되면 하나의 금욕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훈이나 가르침에는 금욕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금욕은 인간을 인간이 만든 틀에 가두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금식은 금욕적인 의도에서나 어떤 의무감에서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금식은 우리가 이행해야 할 교회의 행사도 아닙니다. 금식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 조항도 아닙니다. 교회에는 금식 생활을 하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성도들이 있고 금식을 자주 하면서도 바른 신앙생활을 못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금식은 하나의 규칙으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한 주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행해온 금식은 얼마 안가 외식으로 흘러버려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알아야 할은 금식은 반드시 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 조항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금식을 하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성도들이 있고 금식은 자주 하는데 신앙생활은 엉망인 사람이 있습니다.


  2.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주님은 금식 무용론을 주창하신 분은 아닙니다. 금식의 필요성을 인정하시고 다만 금식할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혼인집 손님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랑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는 기간을 혼인집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 기간에 제자들이 할 일은 신랑 되시는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이 말씀처럼 제자들은 주님이 계시는 동안 주님과 더불어 기뻐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 기간은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때기지 금식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일에는 더욱 그런 것입니다. 일해야 할 때, 일은 하지 않고 금식을 한다면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고난을 당하실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주님을 빼앗긴 후에는 금식을 했습니다.


  3. 우리는 언제 금식할 것인가?


  금식은 의무이거나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금식이란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몸과 마음의 헌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자신이 범한 죄과를 바라보고 참으로 슬퍼할 때 마음을 찢는 통회로 금식이 따르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므로 범죄 했을 때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하고 통회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회개시키는 방법으로 금식을 명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도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 찌어다”(욜2:12-13).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금식의 뜻을 밝혀 주셨습니다. 울며 애통하는 회개, 곧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열매가 따라야 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따르지 않는 금식은 열납 받지 못하는 금식인 것입니다. 이 같은 금식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욜2:13).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무론 대소하고 베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났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께 애절한 마음으로 간구할 때 금식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모함을 받아 사자굴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왕은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위해 밤이 맞도록 금식하며 침수를 폐했다고 했습니다.

  (3) 다음에 우리는 어떤 사명을 받았을 때 그 사명을 위하여 금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금식했습니다. “주를 위해 금실 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시고 선교사의 사명을 주시고 파송케 하셨습니다.

  결론 : 금식은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금식은 자랑도 아니며 공로도 아니며 의식도 아닙니다. 우리의 목소리로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같은 금식에는 죄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과 진정한 회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이루는 일은 신앙의 놀라운 성장과 축복을 가져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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