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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 (9 : 9 - 13)
 민병석  11-11 | VIEW : 4,048


  ≈ 87 ≈    죄인의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


  (본문 : 마태복음 9 : 9 - 13)


   서 론 : 예수님이 마태라고 하는 세리의 집에서 음식을 들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기쁨을 세관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 같은 광경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느냐”고 항의한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말을 들은 주님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뜻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


  주님은 세관을 지나가실 때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마태라고 하는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소명은 전혀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젠가 “나는 주님을 따르겠나이다”고 말한 어느 서기관의 제의를 거절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 말도 없이 세관에서 일하는 마태를 향하여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마태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하여 일할 모든 일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가 주님의 제자로써 충성된 사명을 이룰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마태로부터 다만 그가 로마정부를 위하여 세관에서 동족의 세금을 강징하는 민족반역자로서의 직업, 세리라는 것만 발견했지만 주님은 사람을 보실 때 이런 겉모양으로 보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 대해서도 아나니아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행9:15). 예수님은 마태를 만나기 전에 이미 마태가 세관에서 일하고 있음을 보셨으며 이 마태가 장차 주님의 제자로써 위대한 일을 할 인물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나를 좇으라”고 하신 단 한마디 말씀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을 좇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그의 심령의 깊은 곳에서 신적 소명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2.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 의원


  마태는 주님을 위하여 잔치자리를 베풀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평소 마태의 친구였던 세관 직원들이 많이 초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들과 동석하는 일조차 수치스럽게 여겼으며 더욱이 그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있는 이상, 그들은 세리와의 교제를 기피해 온 것입니다. 이들의 이 같은 행동은 시편 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는 말씀과 잠23:6절에서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에 따른 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왜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핀잔을 주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속으로는 놀라고 탄복하고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에는 경이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율법적인 전통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에서 건강한 자를 의인에 비유하시고 병든 자를 죄인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원은 바로 주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로서 주님이 의도하신 바는 영혼의 병을 가리킨 것입니다. 인간은 그의 영혼이 죽게 되었습니다. “범죄하는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겔18:4). 우리의 영혼이 죽을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 병을 고쳐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의원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의원으로 오셨습니다. 이 땅에는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건강하다면 우리에게는 의원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병자의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배척했던 것입니다.


  3.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죄인이라고 한 그 대상은 누구를 지칭한 것입니까?

  (1)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죄를 바라볼 때 그 죄로 인하여 마음에 슬퍼하는 자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자기에 대하여 스스로 죄인이라고 슬퍼하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지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의인인 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슬퍼했습니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하니이다”(시38:17-18).

  (2) 율법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기의 곤고함을 탄식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의를 주시려는데 있지 않고 죄인임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회개케 하시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율법에서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이같은 탄식이 있어야 의원이 필요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의를 행할 수 없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가슴을 치는 자가 죄인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는 고백이 나오지 않고서는 자기 생명의 의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못합니다(롬7:17-18).

  결론 : 사람들은 죄라고 하는 영혼의 무서운 병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인생은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 가운데서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에게 이 죄를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죄를 가르쳐 주며 그 치료하시는 의원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관에 앉아 있었던 마태를 부르시듯 지금도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과연 이 같은 부르심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시간에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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