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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갖고 계시는 사죄의 권세 (9 : 1- 8)
 민병석  11-11 | VIEW : 3,809


  ≈ 86 ≈    주님이 갖고 계시는 사죄의 권세


  (본문 : 마태복음 9 : 1- 8)


   서 론 : 예수님은 언제나 그를 배척하는 곳에는 머물지 아니하셨으며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이적을 행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을 떠나시기를 원하는 가다라 지방에 머물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배를 타고 건너편 본 동네에 이르셨다고 했습니다. 이 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하나를 여러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라본 한 서기관이 속으로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의 이런 악한 마음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로 너희로 알게 하노라”고 하시면서 그 중풍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1. 죄를 사하시는 권세


  서기관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죄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주님을 향하여 참람하다고 한 것은 당연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기에게 죄인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심으로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아무도 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소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이 두 가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능히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근거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는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우리 죄인들과의 화목을 위한 속죄 제물로 삼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시라도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니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라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애초부터 이토록 크신 놀라운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롬5:8).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바로 이 속죄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사람의 죄를 사유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죄의 용서에는 회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 사함의 근거가 되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하나님의 지정하신 방법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는 죄의 사유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회개는 곧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기에게 자기의 죄를 자복하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중풍병자가 보여 준 것


  우리는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무조건 사해 주신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그의 친구들로부터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그들은 예수가 그들의 메시야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믿음은 올바른 신앙고백에 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것입니다.

  (2) 그들은 주님이 능히 이 중풍병자를 고치실 줄을 믿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움직이는 뜨거운 믿음은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중풍병자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마음으로 통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병자는 언어의 장애로 말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마음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 이 중풍병자는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하여 이 같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마음 아프게 뉘우치면서 통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의 입에서 회개의 고백은 없었어도 주님은 그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4) 그들은 주님을 만나는 일에 간절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그 아래로 달아 내리기까지 한 것입니다(눅5:18-20). 간절히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주님께 상달됩니다.

  (5) 이 중풍병자의 놀라운 믿음이 그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때 이 중풍병자는 병이 쾌유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병이 고침 받았다고 하는 어떤 증상이 뚜렷하게 그에게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그의 몸은 여전히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향하여 ‘주님 내가 이런 불편한 형편인데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이 손을 내밀어 자를 잡아 일으켜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 침상에서 몸을 스스로 일으킨 것입니다. 그랬더니 말씀대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3. 능력으로 나타나신 주님의 권세


  주님은 서기관들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있음을 아시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으며 메시야란 사실도 인정치 아니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에 말은 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보이는 중풍병자를 말씀으로 일으킴에는 입의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한 말대로 성취되는 권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권능은 하나님만이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를 향하여 명하셨고 그 중풍병자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본 많은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서기관들은 주님의 기적을 목전에서 바라보고도 마음이 완악하여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론 : 이 사람은 그의 죄 값으로 무서운 질병에 걸려 고생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 앞에 나옴으로 그의 질병은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그에게 나타내신 사랑을 우리는 짧은 주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를 위로해 주시면서 “소자야 안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자란 말은 자녀들에게 쓰는 친절이 넘치는 정겨운 표현입니다. 안심하라는 말은 ‘달세이’란 말로 용기를 가지란 뜻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그 앞에 나와서 회개하는 자에게는 죄만 용서하실 뿐 아니라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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