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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 (8 : 23- 27)
 민병석  11-11 | VIEW : 5,718


  ≈ 83 ≈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


  (본문 : 마태복음 8 : 23- 27)


   서 론 : 주님은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쉴 사이도 없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셨습니다. 하루는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다랴 지방으로 가실 때의 일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기네레 바다 또는 게네사렛 바다라고 불렸으며 신약 시대에는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등으로 불려졌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담수호로 길이가 남북으로 20키로, 동서로는 제일 넓은 곳이 12키로 미터 가량입니다. 수면은 바다 표면보다 무려 207미터나 낮고 호수의 깊이는 60미터 이상 되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북편부터 사해 남편에 이르기까지 해면보다 대단히 깊은 분지와 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면에서 기압 관계가 빨리 변하고 바람과 회오리바람이 잦아서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곤 했습니다. 주님은 배에 오르자마자 몸이 몹시 피곤하여 곧 잠이 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이 갈릴리 호수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된 것입니다.


  1. 바다와 배와 그리스도


  여기서 바다를 우리가 건너가야 할 인생 항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는 반드시 바다를 건너가야 할 인생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능히 그 수효조차 셀 수 없는 많은 배들이 세상이라고 하는 이 큰 바다를 항해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잘못된 목표지에 당도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당도한 곳은 멸망이요지옥입니다.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영원한 불 못입니다. 그러나 그 배속에 그리스도께서 타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배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은 그 배의 운전자가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타신 배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그 분은 지금 천국에 계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소망의 항구인 주님이 계신 그 나라에 당도하게 될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먼저 배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이 배에 오르신 일은 우리 속에 내주 하시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8:9). 이 배는 주님을 태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그 마음 문이 열려져서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이 그들의 인생의 배에 동승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의 인생 길을 항해하실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계3:20).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주님이 그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2) 배 안에 주님이 계시다고 배의 운항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의 배에는 주님이 타셨지만 큰 놀을 만나 풍랑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제 자기 인생은 안전과 순탄과 평안이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큰 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몹시 당황하게 되고 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때로는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과 실패가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의인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잠24:16).  의인도 하나님의 시험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요셉이 그러했으며 욥도 그런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일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3) 그러나 배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한,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일에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내 속에 나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는 환난이나 역경 중에라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이유는 그가 나의 인생을 나와 함께 살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빌1:6).


  2.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그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부로서의 노련한 기술과 힘으로 파도를 피하여 배를 앞으로 전진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배를 안전하게 버텨 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배에서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처음 생각에는 이런 풍랑쯤이야 자기들의 힘으로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같은 자신을 언제나 자기 인생의 낭패와 실패를 불러옵니다.

  사람들은 미련한 연고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야 주님 앞에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님은 그들의 간구를 못들은 척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다가 잔잔해 진 것입니다.

  (1)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었던 증거로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곁에 두고서도 그를 의뢰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의뢰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음이 없거나 작은 연고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주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고 그들이 기이히 여겼다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기이히 여기는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이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고 말한 것에서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어린 신앙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믿음이 작은 자에게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풍랑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무서워한다는 말은 ‘데이리아오’로 이 말의 뜻은 비겁하게 군다, 주저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들의 어리석은 행동은 자기 스스로 그 풍랑을 잔잔하게 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 그들은 자신들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주무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를 깨우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님을 찾았으면 그를 향하여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와 함께 임재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환난 중에도 그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는 생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적인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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