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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좇으라 (8 : 21- 22)
 민병석  11-11 | VIEW : 2,510

  ≈ 82 ≈    너는 나를 좇으라

  (본문 : 마태복음 8 : 21- 22)


   서 론 :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해 온 그리스도인 중 어떤 일을 계기로 세상으로 다시 발길을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일을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좇겠다고 고백한 그 서기관의 동기는 육신의 영광에 두고 있었으므로 주님으로부터 사람이 주를 따르는 일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각오가 없이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심으로 그의 안일한 생각을 물리치셨습니다. 그가 그 후에 어떤 길을 걷게 되었는지 기록된 바가 없으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직후, 이번엔 주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주여 나로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하는 간청을 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서기관과는 달리 이미 주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주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집에 계시는 부친의 생각으로 차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같은 생각으로 인하여 주님의 일이 중단되거나 주님을 따르는 일에서 떨어져 나간다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이 따라서는 안 됩니다.


  1. 왜 세상을 바라보게 되나?
  주님이 비유하신 씨 뿌리는 말씀 중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지만 말씀으로 인한 시련이 올 때에는 주님을 저버리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인하여 결실치 못하는 경우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친의 장사로 먼저 집에 돌아가겠다고 한 이 제자의 경우는 세상의 염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세상으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모든 염려를 주게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열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 (벧전5:7 ; 빌4:6). 우리가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염려를 친히 돌보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려면 분명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심으로 약속하신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데서 확고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소망이 없을 때 그의 믿음은 흔들리게 되고 육신적인 어떤 이유가 계기가 되어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귀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자기의 소유로 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보화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한 주인만을 섬기는 일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재물로 말미암아 주님을 등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겨우만 해도 그가 생명의 길을 찾으려고 주님을 찾아 나왔지만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의 다 들어간 생명의 문에서 세상으로 등을 돌린 것입니다.
  (2) 주님을 따르는 길은 육신의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육신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는 그 육신으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그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3) 그리스도인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롬8:5-6).

  (4) 주님을 사랑하는 생활은 주님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2:20). 주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주님을 따라야 할 이런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2.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부친의 장사 지낼 것을 구실로 내건 이 제자의 경우를 보면 그의 말에도 성경적인 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십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제 5계명으로 이 계명을 가리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런 그의 간구를 거절하신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제자는 부친의 장사지낼 일을 주님을 떠나는 하나의 구실로 삼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경우는 그의 그같은 간구가 그의 진심에서 나왔을지라도 그가 부친의 장사를 위해 잠시 동안이나마 주님을 떠나는 일은 결구 모든 것을 상실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등한히 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부친에 대한 일을 집안에 있는 다른 식구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면 자기가 집에 가서 부친을 위해 애쓰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마귀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 앞에 그럴듯한 구실을 제공합니다. 이 구실은 물론 마귀의 올무인데 사람이 이 올무에 걸리면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을 떠나는 일은 한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생명을 잃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22:37-40).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가정의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이 주님을 떠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대로 우리의 이웃은 언제나 하나님을 앞지를 수 없습니다.

  결론 : 베드로는 주님을 따를 때 배와 부친을 버리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일꾼들에게 들려주신 황금율이 있습니다. “쟁기를 메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쟁기란 복음을 말합니다. 계속적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야 합니다. 뒤란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뒤에 있지 않고 앞에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샘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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