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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기관의 실패 (8 : 18- 20)
 민병석  11-11 | VIEW : 3,325

  ≈ 81 ≈    한 서기관의 실패


  (본문 : 마태복음 8 : 18- 20)


   서 론 :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서 나아 와 그가 주님을 따를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좇으리이다.” 우리가 언뜻 듣기에 서기관의 이 말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진실한 신앙고백으로 들려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실망스런 말씀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지금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1. 서기관의 결단이 거절된 이유


  아마도 이곳에 등장하는 서기관은 다른 서기관들과는 달리 예수님께 대하여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님이 이스라엘이 바라는 메시야이심을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그의 결심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이 같은 결단에 대하여 처음부터 탐탁히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나타난 상황에 의해서 사리를 판단하려고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동기와 마음의 진실함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좇겠다고 한 서기관의 경우, 그의 결단의 동기가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감상적이나 감동적인 일시적 기분에 의해서 결정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와 연합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그 어떤 경우에도 끊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온전한 관계를 계속적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에 의해 내려진 결단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결단은 대개의 경우 바른 동기에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동기가 올바르지 못하면 언제나 배신이 빠르게 따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고 하는 말씀에서 유다는 원래부터 도벽이 있는 도적이었으며 그의 동기 자체가 악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는 육신의 생각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육신의 생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그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에 있으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롬8:7-8).

  (2) 서기관의 결단 속에는 시련이나 고난의 각오가 들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영원한 기쁨과 소망과 값진 보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사실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과 시련이 따르며 우리는 이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빌1:29). 우리가 고난을 능히 각오하고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고난을 통해 장차 우리에게 오는 영광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롬8:17-18).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생애에 반드시 하나님의 시련이 따르며 이 시련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하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1:2-3). 믿음의 시련이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로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인내를 이룰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시련은 주님이 오시는 날, 놀라운 상급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벧전4:12-13).


  2. 주님의 대답에서 보여주신 교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하신 대답은 동문서답처럼 들려지지만 이 말씀이 교훈해 주시는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후8:9). 우리 주님은 그의 태어나심부터 가난하셨습니다. 그의 생애는 가난에서 시작되어 가난으로 마치셨습니다. 그는 목수의 가정에 태어나셔서 교육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의 공생애 중이나 전도 여행 시에도 산에서 밤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원래가 가난해 지실 수 없는 분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의 이런 가난은 죄로 인하여 저주받아 참으로 가난하게 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생명의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삶의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천국의 부요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보다도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 분 자신을 내가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부요함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가지게 된 모든 부요는 주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갖게 된 영적 부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영적 부요함을 받았으며 이런 부요는 지금 우리가 믿음으로 소유하고 있지만 주님이 오시는 날,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날, 그 부요의 소유자로서 영원한 생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다른 한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가 거하실 처소를 찾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거하실 처소는 우리의 심령인데 우리는 그 분에게 아늑하고 따스한 그의 처소를 제공해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우리의 마음에서 밖으로 내쫓으므로  내 마음 밖에서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이르시기를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하시지만 우리는 좀처럼 열어 주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 때문에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이 시간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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