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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두 길 (7 : 13 - 14)
 민병석  11-11 | VIEW : 3,640


  ≈ 74 ≈     인생의 두 길


  (본문 : 마태복음 7 : 13 - 14)


   서 론 : 성경에는 문(門)에 관한 비유의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문의 비유도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말씀하신 문은 좁은 문, 넓은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등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세상과 교회에 대한 비유로 오해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말씀해 주시는 비유의 뜻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두 길이 있고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 두 문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좁은 문과 넓은 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멸망으로 인도하시는 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입니다. 전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자 그들에게는 두 길이 있고, 두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도 이처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찾는 이가 많다고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보다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본보기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롯은 삼촌인 아브라함을 따라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롯은 메마르고 거친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에덴동산처럼 보이는 소돔을 택했습니다. 롯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장차 나타날 소망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따라간 것입니다. 롯이 선택한 문이 넓은 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의 메마른 땅을 밟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한 문이 좁은 문인 것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 문은 아무라도 들어가기가 쉽다는데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들어가기가 쉽다는 말은 세상에서 살아온 그 방법 그대로를 가지고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육신의 생활에 구애받을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술을 마셔도 그다지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육신이 생활에 구애받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성수주일이나 십일조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혼인자리에 강권함을 받아 모이는 일에는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청함은 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2) 이 문은 통과하기가 쉽습니다. 문이 대단히 넓기 때문에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세상을 따라는 문임을 구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교회의 담이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정에서 혹 어려운 과정이 오면 간단히 뛰어넘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라고 하는 편리한 피난처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교회를 들락날락합니다. 담이 없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전혀 없습니다.

  (3) 이 문은 또한 그 길이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길이 넓다는 말은 걸어가기가 매우 쉽고 편리하다는 뜻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급할 것도, 답답할 것도 없습니다. 가다가 지루하면 쉬었다가 가고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앉아 있어도 되는 편리한 길입니다.

  (4) 그래서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도 영적인 생활을 거절하고 여전히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심령이 새롭게 변화 받지 못하면 우리는 넓은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롯이 간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요, 발람의 길을 좇아가는 사람들이요, 가룟 유다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길에는 십자가도 없고 고난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멸망이라고 하셨습니다.  


  2.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문


  사람이 그리스도 앞에 나왔을 때에 그로부터 새로운 인생의 문을 발견할 수 있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란 존재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문은 생명의 문인데 세상 사람들은 생명의 문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 값으로 죽게 되었기 때문에 모두 이 사망의 선언 아래서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행진 길에서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하고 생명의 문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문을 열지 않으셨다면 생명의 문은 영원히 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을 그의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서 여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이 문이시기 때문에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문은 십자가에서만 열리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으며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문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첫째는 그 문이 좁다는 것입니다. 좁다고 하신 말씀은 영적인 표현으로 육신의 생각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정욕과 탐심을 가지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이 문에서 결국은 언제인가는 세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2) 이 길은 협착합니다. 협착하다는 말은 밀어낸다는 뜻으로 현재 어떤 불가피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 길은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지 않으면 해쳐 나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 길의 목표는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을 바라보아야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3) 다음에 이 문을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길은  눈에 보이는 소망을 바라보고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육신적인 소망에 자기 인생의 표적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가진 사람만이 통과하여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믿음으로 주님께만 소망을 둔 사람만이 아주 평안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결론 : 이 좁은 문, 좁은 길은 실상인즉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주님을 확실히 영접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어려운 길도 어려운 문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 주님은 친히 인도하시어 방패가 되어 주시고 산성이 되어 주시어 안전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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