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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27 : 45 - 49)
 민병석  11-14 | VIEW : 8,233

  ≈ 206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본문 : 마태복음 27 : 45 - 49)


  서 론 : 예수님은 아직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채 달려 계십니다. 그의 고통은 날로 더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 중에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해롭게 한 무리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께 자비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는 강도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까지 많은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걷힐 시간이 이르게 되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입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통한 부르짖음이 적막한 공기를 가르고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주님의 고통의 외치심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있어온 이래 이처럼 애절한 고통의 외침이 있었겠는가? 이 고통의 부르짖음은 아직까지도 온 세상에 메아리쳐 올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이 주님의 고통의 외치심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1. 세상에 임한 어두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은 제 삼 시였습니다(막15:25). 이 시간은 현재 시간으로 오전 9씨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난 후인 제 육 시(12시를 가리킴)에 이 세상에 어두움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은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제 9시에 걷히게 되었고(3시경) 그 때 주님이 운명하셨습니다.

  이 어두움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향하여 무섭게 진노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는 곧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겨냥하여 죄인들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퍼부으셨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온 죄인의 죄를 대신 젊어진 온 인류의 죄의 대표자로서 이 진노를 당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노의 심판을 그 아들에게 부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같은 죄인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는 것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7-8).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요일4:10). 예수님은 이 어둠을 견디시기 어려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시는 순간이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셔야 할 고통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 6시부터 제 9시까지 계속된 어두움이 가실 즈음인 그 시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질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곧 풀이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ꡓ

  (1)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도, 또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말씀으로 들려 주셨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예수님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나타내심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에서 예수님 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는 존재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요1:18).

  (2) 하나님은 그의 아들과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은 태초에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요1:2).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중 제자들에게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가끔 들려 주셨습니다(요6:16-29, 16:32).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내신 자이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를 버리실 수는 없으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므로 아버지가 그와 함께 하셔야 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인가? 그것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 아들을 아들로 보신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은 이 때 예수를 아들로 보시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할 죄인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실로 예수는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죄인으로서의 심판을 받았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요3:18. 롬6:6). 예수님이 이 때 버리심을 당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그의 아들까지라도 버리실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3:16절에 너무나도 명백하고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4) 주님의 이 외치심은 그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은 소리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육적인 면에서 보다 영적인 면에서 더욱 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 당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두움 속에서 그런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고 하는 순간적인 생각은 그의 영혼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외침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버리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버리심을 당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이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이처럼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 죄에 대한 완벽한 형벌(그의 피 흘리심과 사망의 고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만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유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벌하셨으며, 우리가 받아야 할 죄 값을 다 치르게 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우리 주님은 다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그 모진 고통과 하나님의 버리심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 위의 고통은 모든 죄인들이 자기의 최 값으로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당해야 할 고통만큼이나 큰 것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 값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의 사랑을 거역한 죄 값으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 놀라운 우리 주님의 사랑이여, 사도 바울은 이처럼 감격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ꡓ고 선언했습니다(롬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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