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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롱을 당하신 예수 (27 : 27 - 31)
 민병석  11-14 | VIEW : 4,023

  ≈ 202 ≈       희롱을 당하신 예수


  (본문 : 마태복음 27 : 27 - 31)


  서 론 : 빌라도의 사형 언도가 확정되자 예수는 많은 무리들의 희롱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예수를 데리고 들어간 총독의 군병들은 마치 이성을 잃고 광적으로 날뛰는 사육제의 주인공들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예수에 대한이 희롱이 우리의 신앙과 어떤 영적인 연관성이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I. 옷을 벗기고 흥포를 입히신 예수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신 예수님은 후안무치한 무리들에 의해 말할 수 없는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이 주님께 행한 일은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일입니다. 홍포는 왕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단장하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인정해서가 아니라 희롱을 목적으로 그렇게 꾸민 것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으로 꾸미고 가짜 왕으로서 희롱을 했습니다.

  (I) 이것은 마치 주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그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중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딛1:16). 행위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란 곧 순종이 없는 사람, 모든 선한 일을 버리고 자기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를 그들의 왕으로 섬긴다고는 하지만 실상인즉 총독의 군병들처럼 왕으로 꾸며 희롱하는 일과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백성들은 그 왕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것은 마치 자기의 유익이 있을 때는 섬기고 유익이 없으면 저 버리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주님을 따른 많은 무리들은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자 그를 따랐습니다.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요6:12-15). 물질적인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물질로 인하여 예수님을 또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무리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26). 이들은 예수로부터 떡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물러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영광뿐 아니라 고난도 그와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빌1:29).


  2.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


  총독의 군병들은 홍포를 입힌 예수에게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웠습니다. 이 면류관은 왕들이 그 머리에 위엄과 권위로 쓰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관을 가시로 엮었던 것입니다. 고난의 그리스도이신 우리의 왕은 머리에 가시판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놀라우신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가 오실 때 그의 머리에는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면류관을 쓰실 것입니다.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오시는 날 그의 머리에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씌워드린 그들은 이 같은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계1:7).

  (1) 주님 앞에 보이러 오는 신앙은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엮어 씌워 드림과 같은 괴로움을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사랑함이 없이 의례적으로 성전에 출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온 다”고 책망하셨습니다(사1:12). 우리 주님은 당신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몸만 보이거나 제물만 보이러 오는 신앙은 가장 미워하시며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말1:10).

  (2) 성전 마당만 밟는 신앙은 주님께 괴로움을 드리는 신앙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사1:12). 성전 마당만 밟는 사람은 종말에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밖 마당은 척량치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계11:1-2).

  (3) 헛된 제물을 드리는 신앙은 주님께 가시관을 씌워 드리는 고통을 안겨 드리는 일입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사1:13). 그들이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일도 하나님께 대한 경배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와 다툼에 있었습니다. 속죄 제물로 양을 잡아도 그 일이 헛된 것은 이로써 그들이 악행을 버리거나 회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회개 없이 드리는 모든 제물은 헛된 제물로 주님은 이런 제물을 가증히 여기실 뿐 아니라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1:14).

  (4) 병들고 병신된 제물을 드리는 신앙은 주님께 가시관을 씌워 드리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악행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이처럼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회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7-8). 병든 제물이란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될 제물을 말합니다. 온존치 못한 십일조는 저는 짐승으로 드리는 제물인 것입니다. 인색한 헌금은 병든 것으로 드리는 제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님을 괴롭혀 드리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들의 면류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워 드려야 합니다. 보좌 앞에 둘러선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 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진 것”처럼 우리 의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3. 갈대를 손에 들리신 예수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로 더욱 그럴듯한 왕으로 분장시키기 위해 그의 손에 갈대를 들렸습니다. 이 갈대는 임금의 손에 들린 홀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처럼 꾸민 왕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그리고는 그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를 도로 빼앗아 그것으로 왕의 머리를 쳤습니다.

  만약 이들이 희롱한 예수가 정말로 그들 앞에 왕으로 서 계셨다면 그들은 어찌 되었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얼마나 놀리며 당황할 것인가? 그들은 왕이라고 말하면서 그 앞에 경배를 드렸지만 그들의 경배는 희롱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들처럼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희롱하는 무리들은 없는 것인가?

  결 론 :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사람들은 주님을 끌고 십자가에 갈 사람들입니다. 다시 현저히 욕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무리들에 게 경종하고 있는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히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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