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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실패와 회개 (26 : 69 - 75)
 민병석  11-14 | VIEW : 11,592

  ≈ 198 ≈       베드로의 실패와 회개


  (본문 : 마태복음 26 : 69 - 75)


  서 론 : 베드로는 주님의 이름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10:33). 이토록 무서운 죄를 범했던 베드로였지만 그는 눈물로 회개하고 오히려 그의 신앙에 유익을 주어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에 승리하신 것은 기도에 승리하셨기 때문이며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한 것은 기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기도하시는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잔다는 말은 깨어 기도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때에는 반드시 베드로의 시험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1. 베드로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게 된 이유


  아마 베드로의 마음에는 주님을 배반하거나 그 이름을 부인하려고 생각한 일은 한번도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는 정말로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왜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저버리게 되었는가?

  (1)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쫓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8). 멀찍이란 말은 ‘아포마크로덴’으로 이 말의 의미는 보일락 말락한 먼 거리에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과 한 무리로 잡힐 것이 두려운 나머지 멀찍이 예 수님을 쫓은 것입니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두려워하는 마음만이 꽉 차 있었습니다.  

  (2) 베드로는 주님의 결국을 보려고 주님의 뒤를 멀리 따라간 것입니다. “그 결국을 보려고 그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고 했습니다(58). 베드로가 주님을 뒤쫓아 간 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 결국을 보려고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처럼 무력하게 잡혀가셨는데 그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바야흐로 어떤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서 그 많은 무리들을 헤치고 나올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력하게 그들의 손에 의하여 죽게 될 것인가? 그에게는 무척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국을 보려는 마음에서 슬금슬금 뒤쫓아 따라간 것입니다. 결국을 보고 믿으려는 믿음은 주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는 베드로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3) 베드로는 하속들과 함께 바깥뜰에 앉아 있었습니다(58,69).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깥뜰은 예수님이 서 계신 자리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의 동참자로서가 아니라 방관자, 참관자로서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4)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앞문까지 나아갔습니다. 베드로에게 또 한차례의 위기가 왔습니다. 한 비자가 그에게 나아와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의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을 느꼈습니다. 그는 도망치려고 앞문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때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 자기 눈앞에 서있는 계집종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지금 베드로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마10:28).


  2.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베드로의 부인은 한번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세 번씩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범죄하면 그 다음에는 저절로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처음에 물리쳐야 합니다. 처음에 넘어지면 그 다음에는 그 죄악의 끄나풀에 끌려 쉽게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1) 처음에 베드로는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앓지 못하겠노라”고 부인했습니다. 이 부인은 한 계집종의 물음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인한 일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 베드로의 부인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0:30).

  (2) 다음에 베드로는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몸에 위험이 다가온다는 두려운 생각에 도망갈 차비를 차리느라 앞문까지 나아가다가 그 문턱에서 이번에는 다른 계집종에 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는 그 계집종의 말에 베드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맹세하고 부인한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려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밖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에 그 곳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이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에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부인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한 말의 내용은 회가 거듭할수록 더욱 짙은 농도로 악해졌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알지 못하노라고 한 ‘우크 오이다’는 전혀 모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74절에 나타난 베드로의 저주와 맹세는 주님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약 예수의 제자라면 나는 마땅히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뜻과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님을 그 무엇으로도 맹세할 수 있다”는 의미가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부인입니다.

  베드로는 사실상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부인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은 베드로는 주님의 죽으셔야 할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님이 왜 고난을 스스로 당하셔야 하셨는가에 대하여 정말로 몰랐던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주님이 고난당하신 후 부활하실 일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와 함께 고난 받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몰랐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상태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처럼 예수에 대하여 모르면 자기 생명이 위험한 시기에 가서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거나 배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베드로의 회개


  자기 입에서 세 번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자 곧 닭소리가 울려 베드로의 귓전을 뜨겁게 때렸습니다. 이 닭소리에 새 정신이 들게 된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1) 닭이 울었다는 사실이 베드로의 결정적인 회개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회개의 시기가 있습니다.

  (2)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회개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호 14:2).

  (3)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고통을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때 비로소 바라보았습니다. 자기를 긍휼히 바라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눈길이 서로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더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마 주님이 그가 나갈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가 밖에 나와 통곡한 것은 그의 회개를 말합니다.

  결 론 : 베드로의 시험은 우리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시험을 당하는 일은 거듭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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