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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 (26 : 47 - 56)
 민병석  11-14 | VIEW : 5,383

  ≈ 196 ≈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


  (본문 : 마태복음 26 : 47 - 56)


  서 론 : 예수님은 그의 때가 오셨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다”고 하셨습니다(요12:27). 기도하신 자리에서 일어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가실 새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를 데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가까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임전 태세를 갖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이 내리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중 한 제자(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말고)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참으로 온 인류의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과 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큰 경종을 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는 말씀이십니다.


  1. 유다의 간교한 인사


  가룟 유다가 길을 인도한 무리들은 큰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룟 유다의 조언에 의하여 완벽한 작전을 썼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결사적인 대항을 예상했습니다. 유다는 제자들이 자기 선생을 위하여 대담하게 싸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주여 내니이까”고 물으면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결연한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주변에 주님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이 얼마간 있을 것으로 예견했기 때문에 큰 무리들을 동원했고 그들의 손에는 검과 몽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선생과 입을 맞추는 것으로 군호를 썼습니다. 입을 맞추는 인사는 서구적인 인사법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런 인사법을 오래 전부터 관습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이 인사는 친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이에 있었던 인사였는데 가룟 유다는 자기 선생을 잡으라는 군호로 이 인사법을 쓴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가룟 유다의 인사법으로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부르지만 그의 마음은 세상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잘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가룟 유다의 입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2. 친구여 !


  가룟 유다의 간교하고 음흉스런 인사를 받은 예수님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친구라는 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친구라고 하신 말씀에는 넘치는 사랑과 신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언제나 친구란 표현으로 불렀습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4).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하셨습니다(요11:11).

  예수님의 이 말씀 중에는 유다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사단의 종으로 일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불쌍히 보셨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원수의 무리들의 손에 넘겨주는 자가 된 일에 대하여, 그가 하필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좋지 않은 그릇이 된 일에 대하여 그의 인생을 슬퍼하셨습니다.

  유다에게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주님은 유다를 사랑하시는 나머지 그가 행하려는 그의 행위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바라보게 하심으로 그를 회개시키시려는 뜻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마 이때에 유다가 예수님 앞에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고 가슴을 치며 통회했었다면 예수님은 비록 그들의 손에 잡혀가셨을지라도 유다의 그 무서운 죄는 사유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으로부터 배울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범하는 죄인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가 정말로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받아 멸망 받을 사람이라 해도 우리는 이 같은 주님의 심정으로 끝까지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불쌍히 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베드로의 검


  이곳에는 “예수와 함께 있는 자 중에 하나”라고 나와 있지만 요한복음에는 그가 베드로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마태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베드로의 이름을 밝힐 시기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신상에 위험이 올 때 사용하려고 마련한 것일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 선생님의 위기가 온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자기가 예수님께 맹세한 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말했을 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들과 생명을 다하여 싸울 임전 태세를 갖춘 것입니다.

  베드로는 칼을 뽑았습니다. 그는 그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것이 그만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에 맞아 짤라져 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이제 예수님도 자기편이 되어 이들 무리들과 싸우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려울 때 나타내신 권능이라든가 기적을 늘 보아왔기 때문에 아무리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들과 왔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칼을 휘든 그의 만용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꾸짖으시는 투로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자신들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예견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이제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망갈 기회만을 엿보다가 자기 선생을 그  자리에 둔 채 도망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은 검으로 이루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으로 죄인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예수님은 그 당시 자기를 거역하는 모든 사람들을 멸절시키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말씀하심으로 베드로의 검을 도로 꽂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복음의 유일한 무기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인 검이 필요합니다. 이 검이야말로 사람의 심혼골수를 쪼개어 회개시키며 영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검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엡6:17).

  (3) 이 말씀은 또한 검을 쓰는 자는 그 검으로 망할 것이라고 하는 만고 불변의 하나님의 법칙을 천명하신 말씀이십니다. 인간의 역사가 있어온 이래 아직까지 검을 쓴 자들이 그 검으로 망하지 않은 경우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은 검과 몽치를 가지고 잡으러 온 그 무리들이 받을 결과에 대한 경종도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대로 로마군의 검에 의하여 멸망을 받았습니다.

  결 론 : 예수님께서는 잠잠하셨습니다. 그들의 검과 몽치에 대항치 않으시고 순순히 그들의 손에 잡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장에라도 아버지께 구하여 열 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보내어 이들을 하늘의 불로 소멸시키거나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는 말씀으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쓴잔을 드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가 받으신 상급을 받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얼마간의 주님의 고난을 남겨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이처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우리가 이 고난에 참여함은 놀라운 축복입니다(마5:11-12. 롬 8: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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