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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6 : 36 - 46)
 민병석  11-14 | VIEW : 3,698

  ≈ 195 ≈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본문 : 마태복음 26 : 36 - 46)


  서 론 : 예수님은 언제나 앞에 다가올 큰일을 두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에 들어가실 때에도 광야에서 사십 일을 금식 기도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군중들로부터 왕으로 모시고자 하셨을 때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도 밤 새워 기도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은 그 때도 산에 오르사 밤 새워 기도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당하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50:15).


  1. 겟세마네에 올라가신 예수님


  이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처럼 촉박해 오는 고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고민과 슬픔을 안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때 고민하고 슬퍼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마음의 고민을 아버지께 맡기고 새 힘을 얻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일군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함께 기도할 사명자를 뽑았습니다. 여러 명의 제자 중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기도의 협력자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데리시고 기도하시는 곳으로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런 심정은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그의 다가온 죽음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민이란 말은 ‘루페’로 이 말의 뜻은 괴로움, 고통을 말합니다. 주님은 괴로움으로 그 마음이 착잡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런 괴로움과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잠시 후 유다가 길을 인도해 올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밀어닥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결국은 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은 그의 재판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하실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셔야 할 그의 영 육간의 고통을 이때부터 몸으로 체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2. 주님의 기도하시는 모습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주님의 기도는 처절하신 기도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1) 주님은 그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피곤하심과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말해 줍니다. 주님의 비하는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내려오신 것 뿐 아니라 그 머리를 땅에까지 대실 정도로 낮추셨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그의 얼굴을 땅에 가리우실 정도로 큰 비애를 안고 계셨던 것입니다.

  (2) 주님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으신 채로 엎드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앞에서의 그의 겸손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기도의 내용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시기까지 하나님의 버리심을 당하는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죄인의 죄를 대신 젊어지시고 그 죄 값에 대한 심판을 받으셔야 하셨으므로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신 이후의 그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하나님의 위로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고통은 바로 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고통의 잔에 대하여 그토록 애절한 호소로 아뢴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먼저 당신이 지금 당하고 계시는 그 고통을 아뢰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를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시려는 뜻에서 하셨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 고통의 잔을 마시기 위해서였음을 아셨으며 그 잔을 마시지 않고는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고 하신 말씀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12:27).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마음의 갈등에서 그의 인간적인 심정을 이처럼 표현하신 데 불과한 것입니다.

  (2)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기도를 곧 수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이 자신의 그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먼저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나 환난 중에라도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고 찾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이같이 동일한 기도를 세 번씩이나 드렸습니다. 이런 기도의 반복에서 주님이 드실 이 쓰디쓴 잔의 괴로움을 우리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마음에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을 얻기까지 반복적으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4) 주님을 따라 함께 간 세 명의 제자들까지도 주님이 기도하실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나무라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탄식하셨습니다.

  (5)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도 된다는 뜻이냐? 그러나 주님은 곧 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심으로 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향하여 빈정대신 말씀이시냐? 주님은 가장 신실하시고 긍휼히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제는 올 것이 왔으니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주님은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어떤 응답을 받았다던가 어떤 음성을 들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에 대하여 다만 침묵하시고 예수님 자신이 결단을 내리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의 뜻을 더욱 굳게 확신하셨습니다. 이 기도로 더욱 큰 성령의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까지 이 기도로 계속 행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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