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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부활"과 "마지막 부활"
 민병석  11-08 | VIEW : 4,955
<이 난은 월간지 "현대 종교" 2002년6월호에 게재된 민병석 목사의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원고 중 그 일곱번째 것입니다. 앞으로 매월 현대 종교에 연속 게재되는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를 이 난에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한계시록 연구와 설교에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7)  "첫째부활"과 "마지막 부활"문제


  1. 종말론에 있어서 부활의 비중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기존의 신학적 견해나 소위 조직 신학에 나타난 신학자들의 잘못된 신학적 결론으로 말미암아 풀기 어려운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 요소가 되는 사건을 든다면 바로 '첫째 부활'과 '마지막 부활'문제이다.

  부활은 인류의 최 종말에 있을 대 사건이다. 부활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부활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활하기 이전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영의 구속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부활까지 성취한 것은 아니다. 부활은 확실한 보장의 언약은 있지만 아직 미래의 문제로 남아 있고 지금은 영적인 구속에 한정되어 있다(롬8:23).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다(고전15:12-19).

  2. 첫째부활과 마지막 부활


  (1) 개혁주의 신학의 부활론

  개혁주의 신학을 종말적인 면에서 볼 때는 역사적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과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과 양분된다. 이들은 전혀 다른 종말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개혁주의 신학이란 테두리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 둘의 부활 관은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점을 들어 내 놓고 있지만 대단히 중요한 이 부활 문제를 이상하게도 별다른 문제점으로 쟁점화 시키려 하지 않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의 무 천년설의 경우, 이들의 부활 관은 명료하다. 주의 재림 시에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모두 변화 받고 죽은 성도들은 모두 부활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무 천년설에서는 천년왕국의 기간이 없기 때문에 주의 재림으로 백보좌 심판이 즉시 실시되고 그리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면 그것으로 모든 일이 마쳐진다. 이들이 역사적 전 천년설을 배격하는 이유는 변화 받은 성도들이나 부활한 성도들이 어떻게 천년왕국의 생활을 할 것이며 또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데 있다.

  그런데 이들의 부활 관의 허점은 '첫째 부활'을 해석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첫째 부활과 마지막 부활에 관한 말씀이 있다. 이처럼 두 부분으로 부활이 나뉘어 있으므로 그러면 첫째 부활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무 천년설 자들은 이 첫째 부활 문제를 성경 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중생'문제로, 혹은 죽은 사람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억지 해석이며 이 같은 해석은 계속적으로 다른 수다한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종말론에 혼선을 가져오게 된다.

  역사적 전 천년설의 경우를 보면 첫째 부활을 성도들 전체의 부활로 보고 이 같은 부활은 생명의 부활로 주의 재림 시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에 마지막 부활이 있는데 이 부활은 불신자들의 부활로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첫째 부활 자들인 성도들은 부활한 몸으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 하는 생활을 하다가 백보좌 심판을 거쳐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주장한다. 주 재림 시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은 공중 휴거 시 변화 받아 부활 성도와 함께 천년왕국에서 주와 함께 왕 노릇하다가 역시 백보좌 심판을 거쳐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역사적 개혁주의에서 아직까지 주장해 온 부활 관, 성도들은 주 재림 시에 첫째 부활 자로 부활하고 불신자들은 천년 후에 심판의 부활 자로 부활한다고 하는 신학적 주장은 성경 적 근거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그 근거들이 사실인즉 근거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변화 성도들이나 부활 성도들이 천년왕국 백성들이 되어 지상에서 천년 동안 생활한다고 하나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부활체나 변화체를 가지고 지상에서 흙에서 나오는 양식을 먹고 살아가며 결혼하여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답이 너무나도 궁색하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는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억지 주장을 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주의 재림 시 지상의 인류들이 다 멸절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은 육체를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나 천년왕국에서 부활체를 가진 성도들과 육체를 가진 일부 불신자들이나 유대인들이 어떻게 함께 생활하며 그러면 이들은 언제 구원을 받고 언제 변화 받고 언제 부활한다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전혀 함구(緘口)하고 있는 것이다.

  (2) 세대주의 신학의 부활론

  이들의 부활 역시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과 대동소이하다. 세대주의 자들의 부활론은 교회와 유대인들과의 부활에 차별을 두고 있다. 성도들은 7년 환난 전에 공중 휴거 시 변화 받고 죽은 성도들은 주의 공중 재림 시 주와 함께 공중에 내려오게 되므로 변화 성도들과 함께 천년왕국에 내려와서 천년왕국 백성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중 휴거 되지 못한 유대인들이나 불신자들은 지상에 남아 있다가 육신의 몸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가 천년왕국 백성이 되며 자손을 번식시키는 존재는 바로 이들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경로로 구원을 받으며 언제 변화 받으며 천년왕국에서 성도들과 별도로 어떤 형태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더 자세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들 역시 개혁주의 입장과 같이 불신자들의 부활을 둘째 부활로 천년왕국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 성경에 나타나 있는 첫째 부활

  우리는 첫째 부활이란 단어를 즐겨 쓰고 있지만 그 첫째 부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 적인 해답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 첫째 부활이란 말은 성경에 오직 한 곳에만 기록되어 있다.

  첫째 부활이 무엇인가? 어떤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으려면 성경에서 첫째 부활이 언급되어 있는 부분을 잘 살펴보고 연구해야 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계20:4-6).

  첫째 부활 자는 두 종류의 성도들로 그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물론 순교자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의 영혼이라'고 계시해 주지 않고 하필이면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이라고 밝히고 있는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째 부활 자들이란 이처럼 순교 성도들과 연관이 있다. 두 번째로 다른 또 하나의 부활 자들로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두 번째의 경우,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란 말이 빠져 있다면 이들 대상이 주 재림 시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모든 성도들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그 뒤에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살아나서'란 의미로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이나 세대주의 신학자들이나 이들에 대해 '순교자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 첫째 부활 자들이란 분명 두 종류의 순교자들을 지칭하는 말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순교자들이 둘로 구분되어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계6:9-11절에 나와 있다. 하늘 보좌의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호소하는 순교자들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형제들의 죽임이 있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 순교자들의 수효가 채워지기까지 잠시 동안 기다리라고 하셨다. 물론 전자의 순교 성도들은 창세 이후 7년 환난 전까지의 순교 성도들이요 후자의 경우는 7년 환난 중 순교하는 두 증인의 순교를 의미하고 있음이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이다(계11:7-8).

  그리고 우리는 계20:5절에 있는 말씀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 말씀은 순교자들 외의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불신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첫째 부활자들을 분명히 순교 성도들로 규명하였으므로 순교 성도들 외의 나머지 성도들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불신자들의 부활 시기를 계시해 주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2)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

  흔히들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첫째 부활로 규정짓지만 성경에서는 부활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고전15:22-2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은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부활의 순서이기 때문에 이곳에 불신자들의 부활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개혁주의 입장이나 세대주의 입장이나 동일하게 '그 후에는 나중이니'하는 부활의 대상자들을 불신자들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며 올바른 해석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는 첫째는 그리스도, 두 번째는 주 재림 시에 그에게 붙은 자들, 세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하시는 천년 왕국 후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 재림 시에 있을 부활 성도들이란 첫째 부활 자들로 순교 성도들을 의미한다(계19:14. 계17:14. 유1:14. 슥14:5). 그리고 세 번째로 부활할 성도들은 주 재림 이전에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로 이들은 천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계14:13). 이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천국에서 영화로운 영적 안식을 누릴 것이다(계20:5). 이들은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고전15:50-54).

  ⓐ 부활의 첫 열매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 구속받은 자들의 처음 익은 열매로 순교자들의 부활이 있다.
     히11:35        더 좋은 부활
     고전15:23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
     계11:11,12    두 선지자의 부활 (두 증인)
     계14:14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계17:14        부르심을 얻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
     계19:14        백마를 타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하늘 군대들
     계20:4         순교 성도들의 부활

ⓒ 모든 성도들의 부활이 있다(불신자들의 부활도 함께)
     요5:29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단12:2         영생을 얻는 자, 수욕을 얻는 자의 부활
     고전15:52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부활
     고전15:24     그 후에 나중에 일어나는 부활
     계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
     계20:12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3) 부활과 변화의 시기는 동일하다.

  대개의 경우, 현대 신학자들은 성도들의 변화의 시기와 부활의 시기를 주 재림의 시기로 규정을 짓는 성경적 근거로 고전15:51-52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성경적 인용은 대단히 잘못된 오용(誤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달고 우리로 변화하리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와 생존한 성도들의 변화의 시기를 밝혀 준 말씀에는 틀림없지만 그 시기의 책정은 결코 주 재림의 시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구절은 살전4:17절과 맥(脈)을 같이하는 짝도 아니다. 살전4:17절의 공중 휴거는 주 재림의 시기지만 이곳 고전15:51절의 변화는 주 재림의 시기가 아니다.

  살전4:16절에서 주 재림의 나팔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팔'로 나왔다. 그러나 고전15:51절의 부활의 나팔에 대하여는 '마지막 나팔'로 나온다. 하나님의 나팔은 주 재림의 나팔로 이 나팔로 주님이 재림하시고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나팔을 불 때는 홀연한 변화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일은 살전4장의 사건에는 공중 휴거 시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사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고전15장의 경우는 주 재림에 대한 중대한 언급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고전15:51-52절의 경우는 그 시기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 것인가? 50절에 변화와 부활의 시기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 볼 수 있어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씀을 전제한 후, 바울은 성도들의 변화와 부활에 관한 비밀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변화와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시기' 바로 그 때가 되는 것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천년왕국의 생활은 혈과 육으로 살아가는 생활이기 때문에 변화와 부활의 시기는 천년왕국에 들어갈 그 시기가 아니다.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나라'란 천년왕국이 아니라 천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바울이 밝힌 변화와 부활의 시기는 주 재림의 시기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변화와 부활의 시기에 대하여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한 그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전15:54). 이 인용 구절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된 사25:8절에 근거한다. 이 말씀은 계20:14절에 있는 말씀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고 한 말씀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이 같은 사건의 시기는 주 재림 시기가 아니라 천년왕국이 지나고 백보좌 심판 시에 이루어질 사건임을 명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기타의 경우

  부활에 대한 문제는 성경 여러 곳에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그 특징이 '그리스도의 날'과 '마지막 날'과 연관되어 있다. 부활에 관한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서 부활을 종말적인 사건으로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경 구절이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부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성경 어느 한 구절을 근거로 삼아 부활에 관한 전체적인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 첫째 부활은 계20:4,5절에서 명백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 부활의 순서에 대해서도 고전15:22-24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를 밝혀 주고 있기 때문에 이론을 제기할 수 없다.

  ⓒ 부활과 변화의 시기에 대해서도 고전15:50-54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때'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도 분명하다.

  ⓓ 요5:28,29절에 나오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도 동시적인 부활로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백보좌 심판 시의 부활임이 분명하다.

  ⓔ 요6:39절에서는 부활의 시기에 대하여 '마지막 날'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마지막 날이 언제인가? 무 천년주의 자들의 마지막 날은 주의 재림의 날이 되겠지만 전 천년주의 자들의 마지막 날은 천년왕국 끝이 될 것이다.

  ⓕ 요11:24절에서 마르다가 말하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믿나이다'고 한 마지막 날은 언제인가? 유대인들은 누구나 메시야 왕국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왕국 이후에 있을 사건임이 명백하다.

  ⓖ 행24:15절에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함께 언급해 주고 있다.

  ⓗ 살전4:16절에 나오는 부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란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군대로 내려오는 순교자들의 부활인 첫째 부활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히11:35절에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부활이란 순교자들이 받을 상급 부활로서의 첫째 부활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 계20:4절에서 밝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내용 중 문의사항이나 질문이 있으신 분은 민병석 목사 종말론 홈페이지 '밤중소리'에 있는 <질의와 응답>난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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