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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의 등장과 활동
 밤중소리  11-08 | VIEW : 2,984
이 난은 월간지 "현대 종교" 2002년3월호에 게재된 민병석 목사의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원고 중 그 세번째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매월 현대 종교에 연속 게재되는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를 이 난에 실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한계시록 연구와 설교에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3)  네 말의 등장과 활동


  1. 인류의 종말과 네 말의 등장

  계시록 5장에서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7인으로 봉함한 책을 취하신 후, 인봉된 그 7인을 떼시는 모습이 6장에 나온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은 종말에 성취될 인류의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 문서이다. 이 책이 열리지 않으면 인류의 심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단의 최종적인 심판도 유보된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주의 재림도, 천년왕국의 축복도, 부활의 소망도 유보된다. 그래서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고 있는 사도 요한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크게 울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사도 요한이 울게 된 이유는 이 책의 인을 떼어 이 책에 기록된 내용대로 집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기 때문인데 그런 자격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이긴 자'만이 이 책의 인을 뗄 자격이 있으며 그 인을 떼는 자만이 심판의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로 중에 하나가 요한을 위로하면서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장면이 새롭게 바뀌면서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 등장하여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신 것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심판 권세를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봉함 된 이 책의 인을 떼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마28:1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이기시고 율법을 이기시고 심판을 이기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

  이제 예수님에 의하여 개봉됨으로 이 책이 다시는 봉인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계22:10). 이긴 자 되신 예수님이 열어 놓은 책을 왜 하나님의 종들이 인봉한 채로 노아 두는 것인가? 이 책의 실제적인 개봉은 7년 환난을 전후한 인류의 종말에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그 봉함된 책의 내용을 미리 보여 주신 계시이다. 인봉하지 말라는 뜻은 이 계시를 덮어두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는 이미 펴 놓인 책이다(계10:8).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종말에 이르러 이긴 자 되신 어린양이 이 책의 인을 떼실 때, 사단의 운명은 끝장이 나며 사단이 다스렸던 이 세상의 권세도 무너지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불로 소멸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왕국이 탄생하는데 그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 나라를 '천년왕국'이라고 말하고 유대인들은 '메시야 왕국'이라고 부른다.

  2. 첫째 인에 등장하는 흰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주의 재림이다. 요한계시록의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재림에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특히 다니엘서)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한 이레의 언약'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첫째 인의 개봉 시기와 첫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흰말은 요한계시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① 개혁주의 신학의 경우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흰말을 한결같이 예수님이라고 단정한다. 희다는 것과 이긴다는 것과 면류관을 썼다는 말에 근거한다. 근래에 와서 흰말을 적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신학자들도 혹 있지만 그들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세대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흰말을 예수님으로 주장하는 이 같은 해석은 좀 어색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 흰말은 면류관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라는데 주목을 해야 한다. 헬라어 성경에는 면류관에 대하여 두 가지 단어로 구분시키고 있다. 하나는 '스테파노스'요, 다른 하나는 '디아데마타'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두 단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두고 있다.

  먼저 '스테파노스'에 대하여 알아보면 이 면류관은 승리의 화관(花冠)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한 우승자에게 주는 월계관(月桂冠) 같은 것이다. 이 면류관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스테파노스'의 경우,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들에게 언약된 영광스러운 면류관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의의 면류관으로 (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으로 (약 1:12).
  영광의 면류관으로 (벧전 5:4).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의 면류관으로 (계 2:10. 3:11. 6:2. 12:1).

  그러면 또 하나의 면류관인 '디아데마타'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가? 이 면류관은 '승리의 면류관'과는 달리 '왕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 같은 구분은 계6:2절의 흰말을 해석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役割)을 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그런데 이 왕관인 '디아데마타'는 성도들과 연계(連繫)시킨 경우는 한번도 없고 예수님에게(계19:12), 그리고 적 그리스도(계13:1)와 사단(계12:3)에게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므로 왕관인 '디아데마타'를 쓰셨고,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은 이 세상 임금으로서 역시 잠정적으로 이 왕관을 썼으며 적 그리스도는 마흔 두 달간, 이 세계를 지배할 왕(열 뿔의 왕)으로 이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디아데마타'는 왕관으로서의 면류관으로만 나와 있을 뿐 그 왕관을 반드시 선한 의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제한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경우에도, 적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공동으로 이 왕관으로서의 면류관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흰말이 예수님이라면 계6:2절에 나오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가 아니라 '디아데마타'라야 한다.

  그리고 흰말을 탄 자가 예수님이 아닌 사실은 그의 싸움에서 나타난다. 6장에서 면류관을 받고 나가는 자는 '이기고 또 이기려는' 싸움에 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이기신 분이시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계5:5). 지금 예수님은 이기고 이기려고 싸우시지 않는다. 그 분은 영원히 승리하신 분이시다.

  또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흰말을 탄 자가 예수님이란 사실을 계19:11절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내려오시는 모습으로 그 해석의 근거를 삼으려고 하는데  그 백마와 계6장의 흰말은 서로 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백마 탄 자는 예수님 뿐만 아니다. 계19:14절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군대들이 있는데 이들이 백마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아닌데도 백마를 타고 있다는 점은 계6장에 있는 흰말 탄 자의 존재를 예수님에게만 연결시킬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② 세대주의 신학의 입장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이 흰말에 대하여 한결같이 적 그리스도로 단정한다. 그들에게는 이런 해석에 의의가 있을 수 없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흰말을 적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다.

  ⓐ 7년 환난은 적 그리스도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흰말의 등장은 적 그리스도라는 견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잘못된 견해다. 적 그리스도는 7년 환난 전에 이미 세상에 등장하고 있다. 10뿔의 지배자로서의 적 그리스도의 위치는 7년 환난이 이르기 이전의 일이다. 한 이레의 언약이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체결되는 것이라면 적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체결 이전부터 세상에서 세계 평화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는 실질적으로는 7년 환난이 훨씬 지난 후, 후3년 반의 마흔 두 달간의 지배자로 등장하는 것이다(계13:5).

  ⓑ 흰말이 등장한 후, 연이어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등장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임하는 재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7년 환난 기간에는 재앙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7년 환난 전반부가 되는 전3년 반기간은 두 증인들의 예언 기간으로 이 기간은 오히려 교회를 위해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은혜로운 기간이다. 그리고 흰말 뒤에 재앙을 상징하는 다른 세 말이 등장한다고 하여 흰말까지 그 세 말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 주장이라 말할 수 없다.

  ⓒ 흰말의 흰 색깔은 사단의 위장된 색깔이며 말에 탄 자가 활은 가졌지만 화살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 그리스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활이 있다면 그 활에는 자연히 화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정상적인 판단이다. 사단은 광명한 천사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나와 있는 흰 색깔은 사단의 위장된 색깔이란 아무런 힌트도 없다. 오직 흰말일 뿐이며 손에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는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 이 흰말이 적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그가 쓴 면류관이 '디아데마타'가 아니라 '스테파노스'란 사실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사단이나 적 그리스도가 '스테파노스'란 이름의 면류관을 쓰고 나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왕관을 상징하는 '디아데마타'를 쓰고 나온다.

  ③ 흰말을 탄 자의 정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네 말의 등장이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모든 사건의 주체들임을 알게 된다.

  ⓐ 흰말이 네 말 중 가장 먼저 등장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흰말은 그의 생김새나 그의 활동 면으로 볼 때, 하나님 편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흰말'은 희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해 준다. 그리고 성도들과도 연계된다(계6:11. 7:9,14. 19:14). 계6장에 등장한 흰말에는 사단과 연결시켜도 좋을 그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말이 결코 사단 편에서 나왔다거나 사단의 위장된 가면이라는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쓴 면류관이나 이기고 이기려는 모습은 선한 싸움의 승리를 상징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류의 종말에 왜 이 흰말을 등장시킨 것일까? 그것은 앞으로 닥쳐 올 무서운 대 환난 중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에서이다. 앞으로 인류들은 '붉은 말'에 의한 재앙, '검은 말'에 의한 재앙, '청황색 말'에 의한 무서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재앙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10일 동안의 환난'(계2:10)이라고 하셨고 '시험의 때'(계3:10)라고 하셨으며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할 그 날'이라고도 하셨다(눅21:34).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대 환난에서 그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한 역사로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의 백성들에게 경종 하시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해 주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암3:7). 흰말의 등장은 바로 이 같은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 먼저 이 흰말을 탄 자는 '면류관을 받고 나갔다'고 말씀해 준다. 받았다고 했으니 누구에게 받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 면류관이 어떤 면류관이냐에 있다. 성경에 사단의 종들에게는 면류관이 없다. 다만 사단과 그의 대리자가 되는 적 그리스도에게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쓴 면류관은 왕관을 의미하는 '디아데마타'이다. 사단은 세상 임금으로서의 왕관을 그가 최종적인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갈 때까지 쓰게 될 것인데 그 왕관이 '디아데마타'이다(계20:10). 적 그리스도도 역시 그의 왕권자로서의 사역 기간인 42달간 이 면류관을 쓰게 되는데 42달이 차게 되면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불붙는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19:21).

  그러나 흰말을 탄 자가 받은 면류관은 왕관인 디아데마타인 것이 아니라 충성된 종들에게 주시는 '스테파노스'인 것이다. 이 면류관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해 주신다(의의 면류관으로 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으로 약 1:12. 영광의 면류관으로 벧전 5:4. 상급의 면류관으로 계 2:10. 3:11. 6:2. 12:1). 이 면류관은 두 증인들과 연결된다. 두 증인은 1260일간 '다시 예언'하는 사역을 하다가 예언이 끝날 즈음, 적 그리스도에 의하여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이들은 '부활 승천'하는 상급(계11:11-1)과 이들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스테파노스'에 해당하는 면류관의 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계20:6).

  ⓒ 이들은 지금 활을 가지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하는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씀이 새 번역 성경에는 '이기면서 나아갔고 또 이기려고 나아갔습니다'로 언급되어 있다. 이 같은 표현은 결코 적 그리스도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술책이 아니다. '이기고'란 말씀은 현재적인 승리를 의미하고 '이기려고'란 말씀은 미래적인 승리를 위한 계속적인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 편에서 나온 종말적인 사명자들이 사단과 싸우는 처절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7년 환난 초기에 하나님 편에서 이 같은 싸움을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계11:3절 이하에서 두 증인에 의해 1260일간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 환난에서 건져내기 위한 싸움에서 이기고 있으며 또 이기려고 계속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들은 결국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된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싸움은 바로 이들의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위해 전3년 반기간에 활동하는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이 흰말 탄 자의 정체는 무엇보다도 '흰말'이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흰말 탄 자가 요한계시록에 예수님 외 다른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란 말씀이 있다(계19:14).

  이들은 누구인가? 하늘의 군대란 말에 근거하여 많은 신학자들은 이들을 하늘의 천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하늘 군대는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에 내려와 적 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워 승리하는 군사들이기 때문이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지상군과 상대하여 실제적인 실전(實戰)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이시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천사는 영적인 존재임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도 하는 사역이 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천사들도 함께 데려 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들이 할 일은 아마겟돈에서 적 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대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이들 천사들이 한다(마24:31).

  백마를 탄 하늘의 군대는 첫째 부활자들인 순교자들이다. 이들에 대하여 계17:14절에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했는데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 군대란 바로 이들 '그와 함께 있는 자들'로 이들은 천사가 아니라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이다. 이들의 자격은 바로 계14:1-4절에서 언급해 주고 있는 144,000명의 자격에 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다른 성경에는 이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가?
  계17:14 - 부르심을 얻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
  유14 -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고전15:23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슥14:5 -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3. 둘째 인의 붉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붉은 말'이다. 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붉은 말의 등장 모습을 보면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고 했다.

  이 붉은 말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입장이나 세대주의적 입장이나 공통적이다. 전쟁으로 해석한다. 땅에서 화평을 제한다. 큰칼을 받았다고 하는 붉은 말의 모습은 전쟁으로 해석하기에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이 전쟁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유브라데 전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붉은 말은 어느 한 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일으킬 세력들, 곧 네 바람을 가리킨다.

  이 네 바람에 대하여 계7:12절에서는 '땅의 사방의 바람'이라고 했고, 계9:14절에서는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라고 했다. 이 전쟁은 중동에서 일어날 전쟁이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도 관계된다. 이 전쟁 세력에 대하여 단7:2절에서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전쟁의 최종적인 승자는 적 그리스도에게 돌아간다(단7:23). 이 전쟁으로 세계는 황폐화되고 세계 인류는 그 ⅓이 죽게 된다(계9:13-15).

  그러므로 이 전쟁은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서운 재앙으로 7년 환난 중에 등장하게 된다. 이 전쟁의 양상은 남방 왕이 적 그리스도를 찌르는 일로 일어나고 이 전쟁에 북방 왕도 개입하게 된다(단11:40). 이 전쟁은 유대인들에게 큰 화가 될 것이다(단11:41).

  4. 검은 말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가?

  세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검은 말'이다. 검은 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말의 등장은 인류의 기근을 의미해 준다. 이 같은 해석은 모든 신학자들간에 공통적이다. 이 검은 말을 탄 자의 모습을 보면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네 생물 사이로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고 하는 음성이 사도 요한에게 들렸다.

  저울은 경제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량 형기인데 저울이 등장한 것은 인류의 종말에 말할 수 없는 기근이 인류들에게 닥쳐올 것을 의미하며 경제적인 통제 정책을 말해주기도 한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물건의 매매도 금지하는 무서운 법이 시행되는 일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의미하는데 그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양식은 말 한 되와 보리 석 되밖에 안 된다.

  이 같은 기근은 왜 온 것인가?
  두 증인이 예언할 동안 하늘을 닫아 비를 못 내리게 한다(계11:6). 유브라데 전쟁(핵전쟁)으로 온 땅이 황폐화되어 식량난이 극심하게 된다.

  이 기근으로 짐승(적 그리스도)은 '6.6.6. 표'를 받지 않는 자에게는 매매를 못하게 하므로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그러나 이 기근의 재앙에서 해함을 받지 않을 존재가 있다. 6절 끝에 나오는 말씀,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명령이 그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무엇을 말하는가? 감람유는 성령을,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감람유와 포도주의 대상은 두 증인에 의해 척량에 합격된 자들로 신부의 준비를 갖춘 슬기 있는 처녀들이며 '큰 환난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다(계7:13-14. 마25:1-10).

  해치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들의 보호를 말한다. 이 보호는 흰옷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에 대한 보호처에서의 양육을 의미한다(계7:16-17. 계12:6,13-14).

  5. 청황색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 네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청황색 말이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다(계6:8).

  이 자의 해석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자는 그냥 단순한 죽음의 재앙만을 의미하는 존재는 아니다. 이 자의 정체야말로 적 그리스도, 바로 그자이다. 사람들이 이 자를 적 그리스도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첫째 인을 뗄 때 등장하는 흰말을 이미 적 그리스도로 단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청황색 말이 적 그리스도란 사실은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이 사망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름은 사망의 사자, 사망의 왕이란 뜻이다. 적 그리스도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자는 자신의 표로써 세계 인류들에게 사망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자의 뒤에는 음부가 따른다고 했다. 음부란 곧 지옥을 의미하는데 짐승의 표를 받으면 누구든지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계14:9-11). 이 자는 땅의 ¼의 권세를 가졌다고 했는데 이 같은 권세는 적 그리스도가 처음에 4대 열강 중에 하나로 세상에 등장한 사실을 의미해 준다(단7:1-7. 계7:1). 그가 가진 권세로 하는 일이 몇까지로 열거되었다.

  검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검은 그 자가 가지고 있는 권세이다(계13:15).

  흉년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흉년을 이용하여 짐승의 표를 준다(계13:17).

  사망으로 죽인다고 했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함으로 죽이게 한다.
  땅의 짐승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땅의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계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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