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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환난"의 해석 문제
 민병석  11-08 | VIEW : 5,217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현대종교 2001년12월호부터 게재)  


<이 난은 월간지 "현대 종교" 2001년12월호에 게재된 민병석 목사의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원고 중 그 첫번째 것입니다. 앞으로 매월 현대 종교에 연속 게재되는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를 이 난에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한계시록 연구와 설교에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첫번째 : "7년환난"의 해석 문제

  
  (필자의 말 : 종말론이나 요한계시록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지만 잘못된 한가지 해석이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을 바꿔 놓을 수 있으며 종말의 계시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기고에서 종말론에서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9가지 핵심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많은 분들이 수긍하지 않을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점 이해하시고 내용 전체를 성경적인 조명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주 재림의 소망 중에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익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끝으로 필자는 이 글을 '전 천년설'의 입장에서 쓴 것임을 미리 밝혀 두며, 내용 전개에서 확정적인 듯한 논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필자의 견지에서 그렇게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1)  종말론의 연구 방향  

  성경에는 종말에 관한 예언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모든 예언은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부분적이며 단편적인 예언이기 때문에 그 하나 하나를 완성된 예언 인양 해석해서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부분적인 계시로 나오는 사건을 가지고 종말론 전체와 결부시켜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한다면 잘못된 결론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교단이건 신학적으로 요한계시록을 교단 교리로 정립해 놓은 교단은 없다. 요한계시록은 그 계시의 내용을 보아 교리에 얽매일 수 없는 성경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그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 자체가 복잡하다. 첫째 부활 문제, 7년 환난 문제, 천년왕국 문제, 두 증인 문제, 144000 문제, 그에다 전 천년설, 무 천년설, 세대주의 종말론 등 까다롭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① 종말적인 계시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종말의 계시의 맥을 따라 연결시키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성경 전체에 계시되어 있는 예언의 맥과 모순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까다롭다.    

  ② 모든 종말적인 맥은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과 일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모든 종말적인 계시의 가장 조직적이며 결론적이며 최종적인 계시로 보여 주신 계시이기 때문이다.

  ③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다룸에 특별히 명심할 일이 있다. 그것은 종말론 문제가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론과 충돌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단들이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지탄을 받았던 이유가 그들의 종말관이 성경의 구원론과 모순되었다는 점에서이다.


  1. '7년환난설'의 중요성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그 해석의 분수령이 바로 '7년환난설'에 있다. '7년환난설'을 실제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느냐? 상징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느냐? 는 문제는 처음부터 그 해석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문자적 해석은 7년 환난 설에 근거한 해석을 말하고 상징적 해석은 7년 환난 설에 근거하지 않은 해석을 의미한다. 종말론 해석에 7년 환난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는 문제는 처음부터 해석의 각도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종말론 연구에는 '7년 환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판단을 먼저 내리고 시작해야 한다.

  ① 개혁주의신학의 입장

  '무 천년주의'나 '역사적 전 천년주의'나 종말론 해석의 차이는 크지만 그 신학은 둘 다 개혁주의 신학에 속한다.

  (1) 그런데도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상징적 해석을 취한다. 그러나 무 천년설을 취하건 전 천년설을 취하건 그 문제에 반대되는 성경의 내용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 그래서 무 천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 천년설에 배치되는 모든 성경의 내용을 상징화시킬 수밖에 없다. '7년환난설'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상징적 해석에서는 7년 환난의 기간을 '전 신약 시대'나 또는 신약 시대의 어느 일정한 기간으로 구분한다.

  '7년 환난'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그 몇 가지 이유.

  ⓐ 로마의 디도에 의해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구약적 제사가 실제로 살아졌 다는 것이다(단9:27). 그러나 이런 해석은 다니엘서를 유대인들을 위한 종말 계시로 보지 않고 신약시대의 교회로 보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 만약 7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다른 숫자적 계시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같은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7년 환난 설을 주장하면 7년 환난에 들어가는 시기 문제가 대두하게 되므로 비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 7년 환난 설은 주 재림 전 7년에 이르면 주의 재림 시기가 7년의 한정된 시기가 되므로 결과적으로 시한부 종말이 된다는 주장이다.

  ② 세대주의신학 입장

  그러면 세대주의 신학 입장은 어떤가? 이들은 문자적 해석을 취하고 있는데 이들의 문자적 해석은 세대주의 신학이라는 특별한 해석방법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많이 도사리고 있다.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종말적인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해석이 세대주의 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 세대주의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교회를 위한 계시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한 계시로 받아 드리며 4장 이후에 나오는 모든 계시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유대인들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계시의 전달 대상은 7교회이다. 이 계시는 교회를 위해 증거 했다(계22:16).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는 달리 유대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경이다. 그뿐 아니라 계22:16절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요한 계시록은 교회를 위하여 증거 하신 종말적 계시인 것이다.

  ⓑ 세대주의에서는 주님의 이중 재림(二重再臨, 공중과 지상재림)을 주장한다. 이 같은 세대주의 종말론의 이중 재림은 7년 환난 전 휴거 설에 뒤따르는 필수
적인 주장이다.

  ⓒ 세대주의에서는 7년 환난 전 휴거 설이 전제된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핵심 사상이 바로 7년 환난 전 휴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세대주의 신학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장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7년 환난 전 휴거는 '왕국 연기설'(王國延期說)에 근거한다. 이 설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지 않으므로 그 당시 메시야 왕국이 연기되었다는 설이다.

  그 연기의 기간이 이방인의 때인 교회 시대가 되었고 7년 환난 기간은 연기된 왕국 회복을 위한 유대인들의 회복기간이기 때문에 교회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7년 환난 기간은 교회 시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는 마땅히 휴거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교회가 휴거 된 후, 이 땅에는 7년 대 환난이 임한다는 것이 그들의 종말의 시나리오다. 이 같은 7년 환난 전 휴거 설은 요한계시록 해석을 전혀 비 성경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고 시한부 종말론의 진원지로 자리잡고 있다.

  2. 다니엘서에 나타난 '한 이레'와 '7년 환난'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종말적 계시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해 주신 종말적 계시요(계22:16), 다니엘서는 유대인들을 위해 주신 종말적 계시이기 때문이다(단9:24). 그러므로 이 두 성경은 서로 쌍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종말론 연구에는 반드시 두 성경 중 어느 한가지를 서로 보완해야 온전한 해석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역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들의 민족적인 구원이 인류의 종말의 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에 나타난 종말 계시는 요한계시록과 일치된다. 다만 대상과 지역이 다를 뿐 그 역사적 배경이나 종말 사건의 진행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7년 환난 설'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계시록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도 성경에는 7년 환난이란 단어가 없다고 곧잘 주장하면서도 그래도 '한 이레'란 다니엘서의 단어 때문에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이레'를 7년이 아니라 1주로 풀이하면서 그것이 상징적 숫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단7:25절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종말적인 어떤 시기가 나온다. 그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에도 1260일, 42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시기적 단어가 등장한다. 이 같은 기간은 분명히 한 주간이나 7일이나 7일의 절반을 의미해 주는 숫자는 아니다. 그래서 한 이레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면 부득불 1260일이나 42달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도 같이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고민이 따르게 된다.

  ① 단9:27의 '한 이레'와 7년의 종말적 기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요한계시록 연구에 단9장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필수적이다. (단9:24-27절을 읽어보자).

  ⓐ  24절은 25-27절까지의 총론으로 70 이레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24절에는 '70 이레'가 지난 후에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이루어질 일에 대한 계시가 나온다.

  ⓑ 다음에 25절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난 후의 사건을 언급해 주고 있는데 이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다'고 했다.

  ⓒ 26절 처음에 나오는 '62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란 말씀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곧 끊어질 것이란 의미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

  ⓓ 요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의 해석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이 말씀에서 걸려 넘어지게 된다. 이 장차 일어날 '한 왕'의 사건을 주후 70년대의 디도의 예루살렘 침공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해석에는 마24:15-21절, 막13:14-18, 눅21:20-24절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을 위의 사건에(디도의 침공)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종말론에 혼선이 오게 되고 복잡 미묘하게 얽혀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그 논지의 전개로 보아 2천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 아니라 종말적인 사건을 심각하게 말씀해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장차 나타날 '한 왕'이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명심할 일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도 중요하거니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 예언된 장차 나타날 사건이다. 이 사건의 기록이 슥14:1-1-5절까지에 걸쳐 나온다. (슥14:1-5을 읽어보자).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인용하신 사건은 70년대의 디도의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에 또 한차례 예루살렘을 뒤덮을 스가랴 선지의 예언을 인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단9:26절에 있는 '장차 한 왕'이 예루살렘에서 일으킬 사건도 바로 인류의 종말에 있을 슥14:1-5의 사건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27절에 다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정  하겠고' 란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그가'라고 지칭한 대상은 말할 것 없이 26절에 나오는 '장차 나타날 한 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26절의 '장차 한 왕'도 27절의 '그'도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무서운 종교적 핍박을 가할 '짐승'으로 곧 '적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26절의 '한 왕'은 로마의 디도이고 27절의 '그'는 적 그리스도일 수가 없는 것이다.

  ② '한 이레'는 한 주간의 기간인가? 7년의 기간인가?

  '한 이레'란 기간은 숫자적으로는 7일을 의미한다. 69 이레나 70 이레도 마찬가지다. 69 이레는 69주간으로 숫자적으로는 483일간이요, 70이레는 70 주간으로 490일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숫자적인 계산으로 이 문제를 해석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났을 때'를 B.C. 445년으로 볼 때 483일은 불과 B.C. 443년경에 마쳐진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때 오셨는가? 또 하루를 천년으로 잡아 계산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483일은 483,000년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초림은 B.C. 482,517년이 되며 초림의 예수님이 오시려면 아직도 480,517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민14:34. 겔4:16).

  우리는 또 단7:25절에서 종말적인 기간으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이 기간은 연수로 일곱 때의 절반을 의미한다(단4:25). 이 기간은 날 수로는 1260일을 의미한다(계12:6,14).

  그러면 왜 다니엘서에서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70 이레로 정하시고 69 이레와 한 이레로 나누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면서 그 징조적 시기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구분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초림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69 이레가 도래할 때에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는 한 이레의 언약이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되고 한 이레가 마쳐지는 그 시점에 가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한 이레의 언약이란 적 그리스도에 의해 맺어지는 평화조약으로 이 문제는 이스라엘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장차 등장하게 된다. 이 같은 언약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알게 되고 전 세계가 알 수 있게 된다. 이 시기부터 절반이 지나가면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종교적 핍박을 받을 것이며 그 기간이 한 이레의 후반부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으로 이 땅위에 새로운 메시야 왕국,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11:15).

  ③ 요한계시록에는 7년환난에 대하여 어떻게 계시되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도 7년에 관한 명백한 문구나 숫자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니엘서의 '한 이레'나 '한 이레의 절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 계11:2절에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전 밖 마당을 주관할 적 그리스도는 또한 거룩한 성(예루살렘 성)을 42달간 짓밟을 것이다. 이것은 단7:25절에 있는 종교적 핍박을 유대인들에게 가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계13:5절에는 적 그리스도가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마흔 두 달은 계11:2절에 나오는 42달로 7년 환난 중 후3년 반을 의미하는 기간인데 이 기간은 적 그리스도가 예루살렘뿐 아니라 세상의 지배자로 활동할 것임을 의미해 준다. 그런데 계11:3절에서 베옷을 입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예언하는 사명을 가진 두 증인의 활동 기간으로 1260일간의 기간이 나오는데 이 기간은 42달간의 기간과는 다른 기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이 증거 하는 기간은 후3년 반이 아닌 것이 이들이 예언을 전하다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시기가 1260일 마지막 시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계11:7). 만약 이 시기가 후3년 반이라면 적 그리스도는 아마겟돈에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생포되어 산채로 불붙는 못에 던지우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계19:20).        

  ⓑ 요한계시록 12장에는 대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보호하실 일에 대한 은혜로운 계시가 나온다. 그런데 그곳에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이 나오고 있다. 아들을 낳은 여인이 그 아들을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 보내고 자신은 1260일간의 양육을 받기 위해 자기 곳으로 도망하게 되는데 이 여자는 용의 핍박을 피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날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가 양육을 받을 기간이 6절에서는 1260일로 나오고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나온다. 같은 기간을 이처럼 둘로 나눈 것은 이 두 가지 표현의 날 수가 동일한 기간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 우리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전3년 반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연단과 회개의 시기로 주신 기간으로 두 증인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예언하는 기간'이요, 후3년 반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온 세계가 지배를 받는 대 환난 기간으로, 이 기간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이 단7:25절과 슥12:1-5절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이루는 무서운 대 환난의 날이 될 것이며 그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뒤따르며 곧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

  3. "7년환난설"은 시한부 종말이 되는가?

  어떤 사람들(주로 7년 환난 설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들)은 7년 환난 설은 결과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이 되기 때문에 7년 환난 설을 취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7년이란 기간의 시발점이 종말의 시작이라면 7년 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니 그것이 시한부가 아니냐고 말한다.

  ① 그러나 그 7년의 시발점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7년이 실제적으로 오기까지는 시한부 종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 성경에서 예언해 준 말씀대로 "열 뿔"에 해당되는 세계를 지배할 강력한 연합국가가 세워지고 "짐승"인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계 인류가 그 자를 인류의 구세주로 받들고 그에게 신적 경배를 드리게 되며 전세계의 종교세력이 이 자를 경배의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음녀의 세력을 형성하여 하나가 되며 세계대전의 위험 속에서 세계평화를 약속하는 "한 이레"의 언약이 이 자의 주도아래 성사되는 그런 시기가 실제로 우리에게 온다면 그때 가서도 시한부 종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세계 역사상에 이런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들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이런 종말 계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② 계13:1-3절에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이 나오는데 이 자가 42달간(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1260일과 동일한 날 수) 세상을 지배할 것을 예언해 주고 있다. 이 기간은 다니엘서(단9:27)에 나와 있는 한 이레의 절반 기간과 동일한 기간으로 후3년 반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 주는 시기에 대해 우리는 시한부 종말이란 말로 이런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③ 예수님은 마24:15절에서 다니엘의 이 종말 예언을 읽는 자는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그 때에"라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그런 사건이 이루어질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예언이 성취되려면 그 예언의 시발점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면 이 예수님의 말씀도 시한부 종말이라고 할 수 있는가? 7년 환난은 예언의 성취로 오는 종말의 징조적 시기이므로 인위적으로 재림 날짜를 계산하거나 기도로 계시를 받아 그 일자를 밝히는 시한부 종말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④ 성경에는 유대인들에게는 다니엘서에서, 교회에는 요한계시록에서 주 재림  의 징조적 시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는 이 징조를 보고 주 재림의 시기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에는 주 재림의 징조적 시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가?

  ㉠ 먼저 역사의 무대 위에 적 그리스도가 등장해야 한다(계13:1-3). 적 그리스도의 등장 없이는 인류의 종말도 없고 주님의 재림도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적 그리스도냐는 것이다. 이 분별은 다니엘서와 계시록의 연구를 통해서 그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 다음에 음녀의 등장이 있어야 한다(계17장). 이 음녀는 기독교를 주축으로 형성된 세계적인 혼합 종교의 총 본산으로 그 특징은 적 그리스도를 그들의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그와 함께 영화를 누리게 된다.

  ㉢ 또 "열 뿔"로 이루어진 강력한 연합 국가가 형성되어 적 그리스도의 지배하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계17:12). 이 열 뿔이 과연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하여 잘 살펴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 적 그리스도는 이 열 뿔을 그의 권세를 장악하는 전위대로 세울 것이며 그는 사단으로부터 신적인 권세와 능력을 받으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적인 존재로 경배를 받게 되며 교회를 핍박하게 되고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게 경배 드리는 모든 자들에게 짐승의 표를 주게 된다(계13장).

  이런 예언의 징조들은 역사적으로 우리들 앞에 전개될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은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여 재림의 년, 월, 일을 명시하여 우리에게 영적 혼돈을 주고 성도들에게 주 재림의 소망이 아니라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경계하고 배격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언된 시대적 징조를 바라보며 주 재림을 대망 하는 일은 절대로 시한부 종말론이 아니다. 주님은 오히려 이런 예언의 성취를 살피는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격려하셨다(마24:32-33). 마24장이나 요한계시록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주신 종말적 계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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