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2)
 밤중소리  11-08 | VIEW : 8,184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
    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
    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기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 슥14:1-5 =

    위에 있는 스가랴 14장에서 언급해 주고 있는 말씀은 역사적으로 A.D. 70연대의 일도 아니며 또 다른 어떤 시대의 사건
    도 아닌, 오직 인류의 종말에 바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이다. 여호와의 날은 디도의 날도 아니며 그
    렇다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날도 아니다. 인류의 종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을 의미해 주는 말이다. 이때
    적 그리스도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와 유대인들을 종교적으로 핍박하다가 그 마지막 즈음, 아마겟돈
    전쟁 직전에 예루살렘에 감행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예수님은 이같은 스가랴 의 예언을 마음에 생각하시면서
    눅24:20-24절에 있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고 말씀 하시게 된
    것이다.


② "장차"(將次)라는 낱말의 의미

다니엘서 9장의 해석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26절과 27절에 나오는 "장차"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 들은 이 낱말을 간과(看過)해 버린다. 아무런 의미도 부과하지 않는 것 이다. 장차란 아직 당도하지 않은 앞날의 일을 말한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예언은 장차 이 세상에서 되어질 일에 대한 사전(事前)의 언 급이시다. 그러므로 "한 왕"의 등장이나 "그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맺을 한 이레의 언약" 등은 앞으로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되어질 일인 데 다니엘서 9장에서는 그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 9장에서 언급해 주는 이 장차의 사건이 언제 도래하는가? 에 대한 해답은 이 계시를 주신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며 그분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장차란 미래적인 낱말 안에는 그 실현 기간 이, 혹 수 십년이 흐를지, 혹 수 백년이 흐를지, 아니면 수 천년이 흐 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장차의 일이 "인류의 종말"에 되어질 일이라 하여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처럼 적 그리스도는 장차 예루살렘에 침입하여 처음에는 메시야와 같은 영광의 환영을 받을 것이지만 가증한 물건을 성전에 세우고 자신 을 하나님이라 하여 경배시키는 일로 작은 뿔로서의 적 그리스도의 정체가 들통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 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

이 자는 많은 군대를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 성읍과 유대인 들의 예배처인 성소를 훼파 할 것이지만 곧 이어 아마겟돈에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 됨 같을 것"이다. 이같은 적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하여 27절 후반 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 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③ "한 이레"

37절을 보면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 을 굳게 정하겠고"란 말씀이 있다. 이 "한 이레"에 관한 계시는 종말론 에서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일에 성경 전체의 내용과 우리의 성경에 관한 지혜를 총동원해야 하며 성령이 주시는 계시에 대한 조명(照明)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그 렇지 않으면 한 이레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한 이레란 도대체 성경에서 얼마간의 기간을 의미해 주는 숫자인가? 한 이레와 7년 환난과는 숫자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것인가? 적용시켜도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 많은 목회자들이 한 이레를 종말적 환난 기간인 7년과 연관시켰다 가도 곧 회의심을 가져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7년 환난 설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에서 나온 것으로 착각 하여 오해하기 때문에, 7년 환난이란 말만 내놓아도 세대주의자로 매도를 받게 된다.


이같은 단정은 마치 이단에서 적용하는 성경 해석 중에 개혁주의 신학과 동일한 부분이 있을 때, 그 개혁주의적 입장이 이단의 견해와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같은 해석을 기피하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세대주의가 다 이단인 것은 아니며 세대주의 신학은 계약 신학과 함께 보수 신학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7년 환난 설"이 세대주의 신학에서 나왔다는 말이 아니다. "7년 환난"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성경적 증거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과 똑같이 "7년 환난"을 주장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성경적이다. 그리고 7년 환난설은 세대주의 신학의 창시자인 18세기 영국의 다비 보다 수세기나 앞서 신학계에 대두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7년 환난의 종말론적 입장을 취한다고 모두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7년이란 낱말이 동일하다고 그 내용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세대주의에서는 "7년"이란 종말적인 연한을 말할 때, "7년 대 환난"이란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7년 기간 중 대 환난에 속한 기간은 그 절반에 속한 후 3년 반에 해당된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기간을 "대 환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계13:5. 단7:25).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입장이라면 7년의 기간을 "7년 환난" 또는 "7 년의 종말적 기간"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이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7년 대환난에 관한 도표

위의 도표에서와 같이 세대주의에서는 7년을 유대인들의 회개 기간 으로 보고 있다. 이 기간은 교회와는 무관한 기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7년 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한다. 세대주의자들이 7년 대 환난 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7년간의 종말적인 기간에 일어날 사건의 내용보다는 교회의 7년 대 환난 전 휴거설을 부각(浮刻)시키기 위해서이다.

④ "한 이레"와 후 3년 반


"70 이레"의 해석에서 "한 이레"가 연수로는 "7년"이 된다는 사실을 증거한 바 있다(p.87). 여기서는 "7년 환난"이란 낱말이 성경에서 어떻 게 나타내 주고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한 이레를 두 부분의 환난 기간으로 나누고 있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단7:25절에서 종말에 예루살렘에 등장할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그의 지배하에서 "한 때와 두 때 와 반 때"의 기간을 지낼 것이라고 말씀해 준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연수로 계산할 때 3년 반이 된다.

단4:32절의 "일곱 때"가 7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그 절반이 된다. 그리고 계12:14절에는 남자를 낳은 여자가 그 남자를 하늘의 보좌 앞으로 올려 간 후, 사단의 핍박을 피하여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을 양육 받는데 이 기간을 같은 계12:6 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과 "1,260일간"의 기간은 동일한 기간이다. 1,260일간은 연수로는 3년 반이다.

마지막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사단의 능력과 권세와 보좌를 가지고 이 세상을 마흔 두 달간 다스리게 되는데 이 기간은 적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짓밟을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과 같은 기간이 된다. 마흔 두 달은 날수로는 1,260일이요 연수로는 3년 반이 된다. 지금까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증거한 3년 반(1,260일, 마흔 두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은 모두 7년의 환난 기간 중, 후반부에 속한 "후 3년 반" 시기에 일어날 사건들이다.

한 이레의 절반에 일어날 사건들

위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 이레의 절반의 기간이 다니엘서의 경우 모두 한 이레의 후반부인 후 3년 반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 견하게 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경우 역시 7년 환난 중, 후 3년 반 에 속한 사건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적 그리스도의 활동이 후 3년 반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과 적 그리스의 심판이 후 3년 반기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은 사실을 볼 때 후 3년 반이야말로 "대환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전 3년 반에 관한 성경적인 증거는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이에 대한 계시를 살펴보도록 한다.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후 3년 반에 관한 계시만 다루고 있는 사실에 대해 그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게 유대인들이 짓밟힘을 당할 기간이 후 3년 반 동안이 그 이유이겠지만 전 3년 반기간은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 로부터 피해를 받는 기간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한 이레의 언약"으로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 공로자가 다름 아닌 열 뿔의 지배자가 되는 영광의 구세주인 사실을 알게 되고 또 그 자의 혈통이 유대인임으로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그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게 된다. 그 기간이 바로 전 3년 반이 된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다(요 5:43). 전 3년 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만 해당되는 기간이므로 유대 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전 3년 반기간, 이 사회에서는 적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지지와 환영을 보내며 그를 신적인 존재로 경배하게 될 것이므로 이 기간이 환난 기간이 될 수 없다. 적 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을 모습이 성경에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13:4). 요한계시록에서 적 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니엘서 7장에서 네 번째 짐승이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⑤ "한 이레"와 전 3년 반

"7년 환난"중 전 3년 반기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요한계시록 한곳에만 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계11:3).

세대주의자들은 종말론을 연구하는 일에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한다. 다니엘서에는 분명히 한 이레의 경우, 전 3년 반에 대한 언급이 없으로 전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문제만 제시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면 에서 생각할 때 세대주의자들의 다니엘서 해석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 다. 그런데 그들은 다니엘서에서 전개되는 종말적인 사건들이 유대인 들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유대인들에게만 적용시킨다. 다니엘서를 연구하려면 한 이레의 나머지 한 부분인 전 3년 반에 관한 성경적 근 거를 찾아 해석을 내려야 하는데 이 같은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므 로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종말적인 사건까지 다니엘서에서와 같이 전적로 유대인들에게만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이레의 언약"은 유대인들을 위해 적그리스도가 체결하는 "7년 간의 평화 조약"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한 이레의 후반부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받을 유대인들의 종교적 핍박 역시 유대인들이 한 이레 기간 중에 받을 대 환난을 가리키고 있 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일은 예수님이 눅21:20절 이하에서 언급하시고 있는데 예수님의 이 예언은 장차 유대인들이 받아야 할 전대미문 (前代未聞)의 대 환난임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일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 아님을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며, 요한계시록에는 "한 이레" 동안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환난에 대하여 수 없이 말씀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다니엘서의 경우는 유대적인 면에서 장차에 일어날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한 것이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교회적인 면에서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같은 사실의 구분을 혼돈하여 다니엘서를 중요시한 나머지 요한계시록을 유대인들을 위한 "속 다니엘서"로 취급하는 모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⑥ "한 이레"가 등장한 이유


우리는 다니엘서 9장의 "칠십 이레"가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의 시대적 시기에 관한 "징조적 계시"(徵兆的 啓示)임을 알았다. 그래서 69 이레로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시대적 시기를 알려주고 있는데 "예루살렘 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계산해서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난 후에 일어날 일임을 밝혀 준다. 그러면 재림의 종말적 시기는 언제인가? 이 재림 시기에 대한 징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이 나머지 "한 이레의 언약"이다.


메시야의 출현은 언제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대는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우리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국가적인 운명과 직결되는 결정적인 시기에 등장하는 "영광의 메시야" 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그들은 메시야의 출현을 갈망해 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가 과연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셨는데 그 시기를 다음 네 가지 사건으로 명시하셨다.

ⓐ "장차"라고 하는 미래에 있을 것이다.

ⓑ 그가 오실 때가 되면 "작은 뿔"(적 그리스도)에 의한 "한 이레"의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 이 같은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지면 그 절반 기간에 가서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주도(主導)한 작은 뿔에 의해 말
    할 수 없는 종교적 핍박과 대환난을 겪을 것이다.

ⓓ 그리고 그 "한 이레"가 마쳐지는 그 시점에 가서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그들의 메시야가 임하게 되며 이때 이스라엘
    의 남은 자들이 그들이 찌른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메시야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므로 유대인들은 장자를 위하여
    애통하는 듯한 회개를 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메시야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한 이레"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과 같이 메시야의 재림 시기를 알려 주시는 결정적 징조가 되며 유대
    인들은 오직 이 징조를 통해서만 메시야의 출현 시기에 대한 시대적 징조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에 의한 "한 이레"의 언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메시야의 재림이나, 이 세상의 최종적인 심판이나,
    메시야 왕국의 출현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⑦ 적 그리스도가 맺을 한 이레의 언약 우리는 다니엘서 7장에서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하여 이미 자세히 살펴본바 있
    다. 27절 처음에 나오는 인물, "그가"라고 하는 대상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분명히 얻어야 한다. 만약 이 인물에
    착오가 생기면 "칠십 이레"의 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자에 의해서 나머지 "한 이레"의 언약이 이
    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한 이레 언약"의 주인공인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그가 로마의 "디도"라고 하는 주장이다. 디도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유대인의 구약적인 "제사와 예물"을 폐지하였다는
    견해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주장이다. 이자는 다니엘서 8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같이 B.C. 170년을 전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와 "제사와 예물"을 폐지하는 종교적 핍박 정책을 썼다는 것이다. 심지
    어는 그가 예수님이란 설도 나오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구약적인 제사를 폐하시고 "신령과 진정"
    의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여기서 "그"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이레의 절반 동안 예루살렘에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을 세울 인물이 단7:25절에서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가 26절의 장 차 나타날 "한 왕"임은 물론이다. 26절의 "한 왕"과 27절의 "그"라고 하는 존재는
    역사적으로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다.

⑧ 한 이레의 절반 기간에 적 그리스도가 할 일

한 이레의 절반 기간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할 일에 대하여 몇 가지 명시해 주고 있다. 첫째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 게 정하겠고"라고 한 사건이다. 한 이레란 7년이며 여기서 말하는 언 약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맺는다는 말에서 "세계 평화에 관한 조약" 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견해이다. 이 자는 전쟁의 위협과 세계적 기근과 경제적인 혼란 등 세계가 뒤 숭숭할 때 세상에 머리를 들고 나타난다.

이 자의 등장 모습부터가 이색적이기 때문에 그는 이같은 혼란한 세상에서 모든 인류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신적인 존재로 인정을 받게 되므로 그의 인기나 신망은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 이 자의 엄위하고 두려운 모습과 이자가 세상으로부터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모든 사람의 경배를 받게 되는 경위를 보기로 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계13:1-5 =

위의 말씀을 보면 마지막 때 적 그리스도는 바다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바다는 단7:2절에 나오는 큰 바다를 의미한다. 이 바다에서 10뿔을 동반한 작은 뿔이 넷째 짐승으로 등장하는데 이 짐승이 곧 적 그리스 도이다. 그에게 달린 뿔이 열이란 대상은 작은 뿔에게 맹종하므로 그를 왕으 로 받들어 충성할 열 뿔들로 이들을 열 왕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란 말씀에서 열 뿔이 작은 뿔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단7:7)

"네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 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는 말씀에서 열 뿔이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휘하에서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여 줄 열 왕이란 사실을 밝 혀 주고 있다(계17:12). 이 자의 머리가 일곱이라고 했다. 이 머리에 대해서는 계17:9,10절에서 해석해 주기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달린 일곱 머리는 역대의 적 그리 스도에 해당하는 일곱 왕 중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자란 뜻이다. 그 일곱 왕에 대하여 또 설명하기를 다섯은 망하였다고 했으니 애굽, 앗 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를 가리키고 지금 있는 왕은 로마를, 그리고 아직 이르지 아니한 "다른 이"는 장차 종말에 이르러 등장하게 되는 적그리스도로, 이자도 그의 권세가 반드시 잠깐 동안만 계속되리 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잠깐 동안의 기간은 계13:5절에서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할 기간으로 명시된 "마흔 두 달"을 가리킨다. 2절에 이 자의 생김새가 표범과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했다.

이같은 표현은 단7장에서 큰 바다에서 나온 세 짐승과 같은 모양을 의미하는데 이 자의 이같은 모습은 그의 잔인성, 잔포성, 독재성을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이 자의 권세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자기의 능력으로 인한 것도 아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고" 하는 말씀에서 이 자는 사단의 대리권 자임을 암시해 준다. 일찍이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 할 때,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 라"는 말로 유혹한 일이 있었다(마4:8-11).

예수님은 사단을 심판하실 분으로 이같은 사단의 간교한 제의에 대해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 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지만 종말에 등장할 적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대적할 사단의 대리자로 오직 사단의 영광과 그의 권세를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적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이상히 여김을 받고 신으로 경배를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이 바로 그의 사망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재생 사건이다.

3절에서 언급해 주는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란 말씀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12절에서는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란 말에서 적그리스도가 입은 머리의 상처는 어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일어난 일단의 암살 음모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자는 죽지 않고 그 죽음에서 사단의 능력을 힘입고 다시 살아난다. 이같은 일은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족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졌는데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랐다"고 했으며 짐승과 용에게 경배하면서 짐승을 세상의 메시야로 환영하며 복종하기로 맹세하는 찬가를 부른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이 자에 대하여 "짐승이 큰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했다(계13:5).


참람된 말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말이요, 마흔 두달 일할 권세는 한 이레 중 후반부에 속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기를 가리킨다. 바로 이 자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는 것이다. 이 자에 의하여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고 이 세상에 잠 정적인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이 자의 우상이 세상 곳곳에 세워지게 되며 사람들은 그곳에 신적인 경배를 드리기를 강요당할 것이다. 이자가 온 세상 인류에게 찍어 주므로 지옥으로 이끌어 갈 "짐승의 표"도 이때부터 세상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오른손과 그 이마에 찍히게 될 것이다. 물건의 매매는 엄격히 통제를 받게 될 것이며 만약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절하면 "물건의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 (계13:14-18).

적그리스도에 의해 한 이레의 절반 기간에 이루어질 가장 놀랍고 큰 일은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며 "잔포하여 미운 물건"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말에서 장차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임을 믿는다. 물론 이 성전은 교회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릴 구약적 예배 행위 의 장소를 의미하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구약적인 "제사와 예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등장한 후,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사에 간섭하게 되며 끝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 행위를 금지시킨다. 이같은 적 그리스도의 행동은 원래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이며 그의 등장 자체가 사단의 대역자(代 役者)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단을 경배케 하기 위한 목적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적 그리스도 간에 마찰이 일어나며 이 마찰에서 적그리스도는 강압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인 핍박을 가하게 되며 자신에게 저항하는 무리들에게 억압 정책을 사용하 므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대 환난의 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이 자의 모습은 단8장에서 예루살렘에 등장하여 2,300 주야간 짓밟은 바로 구약적 작은 뿔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처럼 잔인하게 행동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우상을 성전에 세워 유대인들로 그곳에 경배케 하며 자존하여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여 숭배함을 받고자 할 것이다(살후2:4).

그러면 이같은 예언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일까? 먼저 이스라엘의 영토적인 회복을 생각하게 한다. 영토적인 회복이 없이는 적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도, 유대인을 위한 한 이레간의 평화 조약도,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핍박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영토적 회복은 이미 지난 1948년 5월 15일에 성취되어 이같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려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려면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독립은 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아랍인의 수중에 넘겨진 채 얼마 간의 기간이 지나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67년 6월 5일에 일어 난 6일 전쟁시에 이스라엘 군대는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민첩성과 뛰어난 군사력으로 그 다음날인 6일에 단번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제는 회복된 이스라엘 영토에 유대인의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까지 되찾았으니 예루살렘 성안에 성전을 세울 수 있는 여건이 또 하나 갖추어진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성전 터전이다. 유대인들은 지금 성전을 세울 만반의 준비를 모두 갖추어 놓고 있는 형편인데 과연 그 성전을 어디에 세우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다.

원래는 지금 "오말 사원" 터전이 예루살렘 성전의 터전이라고 믿고 있으나 어떤 유대인 역사가는 지금의 "통곡의 벽" 자리가 성전 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성전 터전만 확보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는 일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적 그리스도는 결코 형통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시나리오는 이미 그렇게 섭리되어 있는 것이다. 27절 마지막에 가서 이자의 최종적인 운명을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이 황폐될 것이란 사실은 26절 마지막에서 "또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언급되었는데 이처럼 예루살렘 을 황폐케 한 자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 게 쏟아지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 심판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아니한 "아마겟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 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 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계19:19-21 =

그리고 하나님의 최종적인 진노는 일곱 번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 으실 때 온전히 나타날 것이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 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 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계16:17-21 =

7. "한 이레"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

"한 이레"와 교회와는 절대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이같은 연관은 세 상과도 무관할 수 없다. 우리는 다니엘서 9장의 계시를 통해서 인류의 종말에 이를 "7년의 종말적 기간"의 도래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주도되는 "한 이레의 언약"에 의해 예견(豫見)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큰 바다로 언급된 지중해 지역의 군사력과 이 지역을 중심한 열강들의 포진(布陣)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그 가운데서 혹 "열 뿔"로 상징되는 10개국 연맹체가 등장하는가의 여부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안다.

열 뿔의 얼굴로 등장하는 10 개국 연맹체는 그것이 작은 뿔이라고 하는 한 왕의 출현과 함께 그 왕을 "열 왕(10王) 중의 왕"으로 모시고 그 얼굴을 내밀 것이다. 바로 이 왕(장차 나타날 왕)의 주도 아래 세계 열강과 함께 중동 지역의 평화 를 위한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었을 때, 그 때가 7년 환난에 들어간 종말의 징조적 신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일이 있기 이전에 있어야 할 또 하나의 필수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 사건이란 계시록 13장에 나와 있는 적그리스도의 거짓 부활이다. 7년간의 평화 협정은 격변하는 정변 속에서 대적자의 저격을 받아 죽은 적 그리스도가 사단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경이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이 자에 의해 성사되는 평화 조약이기 때문에 이같은 종말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계13:3-5,14).

그러나 이같은 사건의 징조는 유대인들을 위한 "한 이레"의 종말적 징조로 주신 계시이며 이때 깨어 있는 성도들은 다니엘서의 한 이레의 예언을 통하여 이 세상이 이미 종말에 이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다니엘서는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 되었기 때문에 인봉된 책이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요한계시록과 함께 인봉해서는 안될 책으로 그 비밀이 요한계시록과 함께 열려져 있는 책이다.

① 두 증인과 "한 이레"의 언약


두 증인의 등장과 한 이레와는 서로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니엘서 9장을 연구하는 일에 이 일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계 11:1-3절까지의 말씀에서 "마흔 두 달"과 "1260일"이라는 두 기간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날수는 동일한 기간을 의미해 주면서도 서로간 다른 시기임을 보여 준다. 즉 마흔 두 달과 1260일은 같은 3년 반의 기간이면서도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는 두 증인의 1260일간의 활동 모습과 그들이 1260일간의 예언 기간이 끝날 때 그들이 당할 순교적인 사건의 자세한 내용이 계시되고 있다.

그런데 2절 끝에 가서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언급된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한 이레의 절반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중에 있을 사건이다. 이 사건의 구약적 배경 은 단7:25절이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 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 기간은 말할 것도 없이 후 3년 반기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3절을 보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다. 이 기간은 2절에서 이미 언급된 기간인 마흔 두 달과는 다른 기간이며 이 기간에 일어나는 사건도 2절의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다. 두 증인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의 활동하는 모습은 계10:11절에서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 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명령을 받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그 모습이다. 물론 이들은 이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거부하며 적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오인하고 환영 일색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다시 예언하는 영원한 복음은 그 전파의 기간 이 1260일간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 예언을 전파하는 시발점은 1260일에 들어서는 그 첫날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1260 일의 그 첫날이 7년 환난 기간의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또다른 종말의 시대적 징조를 보여 주셨는데 그 징조가 바로 "두 증인"의 역사적 등장인 것이다. 이것을 다음의 도표로 알기 쉽게 나타내 보기로 한다.

"한 이레의 언약"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위의 도표에서와 같이 유대인들과는 달리 교회는 "7년간의 종말 기간"에 이른 결정적인 시대적 징조를 두 가지로 알 수 있다. 하나는 다니엘서에 계시된 적 그리스도에 의한 "한 이레의 언약"이요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영원한 복음의 예언의 사역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다시 예언하는 사명자의 등장과 그의 사역의 시작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② 두 증인은 누구인가?

다니엘서이건 요한계시록이건 두 증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안 다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이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 들을 위해 놀라운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종말에 사단은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열 뿔등 그의 수많은 하수인(下手 人)들을 내 보내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활동하므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정면 대적한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는 교회에서 선발된 신실한 일꾼들인 두 증인을 등장시켜 닥쳐올 대환난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 하시고 짐승과의 영적 투쟁에서 승리케 하시기 위해 그들로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두 증인"은 누구인가? 먼저 계11장에 나와 있는 본문에서 이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한다. "이는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 고 하였다. 두 감람나무란 스가랴서 4:11절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 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고 했다. 스가랴서에서 설명해 주는 바는 이 두명의 상징적인 인물은 그 당시 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그 당시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신의 권능을 주셔서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셨다. 그렇다고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이 스가랴 시대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란 뜻이 아니다. 말하자면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그들처럼 하나님의 신의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하나님의 종들이란 의미다. 기름 발리운 자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의미한다. 그러면 두 촛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계1:20절에서 "일곱 촛대 는 일곱 교회니라"는 말씀에서 촛대란 교회를 상징하는 말이다. 감람나 무의 경우나 촛대의 경우, 둘이란 수효는 구약적인 증인의 수효를 가리킨다(신19:15).

계시록에서는 종말적인 교회를 영적인 두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그 하나는 촛대 교회요 다른 하나는 음녀 교회이다. 음녀 교회는 사단 편에 속하여 적 그리스도와 손을 잡고 촛대 교회를 핍박 하는 배도 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들이 가진 금잔(복음)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 안에는 진리가 없고 사단의 속임수와 궤휼과 적 그리스도 앞에 경배케 하는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계17:4). 그런데 촛대 교회의 경우는 다르다.

이 여자의 모습에 대하여 계12:1 절에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썻더라"고 했다. 이 여자가 종말적인 환난 날의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모습이다. 해를 옷으로 입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뜻이다. 이 여자의 발 아래는 달이 있다고 했는데 달은 해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는 빛과 소금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을 상징한다. 머리에 쓴 열 두 별의 면류관은 사도적인 진실한 신앙으로 적 그리스도의 핍박과 대적하여 승리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이 촛대 교회에서 나온 하나님의 종들인데 마치 하나님 앞에 모셔서 있었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과 같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교회로 사단의 권세와 싸워 승리케 하는 역사를 이룰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계10장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증인의 상징 인물로 등장한 인물이 이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한 권세있는 천사의 명령에 따라 그 천사의 손에 쥐어져 있는 펴 놓인 작은책을 받아 먹게 되는데 이 책을 먹는 사람은 이 책의 맛이 그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다고 했다.

사도 요한이 이 책을 받아먹으니 천사가 요한에게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 여야 하리라"고 명했다. 이 책을 받아먹고 다시 예언하라는 사명을 받은 요한은 11장에 와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기 시작하는데 계11:3절에 가서 예언의 명령을 받은 요한의 모습이 갑자기 두 증인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이같은 계시는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밧모섬에서 기도 하다가 종말의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처럼, 사명 받은 하나님의 종들로 펴놓인 작은 책(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받아먹고(깨닫는 일) 1260일 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두 증인에 대하여 계11:10절에서 "두 선지자"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같은 호칭은 이들이 전 3년 반기간인 1260일간 선지자적인 사명을 이룰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종말의 하나님의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실과 또 이들이 선지자적인 사명으로 순교한다는 사실을 바라볼 때, 계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과 성경적인 한 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144,000명은 하늘 보좌인 시온산에 올라가 어린양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자격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명시해 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말씀해 준다(계14:1-5).

그런데 계7장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어떻게 이곳 어린양이 서있는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와 있는 것일까? 이들이 선발되는 과정이 계7장에 나온다. 땅의 사방의 바람으로 불지 못하도록 네 천사들로 바람을 붙잡게 하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들의 이 마에 인(印)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땅의 사방의 바람이란 큰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들로 이 세상에 전쟁의 바람을 일으킬 4대 열강들이다(단7:1-2-8). 이들이 전쟁발 발 위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작은 뿔인 적 그리스도가 주도하는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권세 있는 천사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 마에 인"치는 역사를 하시는데 이 천사가 계10장에서 사도 요한에게 펼쳐진 작은 책을 먹인 권세 있는 천사이다. 이 천사에 의해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은 사도 요한은 계7:3절에 등장하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11:3절에 가서 권세를 받고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감당하는 두 증인들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계7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종들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 고 부르고 있으니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들이다. 이들이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의 수효가 아닌 것은 4절에서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144,000"이란 말씀 에서 명백해진다.


전체 성도들을 의미한다면 "이스라엘 각 지파에 속한 자들이 인을 맞으니 그들의 수효가 144,000명이더라"고 언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란 말씀이 나와 있는 것은 성도들 중에서 계14장에서 보여 주신 자격자를 선출한 한정적(限定的) 인 수효를 의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7장에서 인 맞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14장에서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있는 것은 이들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마치고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증인은 1260일간 종말적인 예언을 전하다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후,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계11:7-12).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두 증인과 144,000명은 동일 인물들인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이 종말에 큰 권능을 받아 1260일간의 "다시 예언"하는 사역을 감당할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상징주의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어느 신학자들의 견해처럼 신약 시대 에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모습을 두 증인으로 보여주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느 일정한 기간만 복음을 전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으며 특히 그들이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한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교회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지 않는다.


순교는 성도들이 당하는 것이지 교회가 순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부활의 장면이나 승천의 장면도 마지막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이나 휴거의 모습이 아니다. 더욱이 일부 세대주의 자들은 종말에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 려와 이같은 사역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엘리야나 모세는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엘리야는 죽지 않은 몸으로 하늘로 승천했지만 그는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있는 것이다. 변화산에 나타난 엘리야의 몸이 그것을 증거해 준다. 모세는 그 육신이 이미 죽었다.

그런데 한번 죽은 모세가 다시 살아나 적 그리스도에 의해 또 죽임을 당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들은 하늘에서 육신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내려 올 수도 없으려니와 혹 내 려 올 수 있다고 해도 육신의 몸으로 두 번째 죽을 수는 없다. 이들 두 증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사역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준" 사역자들인데 이들이야말로 자기의 양떼들로 신부의 단장을 시켜 종말의 대환난의 날인 시험의 때를 면케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한 종들이다.

주님께서 이와 반대되는 악한 종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이것을 살펴보는 일은 대단히 교훈적인 일이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다(마 24:48-51).

하나님의 교회에서 누가 충성스러운 종인가?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라고 하셨다. 그러면 누가 악한 종인가?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주님의 재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세속적인 목회 생활로 대 환난날에 양 무리의 생명을 죽이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관심 없이 기복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운영하는 종들을 "악한 종"이라고 정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종들로 "다시 예언"케 하시는 영원한 복음의 전달자로 쓰시지 않는다. 이 복음은 종말에 성도들로 회개시키며 신부의 단장을 시키는 중대한 사역이기 때문에 악한 종으로 낙인이 찍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는 세속화된 하나님의 종들을 사용하실 수 없다.

이들은 이 일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더군다나 적그리스도와 싸우다가 순교할 수 있는 종들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종말에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가진 두 증인으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악한 종의 자리에서 빠져 나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반열에 서서 양떼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으로 순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적그리스도와 투쟁하다가 순교할 일꾼들을 쓰신다. 우리 주님은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사도 요한처럼 다시 예언할 사명을 가지고 순교할 종들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계10:1-11).

③ 첫째 화는 무엇인가?


한 이레의 기간 중에는 세 가지 화가 있다. 첫째 화, 둘째 화, 그리 고 셋째 화가 그것이다. 이 화는 7년 환난 기간에 있을 화, 곧 재앙이다. 이 세 가지 화가 7년 기간 중에 어떻게 나타나며 어떻게 진행되는 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첫째 화는 성도를 연단케 하시는 교회를 위한 환난 기간이다. 하나 님의 교회(해 입은 여자로서의 촛대 교회)는 후 3년 반의 대 환난에서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쭉정이를 가르시고 신앙적인 연단을 위한 환난 기간이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것이다. 그 기간이 전 3년 반 후반부서 일어나는 첫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황충이 환난이라고도 부다. 그리고 이 첫째 화의 기간은 한정되었는데 그 기간이 다섯달 동이다. 이 기간 중 교회는 신부의 온전한 단장을 갖추게 되는데 이 기간이 종료됨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는 곧장 후 3년 반의 대 환난(시험의 때) 에서 보호받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횐 옷 입은 무리가 이 환난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성도들이 이 환난 중에서 신부로서의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흰옷 입은 성도들이 바로 첫째 화인 "큰 환난"에서 나오고 있다(계7:13,14).

아직까지 첫째 화의 피해자가 누구냐에 대한 견해가 잘못 인식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첫째 화의 피해자가 불신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해자를 알려면 가해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며 피해자에 대한 자세한 피해 상황도 살펴 볼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첫째 화의 가해자는 악령들이며 이 악령들은 무저갱에서 방금 풀려 나온 더욱 포악한류의 악령들이다. 이 악령의 출현에 대해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때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무저갱을 열게 되는데 그때 무저갱 속에서 올라오는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무저갱에서 땅으로 올라오는 악령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기가 올라 올 때 그 연기 가운데로부터 황충이가 땅위에 나왔다고 했는데 그러면 이 황충이 떼는 무엇인가? 무저갱에서 악령이 올라와 불신자들에게 들어갔을 때 그 악령을 충만히 받은 자들이 "인간 황충이 떼"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황충이는 무저갱의 악령이 그 마음에 들어간 악령들린 자들을 의미한다. 악령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면 교회를 핍박하거나 성도들을 대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저갱에서 땅위로 올라온 악령들이 성도들이나 교회는 방관하고 불신자들에게 화를 준다는 이론은 성립될 수 없다. 7년 환난 기간 중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후 3년 반의 대 환난 시가 된다.

이때 교회는 하나님이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기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예비처"에서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4절의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는 말씀을 성경적으로 잘 분석해야 한다. 풀이나 각종 수목을 해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황충이는 메뚜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들은 인간 황충이 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서 우리는 계7장의 해석이 다른 계시의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만약 7장의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총 수효"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면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들은 분명 불신자들이 된다. 그리고 첫째 화의 피해자는 불신자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교회 중에서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침 받은 자들로 해석하게 될 때, 이들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은 불신자들인 것이 아니라 사명자로 선택받은 144,000명 외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게 된다. 이들은 두 증인과 같은 권능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에 의한 영적인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 증인은 예언하는 날 동안 불사신의 권능을 받아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계11:5). 그러나 일반 성도들은 그렇지 못하다. 적 그리스도는 전 3년 반 후반에 가서 더욱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할 것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자신에게 신적인 경배를 거부하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로 매도하면서 영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두 증인을 더욱 증오하게 되고 그들을 죽이고자 하지만 두 증인은 이 기간 동안 불사신의 권능을 받아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핍박의 손길을 교회로 내밀어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한정적이다. 다섯 달간만 괴롭히게 된다. 이 기간에도 그들은 성도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괴롭히기만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7년 환난 중에 들어간 성도들은 죽어서 천국 가는 소망보다 살아서 메시야 왕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된다.

④ 적그리스도와 교회는 어떤 관계를 갖게 되나?


교회는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며 이 자의 등장과 교회와는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인류의 종말에는 반드시 적 그리스도가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 그리스도란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했던 여러 명의 대적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명의 대적자를 의미한다.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유대인들을 종교적으로 핍박하며 전 대미문의 대 환난을 주는 작은 뿔, 교회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자신을 메시야로 섬기게 하는 배도자, 자기 이름의 표를 만들어 온 인류에게 받게 하는 독재자, 주님에 의해 아마겟돈에서 산채로 체포되어 둘째 사망 속에 던져질 그 자가 적그리스도이며 이 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인류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자의 등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 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 에게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살후2:1-4 =

사도 바울은 위의 말씀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종말에 이르렀다는 미 혹에 빠져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당부하면서 종말에 이른 증거로 두 가지 사건을 보여 준다.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했고 다음에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종말이 이르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배도하는 일이란 진리를 따라야 할 하나님의 교회가 음녀 교회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형태를 말하며 불법의 사람의 출현은 적 그리스도 의 역사적 등장을 의미한다.

이 둘은 결과적으로 사단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영적 유대를 맺고 하나가 된다. 배도하는 일이란 기독교 사상에 흔히 있는 이단의 출현이나 세속화된 교회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시기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종교들이 적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통일된 연합체를 이루는 일을 말한다. 물론 이같은 종교적 연합체의 중심 세력은 기독교가 담당할 것이며 기독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 세력을 주도하면서 세계의 정치와 종교계를 지배하는 커다란 음녀 세력을 형성할 것이다. 이 음녀에 대하여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말하고 있으며 (계17:1)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고 했으며(계17:1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17:5)고 표현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세계를 움직이는 종교 세력으로 계시되어 있다. 다음에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란 곧 적 그리스도의 등장을 의미한다. 여기서 적 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하여 언급해 주면서 이 자가 나타날 때 정말로 인류의 종말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실을 알라고 한 것은 적 그리스도가 등장할 때 이 자에 대한 존재를 성경적으로 능히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권고의 말씀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어떻게 분별하며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주 재림에 관한 성경적인 예언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적 징조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그의 양 무리를 위탁받아 그 양 무리를 치고 있는 목회자들은 주 재림에 대한 이 예언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여 성도들로 "읽고 듣고 지키는 일"을 생활화시켜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격을 갖추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재림을 두려워하거나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 메시지를 듣고 쉬 동심하거나 무서워 떨 사람들이 아니다. 주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그의 신부들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의 재림을 항상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 오지 않았는가?

만약 주의 재림에 대하여 기대와 소망이 아니라 "쉬 동심하게 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메세지를 전한다면 그같은 일은 거짓 선지자들이나 세속적인 기복 신앙에 젖은 목회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일 것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초두에 기록된 말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인 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 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말씀해 주셨다(벧후1:19).

⑤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분별


다니엘서에는 거짓 선지자의 모습이 없다. 그러나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사단의 일꾼으로 "거짓 선지자"를 빼 놓을 수는 없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 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 6 6이니라"
=계13:11-18 =

계13:1-10절까지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으로 종말에 이 세상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11절로 18절까지는 이자의 영적 동반자로 활동할 "땅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짐승"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자가 다름 아닌 "거짓 선지자"이다. 이 자의 정체는 적그리스도와 함께 아마겟돈에서 체포되어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사건의 모습에서 여실히 보여 준다. "짐승도 잡히고 그 앞에서 이 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란 말씀에서 이 자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단 일적인 거짓 선지자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계19:20).


우리가 거짓 선지자라고 말할 때, 많은 무리의 수효를 생각하게 되나 종말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들어 낼 거짓 선지자는 한 명의 인격체이다. 그렇다고 거짓 선지자의 존재가 이 자 외에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종말에 이를수록 더 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난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셨다(마 24:24). 그러나 이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종말에 미혹하는 무리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계13장에 나오는 적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주교의 로마 교황이 적 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비성경적이다. 로마 교황은 열 뿔중의 하나가 될 수도 없고 그 열 뿔을 지배하고 중동의 평화 조약을 성사시킬 작은 뿔도 될 수 없다. 그러나 로마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될 수는 없어도 적그리스도의 동반자로 거짓 선지자나 음녀 교회의 우두 머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로마 교황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세계적�

 PREV :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3) 민병석 
 NEXT :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1)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2)  밤중소리  2004-11-08
12:43:51
     [re]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2)  민병석  2008-12-13
18:57:32
     [re]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2)  민병석  2008-12-13
18:55:49
     [re]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2)  민병석  2008-12-13
18:53:55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