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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1)
 밤중소리  11-06 | VIEW : 10,000


"칠십 이레"에 나타난 종말계시
1. 다니엘에게 임한 "칠십 이레"의 계시

다니엘이 다니엘서 9장에 있는 "칠십 이레"의 계시를 받게 된 시기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입던 그 원년으 로 B.C. 538년경이다. 다리오는 아하수에로의 아들이며 또한 고레스의 장인이기도 한데 메대의 마지막 왕이다. 이때 다니엘은 약 82세 경으로 그의 인생의 만년에 들어선 때이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던 중 바벨론 포로에 관한 예레미야의 계시를 깨닫게 되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써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난날 선지자들이 기록하여 서책으로 남긴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예레미야가 기록한 서책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서책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언케 하신 말씀 중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만에 귀환할 것이라고 하는 놀라운 내용을 읽게 되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폐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 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 "
= 렘25:11-14 =

다니엘은 이 서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신 포로 종료 기간의 날짜도 가까워 오려니와 이미 바벨론 멸망의 예언이 성취된 사실과 자신은 지금 바벨론 시대가 아닌 메대 사람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의 왕이 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 다음에 올 일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에서의 해방이었다. 다니엘의 마음은 기대와 소망에 방망이 쳤고 그는 다급한 생각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다니엘의 기도

예레미야의 서책에서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만에 마치리라"고 하신 말씀을 깨닫게 된 다니엘은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시기를 B.C. 605년경으로 잡는다면 다니 엘이 예레미야의 서책을 읽고 깨달은 시기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 약 67년경이 되기 때문에 포로의 만료 기간인 70년이 곧 이르게 되는 그런 시기였다.

이같은 급박한 시기에 다니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작정한 것이다. 다니엘은 3절 에서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칠십 이레"의 계시를 보여 주시기 위해 예레미야의 서책을 읽게 하셨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어 다니엘로 하 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이같은 일은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경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밤에 잠이 오지 못하게 하시고 신하를 불러 역대 일기를 읽게 했는데 그 속에 기록된 내용에서 모르드개의 공로를 발견하게 하여 교만한 총리대 신하만의 음모를 뒤집어 놓게 하는 역사를 이루게 하셨다(에6:1-3).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서책에서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70년간의 비밀을 깨달았지만 곧 다가올 그 날짜를 기다리는 것으로 소일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서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도 깨닫게 된 것 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 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 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 렘29:10-14 =

다니엘은 본문에 수록된 장문의 기도에서 이스라엘의 패역한 죄악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호소했다. 이같은 다니엘의 기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보이시는 이상으로 응답 받았다. 이 이상이 곧 "칠십 이레"의 계시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다니엘이 보게 된 이상은 최종적인 이스라엘의 축복으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새로운 왕국의 탄생에 대한 약속이었지만 그러나 이 계시가 성취되기까지는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고난과 패역의 역사의 과정이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고 지나가야 할 일은 다니엘은 이 계시에서 이스라엘이 초림의 메시야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망을 본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에서 다니엘에게 초림의 메시야로 말미암은 이방인의 구원을 보여주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만약 메시야 왕국과 교회 시대를 동일시하여 이스라엘 에게 새로운 교회 시대의 소망을 주시려는 의미에서 이 계시를 다니엘 에세 보여 주셨다면 이스라엘은 당연히 이 축복을 지금 누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교회 시대의 축복에서 지금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계시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새로운 메시야 왕국인 교회 시대를 이루는 일이라면 이같은 계시를 무엇 때문에 다니엘에게 보여 주셨겠는가?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다니엘의 마음속에는 이방인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메시야 왕국은 전혀 없었다. 다만 포로 생활에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장차 이스라엘의 운명이 어찌될 것인가? 하는 긴 안목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의 서책에 기록하게 하신 예언(유대인의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에서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에 관한 예언이지 교회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가브리엘을 통해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칠십 이레"의 계시는 유대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그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이며 종국적으로 그들은 "칠십 이레" 끝에 가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데 그 시기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바라는 최종적인 메시야 왕국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된다고 하는 계시이다.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역사적 기간으로 하나님께서는 "칠십 이레"를 잡으신 것이다.

3. "칠십 이레"에 관한 몇 가지 견해

다니엘서 9장의 "칠십 이레"의 계시는 그 해석이 구구하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이 해석 여하에 따라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70 이레는 69 이레와 한 이레의 합산 기간이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한 이레의 기간을 7년 과 연관시킬 때 종말적인 입장에서 "7년 환난"과 연결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면 여기서 이 "칠십 이레"에 대하여 신학자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부터 알 아보도록 한다.

① 전통적인 견해

이 견해는 어거스틴이 주장한 견해인데 오늘날 보수주의적 견해로 취하고 있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70 이레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초림 에 맞추고 있으며 초림의 중심점은 그의 죽음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된 사건까지 "칠십 이레"의 예언에 포함시킨다.

② 자유주의적인 견해

이 견해는 24절부터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먼 미래에 관한 예언이 아 니란 전제아래 전개시킨다. 이들은 "칠십 이레"의 내용을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에서 성취할 사건으로 본다. 이들은 본문의 내용을 셋으로 구분하여 각기 의미 있는 해석을 가한다. 70 이레의 진행이 처음에 7 이레로 시작되고 다음에 62 이레, 그리고 마 지막으로 한 이레가 등장하여 모두 70 이레를 이룬다.

그들은 처음의 7 이레는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으로부터 49년(7 이레는 49년임) 후인 538년까지의 기간으로, 고래스 왕에 의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 환하라는 명을 받은 그 시기까지로 계산한다. 두 번째로 62 이레는 B.C. 538년부터 B.C. 171년까지의 기간, 세 번째로 한 이레는 안티오쿠 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에 행할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칠십 이레"의 계시를 다니엘서 8장에 나오는 작은 뿔로서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③ 상징적 견해

이 견해는 "칠십 이레"의 기간을 숫자적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두고 해석하는데 이같은 해석을 "상징적 해석"이라고 한다. 이들의 해석을 보면 7 이레는 고레스때부터 초림의 그리스도까지이며 62 이레는 신약 교회 시대요 나머지 한 이레는 주의 재림 전에 있을 적 그리스도의 활동 기간으로 본다. 그런데 이 상징적 견해는 그 말이 의미해 주는 대로 다양한 해석이 취해진다. 어느 신학대학 교수는 7주를 제 1기간으로 삼고 이 기간은 예루살렘의 중건부터 발전 시기까지이며, 제 2기인 62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까지, 남은 1 주간은 예루살렘 멸망 때 까지의 기간으로 보고 있다.

④ 종말론적 견해

종말론적 견해는 70 이레를 역사적 진행 사건으로 인정하고 마지막 한 이레의 기간을 인류의 종말적인 기간인 7년에 결부시킨다. "칠십 이레"에 대한 이 종말론적인 견해는 단7장의 작은 뿔을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는 적 그리스도로, 그 자가 예루살렘에서 종교적 핍박을 감행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을 한 이레의 후반기로 보고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할 한 왕의 등장"을 7장의 작은 뿔, 곧 적 그리스도로 본다. 그런데 이같은 종말론적 견해도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견해를 취하는 해석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는 하나의 신학적 종파가 "세대주의 신학"에서 나온 종말론 추종자들로 이들을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라고 부른다. 요즘 신학계나 종말론을 연구하 는 신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한 이레를 7년의 종말 기간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그것을 모두 "세대주의적 해석"이라고 매도하지만 개혁주의 적 종말론에서 해석하는 "칠십 이레"의 견해를 세대주의자들의 주장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⑤ 세대주의적 해석과 개혁주의적 해석의 차이점


"칠십 이레"에 관한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해석과 개혁주의적 종말론 의 해석은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동일시하기 쉬우나 사실인즉 엄격한 구별이 따른다.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다니엘서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건과 연결시켜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한 사실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지만 교회를 위한 종말 계시로 주신 "요한계시록"까지 유대인들의 종말 계시로 다니엘서와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세대주의에서는 "70 이레"의 70을 숫자적인 연대로 계산한다.

그리고 그 중, 마지막 부분의 한 이레에 대해서는 69 이레와 역사적으로 연결 된 선상에서 해석을 취하지 않고 "장차"라고 하는 미지수의 역사적 공간 기간을 두고 오랜 훗날인 인류의 종말과 연결시켜 "종말적 기간인 7년"으로 해석한다. 여기까지는 두 입장의 견해가 별로 상충되는 점이 없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이 한 이레 기간을 유대인들을 위한 기간으로 해석하는 나머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여섯 번째 세대가 되는 교회 시대에서 7년을 제외시켰기 때문에 결국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교회의 7년 환난 전 휴거설을 절대적 주장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7년 환난 기간은 유대인들의 기간이며 유대인들의 회복을 위한 회개 기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이 기간을 한 발 자국도 지나갈 수 없다는 주장이 그들의 지론이다.

이같은 그들의 주장은 결국적 그리스도는 7년 환난 중에 등장하므로 교회는 적 그리스도에 의 한 아무런 핍박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공중으로 휴거 되어 공중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7년간의 공중 혼인 잔치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으며 이 견해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견해는 그렇지 않다. 물론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 의해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적 그리스도에 의해 신앙적인 핍박을 받게 되며 적 그리스도와 영적 투쟁을 하는 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기간이 전 3년 반을 이루는 한 이레의 전반부가 된다.

그리고 교회의 공중 휴거는 7년 환난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지상 재림 때 거의 동시적으로 공중으로 휴거 된다는 성경적 증거를 확신한다. 그리고 다니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장래에 관한 종말 적 계시이지만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해 주신 종말적 계시임을 믿는다. 이같은 견해 차이는 어느 면으로 보면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 럼 보이지만 "시한부 종말론" 같은 시끄러운 문제가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싹이 트게 되며 주님의 지상 재림시에 따르는 성도들의 처신 문제와 천년왕국에 있어서의 제반 문제에 비 성경적인 문제들이 대두되어 종말론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여기서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칠십 이레"의 견해를 도표로 보기로 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7년 환난"도표



세대주의 종말론의 "칠십 이레"의 도표


⑥ 다니엘서 9장의 종말론적 의미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의 장래적 운명을 계시해 주시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최종적인 구원의 소망으로 메시야 왕국을 보여 주신다. 이 소망이 "칠십 이레"가 끝마쳐질 때 성취된다는 사실과 그 70 이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과 정을 간략하게 보여 주신다. 우리는 이 어려운 계시를 해석하는 일에 신학적 선입견에 사로잡혀서도 안되고 신중함이 없는 경솔한 결론을 내려도 안 된다.

가장 안전하고 무리 없는 해석 방법은 다니엘서 전체 의 문장을 이해하고 그 문장의 맥을 따라 해석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27절에 "한 이레의 절반"이란 말이 나온다. 한 이레의 절반 이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같은 기간이다. 이 기간에 대한 다니엘서의 맥은 바로 단7:25절에 나온다. 그러므로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 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대상은 다른 존재가 아닌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여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을 짓밟는 작은 뿔인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계시일수록 문장의 배열과 낱말 하나 하나에 큰 주의력을 가지고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이사야 34장에서 이처럼 권고하셨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34:16).

4. "칠십 이레"의 해석

① 문제는 9장 24절로부터 시작된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 계시를 주면서 들려 준 말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 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는 말씀을 주었다(단9:22,23). 그러면 다니엘이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지혜와 총명으로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이 메시지를 총론적으로 들려주신 24절은 "칠십 이레"의 결론이 된다. 만약 24절을 "칠십 이레"에 대한 결론으로 보지 않고 24절부터 27절까지 계속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해 석한다면 계시의 이해가 불가능해 진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 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단9:24 =

②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란 어떤 대상을 의미하는가?


24절 초두에 나오는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란 대상은 본문 해석에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그러므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 무 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얻지 못하면 여하간 "칠십 이레"의 계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징적 해석의 경우나 보수적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대상을 "신약 시대의 성도 들과 하나님의 교회"라고 보고 있는 반면, 종말론적 입장에서는 그 대상을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성"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시의 대상이 이처럼 상충(相衝)되면 그 아래 부분에 나오는 모든 계시는 하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는 이스라엘(유대인)을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므로 전혀 상반된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계시는 다니엘에게 주셨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란 말의 "네"라고 하는 대상은 다니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란 말은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과 다니엘의 고국을 의미하는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異議)가 있을 수 없다. 다니엘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과 신분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이요 하나님의 선지자일 뿐 이다. 다니엘은 아브라함의 경우와는 다르다.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증거해 주는 대로 하나님의 성도들과 교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경우는 다르다. 언제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백성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며 다니엘의 거룩한 성이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해 준다고 말씀하셨는가? "네 백성"은 다니엘의 혈통적인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들을 의미하며, "네 거룩한 성"은 다니엘의 고국에 속한 예루살렘 성을 의미해 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네 백성"을 신약 시대의 성도로, "네 거룩한 성"을 신약 시대의 교회로 해석하는 모순에 빠져 "칠십 이레"의 계시를 잘못되게 오도(誤導)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에 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 말씀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어느 모로 해석해도 신약 시대의 도래를 의미해 주는 말로 들려진다. 그러므로 만약 다니엘에게 말한 "네 민족과 네 거룩한 성"을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으로 해석한다면 이 문제가 미궁으로 빠지게 되며 자칫 잘못하는 날이면 자신들이 매도(罵倒)하는 소위 "세 대주의적 견해"에 동조하는 것이 되므로 무리한 해석인 줄 인정하면서 도 억지로 "네 민족"을 성도로, "네 거룩한 성"을 교회로 해석하는 방 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③ "칠십 이레"로 정한 기한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계시해 주신 "칠십"의 기한은 다니엘의 백성과 다니엘의 거룩한 성을 위한 것이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70 이레의 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이 기한을 하나님 께서 정하신 목적은 이스라엘(유대인과 예루살렘)을 위한 것임을 밝혀 준다. 우리는 여기서 이 70 이레의 기한이 얼마만큼의 기간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기간이 70년이었기 때문에 70 이 레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70이란 숫자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밑에 계속되는 계시에서 70 이 레를 몇 기간으로 나누어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7 이레", "62 이레", "1 이레"등은 제각기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주어진 숫자이며 이것들이 합쳐져서 70 이레가 되었다는 것은 7, 62, 1등에 모 두 어떤 한정된 기한이 내재되어 있음을 가리키며 70은 이들의 합산이 된 기한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70 이레란 기한을 성경에서 제시해 주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기간 산정(算定)을 시도해 보도록 한다. 첫째 번 시도는 한 이레를 7일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나타난 숫자 그대로의 해석 방법이 되겠다. "1 이레"란 "1 주간"(週間)을 의미하며 날수로는 7일이다. 그러므로 70 이레란 70 주간으로 날수로는 490일이 된다.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이레를 7일로 계산하는 경우,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발한 지 49일만에 중건이 완료되어야 하며 그 후 434일만에 한 왕에 의한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후 7일만에 메시야가 끊어져야 한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 들어간 기일 은 고작 490일에 불과하다. 만약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B.C. 445년에 내 려졌다고 한다면 초림의 메시야는 늦어도 B.C. 448년에 오셔서 B.C. 446년경에는 끊어져야 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을 더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므로 이런 해석 방법 을 취할 수는 없다.

한 이레를 7일로 계산하는 경우의 "칠십 이레"의 도표

두 번째 시도는 한 이레를 7천년으로 계산하는 방법의 해석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의해 하루를 천년으로 잡는 계산이다(벧후3:8).

한 이레를 7천년으로 계산하는 경우의 "칠십 이레"의 도표

위 도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한 이레를 7천년으로 환산하는 경우, 69 이레까지의 기간은 483,000년이 된다. 이스라엘의 중건령이 난 시기로터 메시야의 끊어질 기간이 483,000년이나 된다면 아직 초림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려면 480,50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이 취하신 다른 또 한가지 방법의 일수의 계산법이 나와 있다. 그것이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는 계산법인데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40일간의 정탐 기간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의 방황 생활을 하게 하신 일이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14:34). 이런 형식의 날 수 환산법은 또 있다.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 수를 정하였나니 곧 390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1일이 1년이니라"(겔4:5,6).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하는 경우의 "칠십 이레"의 도표

위의 도표와 같이 이 같은 방법의 계산으로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내 려진 해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그 기간까지를 환산하면 초림의 메시야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경우와 거의 일치가 된다. 우리는 연대 계산에 있어서 너무 숫자적인 정확성에 얽매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연대란 오래된 사건일수록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구약적인 연대는 정확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신약의 연대도 최근에 와서 크나큰 오류를 발견하여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모든 연대를 다시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주장 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의 A.D. 연대는 A.D. 530년경 시리아의 "디오니 시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최근에 와서 그가 서력 기원을 정할 때 4년의 착오가 있었다고 하여 서기 원년에 4년을 소급하여 B.C. 4년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여러 가지 혼돈을 야기 시키고 있다. 상징적 해석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 연대 해석이 유별나다. 한 이레를 7일로 환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이레를 7년이나 7천년으 로 환산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징적이란 애매한 낱말 속에 그 책임을 넘겨 버린다.

한 이레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의 "칠십 이레"의 도표

이들은 단9:26,27절에 두 번씩이나 나오는 "장차"의 기간을 전혀 고 려하지 않고 69 이레와 1 이레는 중단함이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 장한다. 이같은 상징적 해석의 모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는 언급을 회피하고 그 연대를 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이레는 예루살렘의 중건 기간으 로 간주하고 62 이레는 그 이후 예수님의 초림까지의 기간으로 계수한다. 이런 계산 방법은 어떤 성경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다. 연대로 는 계산하기가 어려우니 임의적으로 이같은 해석을 취하고 상징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이라면 "70 이레"나 "7 이레"나 "62 이레" 나 "1 이레"를 설정한 의미가 전혀 없게 된다. 그럴 바에는 네번 다같은 숫자를 나열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고 왜 제각기 다른 숫자로 표현 한 것일까?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고 명시된 70 이레의 시작의 연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산되어 버린다. 상징적 해석은 한 이레의 기간을 전 신약 시대의 기간으로 간주한다는데 특색이 주어진다. 그러면 위의 도표에 나타난 대로 아무리 숫자 가 상징적이라 하더라도 같은 연대의 경우는 같은 숫자로 나타난다던 가 연수의 차등에 따라 비례해서 숫자가 배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이레를 해석함에 그 절반 기간인 1260일은 디도의 침공에 맞추 고 나머지 절반인 1260일은 디도 침공 때부터 주의 재림까지로 잡고 있다. 주의 승천 시기로부터 디도 침공 시까지는 불과 3,40년에 불과하고 그 이후 재림시까지는 오늘까지 거의 2천년에 이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똑같이 절반의 기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한 이레의 기간을 2천년으로 잡았다면 69 이레의 기간은 적어도 숫자의 형 평상(衡平上) 69배가되는 138,000년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다만 상징적이란 미명 아래 해석하는 사람 멋대로 자의로 두들겨 맞추어도 된다는 것인가? 이처럼 7 이레나, 62 이레나, 70 이레나,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상징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끊어짐"이나 "한 이레의 절반에 일어날 제사와 예물의 금지"에 대해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신 것일까?

④ "칠십 이레" 후에 일어날 일

24절에 나오는 말씀이 결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구원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 "칠십 이레"의 기한으로 알 수 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고 하신 말씀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난 시기, 말하자면 69 이레가 되었을 때에 이루어질 일이 아님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는데 그 70 이레의 기한이 마감되었을 때에 성취될 예언임이 문맥상 분명한 것이다. 다니엘서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70 이레의 끝을 주의 재림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면 주의 재림 시에 비로소 복음이 세상에 전파된다는 말인가? 왜냐하면 정해진 70 이레 후에 이 같은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4절 하반부에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 라"고 말씀해 준다. 또 25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 나는 그 왕, 26절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이 왕 등은 모두 동일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출현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왕"이 일어나고 또 "그 왕이 "끊어져 없어질" 시기는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난 후인 69 이레 시에 있을 일이다. 그런데 24절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그 기름 부음을 받는 시기가 70 이레가 마쳐졌을 때이다. 먼저 기름 부음을 받고, 끊어져 없어질 왕이 등장한 후, 온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다. 그런데 24절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구원의 사역이 마쳐진 후인 70 이레의 끝에 가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는 것"으로 나와 있다.

⑤ "칠십 이레"와 이스라엘의 구원 시기


이스라엘은 분명히 그들의 민족적인 구원의 시기가 있다. 복음은 보편적이며 예수님의 초림 이후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동일하게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시까지 그들의 마음을 완악 하게 하셔서 복음을 받아 드리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거역하고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 고 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 조상의 죄악이 후손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성경적 증거는 많다. 특히 바울은 롬11장에서 이 문제에 대 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 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 "

= 롬11:25,26 =

유대인의 구원은 확실히 이방인들의 구원과 구별되었다. 구원의 방법이 구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시기가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시기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 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으며 이 시기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 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들이 돌이켜질 때는 주님이 그들 앞에 재림하실 그 때임을 명시해 주고 있다(롬 11:26,27).

이같은 성경적 증거는 단9:24절의 해답이 된다. 즉 이스라엘의 구원의 시기는 70 이레가 끝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의 끝, 곧 메시야의 재림 시기에 있을 것임을 증거해 준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민족적 구원에 대한 언약을 주셨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것은 메시야 왕국의 참여에는 구원받은 무리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하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기들 나름대로 메시야 왕국의 약속을 받고 그같은 소망을 가졌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메시야 왕국을 대망 하는 유대인들에게 약속되어 있다. 지금은 그들이 이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70 이레가 이르면 그들은 이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한 "칠십 이레"의 계시를 주시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언급하신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이룰 때 유대인들이 받을 구원의 혜택은 무엇인가?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유대인이 종말에 받을 구원의 은혜는 세 가 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죄가 끝났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상과 예언이 응한다는 것이요, 세 번째는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예언이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 한 의가 드러난다"는 말은 "죄가 끝났다"는 말에 포함된 말이다. 이 일에 대하여 롬11:27절에서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종말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한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과 일치된다.

허물이 마치는 것도 죄악이 영속되는 일도 영원한 의가 드러 나는 일도 죄를 없이하는 것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는 말씀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거룩함을 얻을 일에 대한 예언인데 이에 대하여 이사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 급되어 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 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 니"란 말씀이 그것이다(사4:3). 이사야의 이 예언은 이중적인 해석이 가 능한데 녹명된 자, 남은 자들의 대상이 이방인 가운데 생명책에 기록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되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적용시켜야 되는 것이다(슥14:2).

주의 재림의 날에 이스라엘은 비로소 민족적인 회개를 이루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남은 자의 구원을 얻게 된다. 이때 그들은 그들의 "죄악이 영속될 뿐 아니라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날에 이스라엘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며 회개하므로 주를 영접하는 모습이 스가랴서에 생 생하게 그려져 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 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 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 슥12:10,11 =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란 부분에 대한 해석도 종말론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인류의 종말에 관한 계시는 신 구약 성경에 굉장히 많이 있다. 이 일에 대하여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 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계10:7). 물론 이 말씀은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마지막 대접 심판에 관한 엄중한 경종이시다.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의 해석에는 주의 깊은 관찰력이 필요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단9:24-27절에 이르기 까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등장하는 메시야의 언급이 세 번이나 있다. 한번은 25절에서 메시야가 등장하는 시기를 보여 주시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란 말로 계시되고 있다. 다음 26절에서는 그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일에 대한 곧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당할 시기적 계시로 "62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 는 말씀을 주신다. 그리고 마지막 한번의 등장이 24절에 나오는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메시야의 위치는 첫째와 두 번째와는 다르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인 구 원을 이루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종말적인 "이상과 예언"이 모두 응한 시점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메시야의 위치는 메시야 왕국에서의 왕으로서의 기름 부음 받음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 이다. 메시야의 이같은 기름 부음에 관한 성경적 증거를 찾아보면 다 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 슥14:9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 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 다"
= 계11:15 =

예수님은 "주의 나라"에서 왕 노릇하신다(마20:21). 주의 나라는 영원 한 나라인데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메시야를 왕으로 섬겨 복종할 것 이다(단7:27).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표현은 왕으로 즉위한다는 뜻인데 (시45:7)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고 그의 왕국을 세우시고 친히 왕 노릇하실 것이다.

단9:24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구원

⑥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예루살렘의 중건령은 "70 이레"의 계시에 대한 출발점이 된다. 그런 데 이 중건령에 대한 시작 연대가 문제가 된다. 여러 가지로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성경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로 잡혀간 이후 세 번에 걸친 귀환령이 있었다. 그 첫 번째 귀환령이 고레스 왕 원년이다. 이 해를 B.C. 536년경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이 당시의 귀환령을 보면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령"이었음을 알게 된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 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스1:2,3 =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이상으로 보여 주면서 "너는 깨달아 알지니 라"고 말한 중건령은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 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었다. 그리고 이 연대는 다니엘이 이 이상을 본 시기와 거의 같은 연대이므로 이 설을 취할 수는 없다. 다음에 두 번째의 귀환령이 아닥사스다 왕 7년이 되는 B.C. 457년경 에 있었다. 그러나 이 때의 귀환령 역시 예루살렘의 중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 물을 드리기 위한 영이었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 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 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 . . . 또 네가 바벨론 온도(道)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 돈으로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과 그 소제와 그 존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전 단 위에 드리고 . . . ." = 스7:12-20 =

세 번째 귀환령은 아닥사스다 왕 20년이 되는 B.C. 445년경에 내려 졌다. 이 때 내려진 "귀환령"이야말로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중건령"과 일치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 귀환령은 먼저 번에 있었던 두번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 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 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 느2:5 =

왕의 신임을 얻고 왕 가까이서 왕을 섬겼던 느헤미야의 눈물겨운 호소가 주효하여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로 예루살렘 중건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같은 왕의 조서는 예루살렘 성은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에 타 없어졌으므로 예루살렘이 황무하여 유대인들이 당하는 곤 경이 극심했으므로 느헤미야가 이 사실을 왕께 아뢰어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느1:3. 2:11-17).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70 이레의 정확한 계산 과 그 연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기는 B.C. 445년경이 되는 해로 느1:1절에서 밝혀주는 대로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이다.

⑦ 7 이레와 62 이레간에 되어질 일


하나님의 계시에는 년, 월, 일에 관한 기간은 명기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징조에 대해서는 언제나 분명히 하고 있다. 25절에 있는 "예루살 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사건을 내다볼 수 있는 징조적 기간의 출발점 이다. 그러면 이처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어떤 사건의 징조 를 알려 주시기 위한 계시가 되는가? 그 다음에 나오는 문제에 대한 시기를 알려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62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 . ." = 단9:25,26 =

여기서 69 이레를 둘로 구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기름 부음을 받 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을 "일곱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언급해 준다. 본문에서 69 이레에 관한 계시를 이처럼 둘 로 나눈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중건령에서 내린 대로 예 루살렘 성은 이 영이 내린지 7 이레만에 준공된다는 뜻이며 다른 한가 지 이유는 이처럼 "일곱 이레와 62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등장할 것인데 그 왕은 성이 중건된 후 62 이레가 되면 끊어진다는 의 미가 된다. 이같은 논법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등장 시기와 그가 끊어질 단절 시기를 구분하고 있지만 그러나 거의 동일하다는 뜻이 된다.

왕이 일어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출범을 의미하며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공생애를 마치고 십자가에서 그의 생애를 마친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복음서를 연구할 때 유대인들은 이 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예수님의 활동을 전후하여 유대인 들은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던 것 같다. 유대 광 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세례를 베푸는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메 시야인지의 여부를 물어 본 일이라든가(요1:19-27) 세례 요한이 옥중에 서 주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고 질문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들 이 메시야의 출현에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마11:2-6).

이런 그들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단9장의 메시야 예언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기름 부음 을 받은 자, 곧 그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란 단9장의 예언을 성취케 한 것이다. 우리는 24절에서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한 말과 25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란 말 에서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의 차이점에 주의해야 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초림의 메시야로 세상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기름 부음을 받을 자란 메시야 왕국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나타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⑧ 69 이레의 계산

우리는 하나님이 가리켜 주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1 이레를 7년으로 환산하는 연대의 계산법을 적용했다. 그러면 69 이레는 곧 483년이 된다.

왜 A.D. 33년이나 34년이 아니고 A.D. 38년으로 계산되느냐에 대한 반론에는 인간의 연대는 성경적인 연대와 일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밖 에 답할 재료가 없다. A.D. 연대를 계산해 내 놓은 역사적 연대는 A.D. 530년경이다. 벌써 1.400여년이나 지난 옛날이다. 그런데도 그 계 산이 잘못되었다는 반론이 근래에 등장하여 A.D. 원년을 B.C. 4년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사용한 연대 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와 정확히 연결시켜 그 연대를 산출해 낼 수 없다. 성경에서는 공생애에 들어설 당시의 예수님의 나이에 대 하여 30세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눅3:23).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의 연대 와 정확히 연결시킬 수도 없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인간 사회에서 사 용한 달력은 거의 순수 태음력이다. 그러던 것이 B.C. 47년경 로마에서 1년의 길이로 365.25일로 계산한 "율리우스 역"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지금의 태양력과 비슷한 달력이다. 그러나 그후 1년의 길이가 365.25일 이 아니라 365.2422일임이 증명되어 1582년 10월 4일, 로마 교황 그레 고리 13세의 결정으로 다음날 5일을 10월 15일로 개정하는 법령을 공 포하게 되었다. 이 달력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인데 이 달력을 "그레고리 역"이라고 부른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절기를 지금도 태음력으로 지켜 오고 있는데 그들의 달력에 따르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는 B.C. 의 연대를 4,000년으로 보지 않고 3,761년으로 계산한다. 그러므로 우리 는 지금 1995년도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아담 기원(Since Addm) 으로는 5,756년, 서력의 기원으로는 1756년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들어선 나이를 "삼십 세쯤" 되셨다는 표현은 우리 가 성경적인 연대를 계산할 때 "쯤"으로 계산해야 할 것이란 교훈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B.C. 38년은 3,4년의 연도의 오차가 있으므로 채택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5. 남은 "한 이레"의 해석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69 이레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 드려지 는 문제가 바로 "한 이레"에 관한 계시이다. 69 이레에 대한 논쟁이 많 은 이유는 실인즉 69 이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후에 필연적으 로 나오는 "한 이레"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풀이하려는 사람들 중에 69 이레의 기한을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그렇게 되면 나머지 한 이레에 대한 해석 역시 여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담 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이레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26절과 27절과의 상호관계이다.

26절에 나오는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의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 정되었느니라"는 말씀의 기한적(期限的) 위치를 잘 배정해야 한다는 사 실이다. 말하자면 위의 말씀은 B.C. 70년대의 로마의 디도로 말미암은 예루살렘 침공을 의미해 주는 것이냐? 아니면 종말에 등장할 작은 뿔 에 의해 감행될 종말적인 사건이냐는 것이다. 26절에 나오는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란 이 한 왕과 27절에서 말하는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정하 겠고"라고 한 "그"는 한 인물이냐? 다른 인물이냐? 는 문제가 생기고 만약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소와 성읍을 훼파한다"는 "왕"을 70년대의 디도로 해석하고 한 이레의 언약을 맺는 "그"를 같은 인물로 해석한다면 "한 이레"는 전 신약 시대를 의미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한 왕"을 디도로 해석하고 "그"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한다면 문 맥이 맞지 않을 뿐더러 문장 해석상 크나큰 모순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6절에서 장차 나오는 "한 왕"은 사실인즉 한 이레의 언약을 맺는 장차 등장할 "그"와 동일 인물이며, 장차 한 왕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행할 일은 한 이레 중에 작은 뿔이 행할 일에 대한 결론으로 27절 에 있는 내용 안에 들어가 있는 계시임을 알아야 한다.

① 장차 예루살렘에 나타날 "한 왕"


사실인즉 69 이레 끝에 가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 후에 는 이제 남은 것은 나머지 "한 이레"뿐이다. 예루살렘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고 세계에 흩어 버린 70년대 디도의 예루살렘 침공은 크고 놀라운 사건이긴 하지만 70 이레의 계시에는 들어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70 이레의 계시에는 다만 초림의 메시야 와 재림의 메시야의 등장 시기를 징조적으로 보여 주시려는데 그 분 명한 목적이 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장래에 있을 구원의 약속과 메시야 왕국의 도래라고 하는 그들의 소망이 성취되는 일에 표적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한 왕"이 백성을 끌고 와서 예루살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그 왕과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맺을 자"와는 같은 하나의 인물이며 그가 다니엘서 7장에서 말하는 작 은 뿔이요 신약에서 말하는 대적하는 자, 곧 적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이 자의 등장에 큰 의미를 두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멸망의 가증한 자와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은 동일 인물인 것이다(마24:15). 그러면 우리는 성경에서 과연 이스라엘에게 A.D. 70년대의 로마의 디도외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사건에 대한 예언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아야 한다. 먼저 A.D. 70년대에 있었던 사건부터 알아본다. 이 문제에 대한 예언은 예수님에 의해 언급되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 눅19:41-44 =

위의 사건은 분명히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에 관한 A.D. 70년대 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인류의 종말에 또다른 예루살렘 침공 사건에 대하여 예수님이 언급하신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 가 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 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 는 형벌의 날이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 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눅21:20-24 =

수많은 성경 해석자들은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A.D. 70년대의 디도의 침공 사건으로 보는 일에 아무 이의(異議)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이나 "예 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하신 말 씀 등으로 미루어 이같은 예언은 분명 디도의 침공에 의해 A.D. 70년 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속단해 버린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성경 이해에 대한 대단히 잘못된 오해에서 나온 견해이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같은 언급은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일"에 대한 예언이시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을 문장적으로 시도해 보기로 한다.

ⓐ 20절에 나오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하신 문제는 장차 한 왕의 군대(작은
    뿔인 적 그리스도 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할 일에 대한 언급이시다.
이 말씀은 "멸망 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란 말씀과 연결된 사건이다(마24:15). 그리고 종말에 예루살렘이 적 그리스도의 군대들에게 침공 당하여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고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에 대한 언급이시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
    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 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슥14:1,2). 위에 언급한 스갸라의 예언은 A.D. 70년대에 로마의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 사건이 아님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인류의 최종말에 예루살렘이 당할 화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 23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
    성에게 진노가 있겠 음이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사건은 비단 예루살렘 거민 에게만 진노가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로 다"고 하셨는데 A.D. 70년대의 사건은 예루살렘이 디도에 의해 침공을 당하여
    유대인들이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이 땅에 큰 환난"이 겸하여 있었던 일은 결코 아니다.


ⓒ 24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언급이 A.D. 70년대의 사건 으로 착각하기 쉽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 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러
    면 예루살렘은 지금 누가 점유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까지 이방인들의 점령 지역으로 남아 있는가? 만약 예루살 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지 않고 이스라엘에 의해 회복되어 다스려지고 있다면 이미 인류의 종말이 당도(當到)했어야 한다.
    지금 예루살렘은 1967년 6월 6일 이래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영토로 이스라엘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으며 이
    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같은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스라엘의 회복사(回復史)를 간략히 살
    펴보기로 한다.

(1) B.C. 606년 바벨론 포로로 주권 상실

(2) A.D. 70년 로마의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

(3) A.D. 688년 무슬램 교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예루살렘 성전터전에 무슬램교의 "오말 사원"이 세 워졌다.

(4) 1896년 "헐첼"에 의해 "시온 주의" 사상이 주창됨

(5) 1917년 영국의 "발포어 선언" (세계 제1차대전시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의 고향 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선언)

(6)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독립

(7) 1948년 5월 16일 이스라엘과 아랍권과의 1차 중동전 발발 1956년10월 29일 2차 중동전 발발 1967년 6월 5일 3차 중동
    전 발발 (이 전쟁을 6일 전쟁이라고 부르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권에서 점령하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오늘 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마24:24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의 기간을 복음 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복음
    전파의 기간으로 생각하고 "이방인의 때" 가 차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오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회복되면 곧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회복되어 이방인의 때가 지났는데도 주님의 재림은 아직 없다. 왜 그런 것인가? "이방인의 때"란
     인류의 종말에 유대인에게 해당되는 환난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지 신약 시대의 복음 전파의 기간을 의미해 주는 말
     이 아 니다. 종말에는 이방인으로 표현된 적 그리스도의 군대(한 왕의 백성) 에 의해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는 사건"이 일어나며(슥 14:2) 그 이방인에 의해 거룩한 성, 예루살렘 이"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기간 점령을 당하게
     된다(단7:25. 계11:2. 살후2:4). 이 같은 점령기 간인 "이방인의 때"가 지나기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마24: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 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 롬11:25절에서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 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 리라"고 한 사도 바울의 언급을 종말에 이스라엘이 당할 "이방인의 때"
    와 동일한 사건으로 혼돈해서는 안 된다.


ⓓ 그리고 눅24:20-24절에서 언급하신 주님의 말씀이 종말에 관한 예루살렘의 환난이라는 사실은 24절 이후에 계속적으
    로 나오는 말씀이 A.D. 70년대의 예루살렘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확실하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 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가 까
    왔느니라"
= 눅21:25-28 =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이 A.D. 70년대의 사건이 아니란 사실이 22절에 있는 말씀에서 확실히 보여 주신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성경 어디서 인용하
    신 것일까?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란 말씀은 선지자로 예언된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특히 이곳에서 "기록된 모든 것"이란 말씀으로 종말적인 뜻이 담겼음을 암시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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