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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 - 2) 갈대의 척량
 민병석  11-08 | VIEW : 3,915

                 갈대의 척량      


    본문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계시록11:1-2)


  전 신약 시대를 ‘말세’라고 말한다면 이스라엘이 회복된 1948년부터의 세상은 ‘종말 시대’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세상이 7년 환난 기간에 들어서면 ‘재림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은혜 시대에 속헤 있으면서도 실인즉 ‘종말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 시대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으로 7년 환난 이전까지의 시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어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의 막이 내려질 때가 되면 구원의 역사는 추수의 역사로 바뀌게 되며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은혜 시대의 마지막 시점에 서 있으며 주 재림의 시기가 매우 가까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주 재림을 전후한 시기에 무서운 환난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7년 환난 시대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시대가 분명 인류의 종말에 가까운 시대라면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두 증인들의 출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두 증인의 등장 시기는 7년 환난이 이 세상에 임할 그 시점에서 일어날 것이며 두 증인의 예언의 활동은 바로 7년 환난 시대로 들어간 징조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1장의 연구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1. 지팡이 같은 갈대


  우리는 계시록 10장 마지막 절에서 이 계시를 받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명령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예언해야 할 사명이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이 종말의 계시를 받은 후, 얼마 안 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인류의 종말에 전 세계적으로 예언해야 할 예언의 사명자로 명령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1) 이 사명은 사도 요한이 받은 것이 아니라 장차 인류의 종말에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요한의 형제로 예언의 사명을 이룰 종말의 하나님의 종들이 받은 것입니다.

  7년 환난 중에 외칠 예언은 바로 사도 요한이 계시로 받은 ‘펴 놓인 작은 책’에 기록된 메시지이기 때문에 이 책을 받은 요한과 이 책의 말씀을 전할 두 증인을 함께 종말의 사명자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로부터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은 사도 요한은 책을 준 천사의 말대로 입에는 꿀 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에 배에는 쓰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 계시를 받은 요한의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힘센 천사로부터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예언의 사역을 이룰 종말의 사명자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당할 순교를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2) 1절에서 요한은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성도들을 말씀으로 척량하는 잣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잣대는 ‘펴 놓인 작은 책’을 의미합니다. 이 책에 대하여 계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는 말씀에서 지팡이 같은 말씀의 자가 펴 놓인 작은 책인 요한계시록을 가리키며 두 증인은 바로 이 펴 놓인 작은 책의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 예언의 사역을 이룰 하나님의 종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대로 척량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잣대로 사람들을 척량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성도들의 신앙을 말씀의 잣대로 척량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척량은 선지자들의 입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었으며 그 열매는 회개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앞두고 언제나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회개를 외치게 했습니다. 돌아오면 널리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겠다는 메시지가 주된 외침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의 잣대를 가지고 척량하는 선지자들을 환영하지 않았으며 끝내는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 같은 일에 대하여 주님은 마21:35절에서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종하면서 회개를 외쳤을 때 왕은 왕복을 벗고 재에 앉았고 모든 백  성들과 더불어 금식을 선언했고 집에서 기르는 짐승까지라도 다 굵은 베옷을 입히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고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므로 하나님의 척량에 합격했던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시기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펴 놓인 작은 책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이들이 두 증인이며 이들을 계11:10절에서는 ‘두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이들이 전할 메시지인데 힘센 천사로부터 받은 펴 놓인 작은 책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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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러면 왜 두 증인으로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인류의 종말에 살아갈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이 여기시며 탄식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 홍수 당시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노아의 경종을 듣지 않고 세상에 소망을 둔 기복적인 생활을 하다가 홍수심판의 대환난 가운데 떨어져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영적 어두움이 온 세상에 깊숙이 깔려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심판이 임하기 120년 전에 그 심판을 외쳤는데 우리는 주의 재림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자도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어두운 밤,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잠 속에서 교회가 깨어나지 않으면 종말에 있을 대환난 중에서 건지심을 받을 성도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의 추수꾼을 보내시어 모든 교회들로 회개케 하시면서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척량의 모습을 우리는 마25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재림 준비는 종말에 두 증인들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예언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는 이 예언 기간 중, 펴 놓인 작은 책의 예언의 척량에 합격된 성도들이요 미련한 처녀는 불합격된 성도들로 대환난 가운데 떨어져 노아 시대에 홍수에 빠져 그 육체로는 죽임을 당한 그 많은 사람들처럼 말할 수 없는 환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척량의 범위


  요한에게 척량을 명령한 천사는 그 척량의 범위를 지정해 주었습니다.
  (1)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먼저 척량 받을 대상자가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곧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이 7년 환난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회개의 사역에 중점을 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의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에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레위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고 대제사장이 매년 한 차례씩 들어가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러  므로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의 척량은 바로 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척량은 1260일간 계속될 것인데 이 척량에 합격된 자들은 계7:14절에 있는 말씀처럼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씻은 자들’로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을 신부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척량하지 말라고 한 ‘성전 밖 마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성전 밖 마당이란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이 같은 비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을 척량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척량하지 말라는 명령은 펴 놓인 작은 책의 말씀이 이들에게 전할 복음이 아니란 뜻입니다. 종말에 두 증인에 의해 증거 될 메시지는 결코 불신자들이나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회개시키기 위해 다시 예언케 하시는 추수의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성전 밖 마당에 속한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2) 2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습니다. 척량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별도의 조치가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이방인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계시를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다니엘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단9:27절 말씀에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 성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후 3년 반 동안 통치를 받으며 종교적 핍박을 받을 것이란 예언입니다. 세상을 마흔 두 달간 지배할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도 같은 기간 동안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11장에 왜 이 같은 계시가 필요한 것입니까? 이런 계시는 앞으로 닥쳐올 7년 환난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똑같이 당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계시는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가 인류의 종말에 주시는 같은 맥락의 종말적 계시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이방인에게 준 성전 밖 마당은 마흔 두 달 동안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두 증인에 의해서 1260일간의 전 3년 반의 예언의 사역이 끝난 후에 있을 기간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구별을 계11장에서 두 증인의 1260일간의 예언 기간과 그 후에 있을 이방인들의 예루살렘 성의 마흔 두 달간의 지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증인이 예언하는 1260일간과 계12:6절의 1260일간의 양육 기간을 통해서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큰 권능을 받고 펴 놓인 작은 책의 말씀을 증거하는 두 증인의 등장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이 척량에 합격하는 성도가 되어야 신랑을 맞이할 신부의 단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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