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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6 - 1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민병석  11-09 | VIEW : 5,90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본문 :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1 - 15 중략)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22:6-16)  


  요한계시록 22장은 요한이 받은 종말적인 계시의 마무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5절에서 천국에 대한 계시를 마치고 6절부터 계시록의 결론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경종이 나옵니다.

  7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란 말씀이나 10절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그리고 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결론에서 요한계시록이 과연 어느 시대에 적용되는 예언의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요한이 본 계시는 주 재림의 시기에 관한 인류의 종말적인 계시이지 결코 1세기 경, 로마 시대 당시의 교회의 핍박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시대에 있었던 전반적인 핍박사도 아닙니다.


  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만도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주님의 다짐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격려인 것입니다.

  (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6절에서 주님이 그의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계시해 주신 일에 대하여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란 말씀은 ‘약속에 관한 예언을 선지자들에게 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관한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 재림의 대하여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시라고 밝혀 주시므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심을 거듭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지체될 사건이 아닙니다. ‘결코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속히 오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속히 오시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두 가지 면으로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주 재림의 시기 문제입니다. 성경에서는 주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시한부적인 일자를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시한부 종말론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예언이나 종말적인 계시는 종말에 관하여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에서 주 재림에 관한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주 재림의 시기적 문제에 관해 아무 말씀도 없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에서는 주 재림의 시기에 있어서 년 월 일 시에 관한 시기적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 주 재림의 징조적 시기에 관해서는 뚜렷하고 명백한 많은 계시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사실까지 배제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종말적인 계시를 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같은 징조를 성경에서 배우고 주 재림의 준비를 서두를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나 선지서에 예언한 종말에 관한 계시는 모두 징조적 시기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러이러한 징조가 나타나거든 종말이 이른 줄 알라는 징조적 계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무슨 예언이건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인간의 역사적 무대 위에 그대로 연출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언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성취가 없는 예언은 하나님의 예언이 아닙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예언이 하나님의 예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되어질 징조에 대하여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24:33).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때가 가깝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말씀은 종말의 징조가 성취될 그 때를 기준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16:15절에서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라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대해서 12절에서 밝히시기를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을 때’의 시기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도적 같이 오실 수 없습니다. 주 재림의 모든 징조적 사건들이 인류의 역사의 무대 위에서 성취되는 과정에서 여섯째 대접을 유브라데에 쏟을 때, 그 때가 도적 같이 시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다니엘 8장의 ‘한 이레의 언약’이나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의 예언’ 등 종말적인 계시에 나타난 징조의 성취가 나타나 보일 때 이 예언의 말씀이 ‘결코 속히 될 일’임을 알아야 하며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그 때가 되었음을 알고 주 재림을 맞이할 준비에 게으르면 안 될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언제 등과 기름을 준비한 것입니까?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준비하여 대환난의 위기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밤중의 소리란 주 재림의 소식을 전하여 잠든 교회를 깨우는 1260일간의 ‘두 증인’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말씀의 다른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신앙적인 자세에 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재림의 시일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언제나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명심하여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신앙 생활이 주의 재림에 목표를 맞추고 언제나 주님의 재림의 날이 임박한 줄로 알고 항상 깨어 있어 그 날을 준비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뻐하시는 것   입니다. 신약 시대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주의 재림에 그 소망을 두고 살아갈 것을 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그 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생활이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의 한결 같은 소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고 초대 교회의 모든 성도들 역시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갔던 것입니다.

  (2)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는 이 종말적인 계시들이 실질적으로 성취되어 가는 역사적 시점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조차 그러했거늘 하물며 종말에 이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 종말의 계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며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켜 세마포로 단장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여 주신 이 계시의 말씀을 마감할 즈음에 이르러 엄히 말씀하시기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치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종말에 관한 예언은 그것을 인봉할 때가 있고 그것을 개봉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종말적인 계시와 환상을 보여 주신 후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명하셨습니다(단12:4). 구약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집하는 유대인들이 아직까지 다니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 시기에 이르러 ‘지혜 있는 자’가 나타나 이 말씀으로 그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기까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단12:3).

  그런데 예수님은 인봉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은 시기가 인류의 종말에 이르러서가 아닙니다. 초림의 메시야가 오셔서 인간의 구원에 관한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는 재림의 메시야가 오셔서 오메가의 역사를 이루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항상 주 재림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올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되며 이 같은 일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은 신약 시대 모든 세대에 걸쳐 신앙의 경종과 결실하는 생활에 큰 유익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를 명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 계시의 말씀이 지금처럼 계속 인봉된 상태로 놔둔다면 사람들은 종말에 이르는 시대적 징조에 대하여 소경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종말 계시에 어두운 사람들은 준비가 없어 메시야를 맞이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처럼 새로운 시대의 축복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2)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루마기란 의의 옷을 말합니다. 자기 행위의 의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이 옷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옷은 혼인자리에 반드시 입고 들어가야 할 예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옷을 더럽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입고 있는 이 흰 의의 두루마기는 이 세상에서 더럽혀 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빤다는 말은 죄를 회개함으로 더러워진 의의 옷을 깨끗케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큰 환난 중에서 예비처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에 대하여 ‘이는 큰 환난 중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  고 있는 것입니다(계7:14). 이들은 새 예루살렘의 성곽에 있는 12문을 통해서 그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에 나아가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그러나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매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개들이란 말은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소경이요 무지한 파수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사56:10-12). 술객들이란 거짓 기적으로 거짓된 복음을 전해온 이단자들을 말합니다. 행음자란 영적 간음자로 음녀와 그와 동조하는 무리를 말합니다. 살인자란 성도들의 피를 흘린 황충이 떼들을 말합니다.

  결론 : 16절에서 예수님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요한에게 보이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는 그 무엇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그 날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신부들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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