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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1 - 5 ) 생명수의 강
 민병석  11-09 | VIEW : 3,249
  
             생명수의 강


      본문 :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요한계시록22:1-5)  


  우리는 오늘 드디어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 이르렀습니다. 22장은 21장의 계속이자 요한계시록과 성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22장에는 21장에서 이어지는 약간의 천국 모습이 보이며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22장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예언의 마감으로 우리는 22장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규모 있고 거룩하게 예비된 성인지 이 성을 바라본 요한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1. 생명수의 강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의 계시에서 생명수의 강을 바라보고 놀랐습니다.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21장과 22장에서 계시되는 천국의 계시에서 바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에 대하여 수정 같이 맑다고 했습니다. 공해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신선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깨끗지 아니한 것, 맑지 아니한 물, 거룩하지 않는 곳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강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강입니다. 이 강을 생명수의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 속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을 마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 물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더군다나 아닙니다. 이 강물이 차서 넘치면 그 물줄기를 타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일부 주장은 터무니없는 망상입니다.

  (2) 이 생명수의 물이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수 강의 근원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수 강물은 새 예루살렘 길 가운데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이 강의 길이와 넓이에 대한 계시는 없지만 아마도 천국 어느 쪽에서나 길 가운  데로 흐르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강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난다고 한 표현은 천국에 있는 모든 존재의 발생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 양이시기 때문에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말씀해 주는 생명나무 역시 여러 가지 실과를 맺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과일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수 강이란 뜻과 같은 의미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 생명나무의 실과는 지금 우리가 맛보고 있는 실과와 비슷한 종류도 많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가면 그 과실의 실체를 보며 먹겠지만 그 맛, 향기, 모양,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과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실과가 달마다 맺힌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달마다 추수하고 달마다 새롭게 맺힌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실을 따먹어도 곧 다시 새로운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에 그 신비적인 모습을 이처럼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다면 장차 변화된 몸으로 그 곳에 올라가 이 과실을 먹게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년왕국 후에 하나님의 백보좌를 거쳐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 들어가 살아갈 것입니다. 부활한 몸은 영원히 죽을 수 없고 쇠할 수 없는 몸으로 먹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이루어 나갈 수 있지만 그러나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축복으로 놀라운 음식들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수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신 일은 능히 천국에서의 우리의 생활에 먹는 일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그 곳에서 달마다 맺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아니하며 그 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할 것이며 결코 물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4) 그리고 그 생명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생명나무에는 잎사귀도 달려 있습니다. 하기야 나무에 잎사귀가 없다면 보기가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잎사귀들은 천국 생활에 퍽 유익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푸른 것이 사라지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천국의 잎사귀는 천국의 분위기와 환경을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게 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만국을 소성케 한다는 말은 천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거룩하고 존귀하며 굉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표현일 것입니다. 만국이란 그 곳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새롭게 창조하신 존재들임을 새삼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어린 양의 종들과 천국의 왕권자


  우리는 3절 이하에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됩니다.

  (1)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21장에서 이미 계시된 새 예루살렘의 새로운 면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해 주는 표현이라고 보겠습니다. 저주가 없는 것은 그 곳에는 죄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죄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결국은 저주로 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고 멸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이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답고 완벽한 행복과 축복의 동산이었지만 뱀이 그 곳에 들어오고 그의 유혹으로 죄에 물들게 되자 저주의 동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곳 새 예루살렘 성은 영원히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는 곳입니다. 다시는 사단의 유혹이 없을 것은 사단은 이미 최종적인 심판의 처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을 것입니다. 사단이 주관해 온 영적 흑암도 영원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해가 지므로 찾아 온 밤도 이제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들이 맞은 밤은 피곤을 회복시켜 주는 일에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온갖 더러운 범죄들이 이 밤에 저질러졌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영원한 안식 생활의 계속이기 때문에 피곤함이나 육체를 쉬게 할 만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죄로 오염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낮의 햇빛이나 밤의 등불이 필요할 리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그 성을 비췰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는 한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란 말씀을 여러 곳에서 들어 왔습니다. 그러면 그 보좌 우편이란 어느 곳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그 곳에 올라간 후, 비로소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그 신비적인 영적 관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이 하나님의 보좌와 어떤 관계를 가진 것인지 그때가면 이 모든 의문점들이 풀릴 것입니다.

  이곳에서 밝혀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동등성을 충분히 입증해 주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불려지는 그의 종들이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는 정확하게 그 대상자를 찾아내기란 어렵지만 이들은 분명히 ‘만국’이라고 불려진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차별을 두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주변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이란 모든 성도들을 일컫는 말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과 관계된 자들로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순교자들로 첫째 부활자 들이며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하나님의 종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했습니다. 천국에도 왕권자의 권세를 가진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왕 노릇할 존재란 언제나 소수의 무리입니다. 천국의 모든 성도들이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왕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 성도들이 이런 왕권을 가지고 천국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할 그의 종들이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받을 최대의 상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히 주를 위해 이 땅에서 자기 생명을 버린 순교자들로 보는 것이 합당한 해석일 것입니다.

  결론 :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 보고 온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꿈을 꾸었거나 환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  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내려 왔던 사람들은 모세와 엘리야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변화산에 나타나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천국의 모습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천국의 모습을 천사에 의해 간접적으로 계시로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오기는 했지만 그는 천국의 간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장차 이곳에 올라가 살아갈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으로 약속 받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우리가 받을 영광스러운 그 상급을 생각하면서 주를 위해 보람 있는 삶을 살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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