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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1 - 4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민병석  11-09 | VIEW : 4,080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본문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니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1-4)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천년왕국까지의 모든 계시를 배웠습니다. 천년왕국까지는 이 땅에서의 세계였습니다. 이 땅에서의 세계는 육신으로 살아갑니다. 비록 천년왕국일지라도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여 왕 노릇하실 예수님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왕 노릇할 순교자들인 첫째 부활자 외에는 육을 가진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소멸과 함께 이런 지상의 세계는 영원히 막을 내리고 이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경주하는 경주장의 최종 도착지이며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인간 역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를 보면서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천년왕국까지의 나그네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들어가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고 죽은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 이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5:50).

  이 나라를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염원해 온 기업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이유는 바로 이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다’고 하신 그 축복이 오늘 21장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제 천년왕국도 지나갔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내가 보니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이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사야65: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오해한 나머지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육신을 가진 인간들이 천년간 살아갈 천년왕국을 가리킨 것이지만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까지 사라진 후에 새롭게 등장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해가 없기 위해 2절에서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65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 세상을 새롭게 개조하신 것이고 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세계인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땅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자기가 본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이 새로운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요한은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 성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이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 같은 예비는 우리를 위해 주님이 친히 하신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예비를 뜻하며 계속해서 22장까지 이어지면서 그 예비한 모습의 전모를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들 선생이 어디론가 떠나시는 일에 불안을 느끼며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요14:2-3). 이처럼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예비하신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나라이고 또 이 땅위에 속하지 아니한 신령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연대를 산출해 낼 수는 없습니다. 애초부터 그 나라는 완전한 나라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거처할 곳을 위해 더욱 아름답게 꾸미시고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곳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여기서 요한이 밝힌 ‘처음 것들’이란 인간들이 육신으로 살아 온 보이는 세계와 육신적인 모든 생활을 포함한 말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신비에 쌓인 우주의 모든 존재도, 인간의 생활에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보이는 이 처음 것들이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몸은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체로 죽은 자들은 부활체로 새롭게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2) 보좌에서 큰 음성이 들려오기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장막이란 사람이 거처하는 집을 의미한 말인데 하나님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하나님의 보좌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거처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이란 사실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기업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나라에 들어갈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구별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①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죽은 모든 성도들이 영으로 들어갑니다.

  ② 그 곳에는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 영적 생명을 가지고 들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③ 에녹과 엘리야는 살아서 죽지 아니하는 신령체로 변화 받아 들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④ 흰 보좌 심판 시, 천년왕국을 거친 모든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 받아 신령한 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⑤ 주 안에서 죽은 후, 천국에서 영적 생명으로 안식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흰 보좌 심판 시, 부활하게 되며 부활한 몸으로 이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3) 이 새로운 세계에서의 성도들의 삶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친히 뵙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뵈오며 그 하나님을 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새로운 가족 관계로서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는 양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아버지 집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롬8:23).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우리 몸의 구속이란 우리 몸의 부활을 의미하며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살아갈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양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자녀의 생활은 천국에서 이 때 이뤄질 것입니다.

  (4) 이 때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신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흘리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만약 천국에서조차 눈물을 흘린다면 천국은 완벽한 축복의 동산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애통하는 일이나 고통스럽고 슬픈 일, 근심스러운 일로 얼마나 마음을 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자식들을 가르치며 하나의 성년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애태우며 마음을 조이는 걱정과 염려를 하며 살아온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일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멸시를 받았으며 오해를 받는 생활을 해 온 것입니까? 육신적으로 즐겨 하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생애를 주를 믿고 따르는 일에 바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 모든 일에 대한 보상을 누구로부터 받으며 누구의 위로를 받아야 족할 것입니까?

  그러나 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모든 눈물을 씻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로이시며 이런 것들이 또한 주님을 사랑한 증거가 되어 하늘에서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5:11-12절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하셨는데 이 상을 이 때 넉넉하고 만족스럽게 받을 것입니다.

  (5) 이 나라에 대해서 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 천년왕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망이 있었습니다. 옥에서 풀려 나온 사탄은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그들로 죄의 길로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를 하늘의 불로 소멸하셨는데 그 수효가 바다 모래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천년 왕국에서 태어난 2세들입니다. 이 사망이 인류의 마지막 사망입니다.

  천국에서는 사망이란 이미 지나간 일들입니다. 이 나라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사망은 죄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죄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죄의 원인자이며 제공자인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그가 발붙일 곳이 어디든 없습니다. 이제는 천국과 지옥 뿐 다른 아무 곳도 존재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지옥에서 한 발자욱도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망이 없다는 말은 그 생명이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아픈 것도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결론 : 우리들에게는 이 같은 천국의 약속이 분명히 주어져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소망 가운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나라는 환상의 나라도 아니며 신기루 같은 꿈의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공상의 나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한 약속으로 보장하신 우리의 본향이며 이 나라의 상속을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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