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20 :11 -15) 흰 보좌 심판대
 민병석  11-09 | VIEW : 3,747
  
             흰 보좌 심판대        


      본문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20:11-15)


  천년왕국 시대가 끝나면 눈에 보이는 우주의 모든 만상은 사라지고 곧 하늘에 크고 흰 보좌가 펼쳐지는 데 이곳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시작됩니다. 흰 보좌 심판은 인류의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이 이곳에서 이 때 실시됩니다. 산 자란 천년왕국 마지막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은 성도들을 의미하며 죽은 자란 무덤에서 일제히 부활할 부활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부활자들 중에는 지옥에 갈 심판의 부활자들이 있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생명의 부활자들도 있습니다. 역사상 모든 인류의 천국과 지  옥의 갈림 길이 이곳에서 판가름 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25:34절과 41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1. 흰 보좌 심판대


  흰 보좌 심판대란 인류의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말하는데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어진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천국도 지옥도 아닌 장소에 하나님께서 희고 큰 심판의 보좌를 펼쳐 놓으셨을 것입니다.

  (1) 사도 요한은 이 흰 보좌에 대하여 다만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곳이 물론 땅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늘도 아닙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간 데 없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이나 지옥도 아닌 것이 천국에 갈 성도들을 지옥을 거치게 할 필요가 없으며 지옥에 갈 심판의 대상자들을 천국까지 올려 가서 심판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소는 하나님이 인류의 심판을 위해 펼쳐 놓으신 특별한 장소로 그 곳에 하나님이 심판 주로 앉아 계시기 때문에 흰 보좌란 이름이 부쳐졌을 것입니다.

  (2)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간 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그리고 우리들 머리 위에 넓고 높게 펼쳐진 저 하늘은 실인즉 그 운명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끝에 가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이 세상의 창조는 오직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이 세상에서의 생존이 마쳐지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생존을 위해 이미 창세전에 섭리하신 그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이 때에 인류의 마지막 대 부활이 일어납니다. 부활에 관한 문제는 교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무 천년설과 전 천년설의 신학적 견해가 다릅니다. 무 천년설에서는 부활의 단회성(單回性)을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죽은 자들이 신자, 불신자간의 차별 없이 같은 시기에 동시에 단번에 부활한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산 자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일도 이들 부활과 함께 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 천년설에서는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을 시기적으로 천년간의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자의 부활은 첫째 부활로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때 또한 지상에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의 휴거 사건이 일어나는 데 이 때에 모든 성도들이 신령한 몸으로 바뀌는 홀연한 변화가 있게 된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에 최종적인 부활이 있게 되는데 이 부활은 지옥에 보낼 불신자들의 부활로 이 부활을 성도들의 부활과 구별하기 위해 둘째 부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활 교리에 관한 큰 혼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 천년설의 입장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곧장 흰 보좌 심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바 모든 자들의 부활에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요는 이 무 천년설이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활이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한 심각한 문제점은 무 천년설이 아니라 전 천년설에 있습니다. 천년기 설에 있어서 전 천년설이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이 전 천년설에서 주장하는 부활에 관한 교리에는 간과(看過)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설에서는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의 시기가 천년간의 간격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부활관은 전 천년설의 교리를 성경적인 부활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부활에 관한 문제를 전 천년설에 억지로 맞추었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천국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부활한 몸으로 살아나 천년왕국에서 생활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부활한 몸으로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은 부활한 몸이나 신령한 변화체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 천년설의 주장은 천년왕국이 아니라 천국이라면 타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면 전 천년설이 아니라 무 천년설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심지어 끝까지 살아남은 불신자들이나 육적 유대인들이 천년왕국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비성경적 주장을 합리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째 부활자들은 문장 그대로 순교자들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변화 사건은 천년왕국이 끝나 흰 보좌 심판대로 옮길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신자들은 천국에서,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적으로 머물러 있다가 천년왕국이 끝나 흰 보좌 심판 시에 일시에 부활하게 되는 데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부활관이 성경적인 부활관입니다.

  (4) 12절에서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론 대소라고 표현한 죽은 자들이란 아담 이후, 주 재림 시까지의 모든 죽은 자들과 천년왕국에서 최종적으로 하늘의 불로 심판 받은 곡과 마곡의 무리까지 포함된 인류의 총수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사망은 인간의 죽음을 말하며 음부란 시체가 묻히는 무덤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표현은 인간들이 어떤 모양과 어떤 형태로 죽었건, 지구의 체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건 간에 죽은 자들의 부활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2. 자기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흰 보좌’는 광대한 인류 심판의 광장입니다. 인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재판장(裁判場)입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재판장이 되시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을 집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흰 보좌에는 두 종류의 책들이 펴져 있습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고 했습니다. ‘펴 있는 책들’은 심판 받을 자들의 명단과 그들의 심판 받을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책에 기록된 대로 각기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이 때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 흰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흰 보좌는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자리는 행위책에 기록된 자들을 심판하시는 악인의 심판대가 있고 다른 한 곳은 생명책   에 기록된 자들에게 상을 주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25:33절에서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양무리는 오른편에 설 것인데 이곳이 그리스도인들의 상급을 판가름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후5:10절에서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냉수 한 그릇의 상’도 이곳에서 갚음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된 성도들의 행위가 이곳에서 상급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말3:16). 주 안에서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곳에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15:58). 우리가 천국에 올라간 후의 생활에는 어떤 상급도 약속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수많은 지난날의 믿음의 선조들이 이 상급을 바라보고 그토록 주의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던 것입니다(히11:35-38). 예수님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하셨는데 이 때 이 상이 공평하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한편 왼편에 있는 자들이 설 곳은 흰 보좌 중에 왼편쪽입니다. 여기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아닙니다. 이곳은 지옥에 보내질 악인들의 심판의 장소입니다. 이곳에 선 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대로 기록된 행위책에 따라 엄격하고 준엄하게 신문(訊問)을 받을 것이며 그것에 상응한 심판의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심판의 부활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도 그들의 행한 죄과에 따라 받을 심판의 종류가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형벌의 장소지만 그 곳에 들어  가는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은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내리시는 이들에 대한 최종적인 언도는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선언입니다(마25:41).

  이 같은 심판이 끝나면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역사는 흰 보좌 심판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사망도 음부도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들을 괴롭히고 슬픔과 탄식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제 영원한 불 못 속에 던져 버릴 때가 된 것입니다. 천국에는 사망과 음부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들을 둘째 사망 속에 던져 넣으십니다. 이 말씀은 둘째 사망 속에 들어간 사탄이나 죄인들과 함께 사망과 음부도 영원히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결론 : 인류의 모든 역사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사는 죄와 사망과 눈물과 질병과 고통 속에서 얼룩져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그 저주 가운데서 건져내셨습니다. 흰 보좌 심판은 바로 그 마지막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을 쫓는 무리에게 대한 심판은 불가피했습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흰 보좌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의 상급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보람 있는 남은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PREV :   (21 : 1 - 4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민병석 
 NEXT :   (20 : 7 -10) 천년왕국의 종국과 사탄의 심판 민병석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