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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부활에 관한 연구 - (1)
 민병석  11-08 | VIEW : 4,085


제 3 장 부활에 관한 연구


부활에는 그 해석상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성경 특히 신약 성경에는 부활에 관한 부분적인 언급이 여러 곳에 많이 있다. 그런데 이 부활에 관한 부분들을 모아서 부활을 하나의 통일된 교리로 정립한다는 문제는 그 연구하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갈래의 상반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부활은 결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으로 반드시 실현될 날이 오는 사건이며 우리들 자신이 그 부활 사건의 주체 대 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부활은 정해진 순서가 있으며, 그 순서에 의하여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부활 문제는 철두철미하게 문자적으로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부활에 관한 그 여러 진술 부분에 대하여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순서적으로 그 배열을 맞추어야 한다. 저자는 이같은 방법으로 부활에 관한 연구를 시도한 결과 첫째 부활과 일반적인 부활과의 정확한 분리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이곳에서 함께 연구하도록 한다.

1. 부활에 부닥치는 문제들

부활이란 문제를 다룰 때 먼저 우리 앞에 대두되는 문제점은

① 부활에 있어서 신자의 부활과 불신자의 부활이 분리적이냐? 아니면 동시적이냐는 것이다.

② 다음에 부활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냐? 아니면 천년왕 국 후에냐 하는 문제가 된다.


⑴ 무 천년설의 경우

무 천년설의 경우 부활 문제는 단순하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모든 성도들은(주 안에서 죽은 자들) 모두 부활하고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 일시에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 받고 그 다음에 백 보좌 심판대를 거쳐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물론 이 때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도 함께 있게 된다. 요는 이 무 천년설에서 부활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계 20:4절에 나 오는 "첫째 부활"에 관한 처리에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모든 성도들이 부활과 모든 생존 성도들의 변화가 일 어난다면 그러면 "첫째 부활"이란 부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무 천년설 자들의 무리한 비 성경적인 해석이 시도되며 실제적이고 문자적인 부활 문제를 상징적으로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오류가 나오게 된다. 무 천년설 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첫째 부활에 관한 문제를 상징적인 부활 혹은 영적인 부활로 해석하지 않으면 무 천년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에 첫째 부활의 해석에 있어서 혹은 중생, 혹은 그리스도인이 죽은 후, 그의 몸에서 탈출되는 영의 모습 등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같은 부활의 해석은 부활이란 말의 성경적인 뜻을 고의적으로 흐리게 하는 처사로 부활에 관한 바른 해석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이란 말은 어떤 경우에서건 죽은 사람의 몸이 다시는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그 실제적인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그곳에서 영적인 뜻을 결부시킬 수 있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계 20:4의 경우, 첫째 부활에 나오는 부활의 대상자가 여자적으로 분명히 기술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일은 부활이란 문제를 오도(誤導)하는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⑵ 전 천년설의 경우


전 천년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땅 위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하는 설이다. 이 전 천년설은 다양한 여러 가지 설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설의 부활도 가지각색의 모양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에 인용하는 부활론이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의 분리 설이다. 이 설에 의하면 첫째 부활이란 그리스도인들의 총체적인 부활이요, 둘째 부활이란 불신자들만의 별도의 부활로 해석한다. 전자는 주님의 재림시에 있을 부활이요, 후자는 천년왕국 후에 있을 부활이다.


그리고 주 재림시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는 살아 있는 생존 성도들 역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도 함께 첫째 부활 사건 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부활과 불신자들간의 부활에는 천년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 이처럼 신자와 불신자간의 부활의 간격이 있는 이유는 신자들은 천년왕국의 생활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 천년설의 부활은 그 해석상 맹점이 많기 때문에 후 천년설이나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 공격의 하나는 신자들이 부활한 몸이나 변화 받은 몸을 입고 천 년왕국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이해를 초월한 일이며, 또 부활한 몸이나 신령체로 변화 받은 몸을 가지고 천년왕국을 거쳐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인즉 부활체나 신령체가 살 곳은 천국이지 천년왕국 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성경적인 사실을 인용하여 변명하려고 하나 타당성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언제나 수세(守勢)에 몰리게 된다. 다른 또 하나는 성경에 부활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는 언제나 오직 단회적인 부활로 나와 있지 신자와 불신자간의 부활의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것도 성경적인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그들의 주장을 변박(辨駁)하려면 매우 궁색한 변명을 늘 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천년왕국이 지난 후 유대인들이건 이방인들이건 그들의 몸이 신령체로 변화를 받아야 할 터 인데 이 경우 이들의 이같은 신령한 몸의 변화에 대하여 무엇이라 고 이름을 붙일 것인가? 고전 15:51,52절의 홀연한 변화는 주 재림시에 생존 성도들의 경우 이미 성취된 사건이라면 천년왕국을 거친 이들의 몸은 도대체 신령체로 변화되는 것인가? 아니면 불신자 들처럼 전부 죽었다가 심판의 부활로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썩어질 몸을 가지고 백보좌 앞에 선다는 것인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인데 대답할 말이 없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 천년설에 있어서의 부활론은 타당성을 내세울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2. 부활의 순서

부활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 만약 부활의 순서가 불분명할 때에는 종말론에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부활의 순서를 성경적으로 잘 배열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성경에는 부활의 순서가 한 곳에 나와 있고 나머지 부활에 관한 언급은 부활의 순서가 아니라 부활의 성격에 관한 것의 경우다.

⑴ 고린도전서 15:20-26절의 경우


부활의 순서가 언급되어 있는 유일한 성경 구절이 있는 곳이 바 로 고전 15:20-26절이다. 이 구절을 빼놓고는 부활의 순서를 논할 수 없다. 그러면 여기서 부활의 순서를 한 구절 한 구절 자세히 살 펴보도록 한다.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바울은 복음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부활 문제를 이곳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부활도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큰 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다.

19절에서 바울은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에 대하여 논하고 곧이어 20절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면서 그와 연합하여 계속적으로 부활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소망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20절 초두에 "그러나"란 말은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는 부정적인 말씀을 번복하는 소망적인 언급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21절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우리 인간은 원래가 사망이 필요 없는 몸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들어와 그 사망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망이 사람 곧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 왔으니 이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도 역시 사람으로 말미암아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담은 신령한 자가 아닌 육신 있는 자였기 때문에 부활이 전혀 불가능한 몸이다. 그뿐 아니라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도 아담과 공동운명체가 된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신령한 생명의 공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망에서 헤어날 가망이란 전혀 없다. 아담은 흙에 속한 자였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인 부활 을 옷 입을 수 없다(고전 15:45-5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 그는 신령한 자의 신분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부활하실 수 있으셨다. 부활한 몸이란 신령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였기 때문에 그는 부활하실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고 한 바울의 말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없다면 부활이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기 때문 이다. 첫 사람 아담만 존재했었다면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음 이 있을 뿐, 부활은 존재할 수 없다. 아담의 후손 중에는 부활에 합당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22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바울은 22절에 와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준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바울의 복음에는 이런 논법이 철저하다. 왜냐하면 죄인들인 인간의 구원의 원리가 여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을 모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하고 있다(롬 5:12).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은 "아담 안에서"란 말과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다. 아담 안에서는 사망이 찾아왔다. 이 사망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 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부활이란 첫 부활 자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3절부터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순서가 나온다. 이 부활의 순서는 그 차례가 분명하고 계속적이기 때문에 23, 24, 26절 등을 한데 묶어 논하는 것이 순리적인 것 같아 분리하지 않고 종합적으 로 주석 하려고 한다.

23-26절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부활의 순서에 대하여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차례란 부활의 순서인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시에 동일하게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자기 차례라고 하는 부활의 순서에 따라 부활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자기 차례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①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명시하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왜냐하면 그만이 신령한 자이시고 그만이 하늘에 속한 자이시기 때문이시다. 그가 없이는 부활은 있을 수 없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사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망 안에는 부활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부활을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②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고 했다.


부활의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이란 누구냐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로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이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오는 문제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또 다른 부활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이와 유사한 부활에 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 주의 재림의 날에 부활한다면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한 그곳에서 모든것이 끝나야 한다. 그러나 24절에서 분명히 "그 후에는 나중이니"란 말씀에서 주 재림 후에 다시 한번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해 주고 있다. 이것을 불신자들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곳에서 바울이 증거해 주고 있는 부활은 불신자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 생명의 부활 순서를 차례로 밝혀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에 대하여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도록 하자.

㉠ 슥 14:5절에서 주의 재림시에 그와 함께 내려올 자들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여기서 모든 거룩한 자들이란 과연 어떤 대상을 의미해 주는 것인가? 이
    들 "모든 거룩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의미해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유 1:14절에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아담의 7세손 에녹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가 과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로 볼 수 있을 것인가?

㉢ 계 17:14절에서도 이같은 말씀이 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
    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아마겟돈 전쟁시에 있게 된다. 이 일에 대하 여 슥 14:3-4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기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 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
    요..."라고 밝혀 주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나가사 열국을 치시는 싸움은 바로 아마겟돈 전쟁을 의미한다. 이 아마겟돈 전쟁의 상세한 모습은
    역시 계 19장에서 찾아야 한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란 말씀에서 마지
    막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 그리스도와 싸우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 탄 자"란 재림하시는 주님이시요 "그의 군대"란 주
    재림시에 그로 더불어 싸울 하늘의 군대를 의미한다(계 19:19-20).

    이 하늘의 군대가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를 말하고 "모든 거룩한 자"요 "수만의 거룩한
    자"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하늘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 계 19:14절 에 있는데 "하늘에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했다. 이들은 그 문장의 전개나 문맥으로 볼 때에 계 17:14절에 있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이며 이들은 또한 전체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성도
    들의 부활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니라 주 재림 때에 그와 함께 하늘 군대로 내려 올 소수의 부활 성도들을 의미해 주
    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첫째 부활 자"로 부르고 있으며 이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 대하여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
    고 있다. 그 리고 이들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 계 20:4절에 나와 있는데 순교 성도들임을 명백하게 밝혀 주고 있는 것이
    다. 그러므로 주 재림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의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성
    도들 중, 첫째 부활 성도들로 곧 순교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③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 후에는 나중"이라고 한 말씀의 뜻은 또 다른 하나의 부활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 대한 표현이며 이 부활이 결코 불신자들의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 생명의 부활의 순서 중에서 맨 마지막에 있을 부활을 의미해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나중의 시점에 대하여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그 시기를 말하고 있다.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는 시기는 주 재림의 시기가 아니다. 그 후에도 천년이라고 하는 기간 동안 정사와 권세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했는데 이 시기 역시 주 재림의 때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란 그의 백성들을 의미하고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은 천국의 기업을 주시는 일을 말하는데 이런 일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시에 실현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말씀이 25절에 나오 는데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는 말씀에서 해답을 주고 있다. 여기서 왕 노릇하신다고 하신 시기는 천년왕국이요 모든 원수들이란 사단을 수반으로 한 멸망 받을 죄인들로 이들의 궁극적 심판은 백보좌 심판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있을 부활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된다.


㉠ 부활의 첫 열매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 구속받은 자들의 처음 익은 열매로 순교자들의 부활이 있다.


⒜ 히 11:35 = 더 좋은 부활
⒝ 고전 15:23 = 그리스도 강림하실 대에 그에게 붙은 자
⒞ 계 11:11,12 = 두 선지자의 부활로 보이심
⒟ 계 14:14 =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 계 17:14 = 그와 함께 있는 자들, 부르심을 얻고 빼내심 을 얻고 진실한 자들
⒡ 계 19:14 = 백마를 타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하늘 군 대들
⒢ 계 20:4 = 순교 성도들의 부활

㉢ 모든 성도들의 부활이 있다(물론 불신자들의 부활도 이 때에 있다).

⒜ 요 5:29 =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 단 12:2 = 영생을 얻는 자, 수욕을 얻는 자의 부활
⒞ 고전 15:52 =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 는 부활
⒟ 고전 15:24 = 그 후에 남은 자들의 부활
⒠ 계 20:5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
⒡ 계 20:12 =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서는 시기의 부활로 책들(심판 받을 자들의 책)과 생명책(상급 받을
    자들의 책)으로 구분되어 있다.

⑵ 계 20:4-13절의 경우

성경에 부활에 관한 언급은 많지만 부활의 순서에 관한 언급은 고전 15:22-24절의 경우와 아마 계시록 20:4-13절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첫째 부활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고 흰 보좌 심판에의 전세계 인류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 다.

① 첫째 부활 자들에 대한 언급에서 첫째 부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
    로 더불어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 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계 20:4-6).


    여기서 4절에 나오는 첫째 부활 자들은 누구며 5절에 있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누구냐는 문제를 먼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보편적으로 여기서 "첫째 부활 자들"은 전체 그리스도인들이며,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불신
    자 모두의 부활로 해석하는 경향을 취하여 왔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부활에 대한 올바른 해석 방법이 아니라고 본
    다. 이처럼 해석하는 사람들은 4절에 나오는 부활 자들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란 구절을 순교자들의 부활로 본다. 이 같은
    해석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명한 해석이다. "예수의 증 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란 순교자들
    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살아서"란 말에서 이들의 영혼들이 살아났으니 이것은 순교자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있는 구절이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
    지도 아니 한 자들이 살아서"란 말인데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로, 이들이 주의 재림 때에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해석이다.
과연 그런가? 여기에 문제점들이 많이 대두
    되는데 그 몇 가지를 지적해 보도록 한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짐승이란 인류의 종 말에 등장하는 적 그리스도를
    말해 준다.

    왜냐하면 이 짐승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시에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에 의하여 생포되어 산채로 영원한 불
    못에 던지운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
    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란
    말씀이 그처럼 증거해 주고 있다(계 19:19,20).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란 대상은 누구인가? 이들이 과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역사상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 준다. 이
    말씀에 대한 문맥은 너무나도 뚜렷한 모습으로 계시록에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먼저 계 13:14,15절 말씀을 보자.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하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다.

    계시록에서 "우상"이란 말은 반드시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연관되고 그 뒤에 따르는 단어다. "짐승의 우상"이란 적그
    리스도와 붉은 용인 사단이 인류로부터 경배 받기 위한 방법으로 세워 놓은 신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메시야나 하나님
    으로 내세우는 적 그리스도에게는 필수적으로 따르는 부수 물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세운 거대
    한 금 신상은 바로 자신을 신적 존재로 인류에게 경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처럼 마지막 바벨론 사회의 느부갓네
    살인 적 그리스도는 똑같은 방법으로 세계 도처에 자신의 신상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 신상 앞에 경배치 않는 자들에게는 물건의 매매를 금하기도 하고 종국에 가서는 칼로 죽이는 끔찍한 살인
    행위까지 자행한다. 이 우상에 대한 경배는 역사상 가끔 독재자들에 의해 기독교를 핍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
    지만 그러나 계13장에 있는 짐승이나 그 우상에 대한 경배 행위는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성취임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그러므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란 인류의 종말, 적그리스도의 탄압 아래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역사상 모
    든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성도들로 규정하는 일은 성경해 석상 불가하다.

    그리고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세 천사 중, 마지막 세 번째 천사의 경종에 따르면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 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란 말씀에서 이 예언의 성취는 역사상
    항상 존재하는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는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적 그리스도에 의한 사건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계 14:9,10).


    그리고 계 19장은 이 사건의 시기에 대한 문제가 확실하게 제기 되고 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
    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란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계 19:20). 이처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케 한
    장본인이 바로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이며 이들의 운명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생포되어
    산채로 둘째 사망에 던지움을 받는 이 모습을 인류의 종말 에 있을 사건임을 부인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이들은 분
    명 아직까지 주장해 온바 많은 신학자들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란 말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
    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난 다른 또 하나의 부활의 대상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살아서"란
    말은 "살아나서"란 뜻으로 이들이 살아났다는 말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
    혼들과"들고 함께 죽음에서 살아난 그들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환난중에 주의 이름을 위하
    여 죽은 순교자들임이 명백하다.


    계시록에는 순교자들의 무리들이 둘로 나뉘고 있다. 계 6장에서 어린양이 다섯째인을 떼실 때에 하늘에 있는 순교자
    들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자신들의 피 값에 대한 신원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받은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 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나 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
    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는 말씀이 있다(계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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