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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종말론과 첫째 부활 - (2)
 민병석  11-08 | VIEW : 5,306

위의 도표는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상에 대한 해석이다. 이 신상 이 바벨론 시대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시대가 아니라는 성경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 신상이 부수뜨려져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어졌다는 말씀은 인류 역사의 최종적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신약
    시대의 도래를 의미해 주는 표현이 아니다.

㉡ 단 2:44절에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
    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서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한다"는 말씀은 열왕의 때에 존속하고 있는 전 국가의 권세를 의미하는 것이지 신약 시대의
    도래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⑧ 다니엘 9:24-27의 경우

단 9:24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네 백성과 거룩한 성"
이 구절은 다니엘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유대인들과 예루살 렘을 의미하고 있다.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24절에 있는 내용은 25-27절까지의 결론으로 70 이레로 기한을 정한 그 끝의 결과를 논술하고 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 구절은 메시야 왕국이 이루질 때에 천년왕국 백성들이 누릴 축복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장차 유대인들의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씀이기도 한데 주의 재림 때에 가서 비로소 그들의 구원이 성취되기 때문에 그들의 허물이 마치게 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게 된다.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종말에 관한 이상과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이 이 때 완전히 성 취하게 된다.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여기 기름 부음이 25절의 기름 부음 받은 자와 동일 시대의 동일 사건이 아닌 것은 25절의 기름 부음은 7 이레와 62이레 곧 69 이레 때의 일이요 24절의 기름 부음은 70 이레의 기한이 찼을 때의 기름 부음이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인물은 동일하지만 기름 부 음을 받은 시기는 하나는 초림의 예수요, 다른 하는 메시야 왕국에 서의 왕이신 예수이시다.


단 9:25-26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의 초림의 시기를 계시해 주신 예언이다. 7 이레는 예루살렘이 중건되는 기간이요 62이레는 그 이후 그리스도의 초림 시까지의 기간이다.

"62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과 부활 승천하실 사건을 의미한다.


단 9:26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이 사건은 역사적 사건으로 성경의 예언에는 이같은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두 번 일어날 것으로 말씀해 주고 있다.

1차 황폐 : 그리스도를 죽인 대가로 내려졌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4,25). 이같은 이스라엘의 패역의 결과 예수님의
    예언대로 70년대에 로마의 디도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다(눅 19:41-44).


2차 황폐 :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시기 위한 야곱의 환난의 때에 일어난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3분지
    2는 멸절하고 3분지 1은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리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슥 13:8,9). 그
    리스도의 재림때에 유대인들 중 2/3는 끝까지 거역 하다가 멸절 당하고 1/3은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단련하며 금같이
    시험한 후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된다(슥 12:10).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기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
    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 산골짜기로 도망하
    되 유다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이 사건은 70년대의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 사건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
    림 사건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내용으로 보아 이미 이스라엘이 영토적인 회복을 이룩한 이후의 사건임이 분명하다(겔 3:8,9). 이 사건은 종말에 적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공격을 당하는 모습인데 그 양상이 70년대의 디도의 침공과 비슷하나 그 사건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장차 나타날 왕"의 존재를 디도에 결부시키면 안된다. 인류의 종말에 주의 재림 시기에 적 그리스도에 의해 예루살렘 공격으로 봐야 한다. 이같은 사건은 이곳 뿐 아니라 신약 성경 도처에 예언되어 있다(마 24:4-27,막 13:14-23, 눅 21:20-28).

단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 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란 언급에서 그란 26절의 장차 나타날 "한 왕"과 동일 인물이다. 동일 인물에 의해 성취되는 사건 이기 때문이다.

26,27절의 "장차"란 말은 둘 다 인류의 종말의 시기를 의미한다. 혹자는 왜 69 이레와 1 이레간의 시기적 거리가 그토록 오래냐? 고 항변하기도 하는데 그 해답이 이 "장차"란 구절이다. "장차"란 말은 70년대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 시기가 미지수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도 장차 되어질 사건이요, 저것도 장차 되어질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이레의 언약"은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언약도 아니오 디도에 의한 언약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사건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제사와 예물" 의 금지는 디도에 의한 성전 제사의 중단 사건이나 그리스도에 의한 성전 제사(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단 7:7:25,26절에 있기 때문이다.

단 7:25,26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 할 것이요"

초두에 나오는 "그"란 적그리스도이다.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한다는 말은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는 사건을 의미한다. 성도가 적그리스도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42달간의 환난을 겪을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란 존재가 디도나 또 다른 제3의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은 26절에서 명시된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 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그의 생포와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그의 최종적인 운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계 19:19-21).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미운 물건은 '디도'나 '안티어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세운 우상이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 성전에 세울 그의 신상을 의미한다(살후 2:4,마 24:15,막 3:14).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에서 이미 정한 종말이란 그리스도의 초림이 아 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진노가 적그리스도에게 쏟아지므로 70 이레의 끝이 이르고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예언이다.

⑨ 요한계시록의 경우

㉠ 한 이레의 언약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징조적 종말 시기이지만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영접하기 때문에 이
    "한 이레의 언약"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은 교회를 위한 징조적 종말 시기이지만 모든 교회가 배도 세력에 휩쓸려 있고 거짓 선지자, 거
    짓 기적, 거짓 예언들의 등장으로 많은 교회들은 두 증인의 예언을 배척하게 된다.

㉢ 1260일간이 마쳐지자 두 증인은 순교한 후 부활 승천하고 교는 양육처로 인도 받는다.

㉣ 후 3년 반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온 세계가 통치되며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시키므로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 후 3년 반 마지막 시기에 주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게 된다.


3.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해석

⑴ 종말론적 전 천년설은 종말의 징조를 중요시한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그 마음이 완악한 바리새 인들을 향하여 이처럼 말씀하셨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1-3). 성경에는 종말에 관한 여러 가지 징조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우리는 그 징조와 예언을 연구하고 역사의 무대 위에 적용시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인류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므로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신 18:22).

⑵ 종말의 예언 중 가장 중요한 징조의 성취를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본다.

주님은 회복된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임하시고(슥 14:4) 종말 에 곡과 마곡의 북쪽 군대가 회복된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되며(겔 38:8-16) 주 재림 시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며 (슥 12:10, 롬 11:25-27) 후 3년 반과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서 유대땅이 침공을 받아 유대인들이 큰 환난의 날을 맞게 된다(슥 14:1-7). 그러므로 1948년 5월 15일의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은 주 재림에 대한 역사적 신호로 받아 드려져야 한다.

⑶ 인류의 종말에는 "대적하는 자"또는 "짐승"으로 표현된 인격적인 적 그리스도가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여 성경적인 예언을 이루게 된다.


성경은 이 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종말이 왔다는 미혹에 동요되어서는 안된다고 엄중히 경종해 주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휴거)에 관하여 혹 영 (계시)으로나 혹 말(주장이나 설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사도들의 서신)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신앙 적인 동요)하거나 두려워(두려운 마음으로 당황)하거나 하지 아니 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그 누가 무슨 말로 미혹하여도) 너희가 미혹(이 같은 일은 천사의 너울을 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쉽지만 미혹의 영의 역사임)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이 배도는 어느 시대나 있었던 부분적인 배도인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거대한 세계적인 음녀 세력으로 형성되는 전 세계적인 배도임) 저 불법의 사람(적 그리스도) 곧 멸망의 아들 (이름은 사망이요 음부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자 곧 적그리스도 임)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는 말씀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살후 2:1-4).

종말에 이른 징조는 배도 세력의 등장으로 인한 영적 흑암의 도래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따라야 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한다. 배도 세력은 어느 시대건 존재하는 것으로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많이 있지만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배도하는 일이란 적그리스도를 지지하는 전 세계적인 교회의 현실로 나타나는 것으로 진리에 대한 정면 도전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음녀 교회의 핍박이 따르는 그런 배도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의 등장이 야말로 종말의 시기를 가늠 할 수 있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이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만약에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알 수도 없으면서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 같은 논리는 전후가 모순된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에 대한 분명한 예언이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 문제가 성경에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있다. 하나는 열 뿔의 지지를 받고 세계적인 열왕의 자리에 있는 자란 사실이다(단 7:7, 8 계 17:12,13).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열 뿔의 등장은 종말의 도래에 대한 성경적인 징조로써 매우 중요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이 열 뿔에 대한 연구에 굉장 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분은 지난날 소련의 위성국으로 해석하였었는데 열 뿐이 형성되는 시기가 주 재림을 전후한 종말에 관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근래에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통일 유럽의 등장이다. 유럽 국가의 통합을 의미하는 EC는 지난 1957년도에 세상에 얼굴을 내민 이후 성경 연구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게 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등장 무대가 지난날 로마의 판도인 유럽이란 점 이다. 그리고 단 2:32절에 나타나 있는 로마의 철 종아리와 마지막 시대의 철과 진흙의 발 시대는 철이라고 하는 공통적인 강한 금속 으로 나타나 있는데 로마의 철이 발 시대의 철과 같은 것은 어쩌면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열 뿔의 등장이 재생 로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EC는 우리의 큰 관심의 표적이 안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EC가 우리의 큰 관심의 표적이 안될 수 없다는 말은, 지금의 EC가 곧 적 그리스도가 속한 열 나라를 의미하는 열 뿔이란 뜻은 아니다. 오늘날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EC를 적 그리스도 국가로 단정짓고 그들이 통합을 이루는 1993년 1월을 적 그리스도의 등장 시기로 확정지으므로 적그리스도의 출현 이전에 교회가 휴거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해석 방법대로 1992년 휴거설을 강조하거나 미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통합도 안된 상태의 EC의 통합을 1992년 말로 임의로 규정지어 놓고 성경의 예언을 해석하는 일은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EC가 설령 틀림없는 성경적인 열 뿔의 등장이라고 해도 EC가 열뿔의 형태로 그 모양을 갖추어 적 그리스도가 그들의 왕으로 등장하여 분명한 실체를 보여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확실한 단정을 내릴 수가 없다. 열 뿔의 형성 시기는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그의 손에 의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EC가 혹 열 뿔을 이루는 밑거 름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오늘의 EC를 열뿔로 보면 안된다.


더군다나 그 통합체의 처음 우두머리가 적그리스도가 된다는 이론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계시록 13장에 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다(계 13:3). 이같은 사건이 어떤 나라에 대한 정 변이나 어떤 경이적인 사건에 대한 상징적 해석이 아님은 그 밑에 14절에 있는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란 말에서 충분히 증거된다.

이 짐승이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사건은 분명히 3절에 나오는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던 사건"을 의미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자가 상징적인 인물이 아닌 것은 계 19장에서 이 자에 대하여 인격적인 단일 인물로 해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 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으로 죽는다"는 말씀에서 확실하게 밝혀지고 있다 (계 19:19-21).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말적인 분명하고도 명백한 예 언과 징조를 역사적인 실제 사건으로 성취케 하므로 적그리스도 의 등장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자가 이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날이 반드시 오게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전까지는 종말이 이르렀다고 하는 그 어떤 미혹에도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데살로니가 후서에 명기된 말씀이다.

⑷ 다음에 종말론적 전 천년설에서는 "7년 환난과 인류의 종말"과의 관계를 명백하게 밝힌다.

요한계시록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7년 환난"이라고 하면 기겁을 하며 놀란다. 대체 7년이란 말이 어디 있느냐? 는 것 이다. 성경에는 과연 7년이란 말이 없는 것인가? 한국에 온 선교사들 이 전부 세대주의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들이라 그들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한국 목사님들 중에는 "7년 환난"을 인정하고 종말론을 연구하는 분들이 많은 것인가?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에 있는 종말론적인 숫자를 상징적으로 보고 있는 상징론적 해석에서는 7년 이란 숫자를 성경에서 찾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숫자는 자신들이 상징이란 깊은 베일 속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⑸ 먼저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이레"란 말이 어떤 기간을 의미해 주는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단 9:24-27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망하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나는 시기로 부터 7 이레와 62이레의 기간, 곧 69 이레에 초림의 메시야 시대의 성취를 언급하고 있으며, 남은 1 이레의 기간을 적 그리스도에 의한 언약 기간으로 정하고 그 언약의 절반 시점에 가서 적 그리스도 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핍박이 언급되어 있고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나온다. 이곳에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단 7:27절에서 이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

1 이레의 기간을 산출하려면 먼저 그 기간의 절반 기간을 알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1 이레의 절반 기간에 이르면 적그리스도 에 의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종교적인 핍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1 이레의 절반 기간 동안의 종교적 핍박에 대 하여 단 7:25절에서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단 9:27절의 1 이레의 절반이 여기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1 이레의 절반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의 기간은 동일한 기간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에 대한 성경 기록이 전 성경에 걸쳐 세 곳에 나와 있는데 또 한 곳은 단 12:7절이다. "반드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성도의 권세가 깨어진다는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적 그리스도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핍박을 받을 동일 사건에 대한 동일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종말에 1 이레의 언약 중 그 절반에 이르러 제사와 예물을 금하는 종교적 핍박을 받을 것인데 그 기간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대한 세 번째 기록이 있는 계12장을 보도록 한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천 2 백 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는 말씀이 있고 그 아래쪽에 똑같은 사건에 대한 기술로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는 말씀이 나온다(계 12:6,14). 여기 나오는 사건은 같은 사건의 진술이다.

그런데 먼젓번 진술에는 1260일이란 날 수로 나왔고 뒤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은 같은 기간임을 명시해 주고 있다. 1260일은 햇수로 3년 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아래 도표에 나타난 1 이레의 절반에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똑같은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성경 상으로 완전히 맥이 통한 일치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확실한 3년 반의 기간이다. 이것을 상징적인 숫자로 풀이하여 전 교회 시대니 디도의 예루살렘 침공 사건이니 하는 식의 해석으로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⑹ 다음에 단9:27절에 나타난 "한 이레"의 절반과 상응하는 전반부의 절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다니엘서는 분명히 "한 이레"의 경우, 전적으로 유대인의 경우와 만 연계시키고 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세대주의적 해석에 틀린 점이 없다고 보겠다. 그런데 세대주의 자들은 다니엘서에 나타난 종말적인 예언을 유대인들에게만 결부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를 연구하려면 마땅히 "한 이레"의 나머지 절반에 관한 성경적 근거를 찾아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데 이같은 면을 소홀히 하므로 신약에 나와 있는 요한계시록의 사건까지 다니엘서에 결부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단 9:27절의 "한 이레"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체결되는 유대인들을 위한 "7년 평화조약"을 의미하며, 또 그 절반 기간에 일어나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종교적 핍박 역시 유대인들이 겪을 그들의 대 환난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일은 예수님이 마 24:15절 이하에서 인용하신 다니엘의 예언은 분명 유대인들이 당해야 할 종말적인 전대미문의 대 환난임을 명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일이 비단 유대인들만의 경우가 아님을 예수님은 종말론적 사건의 예언에서 계속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에는 "한 이레" 동안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이 받을 환난에 대하여 수 없이 말씀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다니엘서의 경우는 유대적인 면에서 종말론적인 사건을 예언하신 것이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교회적인 면에서 예언 하신 것인데 세대주의에서는 다니엘서를 중요시하는 나머지 요한계시록을 다니엘서의 부록쯤으로 격하시켜 요한계시록을 유대인들을 위한 다니엘서의 속편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성경 해석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논할 가치조차 없다. "한 이레"가 모두 유대인들에게만 관계된 사건이라면 왜 그 "한 이레"의 나머지 절반에 관한 사건은 다니엘서에 명시되지 않았으며 행방불명된 상태로 미궁에 빠져 있는 것인가? 그러면 "한 이레"와 요한계시록과는 어떤 연결 관계를 가지고 있는것인가? 이에 관한 신약적인 언급이 계 11장, 12장, 13장에 분명히 나와 있다.


㉠ 계 11:2절의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 "마흔 두 달"간 의 기간은 단 9:27절에 나와 있는 "한 이레"의 절반 부분으
    로 적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핍박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요, 계 11:3절에서 나오는 1260일간의 두 증
    인에 의한 예언 기간은 "한 이레"의 그 나머지 절반 기간을 의미해 주는 사건으로 다니엘서에서 언급을 회피한 신약적인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예언인 것이다.
그러면 왜 다니엘서에는 이같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일까? 그것
    은 그런 내용이 포함되었다면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깨달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며, "메시야 왕국"에 대한 유대인적인
    사고방식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을 것이다. 말하자면 다니엘 시대에는 아직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언급은 유대인들에
    게 있어서는 적어도 하나님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 계 11:3절의 두 증인의 예언 기간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종말적인 예언 사역의 기간이다. 두 증인에 대하여 분명
    히 두 촛대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촛대란 신약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
    키고 있기 때문이다(계 1:20). 그러므로 먼젓번 42달간의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 기간과 두 증인이 예언하는
    1260일 기간은 구분된 기간이다.

㉢ 계 12:6,14절의 경우,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
    이 있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여자는 세대주의자들이 해석해 주고 있는 것처럼 마리아가 아니다. 인류의 종말에
    마리아가 나타나 단 9:27절의 "한 이레"의 절반 기간인 1260일간 어디로 도망간다는 말인가? 마리아는 이미 죽어서 그
    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천국이 광야인가? 이 여자는 빛으로 옷을 입고 있는 종말의 하나님의 교
    회를 상징해 주고 있다. 여기 1260일은 유대인들이 종교적 핍박을 받을 "한 이레"의 절반 기간인 후 3년 반을 의미해 준
    다. 하나님의 교회는 두 증인의 1260 일간의 예언의 사역이 끝나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
    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게 되는 것이다(계 12:14).

㉣ 계 13:5절의 경우, 인류의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의 임금 으로 등장하는 기간으로 42달을 말씀해 주고 있다. "또
    짐승의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 라"고 했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기간은 유대인들이 받을 종교적 핍박 기간인 "한 이레"의 절반인 후 3년 반기간이다. 그러므로 후 3년 반의 기간은 유대인들에게 전무후무한 환난의 날이 되겠지만 이와 병행하여 전 세계적인 환난 기간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⑺ 다음에 69 이레와 1 이레와의 간격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이유는 69 이레가 가리키는 사건과 1 이레가 가리키는 사 건간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70 이레에 관한 예언이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사건인 것으로 해석하는 나머지 70 이레의 예언이 가리키는 본 뜻을 어긋나게 판단하고 있다. 말하자면 69 이레가 끝나면 그 나머지 1 이레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70 이레 예언에서 남은 1 이레는 69 이레의 예언이 끝나는 즉시 이어져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문제가 된 문장의 내용을 잘 읽고 그 범위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문제의 예언이 기록된 단 9:25:27절까지의 문맥을 보면 먼저 24절에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다니엘의 70 이레에 관한 이 초두의 말은 장차 나타날 "메시야 왕국"까지의 도래의 과정을 말해 준다. 다니엘은 25절로 27절에서 이 "메시야 왕국"까지의 과정을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초림과 그의 재림으로 양분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 다니엘이 처음 언급한 69 이레는 "기름 부음 받은 자"되신 메시야의 초림 사건을 예언해 준다. 다니엘은 25절에서 69
    이레까지의 과정을 언급하면서 69 이레 마지막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일어나며 곧 또 그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질
    것임을 말씀해준다. 이같은 사건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여기서 다니엘이 말하고 있는 이 69 이레란 말이 상징적인 숫자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69 이레란 어떤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다니엘은 메시야의
    기름 부음과 그의 끊어지는 사건을 예언하면서 69 이레의 시발점을 밝혀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발점이 "예루살
    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여기서 다니엘은 초림의 메시야의 출현 시기를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계산하여 69 이레가 마쳐지는 시기"임을 예언해 주고 있는 것이
    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중건령은 주전 445년경에 있었다(느 2:5 "왕 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여기서
    예언은 언제나 성취 된 후에 그 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경우 제 3차 귀환령이 내린 주전 445년으로 계산의 시발을
    삼는다면 초림의 메시야의 공생애와 거의 공통된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후 69 이레 후인 주후 30년경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끊어져
    없어진 것이다 (1 이레 = 7년, 69 이레 = 483년, 예루살렘 중건령 주전 445년, 457-483 = -38년, 주후 38년경). 여기서
    우리는 유의해야 할 점은 구약적인 연대를 지금의 연대와 연계시켜 그 정확한 연대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구약 시대로부터 신약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많은 변동이 있었으며 계산의 착오로 인
    한 연대의 최소한의 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 그러면 남은 "1 이레"의 경우를 살피기로 한다. 이처럼 69 이 레까지의 사건이 마쳐진 후에 '장차'란 말이 두 번 연이
    어 나온다.
먼저 나온 '장차'란 말은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의 엄
    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는 말씀에 나온다. 여기서 '장차'란 말의 뜻
    은 69 이레가 지난 오랜 후에 될 일을 의미해 주는 말이다.


    결코 69 이레의 사건이 있은 직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그러면 이 장차한 왕의 백성이란 누구냐는 것이다. 그에 대
    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70년대의 로마의 디도로 보고 있다. 물론 이디도가 적그리스도의 대표 인물일수가 있
    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디도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한
    장본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

    그러나 27절에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말에서 장차 나타날 한 왕
    은 디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 바로 그 자를 의미해 주는 말이다. 이자가 인류의 종말인 장차(후 3년 반을 전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 실질적으로 "그 성읍과 그 성소를 훼파할 자"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슥 14:1-5). 그러면 한 이
    레의 도래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69 이레의 초림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주실때 그 계산시 발점
    으로 예루살렘의 중건령을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한 이레"의 시발점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주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는 안된다.


    단 9:27절 초두에 "그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란 말에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
    기 한 이레는 먼젓번 69 이레와 합쳐서 70 이레를 이루는 그 한 이레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언약은 분명히 중동 지역
    의 평화를 위한 세계적인 평화조약을 의미할 것이다. 이 조약을 주도할 인물은 미국의 대통령이나 다른 국가의 원수인
    것이 아니라 바로 적그리스도에 의해 그자의 권세와 능력에 의해 성취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이루어지려면 적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에 등장하여 세계 정치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한다. 이같은 자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중동 문제에 대한 "한 이레" 동안의 평화조약이 성립되면 그 시기
    가 바로 "한 이레"기간의 시발 점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기간을 종말에 있을 환난 기간과 결부시켜 종말론적
    전 천년설에서는 "7년 환난"기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도록 한다.

⑻ 종말론적 전 천년설은 명백한 성경적인 부활관을 제시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여러 가지 종말론을 살펴보는 중에 그에 따른 부활론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 어느 것이나 성경적인 명백한 부활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의 재림 때에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 부활한다. 이것 이 첫째 부활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은 변화체로 휴거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만은 특별히 변화 받지 아니한다. 천년왕국의 실질적인 백성은 유대인들이 되고 부활한 모든 성도들과 부활체로 변화 받은 모든 성도들은 왕노릇 한다.

천년왕국이 지난 후 백보좌 심판시에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이 있게 된다. 이것이 둘째 부활이다" 대개 이같은 순서의 부활관이다. 그러면 천년왕국을 육신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년 동안의 기간이 지나면 그들은 그때 홀연히 변화받는 것인가? 그러면 이같은 변화가 두 번이나 있다고 하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이들 유대인들은 천국에도 육신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말인가?

종말론적 해석에서는 모든 성도들은 7년 환난 중 전 3년 반기간인 1260일간을 통과하게 된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인들의 회개 기간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전 3년 반기간 동안 두 증인들의 회개의 사역을 통하여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 희게 하므로 신부의 세마포를 단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후 3년 반의 시험의 때에서 건지시기 위해 1260일간 이들을 양육하기 위해서 예비하신 예비처로 옮기신다. 후 3년반이 지난 후, 주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신다. 이 때 주님은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세상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그의 택한 백성들을 모두 모으신다.

이 때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성도들, 그리스도인이건 유대인이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로 이끌려 공중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 이것이 성도들의 공중 휴거이다. 이들은 결코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 받아 부활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 살아나는 대부활이 이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순교 성도들만의 부활로 이들이 주님 재림시 주님과 함께 하늘 군대로 내려온다.

그리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살아있는 몸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공중으로 휴거되고 이들이 그대로 천년왕국에 내려올 것이다. 첫째 부활 성도로 주님과 함께 내려오는 순교자들은 주님과 함께 그 나라에서 왕노릇 하는 축복을 받게 되고 생존 성도들은 유대인이나 이방 성도들이나 구별없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 천년동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장으로 넘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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