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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종말론과 천년왕국 - (1)
 민병석  11-08 | VIEW : 5,235


제 4 장 종말론과 천년왕국


서언 : "천년왕국"이란 말이 문자로 표현된 곳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러면서도 종말론 연구에 천년왕국은 빠트릴 수 없는 존재 로 등장되어 왔다. 비록 종말론 해석에 "후 천년설"도 있고 "무천년설"도 있고 "전 천년설"도 있지만 여하튼 이 모든 신학적 "천년 설"이 제나름대로 "천년왕국"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천년왕국"에 대한 문제를 신학적으로 다루게 된 일은 어제오 늘의 일이 아니다. 그 역사적 배경은 초대 교회 시대에까지 미친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는 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고 여러 갈래의 학설로 나뉘어진 상태 그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적 문제를 논할 때, 두 가지 면에서 좀 깊이 성찰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성경에는 예언 이 성취된 사건의 진술과 다른 하나는 성경에는 장래의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진술이 있다는 사실이다. 성취된 예언은 해석하는 일에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신학적 교리도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장로교회의 교리는 대국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예정"인데 이같은 "하나님의 예정"은 성경에서 그 진리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신학적인 확고한 정견(定見)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종말론의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 지향적이며, 미래에 대한 징조와 계시의 진술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는 각도가 동일할 수가 없으며 일정한 범주(範疇) 안에서 진리를 통합하여 정리하는 교리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예언은 아직 우리에게 절대적 진리에 대한 현실적인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해석의 진실 여부는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어떤 신학자들의 판단에 있는 것 이 아니다.

그리고 다만 그 예언의 실현이 우리들 앞에 현실로 나타났을 때 에야 아직까지 그 예언의 해석에 대한 잘잘못에 대한 판가름이 그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이같은 일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이 신명기에 이처럼 나와 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 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신 18:22).

이같은 말씀이 예레미야서에도 있다. "너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고 했 다(렘 29:8,9).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 교단에서 박형룡 신학이나 박윤선 신학은 절대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총신대에서는 이들 원로 신학자 들의 신학(박형룡 목사의 교의신학이나 박윤선 목사의 주석)을 보수 신학의 교과서처럼 여겨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 같은 신 학에 일부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 이제 박 형룡 목사나 박윤선 목사의 "역사적 전 천년설"은 그 신학적 성역이 무너진지 오래다. 왜냐하면 지금 총신대 교수 중 이들의 "역사적 전 천년설"을 추종하는 교수는 한 두 명이 있을 뿐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 당시엔 교단적으로 전혀 관심 밖이었던 "무 천년설"이 오늘날 총신대에 종말론 신학의 왕좌에 올라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학은 인간적 학문으로 언제나 가변적(可變的)이며 상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는 그 문제가 성경에 전혀 근거하지 아니한 시한부 종말론이나 성경 전체의 진리를 거스리는 이단적인 해석이 아닌 한, 그 해석을 현실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증거하고 있는 신학적 문제들이 아직 성취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예언들이 성취될 때 비로소 그 해석의 진부가 나타날 것이며 그 때 하나님에 의하여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론 해석은 누가 성경을 더욱 성실하게 해석해 주고 있느냐?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적인 말씀에 대한 영감을 더 받아 해석하고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러나 종말론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한가지 꼭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만약 자신의 종말론 해석이 잘못되어 그로 인하여 종말에 이르렀을 때에, 영적이건 육적이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응당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천년왕국"을 다루는 일에는 여러 가지 성경 해석상 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지만 그 중에도 특히 이 세상이 어떤 변화의 과정으로 천년왕국의 새로운 사회를 이루게 되며, 우리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 사회에서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천년왕국 문제에는 자연히 "성도들의 공중 휴거" 문제, "부활"문제, 유대인들 문제, 이방인들 문제 등 천년왕국과 적용시켜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 천년왕국의 성경적 배경

성경에는 "천년왕국"이란 단어가 없다. 이 말은 계 20:6절에 있 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는 말씀에서 비 롯된다. 여기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할 대상은 4절에서 밝혀 주고 있는 대로 "첫째 부활 자들"이다. 그리스도가 천년동안 왕이 되시고 첫째 부활자들이 함께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은 천년간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 들은 이 세계를 "천년왕국"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천년왕국"이란 말은 다분히 신학적인 용어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⑴ 계 20:6절에 있는 천년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스려지는 새로운 통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신학적인 큰 논쟁이 되고 있는 복잡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먼저 여러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천년기 설"의 해석부터 내려져야 한다.

① 후 천년기 설의 천년왕국

후 천년기 설은 천년왕국의 문자적 해석을 배제한다. 그들은 복음의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이 세계가 전부 복음화 되는 날, 그 시대를 천년왕국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새롭게 창조되거나 건설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이 복음화 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천년왕국에 관계된 모든 해석이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② 무 천년기 설의 천년왕국

무 천년기 설은 무 천년이란 그들의 표현과 같이 천년왕국을 근 본적으로 부인하고 들어간다. 그러면 계 20:3절에 나오는 용을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 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는 말씀에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이 천년 동안을 교회 시대로 본다. 그리고 마귀를 결박하 여 일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갔다는 말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마귀의 활동을 제한하셨다는 뜻으로 풀이 한다.


또한 "첫째 부활"에 대한 해석에서는 육체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활로 해석한다. 사람이 죽어서 그 영이 몸을 떠나는 과정을 첫째 부활로 보며 혹 어떤 무 천년설 자는 사람이 거듭나는 중생 사건을 이 첫째 부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6절에 나오는 말씀,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 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 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을 천상 교회의 생활로 해석 한다. 후 천년설 자들의 해석이 상징적이라면 이들 무 천년설 자들의 해석은 영적이라고 볼 수 있다.

③ 전 천년기 설에서는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붉은 용인 사단을 일 천년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일도 사단 이 천년왕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실제적으로 사단을 무저갱에 결 박하여 던져 잠그는 사건으로 해석한다. 첫째 부활 역시 죽은 자들의 부활로 보고 이들이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자들로 해석한다. 그리고 천년 후에 무저갱에 갇혔던 사단을 잠깐 풀어 주어 천년왕국을 미혹하게 한 후 최종적인 하늘의 불의 심판으로 천년왕국은 마지막을 고하고 흰 보좌 심판을 거쳐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계 19장과 20장은 그 문맥이 문장적으로 서로 이어지는 장이다. 적어도 계 19:1-20:15절까지는 문장적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성경 해석이 된다. 중간에 조금도 다른 것으로 해석해야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 11-16절까지는 백마를 탄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과 그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들의 모습이 나온다. 17-18절까지는
    적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섬멸하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모습과 그들의 시체 들로 새들의 큰 잔치를 베푸는 모습이
    나온다. 19-21절까지는 주님과 적그리스도의 군대들과의 전쟁에서 산채로 포로로 잡히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의 심판이 나온다.

㉡ 20:1-3절까지는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함께 인류를 통치하고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을 통하여 자신에게 경
    배케 한 붉은용의 운명이 나온다.
주님은 이용을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와 함께 불못 속으로 던지지 않고 사단을 일
    천년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근다. 이것은 분명히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생포하여 불붙
    는 못에 던진 후, 남은 하나의 존재인 붉은 용의 처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계 19:21절에서 모든 심판이
    끝나고 20장에 와서 또 새롭게 신약 시대로 돌아가 복음을 전 하기 위해 사단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일이 아
    니다. 이 문장 어디서 그같은 추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낼 수 있는 것인가?


㉢ 계 20:4절에서 순교자들의 첫째 부활이 나온다. 이제 천년왕 국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혹독한 환난 중에
    서도 신앙 의 정절을 지키며 죽기까지 충성한 하나님의 종들의 첫째 부활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천년
    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상급을 받아야 할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 중에는 오직 이들 순교자들만이 이 때 첫째 부활로 부활하게 되고 나머지 죽은 성도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고 말씀해 주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야말로 복이있는 성도들이라고 했다.

㉣ 20:6절에서 이들 첫째 부활자들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천년 동안
    은 사단이 일천년동안 무저갱 속에 갇혀 있는 기간과 동일한 기간이다. 그리고 천년 기간이 찼을 때, 무저갱에 갇혀
    있었던 사단이 풀려 나와 땅의 사방의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언급에서 사단이 결박당하고 있는 천년 동안이나, 첫째 부
    활 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천년이란 기간을 새롭게 형성된 땅에서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가는 기간임
    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이 때에 다시 한번 세상을 미혹하게 하시기 위해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
    스도나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불붙는 못에 던지우지 않고 천년 동안 무저갱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사단은 끝내 천년 이후, 최종적인 미혹의 역사를 이룬 그 후, 최종적인 자신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 일에 대하여 10
    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했다. 그 이후, 11-15절까지는 흰 보좌 심판에서 최종적인 인류의 심판이 마
    쳐지고 사망과 음부조차도 불 못에 던지우게 되므로 이제 이 땅에서의 창조에 속해 있었던 모든것들이 완전히 소멸되
    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시대가 열려지게 되는 것이다.

⑶ 다니엘서 2장에서 보여주시는 "한 나라"

계시록 20장에서 논의되는 "천년왕국"이 구약에서는 "메시야 왕 국"이란 말로 대체된다. "메시야 왕국"이란 말은 구약적이고 유대 적인 표현이요, "천년왕국"이란 신약적이고 교회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 메시야 왕국이란 용어도 신학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말이지 성경 어디에도 이런 용어가 없다. 메시야 왕국에 대한 적극적인 계시는 다니엘서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죄로 인 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다니엘을 통하여 메시야의 도래로 말미암은 새로운 왕국의 건설을 계시해 주었다.

그 이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소망을 실현시켜 주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같은 신앙은 단 9장에 나오는 칠십 이레의 예언을 잘못 해석하므로 고난의 메시야가 온 후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시기에 이같은 메시야 왕 국이 온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영광의 모습이 아닌 초라한 나사렛 땅의 목수의 아들로 오신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다.

우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인류의 종말과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가져야 한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 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단 2:31-35).

이 말씀은 꿈을 꾼 후 그 꿈을 잊어 버린 느부갓네살 왕에게 다니엘이 해몽해 준 꿈의 내용이다. 우리가 여기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진" 사건이 과연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신약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심판을 의미해 주는 것이냐의 판단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제시된 종말론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뜨인돌의 심판이 구약 시대의 종결과 신약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단 2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신상은 바벨론으로부터 인류의 종말까지의 역대의 나라들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것을 로마의 멸망으로 모두 끝내 버리면 다니엘서의 해석은 불가능하다.

다니엘서는 메시야 왕국이 그의 주제이며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계시를 보여 주고 있는데 다섯번째 나라의 멸망이 로마의 멸망이요 그 후에 세워진 "한 나라"를 신약 시대의 교회 시대로 해석한다면 다니엘서는 구약적인 예언서요, 인류의 종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 되어 버리고 말게 된다. 그 이유는 다니엘서의 전 내용의 전개가 바로 이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신상으로부터 시작되며 우상의 머리가 되는 바벨론으로 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뜨인돌"의 심판으로 종말을 고하고 그 이후엔 우상을 친 돌은 태산 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한 새로운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의 결론은 단 2:44절에서 다니엘이 왕이 꾼 꿈을 해몽한 결론에 나타나 있다."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멸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는 다니엘의 해석은 다니엘서의 중심 사상이 되어 있으며 이 나라를 세우는 예언이 다니엘서의 목적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예언해주고 있는 말씀을 보면 마지막 발 시대에 대하여 "이 열왕의 때"라고 밝혀 주고 있다. 열왕의 때란 로마 시대를 의미해 주는 일컬음이 아니다. 열 뿔이 무너지는 시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인 7년 환난 전후에 이르고 있는 시대를 의미해준다.

이 시대는 네 바람의 시대로 4대 세력이 열강을 이루고 있는 시대인데 이 시대의 마지막이 될 후 3년 반에 가서 적 그리스도가 마흔 두 달간의 권세를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계 13:5-7). 이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하나님이 세우신 "한 나라"가 어떤 나라이냐는 것이다. 이 나라가 신약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면 "메시야 왕국"인 천년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이 그 다음에 나오고 있다.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모든 나라"란 이 열왕의 때를 이루고 있는 세계의 열강들을 의미해 줌이 분명하다. 이 모든 나라들이 인류의 종말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섬멸되므로 세워지는 나라가 바로 "천년왕국"인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고 했다(계 16:14).

이들이 최종적으로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망을 받고 다음에 그리스도에 의하여 통치되는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가는 일이 없을 것이며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스려지며 끝내는 천국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니엘서는 바로 이같은 일에 대한 예언의 진술로 전개되고 있는것이다.

⑶ 다니엘서 7장에서 보여주시는 나라

다니엘서 7장은 종말에 등장할 "네 바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1-6), 그 네 바람 중, 네 번째 바람으로 나타나는 열 뿔과 적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7-8). 그리고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최종적인 심판이 나오고(9-12), 이어 새로운 왕국의 등장 모습이 나온다(13-18). 그리고 19-26절까지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과 그 활동과 유대인 에 대한 한 이레의 절반에 걸친 종교적 핍박의 형태가 나오고, 26 절에서 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심판과 27절에서 적 그리스도의 심판후에 오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이처럼 7장에서 전개되는 모든 사건에 관한 예언은 인류의 종말에 있을 종말적인 사건이지 결코 신약 시대를 이루는 로마의 마지 막 시기를 의미해 주고 있는 시대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면 7장 에서 보여주고 있는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한다.

①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
    도 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
    원한 권세로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이 말씀에서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환상은 인자 같은 이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한 나라를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
    다. 그러면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을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인자 같은 이가 누구며 그가 하늘에서
    오심은 과연 어느 시기를 의미해 주고 있느냐는 문제를 밝혀 내야 한다. 13절에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왔다"고 했다. 여기서 인자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의미해 준다. 그러면 그가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가? "하늘 구
    름을 타고 내려 왔다"고 했다.



    그러면 이처럼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온 인자는 초림의 예수냐? 재림의 예수냐? 하는 문제의 해답을 밝혀야 한다. 그
    누가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 온 인자"의 모습을 초림의 메시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처럼 해석한다면 이단
    으로 규정짓고 있는 통일교의 교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어나신 사실에 대하
    여 구름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의 메시야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마 26:64,막 14:62,계 1:7).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오셔서 세
    우시는 나라는 신약 시대의 교회를 상징해주는 나라가 아니라 인류의 종말에 세우실 "메시야 왕국"을 의미한다.

②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
    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 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고 했다
    (단 7:20-22).


    21절에 있는 "이 뿔"이란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이자가 성 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겼다고 한 것은 계시록 13:6,7절에
    있는 말씀과 같은 사건의 진술이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
    세를 받으니"라 말씀에서 나타난다.


    단 7:22절에서 이 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 하셨다"는 말씀에서 주님
    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적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는
    말씀에서 이같은 심판 후에 "메시야 왕국"이 탄생될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③ 단 7:25-27절에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 후에 심판 후에 있을 것임을 밝혀 주고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
    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천하 열
    국과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적 그리스도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
    내는 기간은 한 이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후 3년 반을 의미하며 이 때 적 그리스도의 권세가 빼앗기는 심판이 임하게 되
    고 이후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메시야 왕국"임 을 말씀해 준다.

⑷ 다니엘서 9장에서 보여주시는 칠십 이레의 기한


다니엘서 9장에서 보여주시는 "칠십 이레"의 예언은 "메시야 왕국"의 실현에 대한 중대한 의미를 보여주시는 계시이다. 이곳에 있는 "칠십 이레"에 관한 계시는 그 해석하는 일에 참으로 많은 방법이 있고 신학적인 논쟁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대목이기 때문에 쉽사리 단정적인 판정을 내릴 수가 없는 계시이다. 이 문제는 첫째 부활을 논한 <종말론적 해석과 부활>이란 란에서 이미 논술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가 여기서 다시 한번 언급되는 것은 이 문제가 "메시야 왕국"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24절에 나오는 말씀과 25-27절까지의 말씀에는 하나의 분기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24-27절을 계속적인 사건의 진행이 아니라 24절은 25-27절까지의 개론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의 회복과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간절히 사모하는 유대인들에게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으로 보여주신 종말론적인 계시로 "메시야 왕국"과 연관시켜야 한다.

24절이 25절 이하의 말씀의 개론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24절 "칠십 이레"가 도래한 후에 되어질 일을 결론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반면 25절 이하는 "칠십 이레"가 이룰 때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 니"라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야 왕국 도래의 기간을 "칠십 이레"로 정하셨다는 말씀이 된다. 그리고 그 칠십 이레가 이르렀을 때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해준다. 이 말씀은 초림의 메시야로 인한 구원의 성취를 의미해 주는 예언이 아니다.

이 일은 주의 재림 때,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과 그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의 기름 부음으로 말미암은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의미해 주는 예언이다. 유대인들은 그 때에서야 그들이 허물이 마쳐질 것이며, 죄가 끝날 것이며, 죄악이 영속되는 구속이 있을 것이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은총을 받을 것이며, 선지자들로 예언된 종말과 메시야 왕국에 관한 모든 이상과 예언이 응할 것이며, 그들이 기다려 온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가 나타나 메시야 왕국을 이룰 것이다. 25절 아래 부분에서 24절에 있었던 칠십 이레의 단일 기간이 두 개로 구분된 기간으로 양분된다.

① 먼저 25절에 나오는 69 이레의 기간을 보자.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62이 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 가 이룰 것이며 62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란 말씀이다. 69 이레의 기간은 나머지 한 이레의 기간보다 숫자적으로 굉장히 긴 기간이다.

그러므로 69 이레의 기간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그리스도의 초림의 시기 까지요, 나머지 한 이레는 초림 시부터 재림 시까지의 교회 시대로 보는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69 이레의 기간은 왜 그토록 짧은 기간으로 해석하고 한 이레는 왜 2천년이 넘도록 그대로 계속되는 그토록 긴 기간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냥 뜻없는 상징적이란 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69 이레의 기간은 분명한 뜻이 있는 기간이다. 그것은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할 때, 69 이레는 483년이 된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BC 445년에 있었던 귀환령이다.


② 다음에 27절에서 나머지 1 이레에 관한 기간을 살펴보자.


70 이레의 예언이 로마 시대의 붕괴와 신약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상징적 해석에서는 1 이레의 기간 역시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는데 전술한바 대로 신약 시대의 전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한 이레에 대하여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한 시대에 있을 "7년 환난" 기간이라고 하면 그러면 69 이 레로부터 한 이레 동안의 기간이 왜 그토록 오래냐고 질문한다. 69 이레의 시기부터 한 이레 기간에 이르는 기간이 긴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로 설명해 보려고 한다.

㉠ 첫째로 70이레를 69이레와 1이레로 양분했고 483년과 7년을 격리시킨 것은 전자는 주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요, 후
    자는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으로 분리하셨기 때문이다.
69이레는 그 출발점과 정착점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69 이레의
    처음 출발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다. 그리고 69 이레의 마지막은 "기름 부음을 받은자 곧 왕이 일어
    나기까지" 이다. 사실상 이것으로 69이레의 예언은 끝난 것이다.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예언은 성취되었
    다.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계시가 되는 1이레에 대한 예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원래가 70 이레란 70이란 숫
    자로 제한된 기간이지만 그 기간을 채우는 일에는 두 가지 사건이 별도로 진행 된다는 사실을 25절 이하의 말씀이 증
    거 해준다. 1 이레는 69이레의 사건과는 별도의 사건이다. 서로가 독립된 사건인데 이것을 각기 합산한 기간으로 70
    이레로 그 기간을 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1이레는 먼젓번 69 이레와는 별도의 방 법으로 계산해야 하며 또 성
    경에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예언해 주고 있다.

    27절에 가서 1 이레의 시발점이 나온다. 그 시발점에 대하여 "그 가 장차 많     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
    을 굳게 정하겠고"란 말씀이 나온다. 69 이레의 시발점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인 것처럼 1 이레의
    시발점은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라고 한 그 때부터이다. 26절의 "한 왕"이나 27절의 "그"는 종말에 등장할
    적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장자 적그리스도가 전쟁의 위협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세계 인류에게 "한 이레"의 평화
    조약을 체결케 하므로 소망을 주게 된다. 아마 이 평화조약은 세계대전의 일보 직전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잠정적인
    평화 협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간은 그 시발점을 여기서 보여주셨는데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1이레
    동안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는 그 시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이레의 끝인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한
    이레의 절반 시기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마지막이 되는 한 이레의 끝에 가서 이루어질 것임을 예언해 주는 것이
    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결정적으로 이 시기를 알려주시기 위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에 대하여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 한 이레의 절반에 가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는 사건, 적그리스도에 의해 유대인들의 말할 수 없는 종교적 핍박
    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한 언급을 주고 있다. 이처럼 단 9장에 나와 있는 69이레와 나머지 1이레는 메시야
    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별개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 간격이 초림과 재림 사이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이 70 이레에 관한 예언의 문맥으로도 이 양자간에는 현저한 간격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6절에서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란 말씀 중, "장차"란 표현 과 27절에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란 말에서 나타난
    "장차"란 기간은 우리가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예측할 수 없는 간격이 내재되어 있는 기간임 이 두 기간은 동
    일한 기간이다. 상징적 해석주의 자들처럼 이 기간이 초림의 주님으로부터 디도가 예루살렘을 침공한 시기까지의 간
    격인 70년을 두고 말할 수 있다면 이 기간을 주의 재림 시까지의 기간으로 둔다고 해도 모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실인즉 성경에서 주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재림의 징조가 아닌 년, 월, 일, 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이
    같은 방법의 재림시기 논의에 대하여 크게 경종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백년 동안이건 2천년간이건 3천년간이
    건 "장차"란 표현을 쓴 것이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하루를 천년처럼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장차"란 기간을 2천년
    이상의 기간과 연결시켰다고 해서 무엇이 이상한 것인가?

⑸ 이사야 65:17-25절에 나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본 천년왕국

성경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언급이 네 곳에 나와 있다. 사 65:17절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사 66:22절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벧후 3:13절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절에 있는 새 하늘 과 새 땅이다. 이 네 곳과 새 하늘과 새 땅 중에서 계 21:1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년왕국과 관계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 한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분명히 천국의 경우와 구분된다.

천국을 의미해 주는 계 21:1 의 경우, 이곳의 새 하늘과 새 땅은 2절에서 언급해 주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있지만 65:17절의 경우, 이 땅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상태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 65:17-25절에 이르는 말씀은 장차 나타날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인데 17절은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창조요 18절 아래는 그 나라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의 상태를 그려 주고 있다.

20절에 있는 말씀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은 유아와 수 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은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는 말씀에서 "메시야 왕국"에서는 결과적으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21, 22절에서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 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란 말씀에서 이 나라가 천국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23절에서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는 말씀에서 자녀의 생산도 존재하는 나라란 점에서 분명히 천국이 아니며 그렇다고 이같은 언급이 신약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너무나도 비약적인 논리다. 여기 나와 있는 "메기야 왕국"의 묘사는 신약 시대의 영적인 상황과 그 어떤 방법으로도 결부시킬 수가 없다.

⑹ 계 11:15절의 경우,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는 무엇인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고 했는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곧 일곱째 대접 심판을 알리는 최종적인 심판의 나팔이다. 이 나팔로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이 마쳐지고 그 후에 새로운 왕국이 건설되는데 그 왕국이 "천년왕국"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은 이처럼 일곱째 대접 심판 후에 이 세상은 새롭게 되어 새로운 나라가 새워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왜냐 하면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천국이 아닌 것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에서 확인된다. 이 표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의미해 주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가 멸망을 당한 후, 그곳에 새롭게 세워지는 새로운 한 나라를 의미해 주는 말인데, 그 나라를 우리는 "천년왕 국"으로 보는 것이다.

⑺ 천년왕국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 땅 위에 "천년왕국"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주님의 재림하심으로 기존 세계는 무너지고 이제 최상의 천국에 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끝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천년왕국을 주장하느니 차라리 지상과 천국의 중간역(中間驛) 구간인 천년왕국이 없고 곧장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해 주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성경에서는 천년왕국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인가? 천년왕국이 있어야 할 성경적인 타당성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할 줄로 안다.

① 인간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섭리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축복을 선언하셨다(창 1:27,28). 이같은 축복은 지금처럼 죄로 저주받은 상태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애초에 창조하신 그 아름다운 그대로의 세계에서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은 우리들로 이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를 스스로 거부하여 저주받은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생애를 살아가야 했다. 하나님은 애초에 인간들에게 선언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며 인간의 죄가 회복될 때 이같은 축복을 다시 주실 것이라고 하는 추론은 성경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②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 사람을 에덴 동산에 거하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8,9). 원래가 아담과 그에게서 태어날 후손들에게 안식처로 주신 땅은 에덴 동산이었다. 만약 아담이 죄로 타락하지 아니하였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아마 지금 그곳에서 삶을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이것은 가정이지만).

그러나 아담의 범죄는 자신이 그 행복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기로 예정된 모든 자손들도 아담으로 말미암아 에덴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저주받은 땅에서 저주받은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이것도 가정적 추론이다). 이같은 인간의 저주는 결과적으로 사단으로 말미암은 유혹 때문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회복을 위하여 메시야를 언약하셨고 그 메시야로 사단을 심판하실 것임을 선언하셨다.

창 3:15절에 있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언약이 그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독생자를 잉태케 하여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아담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심으로 죄의 저주에서 회복해 주셨다.

그리고 장차 인류의 종말에 가서 이 사단의 머리를 최종적으로 상하게 하는 심판으로 영원한 불 못 속으로 던지실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계 20:10 절에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아담의 실패로 상실한 에덴의 생활이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누린다는 추론은 매우 성경적이다.

③ 메시야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시대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섬긴 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생활을 해왔다. 그중 가장 혹독한 민족적인 유랑 생활이 바벨론 포로 생활이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 그들은 메시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해 왔고 이 소망이 급기야는 메시야 왕국으로까지 발전되어 나갔다. 그것은 이사야로 혹은 다니엘로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복된 세계를 소망으로 보여주며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 나라를 기다리게 하였는데 그들이 기다린 이같은 나라가 "메시야 왕국"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야가 나타나기만 하면 자신들 에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이 세계는 유대인들을 위한 세계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온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형성되는 나라로 생각해 왔다. 이같은 사상은 예수님이 세상에 생존해 계셨을 때에 그 절정에 이르게 되었으며 주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가 예수시며, 이제 이 예수로 말미암아 곧 그들이 소망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상과 제자들의 생각은 복음서 곳곳에 자주 보인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고 말씀해 주고 있다(눅 19:11).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고 질문한 말은 이스라엘의 영토적인 회복이라기보다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의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상하게도 이들의 이같은 질문이나 생각에 책망하시거나 부정적인 언질을 주신 일이 없으셨다는 사실이다.

2. 천년왕국의 형성

천년왕국은 분명히 새로운 세계다. 새롭게 형성된 세계여야 한다. 기존의 창조된 세계에서는 천년왕국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천년 왕국은 지금의 저주받은 형태의 땅이 아니라 범죄 이전의 완전한 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로 저주받은 땅에서는 새로운 세계로서의 아무런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복사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그 세계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르고 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다"고 했다(사 65:17).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하나님께서 "내가 창조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입각해서 천년왕국이란 새로운 세계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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