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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말론에 대두되는 천년왕국설(계1:1-3)
 민병석  11-11 | VIEW : 6,535

요한계시록 강해 (4)


        종말론에 대두되는 천년왕국설  


  본문 말씀 / 요한계시록 1 : 1 - 3


  서론 : 요한계시록 해석에 천년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천년설이란 천년왕국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를 신학적으로 다룬 문제입니다. 이 천년왕국은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결정적 열쇠가 되며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그토록 많은 차이점을 들어내는 원인이 어데 있느냐하는 문제를 따져보면 실인즉 천년왕국설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설은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종말론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이 잘못되면 종말론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주 재림에 관한 사건해석에 혼선과 혼미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올바로 깨닫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천년왕국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 천년설, 후 천년설, 전 천년설, 그뿐 아니라 전 천년설 안에도 역사적 전 천년설,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등, 꽤나 많은 학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천년왕국  설에 관심을 가지고 이 천년왕국설이 무엇이며 이 천년왕국설이 왜 종말론의 해석을 혼잡하게 하여 왔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천년왕국설 중에 과연 어떤 천년왕국설을 취해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종말론에 대두되는 천년왕국설


  종말론을 강해하려면 누구든 어느 것이건 한 가지 천년왕국설만을 취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어떤 천년왕국설을 취하느냐에 따라 종말론 해석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해석에 천년왕국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설은 대개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후 천년설’이고 다음에‘무 천년설’이며 세 번째로 ‘전 천년설’이 있습니다.

   (1) 후 천년설 ··· 후 천년설(後千年說)은 천년왕국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신학적 견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 이 땅위에 천년왕국이 존재하게 되고 그 이후에 재림이 있다고 하는 학설입니다. 이 후 천년설은 다분히 상징적인 면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이 땅위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설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복음은 앞으로 계속해서 세계적으로 전  파될 것이며 온 세계가 복음화 되어 이 세상은 전쟁과 범죄로 인한 시대는 지나가고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새롭게 변환 된 세상이 올 것인데 복음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시대를 그들은 ‘천년왕국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이런 시대를 거친 후에 하나님의 교회가 사탄의 총공격을 받게 되며 이 때 이 악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설이 후 천년설이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이 같은 후 천년설을 취한다면 요한계시록은 걷잡을 수 없는 혼미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진리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2) 무 천년설 ··· 무 천년설(無千年說)은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이 없다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근래에는 많은 신학자들이 이 견해를 선호하고 있으며 이 무 천년설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설을 취하게 될 때 풀리지 않는 문제점들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 천년설에 맞지 않는 성경 구절이 나오면 그것을 자신들의 무 천년설에 합치하도록 뜯어 고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런 경우에, 상징적 해석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성경에 합치된 해석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결박하여 천 년간 무저갱에 던져 넣는 사건을 교회 시대에 사탄의 활동을 제한하는 해석으로 풀이하고, 천년이란 기간을 교회 시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첫째 부활에 대한 해석도 첫째부활이 죽은 자들의 첫 번째 부활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거듭나는 중생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3) 전 천년설 ··· 다음에 전 천년설(前千年說)이 있습니다. 이 전 천년설은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신학 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신 후 이 세상에 새로운 왕국이 세워지는데 그 왕국이 천년왕국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전 천년설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종말적인 사건과 일치되는 학설로 보수 진영의 교단 중 대부분 이 전 천년설을 종말론의 신학적 견해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 천년설도 여러 가지 상충된 견해로 갈라지는 나머지 많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특이한 전 천년설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소위 ‘세대주의 전 천년설’(世代主義 前千年說)입니다. 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다른 전 천년설과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보통 전 천년설이라고 부르지 않고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라고 말합니다.

  (4) 세대주의 전 천년설 ···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때 종말론 해석이‘세대주의적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며 올바로 강해해 보려는 목회자들은‘세대주의적 종말론’이 무엇인가? 세대주의 신학(世代主義神學)이 요한계시록 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주의 해석에 경계심을 늦추게 되며 오히려 매료되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세대주의’란 세대주의 신학을 의미하는데 이 신학은 18세기 영국의 ‘존 넬슨 다비’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그 후‘스코필드’에 의해 신학적 체계를 갖추어 미국의 신학계를 휩쓸었고 계속하여 전 신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세대주의 종말론’이란 세대주의 신학에 의해 정립된 종말론을 말하는데 원래가 세대주의 신학이란 세대주의 종말론에 그 연구의 초점을 두고 출발한 신학입니다. 세대주의 신학은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대략 다음 몇 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함께 유대인들을 위한 종말론적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야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서 죽인 결과 그들의 메시야 왕국이 연기됨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교회 시대입니다.

  ㉰ 성경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교회 시대는 바로 여섯 번째 시대에 속한 세대로, 7년 대 환난은 교회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복을 위한 종말적인 회개 기간입니다. 교회 시대는‘7년 대환난 전’까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종말의 7년 대 환난 이전에‘공중 휴거’되어야 하며 이 땅위에 임하는 7년 대 환난을 겪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 같은 다양한 천년설로 인하여 종말론은 여러 갈래로 찢기고 갈라진 상태에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에다 요한계시록 안에는 신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그 이마에 인 맞은 십사만 사천의 무리’‘두 증인’‘짐승’ ‘흰 말’‘첫째 부활’등이 난제로 등장하는데 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견해가 다르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이 뒤바뀌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종말론이 통일된 내용으로 정립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2. 문제의 해결


  모든 사람들이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자신의 해석이 가장 성경적 해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성경적 해석이 왜 그토록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 놓고 있으며 심지어는 한 문제를 가지고 전혀 상반된 입장에서 주장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종말론을 연구해야 요한계시록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심혈을 기우려 깊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문장적 해석 방법(文章的 解釋方法)을 취하여 연구한 결과 제 나름대로의 종말론의 정론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나 다른 성경 여러 곳에는 종말에 관한 많은 계시들이 혹은 체계 있게 혹은 단편적인 사건의 계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신학적인 결론을 내려, 전 천년설이다 무 천년설이다 하는 식으로 매듭을 짓지 말고 한 문제 한 문제를 문장적으로 해석하여 서로간 연결시키므로 한 사건 한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천년설에 있어서 성경적인 천년설이 등장하게 되고 사건들이 연결되어 종말론의 대단원(大單元)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신학에 얽매이다 보면 그 신학의 범위 안에서 해석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어 문제의 올바른 성경적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의 대 드라마의 연출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난해 구절이 있어도 풀리지 않는 구절이 없으며 무슨 문제이건 독단적으로 등장했다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는 법도 없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성된 하모니를 이루도록 전개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해석 방법을 문장적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한 가지 문제를 성경 전체의 내용과 연결시켜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문장으로 맥을 이을 때 신학을 초월한 성경적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맥은 의심할 여지없이‘전 천년설’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전 천년설의 토대 위에 계시된 여러 문제에 대하여 한 문제 한 문제씩을 해석하여 주 재림의 조감도(鳥瞰圖)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해석할 수 없는 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 계시라고 하는 문구 자체가 비밀한 것의 그 너울을 벗겨 보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이 계시를 하나님의 뜻대로 알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까이하고 연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하신 그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론 : 예수님의 재림은 바로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랑을 기다리는 일에 우물쭈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되어 주 재림의 날에 그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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