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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요한계시록 공부 (계1:1-7)
 민병석  10-14 | VIEW : 3,899
요한계시록 강해 (1)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요한계시록 1 : 1 - 7 

    
  여러분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그 어느 교회 성도보다도 더 많이 들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요한계시록 강해를 마치고 오늘부터 우리는 좀 차분한 분위기에서 주 재림의 소식이자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읽히기를 바라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배우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소식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복된 소식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재림은 그 구원을 완성하는 마무리가 됩니다. 무슨 일에나 마무리가 없거나 그 마무리가 시원치 않으면 결과를 기다린 보람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도대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도착점은 어데 입니까? 여러분은 어디를 목표로 알고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것입니까? 무덤이다? 무덤 너머에 무슨 세계인가 있는데 잘 모른다? 그냥 살다가 죽는다? 그 이상은 모른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자신의 최종적인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온 것입니까?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후5:1-2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그러면 우리의 구원의 결과는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우리에게는 장차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과연 여러분 인생의 이 최종적인 결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이 결과를 모르고 산다는 일은 마치 짐승이 자기의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생활을 하면서 소망 있는 생애를 살아가려면 우리의 최종적인 결국이 어떻게 될지를 알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이 내 인생의 결국이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에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면 복음이 말해 주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며 너무나 감격어린 결실입니다. 엡1:3-5절까지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너무 고무적이며 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려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됩니다. 한번 모두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 말씀의 뜻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신학적인 토를 달 필요도 없고 교리적인 문제를 제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밝혀 주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늘의 모든 축복을 우리들로 예수님과 함께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이 소식이 복음이 아닙니까? 우리는 비록 지금 세상에서 이처럼 비천한 몸을 가지고 고생스럽게 살아가지만, 그리고 우리의 지금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천하게 여겨지지만 실상인즉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와 같은 신분인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에 올라가 하늘에 있는 신령한 모든 축복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된다고 하는 이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언제 결실하는 것입니까? ? 그 결실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알 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야 말로 꿈에도 잊지 못할 우리들의 현재의 삶의 목적이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인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몸이 부활하고 혹은 살아 있는 몸이 홀연히 변화 받아 신령한 몸으로 덧입는 그런 날이 우리에게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하늘의 유업을 받아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전 15:44절과 49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고, “우리가 흙의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바라본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말미에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그의 다시 오시는 재림을 간절히 사모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완전한 소망이 이뤄지는 순서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너무 너무 좋아서 우리의 마음은 소망 가운데서 기뻐 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우리가 누릴 이같은 우리의 마지막 영광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과 세상 것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주 재림에 대한 소망 중에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노아의 때와 같은 생활이라고 나무라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사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모든 교회 성도들과 주의 종들은 이런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주시며 그런 성도의 준비를 하게 하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1:3절의 말씀에 들어 있는 복된 말씀을 잘 음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는 오늘부터 이 주 재림의 복된 소식을 다시 듣게 됩니다. 우리들의 생애의 최종적인 목적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데 있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생애는 그 날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신부의 모습을 갖추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식은 가장 긴급하고도 긴요한 소식이며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신부의 자격을 갖추게 하시게 하시려고 주신 편지인 요한계시록은 신부들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반갑고 귀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밤낮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아니할 사랑의 편지이며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소망 중에 신랑을 사모하고 기다리게 되는 사랑하는 님의 소식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종이 이 메시지를 등한히 하게 되면‘악한 종’이란 책망을 듣게 되며 주님은 이들에 대하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마24:48-51). 반면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양 무리들로 주 재림을 소망으로 예비하는 생활을 하게 하면 주님은 그런 종들에게 ‘그 모든 소유를 맡기리라’는 말씀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4:44-47).

  요한계시록이 성경에서 빠지면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수 없으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공허에 그치고 맙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그가 오시면 이 지상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데 이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고 말하며 이 혼인 잔치는 곧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릴 천년왕국에서의 성도들의 복된 삶을 의미해 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의 재림에 우리의 삶의 표적을 맞춰 신부의 단장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복된 신부로서의 단장을 위하여 계시해 주신 성경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며 그래서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류의 구원 문제와 함께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심판에 대하여도 광범위하게 계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면 성경 전체의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신중해야 하며 계시해 주신 말씀에서 이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계22:18-19).

  우리는 오늘부터 이 귀하고 복된 계시의 말씀을 다시 처음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이 예언의 말씀을 그 종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받아먹고 다시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우는 사람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로 이들은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할 신부들인 성도들입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들을 때는 반드시 할례 받은 귀를 가지고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성도들은 이 주 재림의 소식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이 계시록의 내용을 전하는 편지에서 주님은 각 교회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 여러분의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그가 오실 그 날을 사모하여 기도하실 때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간절한 심령으로 이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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