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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의 강 (요한계시록 22 : 1 - 5)
 민병석  11-06 | VIEW : 7,538


생명수의 강
성경 본문 / 요한계시록 22 : 1 - 5

요절 :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
          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1,2).

서론 : 오늘 우리는 드디어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 이르게 되었다. 22장은 21장의 계속이자 요한계시록의 결론
          이기도 하다. 22장 에는 21장에서 이어지는 약간의 천국의 모습이 보이며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경종이 담겨진 말
          씀으로 매듭 짓고 있다. 22장은 성경 전체의 결론이요 하나님의 예언과 계시의 마감이기도 하다.


1. 생명수의 강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의 계시에서 생명수의 강을 바라보았다.

(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였다"고 했다 : 천국의 풍경에 바다의 모습은 바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았다. 이 강물은 수정같이 맑더라고 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강물이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강이다. 이 강 이름을 생명수의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 속한 모든것들
     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을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가 아니며 이 강물이 차서 넘치면 그 물줄기를 타고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는 주
     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이 생명수의 물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했다. 생명수 강의
     물 근원을 밝혀 주신 말씀이다. 이 강은 새 예루살렘 길 가운대로 흐르는데 강물의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
     부터 난다고 한 것은 천국에 있는 모든 존재의 발생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이심을 나타내 준 말씀이다.

(2)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다고 했다 : 이 생명 나무 역시 천국에서 각가지 실과를 맺는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
     로 다른 영적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생명 나무의 실과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실과의 실체로 그 맛, 향기, 모양,
     아름다움에 있어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같은 실과가 달마다 맺힌다고 했다. 이같은 표현은 따 먹
     어도 곧 다시 맺혀지는 신비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장차 부활한 몸으로 이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될 것이다. 부활 한 몸은 신령한 영원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먹지 않
     고도 결코 배고픔이 없고 아무리 먹어도 배부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에 이곳에서 달마다 맺히는 생명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며 이 세상에서 먹고 싶었던 실과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찬송이 나올 것이다. 2절을 보면 "그 나무 잎사
     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다. 생명 나무에는 물론 잎사귀도 있을 것이다.

     나무에 있는 잎사귀들은 무익한 존재가 아니다. 주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알이 있으시지만 하늘에
     있는 생명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자체만도 만국을 소성케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만국이란 그곳에 거주 하
     는 모든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천국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의미
     하며 그 존재의 영원성과 신비성을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이다.


2. 어린양의 종들과 천국의 왕권자

우리는 3절 이하에서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된다.

(1)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고
     했다
: 저주가 없는 것은 그곳에는 영원히 죄가 존재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얼마 안가 저주로 망하게 될 것이다. 이 나라에는 다시는 밤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단이
     주관해 온 영 적 밤도 영원히 살아져 버렸다. 해가 지므로 찾아오는 밤도 이제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인생들이 맞은 밤은 피곤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다. 그러나 이곳은 영원한 안식 생활의 계속이기 때문에 피곤함이나
     육체를 쉬게 할 만한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등불과 햇빛도 쓸데없다고 했다. 낮의 햇빛이나 밤의 등불이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그 도성을 비취실 것이기 때문이다.


(2) 3절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한곳에 있
     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 우편이 어느 자리이며 그 자리에 앉
     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그 때 가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 밝혀 주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그 모든 권세
     와 권능이 동등이심을 의미해 주시는 말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4절에서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했다
:
     이곳에서 불려지는 그의 종들이란 누구인지 그 대상을 지적하기란 어렵지만 일반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
     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그의 이마에 있다는 표현으로 보아 이들이 144,000명의 순교자들을 포함한 "첫째 부활자"들로
     보게 된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천년왕국에서 왕권을 가지
     고 천국에 들어온 성도 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국에도 왕권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왕권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왕 노릇할 존재란
     언제나 극히 적은 소수이다. 천국의 모든 성도들이 왕 노릇 한다는 말은 요한계시록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 모든 성도들이 왕 노릇 한다면 그것은 왕이 아니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할 그의 종들이란 새 예루살
     렘에서 받을 최고 최상의 상급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주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린 순교 성도들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결론 :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 보고 온 사람은 없다. 천국을 보았다는 간증은 천국의 꿈을 꾸었거나 환상을 보았거나 잠
          시 죽은 것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보여 주신 것이지 천국에 갔다 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세
          상에 내려 왔던 사람들은 엘리야와 모세 밖에 없다. 이들은 변화산에 나타나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대화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천국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사도 요한도 천국의 모습을 천사에 의해 계시로 본 것뿐
          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장차 이 나라에 들어가 살아갈 소망이 있다. 그 날은 속히 올 것이다.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다(계22:20).

<복습문제>
① 천국의 길 가운 대로는 무슨 강이 흐르는가?
계 22 : 1, 2
② 생명 나무는 몇 가지의 실과를 맺는다고 했나?
계 22 : 2
③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누구인가?
계 21 : 5

<연구과제>
* 7일 안식설(安息說)의 오류
/ 2천년 대가 가까이 오면서 근래에 7일 안식설이 극성스럽게 머리를 들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6천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나고 안식 세계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데 그 시대가 곧 천년왕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성경적 근거를 히4:4 이하의 "7일 안식설"에 두고 있다. "제 7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 "란 말씀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같은 성경 해석은 대단히 큰 오류에서 나온 것이다.

① 히4장에 나오는 7일 안식은 인류의 역사의 6천년 다음에 오는 천년간의 안식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인류들이 천국에 들어가 누리는 영적 안식을 의미해 주고 있다. 9,10절이 이같은 사실을 증거 해 준다.

② 현금의 달력은 태양력인데 이 달력은 최종적으로 1582년 10월에 로마 교왕 그레고리 13세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며 그 근원은 주전 47년 로마의 시저가 애짚트에서 도입하여 율리우스력으로 불려진데서 시작된다. 특히 홍수 이전의 달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④ 유대인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 창세기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전의 년대를 3761년으로 계산하므로 우리의 계산과는 무려 239년의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의 계산에 의하면 지금 우리의 년대는 1994년이 아니라 1775년이 된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에 대한 시기는 인간이 사용하는 달력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며 성경에 나타나는 종말적인 징조를 보고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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